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유니섹스 컬렉션을 준비 중인 퍼렐 | 지큐 코리아 (GQ Korea)

샤넬의 유니섹스 컬렉션을 준비 중인 퍼렐

2019-03-29T11:06:27+09:00 |interview|

음악, 패션, 음식, 비즈니스, 영성…. 퍼렐은 현대 사회의 구루가 되었고 시대의 정신을 자신의 이름 하나에 담아냈다. 샤넬 유니섹스 라인의 첫 번째 컬렉션을 준비 중인 그가 인터뷰 게임에 응했다.

안경, 스웨트 셔츠, 모두 샤넬 × 퍼렐.

팬츠, 디키즈 빈티지. 스니커즈, 샤넬 × 퍼렐.

재킷, R13. 오버롤 팬츠, 칼하트-WIP. 후디, 가방, 스니커즈, 모두 샤넬 × 퍼렐.

안경, 스웨트 셔츠, 스니커즈, 가방, 모두 샤넬 × 퍼렐. 팬츠, 디키즈 빈티지.

수트, 아크네 스튜디오. 스니커즈, 베이프. 셔츠, 브로치, 목걸이, 모두 샤넬 × 퍼렐.

“와우!” 눈을 슬며시 감고 살짝 입을 벌린 퍼렐 윌리엄스는 신나 보였다. “와우”…… 그리고? 그리고 끝이었다. 그는 상대방이 말을 이어가고 결론을 내리고 진창에서 고전하도록 내버려뒀다. 정적이 흘러도 그는 아무렇지 않았으니까. 승려인가? 현자? 스타? 뉴욕 다운타운의 약간 누추한 스튜디오, 오후 3시. 그는 캑터스라는 애칭을 가진 부인이자 한국계 스타일리스트인 헬렌과 함께, 포트나이트에 몰입한 청소년의 관심을 단번에 끌 만큼 휴먼 레이스 농구화가 가득 찬 가방을 여러 개 들고 일찌감치 도착했다. 그는 어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이집트관에 있는 장엄한 덴두르 신전 앞에서 펼쳐진 샤넬의 패션쇼 무대에 섰다. 눈 주위에 긴 아이라인을 그리고 매트골드 옷을 입어 젠더 플루이드 파라오로 현현한 그의 사진은 모든 SNS를 통해 퍼졌다.

일찍이 뮤지션 퍼렐이 있었다. 작곡가, 작사가, 퍼포머, 프로듀서를 겸하는 그는 프로덕션 듀오 넵튠스와 힙합 그룹 N.E.R.D, 아티스트의 재능을 십분 살리는 수많은 컬래버레이션(2017년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와의 작업) 등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저질 스캔들에서 구해주고, 그녀의 전 남자친구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유명하게 만들면서 대중도 그를 알게 됐다. 다프트 펑크도 그에게 도움을 청해 2013년 <겟 럭키>로 복귀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영화 <슈퍼 배드 2>의 주제곡 ‘해피’가 결혼식장이며 생일파티장, 심지어는 정치 행사장(트럼프의 저작권 사용 요청은 거부했다)에서마저 울려 펴지며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마케팅의 승리는 아니다. 단지 대중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유튜브에 올라온 패러디 영상(다양한 나이와 인종의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을 담은)은 수천 개가 넘는다. 이런 기적이 인생에 한 번, 많아야 두 번 정도 일어나길 바라는 아티스트들도 있다. 하지만 퍼렐에겐 모든 게 지극히 당연하고 또 완전히 경이로운 일이다. 그가 차분하고 예의 바르며 머리와 팔다리, 몸을 가진 남자라는 면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도 차를 마시고 스시를 먹으며 걸을 때는 한 걸음씩 나아간다. 반면, 그의 외모와 인기, 무엇보다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볼 때는 경이로운 일이다. 퍼렐은 변덕스러운 셀러브리티나 가식적인 연기자가 아니라 안정을 깨뜨리는 데 챔피언이고, 불편한 침묵과 모호한 은유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는 아내이자 또 다른 자아인 헬렌과 범상치 않은 짝을 이룬다. 그녀는 톰보이 분위기에 키가 훤칠하다. 그는 꺾이지 않는 남성성을 간직하고 물결이 일 듯 걷는 고양이 같다. 지금 시대에 걸맞은 성체랄까.

