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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예감하는 순간들

2019.04.05GQ

사랑처럼 이별도 어느날 갑자기, 이런 사소한 순간에 찾아온다.

연락이 없어
회사 동료와 점심을 먹다 문득 생각했다. 남자친구와 알콩달콩 카톡을 주고 받는 동료를 보면서 ‘나는 남자친구와 언제 마지막 대화를 나눴더라?’ 기억을 더듬어봤다. 카톡 대화창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까지 한참 스크롤을 해야 했다. 저 아래 내려가있는 그의 이름을 보며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제 우리는 생사 확인 조차 제대로 안 하는 사이가 됐구나. 이별이 코 앞에 와 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문정원(마케터)

시간이 없어
여자친구가 바쁜 사람인 건 맞다. 그래도 나와의 만남을 위해 늘 ‘예비 시간’을 잡아두었다. “혹시 너 만날지도 몰라서 이 시간을 빼놨어.” 그 말에 엄청난 사랑이 담겨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언제부터인지 나와의 약속에서 자꾸 변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왜 꼭 나를 만나기 3시간 전에 급한 회사 일이 생기는 걸까? 다른 모임은 시간을 쪼개 다 나가면서 나와의 만남만 기막힌 핑계로 미루고 있었다. 바쁜 게 아니라 만나고 싶지 않아서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이별을 예감했다.
손정훈(프로그래머)

대화가 없어
“이럴거면 나 왜 만나?” 정말 창피하지만 헤어지기 직전 목이 매어 외친 말이었다. 분명 처음엔 서로 눈을 바라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이젠 시간 가는 걸 너무 알게 됐다. 만나면 스마트 폰에만 시선을 고정하니까 흘러가는 시간이 초 단위로 느껴졌다. 마주 보고 앉아 각자 스마트 폰만 바라보고 있는 꼴을 더 이상 못 견디겠다 싶을 때, 이별이 찾아왔다.
김혜인(광고 기획자)

활기가 없어
현대인들은 누구나 다 바쁘고 피곤하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활기를 얻고 살아나는 거 아니었던가. 서로에게 비타민이 되어주자 약속했는데, 이건 뭐 유통 기한이 지난건지 데이트 내내 피곤해 죽으려고 하는 거다. 1분에 한 번씩 하품을 하고 머리만 닿으면 잠 들어서 극장에 코 고는 소리가 울려퍼지기 일쑤. ‘그냥 집에 가서 씻고 자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나 그만 만나고 푹 쉬어, 이왕이면 영원히…
이영은(브랜드 디자이너)

접촉이 없어
이렇게까지 귀소 본능이 강했던 사람이었나? 나와 어디로 훌쩍 떠나는 여행을 참 좋아했던 그녀가 어느 틈엔가 자꾸 집에 가야겠다고 말한다. 낯선 곳에서 동네 주민처럼 지내는게 좋다면서 계획 없이 즉흥 여행을 졸라댔었는데. 처음엔 귀찮아 하던 내가 그 여행에 길들여지게 됐건만, 이제는 그녀가 자기 집에 가서 ‘혼자’ 자는게 제일 좋다고 말한다. 도망치듯 집에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이제 곧 헤어지겠구나 생각했다.
박현수(회사원)

다툼이 없어
무플보단 악플이 낫다는 말, 절감한다. “너희 둘, 무슨 문제 있어?” 묻는다면 “아니, 우리 문제 없어. 서로 원하는 게 없거든.” 이렇게 대답할 거다. 서로에게 무관심 해지다보니 싸울 일도 없다. 누구를 만났고, 집에 언제 들어가고, 심지어 안 들어가도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됐다. 서로의 존재마저 희미하게 느껴질 때쯤 우리는 이별을 했다.
조진형(영상 디렉터)

계기가 없어
다시 돌이켜봐도 너무 자연스러워서 웃음이 날 정도다.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헤어졌다. 큰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헤어지자는 말로 관계를 정리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배터리가 방전된 것처럼 전원이 꺼져버렸다. 누구 하나 연락해서 “우리 어떻게 된 거야?” 묻지도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 만남이 여기까지라는 걸.
윤솔이(작가)

    에디터
    글/ 서동현(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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