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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포장의 맛

2019.01.21GQ

어떤 선물은 받아도 기쁘지 않다. 꽃이 전부 예쁜 건 아니고(무섭거나 더럽게 생긴 꽃도 있다) 모든 파리가 오물 위에 앉는 건 아니듯이(노랑이마띠기생파리는 꽃에 앉아 꿀을 먹고 산다). 얼마 전 선물로 무정형의 덩어리를 하나 받았다. 얇은 종이로 둘둘 만 그것은 외양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얼핏 묵직해 보이기도, 물러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물건의 고독한 냄새가 풍겼다. “빵이야?” 하고 물었다. 사실은 “똥이야?”가 나올 뻔했으나,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어서. 물건에 대해선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다만 그 물건을 싼 종이가 수상한 소스가 묻은 채 굳은 오래된 영자 신문이었고, 그게 상당히 쿨하고 멋진 포장법이라고 생각했다면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모든 상황에는 ‘클라이맥스’가 있다.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의 절정은 “풀어봐” 이후 몇 초다. 준 사람도 받는 사람도 그때가 제일 기쁘다. 포장하는 수고를 거치지 않은 물건엔 당연히 푸는 순간도 없다. 목공을 배워 만든 의자나 수경재배로 직접 키운 인삼이 아니고서야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기성품을 선물하는 건데, 포장의 역할은 그 와중에 유일함과 개인적 기호를 살리는 것이다. 가격표도 안 뗀 양말은 난처하고 미리 한번 들어봤다면서 비닐 포장이 벗겨진 채로 건네진 음반은 곤란하다. 할인의 상징인 도트 스티커가 붙어 있는 티셔츠도 마찬가지. 오렌지색은 몇 퍼센트, 녹색은 몇 퍼센트, 할인률을 색깔로 구분하는 표식인 스티커는 시간이 지나면 오렌지색 위에 녹색이 한 겹 더 붙기도 한다. 할인에 할인을 더하니 뜻밖의 횡재겠지만(부자 되세요!) 그걸 그대로 붙인 채 선물하는 건 무지에 무례를 더하는 셈이다. 반대의 경우로, 포장에 대한 의욕이 과해도 문제다. 레이스와 반짝이 가루, 조개껍데기, 리본 중엔 하나만 고른다. 재활용의 미덕도 권하고 싶지 않다. 과자 상자, 딸기잼 병, 자투리 벽지, 날짜 지난 달력, 지난 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 포장지…. 깨끗하고 평범한 네모난 박스 하나면 충분하다. 반듯한 상자에 넣어서 속이 비치지 않는 종이로 포장하는데, 이때 종이가 남아도 아코디언 모양의 주름을 접어 붙일 것까진 없다. 리본은 경우에 따라 더하거나 빼도 괜찮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야 크지만 어떻게 해도 잘 안 될 때는 제일 쉬운 방법을 택한다. 가게에서 “선물할 거예요” 한마디만 하면 된다. 점원들은 알아서 좋을 것 없는 것들은 다 떼주고 몰라보면 서운한 것들만 온전히 남겨둔다. 게다가 어떤 브랜드의 상자와 리본은 그 자체로 예쁘고, 작은 가게도 포장용 재료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 참, 선물을 줄 때 가장 적절한 말은 “풀어봐”다. “뜯어봐” 혹은 “열어봐”보다 훨씬 상냥하게 느껴진다. 하긴, “까봐” 만 아니라면 뭐든 괜찮겠다.

    에디터
    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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