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게오르그 옌센, 놀, 플로스, 크리스토플의 미니멀리즘 아이템

2019.04.18GQ

디자인과 함께, 세계는 단순한 윤곽을 드러낸다. 현대 디자인 역사와 함께해온 미니멀리즘 아이템 열 개.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 2018년

뱅앤올룹슨 ‘베오사운드 엣지’
기술과 디자인은 불가분의 관계다. 기술이 진화하면 디자인은 바뀌고, 디자인이 바뀌면 기술은 진화한다. 특히 가전제품을 사이에 두고 기술과 디자인은 긴 세월 팽팽한 대립과 협력을 거쳐왔다. 덴마크의 음향기기 브랜드, 뱅앤올룹슨 또한 이런 공식을 충실히 지키며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특유의 명쾌한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선도했다. 작년 출시한 올인원 무선 스피커, 베오사운드 엣지가 취하는 태도는 그 역사의 근원에 가깝다. 지름 50센티미터, 폭 13센티미터의 알루미늄 원형 프레임에 패브릭 커버로 전면을 감싼 모습은 모니터에서 뛰쳐나온 3D 모델링 이미지 그 자체다. 외부에 돌출된 버튼 하나 없이 터치식 인터페이스를 지원하는데, 볼륨을 조절하고 싶으면 옆으로 굴리면 된다. 즉각적인 UX다.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는 현대 디자인 업계에서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로 통한다. 베오사운드 엣지엔 최소한의 시각 요소로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디자인을 지향하는 그의 꿈이 담겼다.

넨도, 2013년

글라스 이탈리아 ‘딥 씨 로 커피 테이블’
유리는 쉽게 깨지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다. 이탈리아의 가구 브랜드, 글라스 이탈리아에게 유리는 강하고 마법 같은 존재다. “유리 제품은 눈으로 즐기는 오브제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하다”는 소신으로 초고압력 기술을 이용해 강화 유리를 생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테이블, 책꽂이, 심지어 문짝까지 만들어낸다. 빛과 노닐 수 있는 투광성은 유리만의 독보적인 장점이기에, 글라스 이탈리아와 협업하는 디자이너들은 이를 영리하게 이용한다. 근 10년 새 세계에서 가장 바쁜 디자인 스튜디오로 자리 잡은 넨도는 특유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이 유리의 특성과 온전히 만난 ‘딥 씨’ 라인을 만들었다. ‘딥 씨’는 동일한 크기의 유리를 점점 좁아지는 배열로 놓아 형태적으로 매우 간결하다. 넨도는 레이어링에 승부를 걸었다. 미려한 푸른빛 유리가 겹치는 모습을 보면 심해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직선과 면의 균형, 그리고 그윽한 푸른빛 농담 덕분에 ‘딥 씨’라는 이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제스퍼 모리슨, 1992년

카펠리니 ‘디럭스 3종 소파’
제스퍼 모리슨은 더 이상 뺄 게 없는 디자인이야말로 좋은 디자인이라 믿고, 사용자의 편의를 중시하는 친-기능주의 디자인을 추구한다.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카펠리니와 함께한 ‘디럭스 3종 소파’는 그의 수많은 작업 중 곡선을 전면적으로 강조한 독특한 작업이다. 단순하지만 우아하고 힘 있는 곡선의 흐름을 상정하고 암 체어, 셰즈 롱그(다리를 뻗을 수 있는 팔걸이 하나짜리 긴 의자), 낮잠을 즐길 수 있는 데이 베드로 자연스럽게 분절한 게 특징이다. 특히 왼쪽 세로축과 오른쪽 세로축 간의 곡선 차이가 극적이면서 평면적인 등받이와 서로 만나 내밀한 공간을 형성하는 셰즈 롱그는 각 요소가 갖는 다채로운 특징을 아우르는 균형감이 대단히 뛰어나다. 포풀러 합판과 전나무 원목으로 뼈대를 세우고 다밀도 폴리우레탄 폼으로 채운 시트는 명확한 곡선을 통해 시각적인 긴장을 유지하지만, 실제 앉아보면 폭신함과 편안함이 풍요롭게 펼쳐진다.

