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신 얼굴론 – 이제훈의 천진한 얼굴

2019.04.26GQ

도경수, 박정민, 임시완, 류준열, 이제훈. 지금 가장 뜨거운 남자 배우들의 얼굴을 새롭게 들여다봤다. 다섯 번째는 이제훈이다. ‘강아지’나 ‘소년’ 같이 그의 얼굴에 붙은 수식들 대부분이 동그랗고 새카만 눈동자와 휘어진 눈매에서 비롯된다.

이제훈의 얼굴은 이중적이다. 전체적으로 여린 선의 얼굴이지만 콧대는 날카롭게 뻗어 있고, 무서울 만큼 다부지게 잠긴 입 꼬리는 웃을 때면 광대뼈까지 올라가 큼직한 반원을 만든다. 인터넷에는 그의 사진 두 개를 나란히 비교해 놓은 게시물이 유명하다. 드라마 <시그널>의 예민하고 고독한 형사 박해영과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반듯한 9급 공무원 박민재의 촬영용 증명사진이다. 완전히 다른 인상의 두 사진을 놓고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 선과 악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축복받은 배우 얼굴이라고 칭송한다. ‘선과 악을 표현할 수 있으면 축복받은 것인가?’, ‘저 상반된 표정이 이제훈의 연기적 재능은 아닌가?’ 하는 의문은 들지만, 어쨌든 그만큼 그의 얼굴이 많은 사람들에게 넓고 다양한 상상을 만들어낸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 중 가장 축복받은 부분을 꼽는다면 단연코 눈이다.

전국의 점쟁이들이 모여 귀신을 퇴치한다는 컬트 코미디 <점쟁이들>에서 좋아하는 신이 있다. 김태훈이 극중 원귀라는 본인의 정체를 밝히면서 온 몸의 핏줄이 팽창하고 동공이 커다랗게 확장되는 장면인데 여기서 이제훈은 그런 위협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으며 “깨를 많이 먹었나 봐. 깨를 많이 먹으면 눈알이 까매져!”라고 하며 맞서 싸운다. 그 황당한 대결 장면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되돌려 봤다. 그리고 볼 때마다 그 말을 하고 있는 이제훈의 눈동자가 CG로 확장된 김태훈의 눈동자보다 더 새카매서 숨도 못 쉴 만큼 웃는다. 어릴 때 깨를 많이 먹었나…

‘강아지’나 ‘소년’ 같이 그의 얼굴에 붙은 수식들 대부분이 동그랗고 새카만 눈동자와 휘어진 눈매에서 비롯된다. 영화 <건축학개론>, <내일 그대와>, 드라마 <여우각시별>처럼 주기적으로 부드러운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그의 눈은 마냥 유약함만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은 배우의 눈을 통해 시선과 감정 두 가지를 읽어낼 수 있다. 이제훈은 자신의 감정이 담긴 눈으로 관객들에게 시선의 방향을 정확하게 그어주는 배우다. 그의 이름을 알린 영화 <파수꾼>에서 그는 줄곧 불안하고 위태로운 주인공 기태의 상태를 표현하지만 그런 그의 흔들리는 눈은 결국 영화가 전하고 싶었던 기태의 공포와 고독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눈이 표현하는 불안이 관객에겐 확신으로 전달된다. 이제훈의 눈은 감정이 몹시 흔들리거나 눈물을 흘릴 때에도 초점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을 감상적으로 동요하게 만들기보다는 극의 흐름을 의도한 방향대로 유도하고, 주제를 좀 더 깊게 통찰하게끔 만든다. 타임슬립 장르인 <시그널>은 과거와 현재를 이중 삼중으로 오가며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복잡한 플롯의 드라마지만, 주인공인 이제훈의 눈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작품 전체의 정서와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작품 속 인물들의 눈은 결국 다시 작품 밖 배우 이제훈의 눈이 된다. 두 자매에게 휘둘리며 시종일관 툴툴대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홍길동은 성장과 각성을 통해 모두를 구원하는 전형적인 히어로가 아니라, 어린 여자 아이들과 팀을 이뤄 갈등을 해결하며 이야기를 완주하는 불완전하고 결함이 많은 그저 그런 성인 남자다. 이렇게 일견 노멀해보이는 선택은 다시 <아이 캔 스피크>로 이어진다. 9급 공무원 박민재를 연기하는 이제훈은, 한 노인의 굴곡 많은 생애에 자신을 반추해 절절히 반성을 하거나, 위안부 문제를 비장하게 사회에 고발하는 남성이 아니라 주인공 나문희의 메시지에 집중하게 만들어 주는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히 임한다. 이렇듯 현재까지 그가 선택한 것은, 진부한 남성성의 과시나 허황된 드라마의 히어로보다는 결점을 끌어 안은 채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평범한 남성 캐릭터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선택 자체가 도리어 이제훈에게 호기심과 신뢰를 형성한다.

때 되면 위악을 떨며 나쁜 놈으로 변신하는 충무로의 마초들도 지겹고, 작품보다 아시아 투어 일정으로 더 바쁜 한류스타도 진절머리 난다. 물론 저런 유형의 배우들도 필요하겠지만, 지난 십여 년 간 한국의 모든 남자 배우가 저런 놀음을 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 같아서 피곤했다. 배우와 관객은 작품을 통해 서로 믿음을 쌓아나가는 관계다. 이제훈은 밀도 높은 연기력과 다양한 장르의 작품 선택을 근거로 현재까지 관객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는 몇 안 되는 배우다. 본인이 가진 기회의 폭을 활용해 유명세와 명예를 안전하게 얻을 수 있는 선택지보다 좀 더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행보를 지켜보는 건, 관객으로서 즐거운 일이다. 누군가의 커리어에 대해 3자의 입장에서 너무 큰 소신을 갖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가 보여준 선택을 통해 한국 영화계에 가진 기대 정도는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훈의 확신에 찬 눈이 가리키는 또 다른 길은 틀림없이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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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글 / 복길(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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