퍼렐은 뮤지션일 뿐 아니라 전시기획자, 사업가, 요식업자, 패션 디자이너, 모델, 인터뷰어이자 인스타그램 팔로워 1,180만 명을 거느린 인플루언서인 전방위 아티스트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수단을 활용해 창의력을 펼쳐 사업을 하고 현대식 유려함을 발휘해 하나의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유영한다. 파리, 도쿄,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케이프타운….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하다 보면 시차에 멀미가 날 것 같다. 칼 라거펠트는 특유의 시류를 포착하는 직감으로 퍼렐이 자신과 유사한 부류임을 금세 알아챘을 것이다. 2014년 만나 첫 번째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 이래 두 사람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3월 말, 샤넬에서 그의 첫 번째 유니섹스 컬렉션이 론칭될 예정이다. 그 사이 그가 시간을 내줬다. 스티브 팬의 렌즈 앞에서 지긋이 포즈를 취하고 촬영 카메라 앞에서 게임을 하듯 그 시간을 즐기며 질문에 답했다. 집중해야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옐로, 로즈, 블루, 오렌지, 그린…. 퍼렐은 인생을 ‘테크니컬러’로 바라보는 능력을 전략으로 삼았다. 여기에서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하겠다. 그는 건강에는 문제가 없지만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과 연결하는 신경학적 현상인 공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의 경우에는 소리를 색채와 결합시킨다. “어릴 때 소리와 색이 들린다는 말을 계속했어요. 다른 친구들이 가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었지요. 그래서 일찍부터 제가 다른 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모두가 저와 같은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런데 인생을 다채로운 색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에 영향을 미쳐요. 관점을 바꾸죠.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일이 있음을 인정하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들을 경험할 수 있어요. 사람들 상당수가 인생을 흑백으로 바라봐요. 그리고 회색 지대에 남아 있으려는 사람들도 있죠. 마음이 편하거든요. 그곳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거기에 대답은 없죠.”

그는 세상과 연결된 소년이자 자신이 신비하게 여기는 공간에 매료된 소년이었다. 그의 큰아들 이름은 버즈 올드린을 향한 팬심을 담아 지은 로켓이다. 인터뷰나 자신의 저서 <물고기는 자신이 젖은 줄 모른다> 등에서 퍼렐은 뉴에이지 우주론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특유의 여유롭고 확신에 찬 태도로 설명한다. “딱히 의식하지 않고 늘 은유를 해서 사람들은 절 이상한 사람으로 봐요. 하지만 전 운이 좋았어요. 저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음악을 만나서, 아니 음악이 저를 찾아줘서, 평가받는다는 기분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제 목소리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우리가 사물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의 오만이에요. 사물은 이미 거기 있어요, 언제나 그곳에 있었지요. 가령 하늘을 바라보다가 별을 봤다고 쳐요. “별을 발견했어!”라고 외치겠지요. 진짜인가요? 그 별은 사람들이 보기 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예요.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은 모두 이미 그곳에 있던 것들이에요. 음악과 더불어 제가 가진 재능에 감사해요. 저를 초월한 것을 섬기는 거지요. 영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신을 섬기는 거예요. 과학적 측면에서는 우주를 섬기는 거지요. 제겐 같은 말이거든요. 영성을 언급하면 많은 사람이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흰 수염의 중년 신사를 떠올리지요. 정신은 그런 게 아니에요. 바닷속 물고기 떼를 생각해 보세요. 물고기 떼는 한꺼번에 왼쪽으로 헤엄쳤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헤엄쳐요.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지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 물고기들의 에너지가 바로 정신이에요. 그리고 제가 가진 의식은 제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최고의 리듬이자 작곡할 수 있는 최고의 화음이죠.”

