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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 777] 이후의 pH-1

2018.12.27GQ

pH-1은 상황이 어떻게 변했든 지금까지 했던 대로 할 것이다, 주황색으로.

재킷, 엔지니어드 가먼츠 at 스컬프. 스웨트 셔츠, 존 엘리엇 at 스컬프.

 

코트, 엔지니어드 가먼츠 at 스컬프. 후디, 오프화이트. 팬츠, 벨보이. 스니커즈, 컨버스.

 

코트, 재킷, 모두 버버리.

 

재킷, 팬츠, 모두 TIM at 1ldk. 후디, 스투시.

오렌지가 아니라 주황색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어요? 아뇨, 딱히. <쇼미더머니 777>에서 노래를 만들어야 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색이지만, 음악적인 색깔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근데 오렌지는 입에 안 붙더라고요. 주황색은 발음이 너무 예뻐서, 노래에서 계속 “주황색, 주황색” 했어요.

검은색, 화이트, 레드와의 차이를 들어 주황색을 표현하는 가사가 재밌었어요. 그걸 알아봐 주시다니!

그 가사처럼 주황색에 담긴 다른 감정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는 거예요? “너 무슨 색깔 좋아해?” 라고 물었을 때 주황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보통 분홍색, 하얀색, 빨간색, 파란색 이렇잖아요? 그런 점에서 주황색이 유니크하고, 어떻게 보면 튀고, 어떻게 보면 안 튀는 색깔이라 저랑 잘 맞아요.

성향이나 노래가 은근하다는 게 주황색에 가깝다는 건가요? 네, 빨간색은 너무 강렬하고, 파란색은 또 너무 쿨한데, 저는 강렬하지도 쿨하지도 않아요. 또 노란색처럼 발랄하지도 않고요. 주황색은 강력하지는 않지만, 개성이 있으면서 은근히 자신을 어필하죠.

집에 주황색 물건도 많겠네요? <쇼미더머니 777> 이후 엄청 많아졌어요. 옷, 신발, 키체인, 등등.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요? 주황색 패딩요. 정말 맘에 들었어요. 근데 요즘은 주황색 입고 다니기가 힘들어요. <쇼미더머니 777>에서 ‘주황색’을 부른 래퍼가 주황색을 입고 다니면 너무 ‘관종’ 같잖아요. “나 좀 알아봐 줘! 나 pH-1이야! 나 기억나?” 하하. 이러는 것 같아서 잘 못 입겠어요.

좋아하는 게 일이 됐네요. 네, 비슷해요. 요즘엔 공연 때 ‘주황색’을 꼭 하니까 안 입고 갈 수도 없고요. 안 입고 나가면 막 DM이 오거든요. “형/ 오빠 오늘 왜 주황색 안 입었으면서 주황색 입으라고 해요?”

공식 집돌이 pH-1의 집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은 뭐예요? 집에 오래 있는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 다를 것 같거든요. 침대요. 거실도 넓고 제 방도 넒은데, 어디 안 가고 침대 위에서 살아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죠? 스마트폰이요. 힙합 뉴스, 네이버,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엄청 봐요. 나가지 않고 이걸 통해 세상을 보고 사람을 관찰해요.

스마트폰 이상이네요. 세상과 연결된 다리 같은. 거의 중독 수준이죠.

요즘은 그렇게 있을 시간이 별로 없겠어요. 하루 종일 하는 건 아니니까. 스케줄 끝나면 무조건 집으로 가요, 어디 안 가고. 똑같이 반복해요.

<쇼미더머니 777> 출연 이후 딱히 바뀐 걸 느끼지 못하겠네요? 네. 일단 제 성향이 전혀 바뀌지 않았어요. 집에 있는 시간이 줄고 밖에서 하는 활동이 많아졌다는 것, 알아보시는 분이 많아졌다는 것 정도가 변했네요. 식당에서 혼밥을 하기 어려워서 그게 좀 불편하죠. 자꾸 쳐다보시거든요.

어쨌든 이 상황이 긍정적이고, 잘 나갔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럼요, 잘 나갔죠. 힙합하는 사람들이 <쇼미더머니> 없이 성공하는 건 정말 하늘의 별 따기 같아요. 1천 명이 있으면 그중 채 열 명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원래부터 <쇼미더머니>에 나가는 걸 완강히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잘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최근에 아무런 피처링도 없이 낸 ‘무리야’, ‘홈 바디’ 두 곡이 차트에 올랐어요. 힙합하는 사람들이 차트 100위에 들기는 정말 어렵거든요. 안 나갔으면 완전히 묻혔을 음원인데, 더 많은 분이 들어주시고 홍보해주신 차이죠. 음악 하는 사람, 이걸로 먹고사는 사람들한테는 중요한 차이예요.

<쇼미더머니 777>에 나와서 인지도를 높였기 때문이 아니라 이전 노래들에 비해 훨씬 ‘캐치한’ 곡을 써서 잘된 게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그렇게 될까 봐, 나가기 전에 그렇게 되지 말자고 제 자신에게 약속했어요. 랩 스킬이나 음악이 느는 건 좋은데, 내 음악적인 신념을 바꾸지는 말자, 유명해졌다고 더 쉬운 곡을 만들지도 말자고요. 이 두 곡은 <쇼미더머니> 나가기 전에 만들어놓은 것들이에요.

