브루탈리즘의 성지 바비칸 센터와 가이젤 도서관

브루탈리즘의 성지 바비칸 센터와 가이젤 도서관

2018-10-23T14:38:53+00:00 |living|

아름다운 흉물, 브루탈리즘이 돌아왔다.

돌고 도는 패션처럼 과거의 건축 양식이 다시 관심을 받는 경우가 있다. 요즘 건축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는 브루탈리즘의 부활이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비웃음을 샀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탄과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다.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브루탈리즘이라는 이름은 야만적이거나 공포스러운 외형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프랑스어로 ‘생콘크리트’를 뜻하는 베통 부르 Béton Brut에서 유래했다. 브루탈리즘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유행했는데 학교, 교회, 공공주택, 관광서 등 주로 기관이나 단체의 의뢰로 지어졌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친근한 느낌을 주는 모습으로 건축 양식의 흐름이 변화하기 시작하자 대척점에 있던 브루탈리즘은 빠르게 쇠태했다. 혐오스러운 데다 도시를 음산하게 만든다는 게 이유였다. 그로부터 또 몇십 년이 지난 현재, 브루탈리즘은 근사한 ‘콘크리트 벙커’가 되어 다시 건축계로 복귀했다.

브루탈리즘 건축물은 유지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철거도 쉽지 않다. 리모델링도 어려워 건축가가 의도한 그대로 건물이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기존 설계를 바꾸기 어렵다는 점은 단점으로 보일 수 있지만, 브루탈리즘의 귀환에 큰 몫을 하기도 했다. 혼란스럽고 부스러지는 것들 투성이인 지금, 처음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는 영속성은 분명 각별한 매력이기 때문이다. 브루탈리즘을 대표하는 건축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일단 ‘브루탈리스트’라는 분류부터 매우 광범위해 정의 내리기 어렵다. 흔히 르 코르뷔지에와 루이스 칸을 브루탈리스트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두 건축가의 건축물은 브루탈리즘이라기엔 어딘지 인간적인 면이 있다. 브루탈리즘은 좀 더 거칠고, 뭉툭하고, 차가우면서 입체적으로는 간결해야 한다. 도발적이고 흥미진진한 건축사조였으면서, 현재진행형이기도 한 브루탈리즘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고 넓다.

 

바비칸 센터와 아파트
Barbican Centre and Estate

소재지 런던
완재공 1982년
설재계 Chamberlin, Powell & Bon

바비칸 센터와 아파트는 2차 대전 중 런던에서 가장 폭격을 심하게 받은 지역에 지어졌다. 압도적인 규모와 복잡한 형태는 혼란스러워서 아름답다. 건물 내부의 복도와 통로, 구름다리와 터널이 별자리처럼 이어져 있어 길을 잃기 쉬운데, 브루탈리즘을 좋아한다면 그것조차 즐거울 것이다. 바비칸 센터와 아파트의 설립 목적은 잘 설계된 건축물 안에 사람들이 살 공간을 마련하는 한편, 사람들에게 예술과 문화가 가득한 유토피아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모든 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런던 한 가운데서. 지난 2003년 바비칸은 ‘런던에서 가장 못생긴 건물’로 선정됐지만, 지금은 멋진 건축물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다.

 

보스턴 시청사
Boston City Hall

소재지 보스턴
완재공 1968년
설재계 Kallmann, McKinnell & Knowles

보스턴 시청사는 오랫동안 차가운 대접을 받았다. 최고의 건축물을 선정할 때마다 꾸준히 이름을 내밀긴 했지만, 거의 해마다 시청사를 철거하라는 청원이 제기되었다. 브루탈리즘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예로 드는 건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스턴 시청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높게 솟은 천장과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올 것 같은 실내에 열광했다.

 

메트 브로이어
The Met Breuer

소재지 뉴욕시
완재공 1966년
설재계 Marcel Breuer

마르셀 브로이어가 바우하우스에 있던 시절 만든 가구들은 모더니즘의 상징이 다. 그가 콘크리트와 화강암으로 지은 메트 브로이어는 맨해튼에서 가장 아방가르드 스타일에 충실한 건물이다. 1966년 휘트니 미술관으로 개관했을 당시 브로이어의 작품 중 최고로 소개되었고, 브루탈리즘을 설명하는 예로 꼽혔다. 수많은 명화가 이 미술관을 거쳐갔지만, 건물만큼은 아직 제자리에서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다.

