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나은의 산뜻한 미소

손나은의 산뜻한 미소

2018-10-24T13:20:53+00:00 |interview|

요즘 손나은은 더없이 고요하다. 자주 웃지 않지만, 종종 크게 웃는다.

원피스, 이자벨 마랑. 이어링, 스타일리스트의 것.

 

원피스, 지방시.

 

원피스, 팬츠, 모두 발렌티노.

 

톱, 메종 마르지엘라. 이어링, 젤러시.

 

터틀넥, 알렉산더 왕.

오늘 갑자기 스케줄 하나가 취소됐다고요. 행운처럼 생긴 시간에 뭐 했어요? 엄마랑 동생이랑 브런치 먹으러 갔다 왔어요.

늘어져서 쉴 법도 한데요. 대부분 그래요. 근데 왠지 모르게 오늘은 꼭 나가야 할 것 같았어요. 요즘 날씨가 너무 좋아서요. 지금이 아니면 더 추워질 것 같으니까요.

어떤 계절을 좋아해요? 겨울을 완전, 되게, 제일, 좋아해요.

방금 가을을 찬양하는 것 같았는데…. 그 겨울만의 고독함과 쓸쓸함이 너무 좋아요. 좀 이상하죠 답이?

곧 겨울, 벌써 한 해가 끝나가요. 2018년을 인생 그래프상에 점을 찍는다면, 어떤 굴곡의 어느 지점일 것 같아요? 제 그래프는…. 사실 한동안 일자로 평평하게 뻗은 상태예요. 막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고 요즘 평탄한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 이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거잖아요, 그렇죠? 그 전에는 상승곡선 이었겠죠. 그렇다고 아주 가파른 상승곡선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음, 그래서, 뭐였죠? 질문이? 흐흐.

이미 답을 했어요. 평탄한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예요? 작년? 재작년? 아니, 작년 초쯤?

평탄하다는 건 조바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한가요? 네. 그건 자신감인 것 같아요. 저 자존감은 되게 높아요. 제 스스로 그걸 느끼고, 보는 사람도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스태프 실장님들도 연예인들 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되게 많다고 말씀하시는데, 전 좀 다르다고 해주세요. 그동안 자존감은 계속 높았는데, 자신감이 좀 떨어졌던 거죠. 그런데 작년부터 뭔가 개인적인 활동도 많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 내가 못 보여줬던 것, 그걸 좀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음, 그래서 뭐였죠? 질문이 뭐였죠?

자존감이 얼마나 높아요? 사실 스스로에 대해서 ‘아 나는 못 해, 나는 저거 못 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 뭐 들어오면 ‘이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해요. 사실 걱정은 되지만 전 제 자신을 많이 믿었던 것 같아요. 엄마도 그렇게 말씀하세요, 제가 자존감이 높다고.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직업을 택한 저의 환경에서요. 자존감이 낮으면 어쨌든 정신적으로도 더 많이 약해지는 것 같고, 난 빨리 뭘 해야 돼, 빨리 돈 더 많이 벌어야 돼…. 그냥 천천히 제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가길 원했던 것 같아요. 갑자기 뭔가 확 유명해진다거나 정말 엄청 큰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다거나, 그런 걸 원하진 않았어요.

나은도 그렇지만, 에이핑크도 그렇게 보여요. 맞아요. 에이핑크는 콘셉트적으로 보면 그게 더 잘 보여요. 자연스럽게 걸그룹 연차를 잘 넘어간 것 같아요. 데뷔 초는 되게 귀엽고 순수한 느낌이었다면, 어느 순간 좀 더 성장하는 모습으로 잘 바뀌었잖아요. 대중들이 저를 보는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변했고요. 그래서 전 만족해요!

자신감은 왜 떨어졌어요? 물론 초반에 자신감 없었어요. 보미 언니, 은지 언니랑 저는 성격이 좀 다르잖아요?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더 자신감이 좀 없었는데…. 사실! 에이핑크가 처음엔 전체적으로 자신감이 좀 없었어요. 걸그룹이 많이 나오던 시기이기도 하고, 그때 당시 섹시 콘셉트, 센 콘셉트가 되게 많았어요. 우리는 콘셉트가 다른 그룹에 비해 애들 같은 것 아닌가, 자꾸만 막내나 후배인 것 같고, 뒤에 숨어 있어야 할 것 같고….

아이돌 그룹이라도, ‘앞으로 뭐 하지?’는 늘 유효한 고민이죠? 예전에는 막연히 아이돌로 데뷔해서 연기를 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지금도 다르진 않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이나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생겼어요. 미술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것과 연결된 무언가를 하고 싶어요. 발산할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마음도 너무 커서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렇게 촬영장에 오면 막 조명 하나하나 세팅하는 거 어떻게 하는지 계속 구경해요. 또 스타일리스트 실장님이 옷을 입혀주면 어떻게 스타일링해주시는지, 어떤 소재가 어디에 어울리는지, 저도 같이 공부를 하는 거예요. 아, <여곡성> 영화 촬영장에서는 특히 더 그랬어요. 사극 영화 세트장이 하나하나 다 너무 신기한 거예요. 무대 디자인도 하고 싶고, 영화 미술팀도 들어가서 일해보고 싶어요. 그런 게 꿈틀꿈틀, 내 안에서….

