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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캐처]와 [하트시그널 2]의 여자들에 열광하는 이유

2018.11.01GQ

최근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들의 목표는 ‘짝짓기’가 아니다. 오히려 최종 커플이 되지 못한 여자들이 이 쇼의 주인공이다. 왜 시청자들은 사랑에 실패한 여자에게 빠진 걸까?

<사랑의 스튜디오>나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같은 고전부터 <짝>까지, 성인 남녀가 짝을 찾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에서 김종국만 나와도 윤은혜를 찾을 만큼, 시청자들이 ‘커플’에 열광할 때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작위적인 까닭으로 외면받고 한동안 침체기였던 커플 메이킹 리얼리티쇼, 즉 짝짓기 예능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식과 전략으로 말이다. 지난 6월 종영한 채널A <하트시그널 2>의 시청률은 2퍼센트대였다. 그러나 숫자와는 별개로, 이 프로그램의 화제성은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그 어떤 예능 또는 드라마보다 높았다. 구성은 간단하다. 총 여덟 명의 남녀 출연자가 오로지 커플이 되기 위해 시그널 하우스라는 곳에 입주해 한 달간 함께 생활한다. 스튜디오에서는 윤종신과 김이나 작사가를 비롯한 몇 명의 패널이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심리를 분석한다. 출연자들이 하는 일은 같이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데이트를 한 후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익명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이다. 방송 마지막에는 누가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패널들이 추측하고 실제 결과를 확인해보는 코너가 들어간다. 길게 설명했지만 쉽게 말하면 <하트시그널 2>는 커플 메이킹 리얼리티쇼다.

8월 종영한 Mnet <러브캐처>는 <하트시그널 2> 이후 탄생한 몇 개의 비슷한 리얼리티쇼 중 하나였다. 총 열 명의 남녀 출연자가 일정한 기간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소위 말하는 ‘썸’을 타는데, 그중에는 사랑을 찾아온 ‘러브캐처’와 상금을 찾아온 ‘머니캐처’들이 섞여 있다. 누가 커플로 맺어지는지에 더해 누가 머니캐처이고 누가 러브캐처인지 추리하는 장치가 추가됐다. 시작부터 <하트시그널 2>와의 유사성이 지적됐던 것치고는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한참 떨어지기는 했으나, <러브캐처>는 원본의 인기 요인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것처럼 보이는 후발주자였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두 프로그램의 가장 큰 공통점은 커플 메이킹을 목적으로 내세운 리얼리티쇼이지만, 실질적 주인공은 커플이 되지 못한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물과 서사 중 어떤 것을 취사선택해 부각시킬 것인가가 제작진의 권한임을 감안할 때,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다분히 의식적인 스토리텔링이다. 방송 자체가 조작이라는 뜻이 아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서사가 필요하며, 제작진이 중심 서사로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골라낼 수는 있다는 말이다. <하트시그널 2>는 오영주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오영주는 방송이 진행되는 내내 김현우와 커플이 될 듯 말 듯한 모습을 보여줬고, 오영주와 임현주 사이에서 고민하던 김현우는 결국 임현주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커플 메이킹 리얼리티쇼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마지막 회의 마지막 장면은 임현주와 김현우의 행복한 모습으로 끝나야 했겠지만, <하트시그널 2>는 오영주의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오영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만을 선택했던 연하남 이규빈의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는 뒤늦게 네가 얼마나 쓸쓸했을지 알게 됐다고, 너와 함께했던 시간이 따뜻했다고, 그동안 고마웠다 말한다.

제작진의 의도만큼 제대로 구현된 것 같지는 않지만, <러브캐처> 또한 커플 메이킹에 실패한 여자, 김지연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 프로그램은 초반부터 김지연이 상금이 아닌 사랑을 찾아온 ‘러브캐처’임을 밝히고, 최선을 다하지만 매번 상처받고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담하게 전하는 그의 모습을 주요하게 보여주었다. 평범한 드라마였다면, 오영주와 김지연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중 한 명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트시그널 2>와 <러브캐처>는 드라마가 아니라 리얼리티쇼였고, 일반인이었던 오영주와 김지연은 각각의 프로그램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은 출연자가 되었다. 오영주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58만3천 명, 김지연의 팔로워는 8만3천 명이다. 오영주는 음료와 화장품 등 광고업계에서도 주목받는 인플루언서로 자리매김했다.

