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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 이제는 사라진

2019.02.20GQ

좋아서 자주 가던 식당이 있었는데,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새로 생긴 식당들을 찾아다니느라 뜸하게 들르는 동안, 예고도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밤에 차를 타고 그 골목을 지나는데 멀리서부터 알 수 있었다. 불 꺼진 모습은 숱하게 봤지만, 어둠의 깊이와 온도가 달랐다. 마치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완전히 없어졌다는 걸, 당황스러울 정도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젠 없다고 생각하니 새삼 그 식당의 좋은 점들이 더 선명해졌다. 뭐가 특별히 좋았다기보다는 거슬리는 점이 없었다는 게 더 맞겠다. 층고가 낮은 납작하고 단출한 회색 건물의 1층, 해가 잘 들고 실내 장식은 간단했다. 소품이나 집기는 별로 없는 대신 탁자와 의자는 꽤 괜찮은 것들이었고 테이블의 간격이며 화분의 위치 같은 공간의 구성도 적당했다. 사장은 가게에 있거나 없거나 했는데, 대체로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옷 입는 센스가 좋은 젊은 남자로, 세련된 외모와는 달리 무뚝뚝한 편이었는데 그가 있는 날은 음악 선곡이 좋고 하우스 와인이 다른 날보다 맛있었다. 조용히 영업을 하는 집이라 손님은 늘 적었다. 사장이 없는 날엔 차분한 점원 혼자서 홀을 맡았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오고 계산을 하는, 일련의 동작들이 참으로 깔끔했고 쉴 때도 전화를 붙들고 있거나 멍하니 있는 대신, 냅킨이라도 한번 더 접었다. 자주 들러 이쯤이면 단골이 되었다 싶었을 때, 말을 걸거나 아는 척을 하는 대신 잔으로 시킨 와인을 더 많이 따라주고 식사 시간이 아닐 때도 스파게티 주문을 받았다. 음식 맛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파스타 몇 가지와 생선 요리, 커피와 디저트, 심플한 와인 서너 가지가 메뉴의 전부였고, 대부분 평범한 맛이었다. 그런데도 자주 갔다. 약속 장소를 따로 말하지 않으면, 시간만 정하고 거기서 만났다. 평범한 스파게티와 더 평범한 생선 요리를 번갈아 먹으면서 여러 계절을 보내고 맞았다. 그러다가 가까운 거리에 온갖 종류의 식당들이 들불 번지듯 생기면서 그럼 어디 한번, 하는 기분으로 다른 곳을 가게 되었다. 그중 두 번 간 곳도 많지 않으니, 몇 달 동안 거의 매번 새로운 식당을 간 셈이다. 그동안 그 식당을 완전히 잊은 건 아니었다. 친절하지만 이상하게 불편한 사장, 조금 더 비싼 와인을 권하는 점원, 우주 먼 곳과 교신하는 듯한 오리무중 음악, 테이블마다 돌며 오늘의 숭어 구이가 어땠는지 묻는 ‘왕부담’ 셰프, 의자와 어쩌면 그토록 처절하게 안 어울리는 조명, 어쩌자고 딱 저기에 걸었을까 싶은 그림, 한번 먹으면 평생 못 잊을 강력한 소스와 멋을 왕창 부린 플레이팅. 이런 건 정말 싫다고 느낄 때마다 막연히 그 식당을 생각했다. 없어질 줄은 몰랐다. 다른 데도 좀 가보고 곧 다시 가려고 했었지. 그래봤자 이젠 소용없지만. 새로운 식당은 언제나 다시 생기고 또 사라진다. 하지만 단골이 되고 싶은 식당은 드물다. 단순하고 깨끗한 공간과 침착한 인테리어, 싸고 맛있는 와인 리스트와 수수한 메뉴 몇 가지, 노멀한 접시와 커피 잔, 점원이 자주 바뀌지 않고 사장은 손님을 너무 많이 궁금해하지 않는, 크리스마스 시즌엔 캐럴을, 여름엔 비치 보이스 음악을 작게 틀어두는 식당. 이 정도면 많이 바라는 것도 아닌데. 도무지 단골이 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에디터
    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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