집에서 다시 그림 그리기 시작했죠? 네. 하고 있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예전엔 입시 위주로 미술을 했다면 이제는, 개인전을 하거나 대중들에게 뭔가 보여줄 그림을 그리려면, 정말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기가 어려워요. 그런 강박관념이 좀 심해진 것 같아요. 미술 선생님이랑 통화를 했는데 “예전처럼 쉽게 접근하면 안 된다, 너만의 생각이 있어야 하고, 그 생각을 정말 다듬어야 된다”고 하셨어요. 지금 약간 정체성 멘붕이에요. 인정받을 수 있는 걸 그리고 싶은데….

틈틈이 책을 읽는 건 도움이 되나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릴 때 독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일주일에 몇 권씩 집으로 책이 배달 오는 그런 것도 있었고요. 그때 습관이 지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올해는 한 달에 한 권꼴로 책을 읽었어요. 인스타그램 피드에 다 올리지는 않아요. 내가 뭘 했고 어떤 걸 읽었고, 나 이거 읽었어요, 라고 공개하고 싶지가 않아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다 공개해버리면 왠지 나 혼자만의 생각과 고민을 들켜버리는 것 같은 느낌? 최근에 읽은 것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여곡성>의 유영선 감독님이 선물해주신 <벌들의 죽음>예요. 두꺼운데 비행기에서 금방 읽었어요. 저 되게 빨리 읽어요.

주로 소설? 네. 거의 소설이에요. 요즘엔 고전 문학에도 관심이 생겨서 많이 읽고 있고요. 자기계발서는 별로예요. 그냥 다 똑같은 내용 같아요. 짤막짤막해서 집중도 잘 안 되고요.

영상보단 텍스트와 더 친숙한 사람 같아요. 오, 맞아요. 저 드라마도 안 봐요. 넷플릭스도 다른 친구들처럼 끈기 있게 보질 못 해요. 사실 저 유튜브도 안 봐요. 요즘 유튜브가 그렇게 핫하다고, 멤버들도 유튜브를 진짜 많이 보던데, 저게 대체 뭐가 재미있지? 뭘 보는 거지 여기서? 그래요. 하하. 제가 보는 건 에이핑크 직캠 정도밖에 없어요.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내 시간 내 정신은 잘 챙기려는 의지가 보인달까요? 네, 맞아요. 예전엔 다 하면서 살았는데 막상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기억이 안 나요. 차에서 자고 일어나면 무대 하고, 이것밖에 없는 거예요. 물론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게 맞았고, 그때가 있어서 지금 저도 있지만, 이제는 그때 채우지 못했던 것들을 더 채워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이가 점점 더 들수록요. 물론 아직 스물다섯인데…. 휩쓸려서 바쁘게 살 때 말고 이렇게 쉴 때, 여유가 있을 때 제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는 뭔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은 것이지만 책 조금 읽는 것. 피곤하더라도 요즘은 어떤 화가들이 유명한가 찾아보고. 옛날 영화도 많이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

왠지 방도 깨끗할 것 같은데요. 집엔 엄마가 계셔서 좀 다른데, 해외 나가서 혼자 호텔방 쓸 때는 그렇게 깔끔을 떨어요. 캐리어가 엉망이 될 수도 있는 건데 그게 싫어서 다 정리해놓고, 내일 입을 것 쫙 세팅해놓고. 미리미리 짐을 하나씩 싸놓아요. 그래야 마음이 좀 편안한 것 같아요.

첫 주연 영화 <여곡성>이 곧 개봉해요. 이 영화를 찍고 손나은은 많이 성장했나요? 아뇨. 아직 저도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성장했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아쉬움이 많아요. 촬영할 때마다 상담하고 고민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도 도와주셨지만, 그래도….

다른 누군가의 역할을 탐내본 적 있어요? 우연히 드라마 예고편만 보고 관심을 가졌던 드라마가 <나의 아저씨>예요. 챙겨 보고 싶게 만드는 분위기가, 그동안의 드라마와 완전 달라서요. 아이유 선배님 연기 보고 저 역할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했어요. 아이돌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막 밝고 마냥 귀엽고, 이런 것만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항상 대본을 받으면 그런 게 꼭 있었거든요.

지금 자신한테 필요한 것 한 가지는 뭐예요? 체력? 더 건강하고 강했으면 해요. 에너지가 좀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을 때가 있어요. 심지어 운동을 하러 가서도, 내가 체력이 좋았으면 운동을 오늘 더 할 수 있고 그러면 체력이 더 좋아졌을 텐데, 그래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버렸으면 하는 생각은요?전 항상 밝고 즐겁고, ‘업’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약간 가라앉아 있는 상태인데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멤버들 분위기가 업될 때 전 저만의 상태를 계속 유지해요. 같이 웃고 있긴 하지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겨울 같은! 맞아요. 여름의 뭔가 활기찬 느낌보다는 겨울의 그런 착 가라앉은 느낌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겨울에 특히 창문 열어놓고 이불 덮고 있는 것 정말 좋아해요!

 

터틀넥, 알렉산더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