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 1위에 머물 수 있었던 비결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 1위에 머물 수 있었던 비결

2019-01-04T11:07:55+00:00 |book|

<82년생 김지영>이 지난 2년간 베스트셀러 1위에 머물 수 있었던 힘은 뭘까.

2016년 10월에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2년 만에 2018년 11월 누적 판매량 1백만 부를 넘겼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에 이어 9년 만의 일이다. 여성독자들의 수가 남성에 비해 3배 이상 많기는 하지만, 1백만 부라는 판매량은 여성과 남성 모두의 관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수치일 것이다. 이 책을 출간한 민음사는 2017년 5월 故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책을 선물했을 때와 2018년 1월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된 서지현 검사가 이 책을 언급했을 때 판매지수가 급증했다고 전한다. 3040 남성들은 현 시대의 여성들이 느끼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안겨준 책이었다고 고백한다. “여자친구가, 부인이 사줘서 읽었다”는 말을 꼭 덧붙이는 점도 흥미롭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라는 표현은 1963년 미국의 제2물결 페미니즘을 이끌었던 페미니스트이자 사회심리학자 베티 프리단이 <여성성의 신화>에 쓴 말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 여성들에게 행복하고 완전한 삶이란, 부엌 바닥에 왁스를 칠해 광을 내고 아이를 위해 최고의 유기농 이유식을 만들고 새로 산 세탁기의 성능에 기뻐하는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아내나 딸이나 며느리나 엄마가 아니라 오롯이 자신 자신으로서의 삶을 생각하는 여성들은 어딘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여겨졌다. 베티 프리단 역시 책을 쓰기 전까지 여성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지만, 남편을 챙기고 아이를 돌보고 어르신을 모시며 잠자리에 들 때 “이런 삶이 과연 전부일까?”라는 귓가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 마침 동네에 생긴 공립도서관에 자리를 신청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사프로그램 메인 작가로 일하다가 육아문제로 인해 경력 단절 전업주부가 된 조남주 작가 역시 당시를 “글을 쓰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던” 시간으로 회고한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이 겪고 있는 문제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라는 국면에 멈춰 있지 않다. 1982년생 김지영이 살아간 한국 사회의 풍경은 다음과 같다. 사상 최악의 여아 낙태가 자행된 1980년을 살짝 비켜서 태어났고, 대입까지 성차별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1996년은 고등교육에 있어서의 불평등이 해소되어 대학 입학 신입생의 성비가 거의 비슷해진 시기였다. 1998년에 남녀차별금지법이 만들어졌고 2001년에 여성부가 생겼고 2005년에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명시적으로 성차별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성이 겪고 있는 현실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낡아버린 문제’로 취급되어 다시 언급하기 어려워진 것에 불과했다. 독박육아부터 명절노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기혼여성들이 겪고 있는 문화적 현실은 여전히 ‘유교적 가부장제’로 설명될 만큼 과거의 시간성 속에서 경험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체제는 그 지독한 성차별적인 현실을 철저하게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정당화했다. 그 결과 사라진 것은 성차별이 아니라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요즘 무슨 성차별이야 역차별이 더 문제지”, “여성 상위시대잖아 요즘은”, “우리 같은 시댁이 어디 있니, 나 옛날 사람 아니다” 뭐 이런 식의 말들을 다들 익히 한두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런 말들을 포스트-페미니즘적 감성 Post-Feminism Sensibility이라고 부르는데, 성차별은 이미 지나가버린 문제거나 저 멀리 있는 다른 후진적 사회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말한다. <82년생 김지영>이 포착해낸 핵심적인 시대 정신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미 지나간, 낡아버린 문제처럼 보이게 만든 것 자체가 새로운 형태의 성차별적 현실이라는 점 말이다.

<82년생 김지영>에서 단 하나의 문장을 꼽으라면 단연 이 문장이다. “사람들이 나더러 맘충이래.” (출판사에서 제공한 어깨가 축 늘어진 여성의 뒷모습을 담은 일러스트와 함께 쓰인 이 문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책은 몰라도 이 문구를 아는 사람은 1백만명을 훌쩍 넘었을 것이다.) 경력단절과 독박육아에 지쳐 커피 한잔을 마시려던 김지영 씨의 귀에는 전업주부를 멸시하는 새로운 멸칭인 ‘맘충’이라는 말이 꽂힌다. 맘 Mom+충 蟲. 엄마의 줄임말이자 영어인 맘과 한자어 벌레충을 결합한 신조어인 맘충은 한국의 여성들에게 지금 처한 현실을 매우 명징하게 자각하게 하는 언어적 방아쇠였다. 작가는 2013년부터 만 0~5세 영유아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이 실시되면서 전업주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진 상황에 주목했다. 이 정책은 아동 수당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어린이집에 지원금을 주는 형태였기 때문에 가정 보육을 하는 것보다 어린이집에 보낼 때 휠씬 더 이득을 받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는 시간은 보통 9시에서 3시 사이였으므로 다시 경제 활동을 시작하기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바로 이 시기부터 전업주부에 대한 혐오가 정당화되었고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작가는 소설에서 바로 이런 사회적 혼란 속에 던져진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이야기를 구현해내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나더러 맘충이래”라고 남편에게 말하는 장면이 탄생했다. 맘충이라는 말의 등장은 실패한 정책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것이 당연해진 ‘여혐민국’ 을 집약적으로 가시화시켰고, 이것은 혐오가 만연한 사회가 넘어버린 어떤 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마저도 여성 혐오의 대상에서 예외가 되지 못한다면, 가부장제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을 아무리 성실하게 수행하더라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욕을 당한다면, 그 역할에 몰두할 이유가 더 이상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 돌이킬 수 없는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선택을 취소할 수도, 현재를 놓아버릴 수도 없는 김지영 씨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자꾸 다른 여성으로 빙의하는 김지영 씨를 자기 자신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뭘까. 김지영 씨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고유성이 가족 제도 안에 있는 여성에게 가능하긴 한가. 이것이 이 소설이 우리 시대에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글/ 권김현영(여성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