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진은 어떻게 여자 양궁 세계 랭킹 1위가 되었나

장혜진은 어떻게 여자 양궁 세계 랭킹 1위가 되었나

2019-01-04T10:50:52+00:00 |interview|

여자 양궁 세계 랭킹 1위 장혜진은 스물세살에 처음으로 9등을 했다.

양궁 국가대표로 선발된다는 건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경주에서 남보다 먼저 출발한 셈이란 말이 있다. 장혜진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작은 대회에서 드문드문 수상하긴 했지만 두각을 드러낼 만큼 대단한 이력은 없었다. 양궁은 빠르면 고등학교 때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종목이다. 그리고 모든 선수에게 공평한 스포츠이기도 하다. 화살은 나이와 출신을 가려 날지 않는다. 모두 동일한 거리에서 같은 개수의 화살을 쏴 과녁 중앙부에 많이 꽂는 사람이 이긴다. 바람을 탓할 수도 없다. 풍향을 파악해 조준점을 달리 잡는 것도 분명히 실력의 일부다.

평등한 규정은 실력에 대한 빠른 수긍으로 이어졌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클리커 병’도 왔고요. 활을 쏘기 직전 클리커가 철컥하는 소리를 내면 패닉에 빠지면서 줄을 놓지 못하는 심리적인 병이에요.” 국가대표가 되거나 큰 대회에서 메달을 따며 경력을 곧게 쌓는 선수가 되지 못한 채, 장혜진은 변두리에서 스무 살을 맞이했다.

그래도 활을 놓진 않았다. 여태까지 들인 시간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이 동심원 중앙에 박히는 쾌감을 끊을 수 없었다. 활을 잡는다는 건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했고. 하지만 대학 3학년 때 장혜진은 양궁에 단순히 활을 쏠 때와는 다른 쾌감이 있다는 걸 알았다.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는데, 8명을 뽑는 경기에서 9등을 했다. “순위에 오르는 재미를 처음 알았어요. 선발되지 못해 아쉽다기보단 어느 궤도에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쐈어요. 늦었으니까요.” 다음해 장혜진은 결국 국가대표가 됐다. 이후 화살이 이상할 정도로 과녁 가운데에 꽂혔고, 국내 큰 대회에서 연이어 메달을 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림픽은 여전히 멀었고, 2012년 런던 올림픽 선발전에선 1점 차이로 탈락했다. 이미 높아진 ‘자기 기준’ 때문에 더 괴로웠다. 이제 대회란 건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성취해야 하는 자리가 된 후였다. 탓할 수 있는 건 실력뿐. 이를 악물고 다시 시작한 장혜진은 2013년 세계 선수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고, 다음 해 아시안 게임에선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땄다. 흐름이 좋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드디어 출전한 올림픽에서 기어코 금메달을 땄다. 단체전, 개인전에서 모두 1등을 한 2관왕이다.

리우 올림픽이 끝난 지 2년 반이 지났다. 장혜진은 지금도 세계 랭킹 1위 자리에 올라 있다. 하지만 그녀는 랭킹을 의식하지 않는다. “1등 자리를 유지하려고 신경 썼다면 오히려 순위가 뚝뚝 떨어졌을 거예요. ‘텐’을 쏘겠다는 당장의 목표를 달성하는 게 더 효과적이에요. 어느 수준에 도달한 사람의 실력이 갑자기 뚝 떨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메달 맛’이라는 게, 꽤 중독성 있거든요.”

 

장혜진의 시력은 양쪽 모두 1.2다. 하지만 양궁에서 시력은 실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화살 끝이 서서히 과녁을 향하고, 시선은 과녁과 조준기 사이 ‘그 어딘가’에 둔다. 활과 과녁의 거리, 바람의 세기는 지금까지 쏜 수만 발을 통해 학습한 ‘감’으로 계산한다. 10점을 쐈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려고 애쓴다. 익숙한 감각이 다시 온몸에 전해진다.

 

 

왼손 엄지를 활에 결박한 장혜진이 첫 발을 당겼다. 붉은 영역에 꽂혔다. “높네…”라는 혼잣말이 끝나자마자 노란 원 안으로 화살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모든 화살은 10점으로만 날아갔다. 화살통에 담아두었던 화살이 모두 떨어지자 얼굴에 긴장이 풀리며 웃음기가 돌았다.

활을 당기는 데 힘이 많이 들 것 같은데도 팔이 얇다. “팔 힘이 세진 않아요. 어릴 때부터 계속 당겼으니까 그냥 익숙한 거죠. 남자랑 팔씨름해도 이기냐고 많이 묻던데, 전혀 안 그래요.” 장혜진 선수의 소속팀 훈련장은 산으로 둘러싸인 교외에 있다. 조용한 겨울 벌판에 선 장혜진이 활을 당기던 그날은 도쿄 올림픽 개막이 597일 남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