다른 사람들이 날씨에 대해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퍼렐에게는 은유를 이어가는 일이 잘 맞는다. 그의 뇌에서는 생각의 조합이 일어나고 생각의 나무는 무한대로 성장한다. 그에게 매료된 대화 상대방은 비계인지 살코기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그가 펼치는 지성의 굴곡을 산책하게 된다. “창작할 때 이미 했던 것을 다시 하는 일은 지루해요. 병치는 없어요. 이를테면 패스트푸드를 보세요. 단맛과 짠맛 간 음양의 조화가 완벽한, 마법 같은 균형을 이루고 있죠. 버거는 짜고 소스는 달아요. 감자튀김은 짭짤하지만 케첩은 달콤해요. 탄산음료를 마시면 모두 내릴 수 있어요…. 재미있으라고 한 비유이지만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우리가 짠맛과 단맛처럼 음양의 조화를 좋아한다는 점이에요. 이건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들리는 모든 것이 짠맛이라면 진저리칠 일만 남은 거지요.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어떤 소리가 튀어나오면, 꿀맛이 문득 느껴진다면, ‘와우, 이건 뭐지?’라고 하겠지요. 제가 추구하는 게 이런 거예요. 병치, 소위 ‘네거티브 스페이스’라는 것, 사람들이 딱히 하지 않는 것이죠. 음악에서는 우리가 듣는 것의 80퍼센트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파생된 거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다른 무언가를 한다면 절반은 된 거고 잘 어우러지게 나머지를 끝내주는 거로 만들면 돼요. 잘 어우러진다면 ‘와우, 이건 뭐지?’라는 상찬을 들을 수 있어요. 그게 아니면…, 완전히 기발하고 전위적인 게 만들어졌다면 그건 잘 안 된 거예요.”

파라오 얼굴에 수행자의 몸을 한 그는 동시대를 사는 뛰어난 아티스트를 여럿 연상시킨다. 우르스 피셔, 데이미언 허스트, 자비에 베이앙, 알렉스 카츠…. 퍼렐은 그렇게 45년 전, 육체가 시간으로 고통받지 않는 과학적 유토피아에서 튀어나온 아이콘의 아우라를 지니고 태어났다. 하늘의 별들이 서로를 알아보듯, 그는 커리어를 쌓으면서 자신의 주변에 영감을 주는 창작자들로 이뤄진 하나의 촘촘한 은하계를 구축했다. 그들 중에는 프랑스인들도 있다.

“예술가 친구들이 있어요. 가끔은 가벼운 마음으로 협업을 해요. 상대방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 있거든요. 에마뉘엘 페로탱 갤러리에서 소피 칼을 만났고, 그녀의 죽은 고양이에 관한 노래를 지어 수리 칼 컴필레이션 앨범 작업에 동참했어요. JR은 무척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그는 브랜드와 관계없이 예술적인 표현을 위해 사진을 연단으로 활용해요. 그는 일상 속 남자들, 그들이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작품으로 다뤄요. 선의로 가득한 아티스트예요. 멋있어요. 장 앵베르도 참 특별한 사람이에요(퍼렐과 장은 마이애미에 퓨전 음식 전문 식당인 ‘스완’을 열었다). 진정한 창작자죠. 진짜 중의 진짜예요. 요리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미각적 체험을 총지휘하려고 소재를 다양하게 활용하거든요.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 간의 유사점을 발견하는 일은 늘 매혹적이에요. 우리 모두 각자 자신의 작품에서 아리아드네의 빨간 실을 찾으려고 하고 있거든요.”

‘퍼렐’ 기업은 지금도 활발하게 가동 중이다. 퍼렐은 슈프림과 버질 아블로보다 훨씬 먼저 자신의 명성과 스트리트 팝 미감을 다른 브랜드, 루이 비통, 몽클레르, 키엘, 유니클로, 아디다스, 샤넬 등과 연결시키는 ‘컬래버’의 선구자였다. 자체 스트리트웨어 브랜드(BBC, 아이스크림)를 론칭하고, 여러 사업에 참여하고, 영화 제작에 투자했다. 퍼렐에게 돈은 문제가 아니다.

“비즈니스는 모든 것을 움직이는 기계예요. 미토콘드리아(라루스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동식물 세포의 세포질에 있는 소기관으로 주된 역할은 산화, 세포 호흡, 세포 에너지 공급, 일부 물질 저장’이다)가 세포에 연료를 공급하는 엔진이고, 비즈니스지요. 그리고 세포는 예술입니다. 비즈니스가 잘 돌아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멈추니까요. 비즈니스부터 시작하는 거죠.”