그렇다면 대중들이 변한 거네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좀 공허할 때가 있어요. 저는 늘 하던 걸 했는데, 제 음악의 설득력이 더 강해져서 음악이 더 좋다고 믿으시는 거잖아요? 방송에서 pH-1을 싱잉 래퍼로, 음악 잘하는 사람으로 포장해줘서 그렇게 믿는 건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아요. ‘이 거품 아닌 거품이 곧 사라질 텐데, 그땐 내 음악 안 찾겠지?’ 이런 생각도 매일 해요. 그래서 지금의 인기와 인지도를 못 즐기고 있어요. 안 즐기려 해요. 이걸 즐기면, 이게 없어졌을 때의 공허함이 꽤 클 것 같아요. 이걸 실감 안 하려고 집에 있고, 전과 똑같이 행동해요.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벽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낯선 사람을 만나면 우리가 취하는 태도가 있잖아요? 음악에도 그런 게 있는데, 그게 사라진 거죠. 그런 거면 다행이고요.

“래퍼들 줄 세우는 게 싫어서” 지금까지 출연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주변의 누군가가 다음 시즌에 나가는 걸 고려한다면, 줄 세우는 것을 감당하고라도 나갈 만하다고 추천할 수 있어요? 뭘 얼마나 원하느냐의 차이 같아요. “나는 시간이 촉박하고, 음원도 잘돼야 해.” 그렇다면 무조건 추천해요. 그 사람에겐 자존심 세울 여유가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제 자신에게 했던 말이에요. 스물아홉 살에서 서른 살로 넘어갈 때였거든요. 그런데 진짜 어리고 실력도 있어요. 또 본인이 이런 걸 싫어해요. 그렇다면 좀 더 다른 길과 기회를 모색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pH-1의 성향 때문에 그렇게 보였나 싶긴 한데,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겠다는 굉장히 큰 결단을 내린 것에 비해 죽기살기로 하는 듯한 모습은 아니었어요. 네. 제 인생을 바꿀 만큼 큰 결단이었죠. 근데 저 드러나지만 않았지 죽기 살기로 했어요. 선택이 신중했을 뿐 작업은 끊임없이 하고 있었고요. 한국의 물정이나 음악 신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어떤 게 멋있는지도 잘 몰랐어요. 그걸 관찰하고 적응하는 데 걸린 시간이 있었어요. 사실 레이블 들어가자마자 친구들, 재범이 형이 <쇼미더머니>를 추천했는데, 제가 안 나갔어요. 막 한국에 온 상황이었고, 제 신념을 좀 더 밀어붙여보고 싶었거든요. 근데 발전이 없는 건 아닌데 속도가 너무 더디더라고요. 그래서 아, 미디어를 사용하자, 한 거죠.

출연 이후 아주 착하고 바르고 긍정적인 청년 이미가 만들어졌어요. 그게 족쇄 같진 않고요? 불만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너무 좋은 이미지니까.

하지만 힙합은 그것만이 아니잖아요. 아니죠. 저는 늘 힙합의 이미지가 아니었어요. 이번 방송을 통해서 극대화된 거죠.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은 부담은 있는데, 그게 마음에 들어서 저를 좋아하는 팬들이 생긴 거잖아요.

오히려 힙합 신에서는 pH-1이 이단아죠. 내가 힙합에 잘 맞는 사람일까?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나요? 매일 생각해요. 요즘은 더 이상 래퍼라는 명명이 나한테 안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요. ‘무리야’처럼 좀 더 노래 비슷한 쪽으로 가고 있거든요. 힙합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는 이걸 힙합으로 안 쳐줄 것 같아요. 하지만 힙합으로 시작했고 아직도 힙합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스타일을 계속 보여드리고 싶어요. 랩 이전에 했던 노래를 최대한 활용해서 아예 새로운 느낌을 주고 싶고요. 그런데 자격지심도 들어요. 랩 잘하시는 분들은 계속 구설수에 오르는데, 저는 힙합 게시판에서 언급이 잘 안 될 때 기분이 묘하죠.

살면서 가장 크게 일탈했던 게 뭔가요? 지금이 일탈이에요.

하하. 혼자 음악 하겠다고 제 가족, 친구, 공동체를 모두 벗어나서 아무런 기약 없이 낯선 곳에 온 거요.

얼마나 큰 계기가 있었던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너무 사랑하고 늘 해왔는데, 표현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전 항상 부모님 눈치 보면서 몰래 음악 만들고, 친구들이랑 있을 땐 음악 하고 집에 오면 공부했던 사람이에요. 음악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면 아버지가 되게 싫어하셨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걸 두고도, 안 좋아하는 방향으로 빙빙 돈 기간이 길어요. 스물여덟 살까지 그랬어요. 나이 먹으면서 빙빙 돌아보니까, 다른 건 진짜 아니구나 깨달은 거죠.

가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Boy’라고 들었는데…. 소년이란 뜻이 아니라 추임새예요.

음악적인 단어라는 거죠? 네, 제가 엄청 좋아하는 빅션이 그 단어를 많이 쓰거든요.

pH-1의 ‘뮤직 라이프’라는 관점에서 지금은 언제쯤일 것 같아요? 이제 막 이십 대? 그 전까지는 배우고 적응하는 시간이었다면, 딱 발판을 뗀 시점.

‘Boy’의 뜻을 살려서 써도 되겠는데요? 아,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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