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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마음

2019.04.23GQ

편집장이 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어떤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많은 생각을 했다. 요즘 그때를 다시 기억한다. 결국 제일 중요한 건 마음이다.

<지큐 코리아>는 독자들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있나요? 하고 싶은 얘기와 해야 하는 얘기를 적절히 섞어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척박한 시간을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밝고 환한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큽니다. 우리 주변의 사물들, 계절, 동물과 사람…, 태양 아래 모든 아름다운 것을 통해서 결과적으로는 행복한 감정을 일깨우고 싶은 건데, 행복과 아름다움을 수맥 찾듯 더듬더듬 구할 필요 없이 가까이에서 쉽게 보여주고 싶어요. 요즘은 시절 자체가 어둡고 탁해서인지, 제일 많이 생각하는 건 ‘밝지만 가볍지 않은 것’에 대해서입니다. 진지한 얘기를 강하고 무겁게 하는 것보다, 밝고 부드러운 것을 깊이 있게 표현하는 게 훨씬 어렵거든요. 물론 세상을 낭만적으로만 보는 건 아니에요. 모든 사회 현상과 현실에 대해서 어느 쪽으로든 치우치지 않고 꼼꼼히 바라보는 건 매거진의 꼭 필요한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왜 종이 잡지를 만듭니까? 그것이 잡지의 본질이라고만 말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죠. 하지만 다른 마땅한 답도 없어요. 저 자신이 종이 자체를 사랑하고 그 위에서 무엇이든 다루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있어요. 활자와 사진이 종이에 놓여 있는 모습과 촉감, 향과 의미가 좋아요.

요즘 같은 때 잡지를 만드는 건 뭐가 제일 힘든가요? 이제 쉽고 빠르고 즉각적인 채널로 모든 이슈를 볼 수 있으니까, 예전처럼 정보 전달의 목적으로만 본다면 잡지를 꼭 사야 할 이유가 없어요. 잡지의 본색을 유지하면서, 사고 싶게 만드는 게 쉽진 않죠. 오늘의 잡지는 콘텐츠의 독창성 외에 오브제로서의 매력도 지녀야 해요. 만지고 싶고 책장을 넘기고 싶고 갖고 싶은 예쁜 물건이어야 하는데 예산은 늘 한정되어 있어요. 아이디어가 너무 넘쳐서 돌아버릴 지경이 되면 좋겠어요.

예전의 <지큐>와 지금의 <지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비교하거나 굳이 차이를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다만 좀 더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찾아 모험적으로 해보려고 해요. ‘No More Gentlemen’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오랫동안 잘 되고 안정적이고 좋은 타이틀을 지녔으니까 관습적으로 해오던 것들, <지큐>니까 이게 맞고 이건 아니고, 하는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있어요. 훨씬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고, 콘텐츠든 플랫폼이든 사람이든, <지큐>를 이루는 모든 구성 요소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전통적인 매체의 무게 중심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종이 잡지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난무하던 때가 있었죠. 지금 상황은 그 예측이 맞았나요? 어떤 부분은 맞고 어떤 건 예상과 달라요. 디지털의 비중이 커진 건 맞지만 몽땅 다 옮겨가진 않았잖아요. 지금 잡지의 상황은 프린트와 디지털이 공존하면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건데, 그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고 또 어렵죠. 잡지의 미래가 무엇이라고 누구도 단언할 수 없을 거예요. 우리 모두 큰 파도가 이쪽으로 몰려오는 걸 보고 있는 서퍼가 된 기분이에요. 파도 뒤에 뭐가 있을진 모르죠. 곧 잔잔해질지 더 큰 파도가 올지. 우선은 눈앞의 파도부터 넘어야죠. 터프한 상황도, 뚜렷하지 않은 미래도 지금의 현실이니까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팔랑대거나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갖는 게 중요해요.

종이 잡지 시장의 전체적인 상황과 비교할 때 <지큐>는 어떤 편인가요? <지큐>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때 잡지 만드는 게 힘들다고들 하지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비즈니스적인 차원, 책이 덜 팔리고 광고가 덜 들어오고 하는 숫자와 관련된 건, 잡지 시장 전반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어서 인정해야 하고요. 다만 그 숫자들이 잡지가 최고 호황이었던 시절과 비교하면 적어졌을 뿐, 충분히 의미 있고 얼마든지 가능성 있는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산업이든 굴곡의 그래프가 다 있잖아요. 몇몇 사람들은 매거진의 경쟁력이나 영향력이 이젠 약해졌다고도 하지만, 만약 그렇대도 남 탓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분야가 작아졌단 소릴 듣는다면 그건 그 분야에 속한 사람들 잘못이지 환경이나 사회,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죠. 매거진이 더 인기 있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힘도 가지려면, 그걸 만드는 사람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요. 투덜거리고 불평하고 남 탓, 시절 탓을 하는 대신 책상이라도 한번 더 닦고 앉아서 좋은 방법을 열심히 찾아야죠.

잡지 출판 외에 다른 형태의 활동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독자들과 자주 만나려고 해요. 그래서 크든 작든 이벤트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궁극적으로 <지큐>를 아주 매력적인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요. 저널로서의 신뢰와 가치가 제일 중요하지만, 그 외에도 로고만 봐도 기분이 좋고 <지큐>가 하는 건 그게 뭐든 믿을 수 있는. <지큐>를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어느 날 점심이든 저녁이든 만나서 어떤 얘기라도 나누고 싶은 세련되고 상냥하고 지혜로운 사람이고 싶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잡지란 어떤 건가요. 만드는 사람 모두 잡지를 ‘지키려는’ 마음을 가진 잡지.

    에디터
    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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