5년 전, 그는 칼 라거펠트가 제작한 단편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CC The World’를 작곡했고, 영화에 직접 출연도 했다. 그때부터 때때로 협업이든, 패션쇼든, 광고 캠페인이든 샤넬의 길과 퍼렐의 길이 겹친다. 남성용 워킹 재킷을 머스트-해브 아이템으로 만든 여성복 브랜드에서 젠더 플루이드를 구현하기에 최적의 홍보 대사가 그였다.

“샤넬은 제가 동경하는 전설적인 브랜드고 이곳에서 제 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간단한 액세서리나 가끔 스웨터나 한정품 몇 개 만들었어요. 이번 유니섹스 컬렉션을 시작할 때 샤넬 측에선 “이번 시즌에 이런 걸 하려고 해. 넌 뭐가 하고 싶어?”라고 하더라고요. 기존 아이템도 있었는데, 제가 색상을 추가하도록 해줬어요. 다른 아이템은 남자로서 입고 싶은 걸 생각하며 디자인했어요. 이를테면 남자 몸에 맞는 유니섹스 웨어, 벨트 같은 액세서리요. 유행은 젠더 플루이드로 가고 있어요. 점차 널리 확산되고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에요. 제가 꼬마였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는 많은 남자가 여성스럽게 입었어요. 특히 알앤비, 솔, 록 음악 가수들이요. 그들은 라이크라 소재로 된 옷을 입고 정신없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립스틱을 바르고 메이크업을 했지요.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고등학생이던 형이랑 진주 목걸이를 했더니 모두 이상하게 쳐다봤어요. 우리가 이상하긴 했어요! 하지만 그런데도 그렇게 했던 이유는 그게 우리에게 잘 맞고 우리를 표현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죠. 최근에 진주가 간직한 여성적인 특성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건 제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의미기도 하죠. 남자들의 에너지로 쓰일 수 있는 것들이 여자들에게 있어요.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새로운 세대는 이런 젠더 간의 경계선을 보지 않고, 그게 대관절 무슨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관심 없어요. 그리고 제 생각엔, 그게 이 시대의 아름다운 특징이에요.”

퍼렐은 2014년 5월 파리 에마뉘엘 페로탱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를 기획했고, 현대 미술의 정수 50여 점을 선보였다. 은 당시 그가 출시한 솔로 앨범 제목이기도 하다. 그 앨범은 명확한 의미를 전달했다. N.E.R.D 시절, ‘명료’한 텍스트와 영상의 시기를 지나면서 그는 할리우드 동료들보다 한참 먼저 페미니즘의 길로 들어섰다.

“제게 진정한 남성성이란 타인의 에너지를 인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에너지처럼 존중하는 거예요. 이렇게 평등을 유지하는 법을 안다는 것은 무거운 책임이 필요하고 서로를 잘 알아야 가능해요. 남녀가 함께 유일하고 동일한 에너지를 구축해야 했음에도, 인간은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게 만들었어요. 그로 인한 파장은 치명적이에요. 우리는 불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여성들은 분연히 일어서기로 결심했잖아요. 그녀들의 시간이 된 거죠. 그리고 모두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해요.”

트렌드 측면에서 그는 카무플라주 전투복 바지에 노출 상의(N.E.R.D 시절), 말 많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마운틴 햇(<겟 럭키> 시절)처럼 말거리가 되는 다소 행복했던 시기를 거쳤지만, 몇몇 해프닝을 제외하고 그에게 시크하고 장난기 어린 스트리트 스타일 감각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제 스타일은 그 자체로 작품이라기보다 트렌드에 가까워요. 마음에 들고 영감을 주는 착상이 떠오르면요, 이를테면 ‘아, 오늘은 건물 청소원의 몸짓에서 영감을 얻어야겠어’, 이렇게요, 그러면 그게 향후 6~8개월 동안 제 스타일이 되는 거죠. 제 옷장에서 마음에 들어 6~8개월 더 간직하고 싶은 옷이 한 벌 정도 있고 나머지는 계속 바뀌죠. 제가 같은 것을 꽤 오랫동안 걸치기 좋아하는 습관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거의 평생이 걸렸어요. 지금 마음에 드는 건 제가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이에요.(2008년에 아들 로켓을 낳고 2017년에는 세쌍둥이를 얻었다.) 그래서 1990년대 아버지 스타일, 정보통신업계에서 일하고 PC를 사용하는 ‘테크노 아빠’처럼 입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