아르네 야콥센, 1957년

게오르그 옌센 ‘아르네 야콥센 커틀러리’
20세기 중반 덴마크 디자인이 가구, 조명, 건축 분야에서 획득한 아득히 높은 성취를 지칭하는 ‘데니시 모던’의 대표적 인물을 꼽는다면, 아르네 야콥센이 첫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전통 덴마크 건축 양식과 모더니즘 건축을 융합한 그는 본업인 건축뿐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의자, 조명, 벽지, 생활용품 전반에 걸쳐 재능을 발휘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덴마크 최초의 초고층 건물인 SAS 로열 호텔이다. ‘야콥센 월드’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에그 체어, 스완 체어, 스완 소파, 3300 시리즈 등 데니시 모던의 시그니처 디자인이 쏟아져 나왔다. 매트한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커틀러리는 유기적인 형태에서 간결한 긴장감을 내뿜는 새로운 경지의 아름다움을 개척했다. 실제 손에 쥐면 잘 놓치지 않고 사용하기 편리한 물건이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덕에 출시 10년 후인 1968년 스탠리 큐브릭이 발표한 SF 영화의 고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우주인이 쓰는 소품으로 등장했다.

미스 반 데어 로에 & 릴리 라이히, 1930년

놀 ‘브르노 체어-플랫 바’
“적을수록 낫다Less is more”란 말로 유명한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국제주의 건축의 상징적 인물로, 캔틸레버를 적용한 일군의 의자들에서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했다. 캔틸레버는 건축에서 보를 받치는 두 기둥 중 하나를 없앤 구조를 뜻한다. 이 구조를 의자에 적용하면, ‘ㄷ’자 형태로 구부린 스테인리스 스틸 관이 다리와 손잡이를 일거에 대체하는 장관을 맛볼 수 있다. 투켄트하트 주택 침실을 위해 동료 릴리 라이히와 고안한 브르노 체어는 긴장감과 경쾌함의 조화가 돋보이며, 캔틸레버 의자 중 조형적으로 가장 완벽하다는 평을 받는다. 납작하게 처리한 스테인리스 스틸은 왼쪽, 오른쪽 모두 의자 등받이 중앙에서 시트 중반 지점까지 수평 대칭 이동을 하다 가장자리를 향해 매끈한 C자 곡선을 그리며 전향한 후, 그 기세를 몰아 시트 밑에서 캔틸레버를 구현하고, 종국에는 하나의 직선으로 이어지며 창조의 여정을 간결하게 마무리한다.

지오 폰티, 1950년

크리스토플 ‘오르그 화병’
이탈리아 디자인은 20세기 중후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역사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는데, 과도기마다 한 인물의 존재감이 유달리 막강했다. 지오 폰티가 그중 하나다. 건축, 제품, 가구, 도자기, 유리공예, 그래픽 디자인 등 거의 모든 창의 산업에서 활약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디자인 전시회인 <밀라노 트리엔날레 국제 전람회>를 발흥시킨 큐레이터이자 건축 디자인 잡지 <도무스>를 창간한 발행인이자 초대 편집장이기도 하다. 1950년대 폰티는 프랑스 은식기 브랜드인 크리스토플과 협업해 ‘오르그 화병’을 만든다. 오르그는 프랑스어로 파이프 오르간을 뜻하는데, 이 작업은 ‘여러 개의 화병’을 의미하는 ‘폴리바소’란 애칭도 있다. 얇은 금속 판 위에 다양한 높이와 직경을 가진 5개의 튜브를 강직하게 설치한 은도금 화병은 순수한 조형미와 극적인 구성, 매끈한 금속의 질감이 결합되어 세월을 뛰어넘는 현대성을 획득했다.

카스티글리오니 형제, 1962년

플로스 ‘아르코’
카스티글리오니 형제는 두 가지 전설적인 작업으로 유명하다. 1957년 자노타를 위해 만든 ‘메차드로’는 나무 지지대에 휘어진 철골 다리, 그리고 트랙터용 좌판을 조합한 레디메이드 캔틸레버 의자로, 당시 기능주의에 매몰된 디자인에 조롱 섞인 유머를 던지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마르셀 뒤샹의 개념 예술이 떠오를 수 있지만,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원형에 소구하는 과정에서 뼈대만 남긴 것일 뿐이다.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이런 태도가 전혀 다른 형태로 구현된 작업이 바로 플로스의 플로어 조명 ‘아르코’다. 잘 다듬은 직사각형 대리석에 스테인리스 스틸 봉을 연장해 2미터가 넘는 호를 구현했다. 봉 끝에 부착한 반구형 램프 상부에는 원형 구멍을 뚫어 천장까지 빛을 은은하게 전사시켰다. 대리석과 철이라는 이색적인 재료의 조화, 기다란 곡선으로 중력에 조응하며 얻어낸 철강의 우아한 미감까지, 서정적인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출현은 세계 디자인 역사에 유의미한 사건이었다.