 

스포메니크 기념비
Spomenik Memorials

소재지 구 유고슬라비아 전역
완재공 1950~2000년

산 중턱에 기이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건축물로 유명하지만, 사실 스포메니크는 2차 대전 중 유고슬라비아 시민의 저항을 기념하기 위해 소비에트 시절 건립한 기념비다.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이나 공공을 위한 위한 건축물은 아니어도 분명 브루탈리즘적인 요소를 담은 장식물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각각 다른 건축가가 디자인을 맡았고, 현재 수백 개에 이르는 기념비가 유고슬라비아 곳곳에 흩어져 있다. 건물처럼 커다란 기념비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의 크기는 사람만 하다.

 

가이젤 도서관
Geisel Library

소재지 캘리포니아 라호야
완재공 1970년
설재계 William L. Pereira & Associates

브루탈리즘과 닥터 수스를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이젤 도서관 역시 흥미로울 것이다. 라호야에 살았던 테오도르 수스 가이젤 작가의 이름을 딴 이 도서관은 닥터 수스의 그림, 저서, 녹음 자료, 기념품 등 8천5백 개가 넘는 방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건축가 윌리엄 페레이라는 인상적인 건물을 많이 남겼는데,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트랜스아메리카 피라미드 타워, 할리우드에 있는 CBS 텔레비전 시티, 말리부의 페퍼다인 대학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독특한 건물 디자인은 책(유리로 둘러싼 층)을 든 손(양옆으로 벌어진 콘크리트 기둥)을 형상화한 것이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
The Cathedral of Saint Mary of the Assumption

소재지 샌프란시스코
완재공 1971년
설재계 Pier Luigi Nervi & Pietro Belluschi

피카소가 물감의 장인이었다면 이탈리아의 공학자이자 건축가 피에르 루이지 네르비는 콘크리트의 장인이었다. 미국 내에서 그의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은데,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그가 설계한 건축물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힌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내관이 외관보다 더 매력적이다. 건물의 용도 때문에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당연히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신이 아닌 건물 자체가 조장하는 위압감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인간이 설계한 내부 공간 중에서 가장 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신보다는 공학과 예술의 힘을 더 믿게 될 정도로 감격스럽다. 건축 설계를 맡은 네르비는 공사 당시 철큰 콘크리트를 하중을 버틸 수 있는 한계 직전까지 활용했다고 한다.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극단적인 캔틸레버와 훤히 드러난 내력 기둥을 보고 있으면 아슬아슬한 마음에 과연 안전할지 걱정이 앞서는데, 이 또한 신을 믿고 의존하게 하려는 건축가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뱅크 오브 런던 앤 사우스 아메리카
The Bank of London and South America

소재지 부에노스 아이레스
완재공 1966년
설재계 Clorindo Testa and Sepra

건축 평론가든 건축 애호가든 주로 외관에만 관심을 갖는다. 특히 ‘중량감’이 매력인 브루탈리즘이라면 육중한 외관에 눈을 압도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한다면, 브루탈리즘의 다른 특징 중 하나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뱅크 오브 런던 앤 사우스 아메리카 건물처럼 브루탈리즘 건축물의 실내는 넓고 바람이 잘 통하고, 가벼운 느낌이 드는 경우도 많다. 이 건물은 20세기의 중요한 건축물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한 세계 순회 전시에도 포함된 바 있다.

 

트렐릭 타워
Trellick Tower

소재지 런던
완재공 1972년
설재계 Ernë Goldfinger

런던은 브루탈리즘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도시다. 2차 대전 이후 높은 콘크리트 아파트를 짓는 것이 가장 간편하게 시민들의 주거지를 마련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거 공간은 여전히 엄격하게 공공주택으로 운영되지만, 매물이 나오면 순식간에 팔린다. 최근에는 방 3개가 딸린 집이 11억원을 조금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이 건물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트렐릭을 설계한 에르노 골드핑거는 부하직원들에게 독재자처럼 군 데다가, 그의 작품은 위압적이고 불쾌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작가 이안 플레밍이 ‘007’ 시리즈에 나오는 악당 중 한 명의 이름을 골드핑거로 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