TV에 일반인들이 등장하고 리얼리티쇼가 예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연출된 이야기보다 자신들의 진짜 이야기에 가까운 무언가를 보고 듣고 싶어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과 연애에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연애라는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가 도출되기까지 이어지는 ‘썸’이라고 불리는 과정이다. ‘썸’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며, 그 자체로 서스펜스와 드라마다. <하트시그널 2>는 출연자들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과정을 섬세하게 비춰낸다. 관심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일은 보편적인 경험이다. 이제 시청자들은 가장 공감하기 쉬운 인물에 이입한다.

그 점에서 <하트시그널 2>의 주인공이 오영주여야만 했던 까닭은 더욱 명확해진다. 한 인터뷰에서 이진민 PD는 오영주에 대해 “일반인 기준에 준하는 사람을 뽑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반 기업의 마케터로 일하는, 할 말은 분명하게 다 하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다른 출연자들과 잘 지내는, 사랑의 라이벌을 무조건 시샘하거나 힐난하지 않는, 사랑에도 적극적이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실패한 사랑 덕분에 성장했다고 말할 줄 아는 여성. 그동안 미디어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지만 현실에는 흔하게 존재하고, 때문에 오영주는 프로그램을 보는 여성 시청자들이 가장 공감하고 이입하기 좋은 캐릭터다. <러브캐처>의 김지연 역시 오영주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씩씩한 여성이라는 사실이 방송 전반을 통해 꾸준히 강조됐다. 그러니까 여성 시청자들이 <하트시그널 2>와 <러브캐처>에서 보고자 한 것은 오영주와 김현우의 러브스토리 혹은 김지연과 다른 누군가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자신과 비슷한) 여성 개인으로서 오영주와 김지연의 이야기인 것이다.

<하트시그널 2>의 전략과 성공은 예능이 아니라 오히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 드라마가 시대에 뒤떨어진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사이, 커플 메이킹 리얼리티쇼를 만드는 사람들은 지금 여성들이 어떤 여성을 보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한국 드라마에는 여성에게 폭력적으로 굴거나 불친절을 가장해 애정을 드러내는 남성, 그리고 매사에 서툴고 대책 없이 밝거나 직장이 있어도 일은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드라마는 주인공들이 커플로 맺어지는 순간,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며 모든 것을 끝낸다. 그러나 <하트시그널 2>나 <러브캐처> 같은 리얼리티쇼의 서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출연했던 인물들의 삶은 계속되고, SNS를 통해 그들을 계속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특히 오영주처럼 커플이 되지 못하고 방송이 마무리된 경우라면,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할 <하트시그널 2> 바깥에서 그의 인생이 어떤 식으로 계속될지 주목하게 된다. 시청자들은 이제 오영주의 삶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드라마를 보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런 질문들도 가능하다. 누구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대라고 해서 쇼와 현실의 경계를 점점 더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옳은가? <하트시그널 2>의 출연진들은 지나친 관심과 비난에 따른 고통을 여러 번 호소한 바 있으며, 특히 출연 여성들의 외모는 뉴스 댓글란에서, 커뮤니티에서, 인스타그램에서 낱낱이 비교당하고 평가당한다. 몇 명의 남녀가 오로지 연애만을 위해 한 공간에 모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집요하게 지켜보며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의미 부여하는 프로그램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누가 누구에게 마음이 있는지, 혹은 누군가의 커플 매칭 여부가 다른 사람들의 오락거리가 되는 것이 정말로 괜찮나? 여성들이 충분히 이입 가능한 현실 여성의 모습은 왜 주로 연애 리얼리티쇼를 통해서 드러나야 할까? 연애와 사랑을 떼어놓은 독립적 주체로서, 미디어에서 현실의 여성을 만날 수는 없을까? 이런 질문들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는다면, <하트시그널 2>와 오영주의 성과를 분석한다 해도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글 / 황효진(칼럼니스트)

    에디터
    이예지
    사진
    채널A <하트시그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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