샬로트 페리앙, 1953년

카시나 ‘누아지’
모더니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사촌으로 코르뷔지에와 건축 사무소를 공동 운영한 피에르 잔느레는? 더불어 두 명의 잔느레(르 코르뷔지에는 필명이다)와 일하며 건조한 모더니즘에 인간미를 불어넣은 샬로트 페리앙은? 르 코르뷔지에 건축 사무소의 유일한 여성 멤버이자 가구와 인테리어에서 활약한 샬로트 페리앙은 21세기 들어 남성에 의해 가려진 여성 디자이너의 유산을 발굴하며 그 진가를 인정 받고 있다. 코르뷔지에의 이니셜을 딴 가구 컬렉션인 LC 시리즈 초기 작업들은 코르뷔지에, 잔느레, 페리앙 간 협업의 산물이다. 그녀는 사무소를 나와서도 무수히 훌륭한 작품을 내보였는데, 1953년에 발표한 책장 겸 수납장인 ‘누아지’는 모더니즘 디자인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모듈 방식을 도입한 작품이다. 간결한 선과 비례, 대칭과 비대칭의 조화, 강렬한 색상, 그리고 미니멀한 윤곽이 이를 모두 아우른다.

아르네 야콥센, 1955년

프리츠 한센 ‘시리즈 7 체어’
아르네 야콥센의 재능이 유달리 폭발한 분야는 의자였다. 미국의 임스 부부가 촉발시킨 성형 합판 의자는 그의 안목과 실험 정신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1952년 하나의 합판을 굽히고 잘라 좌판과 등받이를 만들고 깔끔한 철제 다리 3개를 부착한 모델 3100을 덴마크 가구 업체, 프리츠 한센을 통해 출시했다. 개미허리의 형태를 닮아 ‘앤트 체어’로 불린 이 의자는 기존에 무거웠던 덴마크 가구와 비교해 한없이 가볍고 혁신적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야콥센은 후속작에 몰두해 곧 모델 3107을 출시한다. 단순하고 간결한 곡선과 형태가 완전하게 조화를 이룬 ‘시리즈 7 체어’의 탄생이다. 얇지만 단단한 성형 합판을 부드럽게 굽혀 견고한 유기미를 획득한 시리즈 7 체어는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의자로서 지금까지 1천만 개 이상 팔렸다. 자체적으로 완결성을 갖춘 디자인은 유행과 시간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다. 시리즈 7 체어는 야콥센의 빛나는 성취다.

쿠라마타 시로, 1968년

카펠리니 ‘피라미드’
쿠라마타 시로는 모더니즘 디자인에 시적 언어를 불어넣은 인물로, 20세기 가구 디자인에 강한 영향을 준 일본 디자이너다. 그의 후기 대표작인 ‘달은 정말 높아How High the Moon’와 ‘미스 블랑시’는 지금 봐도 낭만적이다. 그런데 그가 독특한 미니멀리즘 디자인으로 이름을 떨쳤다는 점을 상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출세작인 캐비닛 시리즈 중 1968년 발표한 ‘피라미드’는 투명한 아크릴 레진으로 만든 피라미드 케이스 안에 17개의 검은 서랍장이 차곡차곡 들어찬 대형 캐비닛이다. 직선에 방점을 둔 기하학적 형태를 반복하는 모습에서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위로 갈수록 너비가 좁아지는 피라미드 서랍장을 사용하며 느끼는 당혹스러운 유쾌함이 디자인의 핵심이다. 모더니즘 디자인이 추구하던 형태와 기능의 지루한 합일에 의문을 던지며, 예상치 못한 기능을 결합했다.

    에디터
    이예지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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