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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슨 퓨리의 강함은 어디에서 오나

2019.05.15GQ

맨주먹의 전사로 태어난 타이슨 퓨리는 악명과 명성, 이 두 가지를 모두 쟁취했다.

“우리가 죽는 순간 과거 일이 스쳐 지나간다고 믿어요. 아마도 내가 죽기 직전에는 무수한 장면이 떠오를 것 같아요.”

“두둑한 배짱이 있다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도전을 하는 게 이치에 맞아요.”

키가 2미터가 넘는 거구의 타이슨 퓨리가 말하길 꺼리는 몇 가지 이슈가 있다. 과거와 미래에 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정색을 한다. “난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요. 불과 2분 전에 벌어진 상황도 지난 일일 뿐이죠. 그리고 5년 후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알고 싶지 않아요. 내가 살아 있을지도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우습다는 표정으로 한때 재미 삼아 수박을 머리로 깨부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27승 1무 19KO를 자랑하는 무패 복서 타이슨 퓨리는 다루기 어려운 부류의 사람이다. 2015년 ‘무결점 챔피언’이라 불리며 헤비급을 장기 집권해온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를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챔피언의 시대를 알렸다. 그렇지만 이후 불미스런 사건들이 그를 스파링 파트너 삼아 펀치를 마구잡이로 날렸다. 퓨리는 여성 비하와 동성애 혐오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방어전 거부와 도핑 테스트 양성 반응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몰수당했다. 2년 6개월 동안 링을 떠났다가 복귀하는 것으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무기한 자격 정지를 맞는 수모도 겪었다. 무의 상태에서 챔피언으로 거듭났지만 다시 처음 위치로 튕겨져 나갔다. 아니, 처음보다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심각한 우울증과 비만 증세가 그를 잠식했다. 코카인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며 거의 죽음 직전에 놓인 적도 있다. 퓨리는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어요. 복싱을 모르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며 암담하고 비참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일단락했다. 그의 신념대로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공백기에서 빠져나와 링에 다시 선 그는 달라진 건 없다는 투로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하이라이트 장면은 작년 12월, 디온테이 와일더와의 세계복싱평의회(WBC) 헤비급 타이틀 매치였다. 그는 두 번이나 다운을 당하면서 수세에 밀렸지만 12라운드가 종료될 때까지 바위처럼 단단히 버텼다. 그 결과 두 선수 모두 커리어 첫 무승부를 안았다. 종료 2분 전 퓨리가 쓰러졌을 때 경기를 보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는 다시 일어났다. 헤비급 챔피언 출신 조지 포먼은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걸. 그가 정말 자랑스럽다”라며 격양된 반응을 전했다.

사실 내 앞에 돌산처럼 앉아 있는 거구의 사내가 인터뷰에 순순히 응해줄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퓨리는 미디어와의 결별을 선언했지만 이 자리만큼은 예외였다. 와일더와의 경기 이후 언론과 전문가들은 그의 강인한 정신력을 언급하기 바빴다. 하지만 여태껏 인터뷰를 기피한 건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요즘 퓨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골칫거리는 아무래도 프라이버시다. 모자나 선글라스를 써도, 수염을 붙여도 일반인의 두 배 가까운 덩치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쉽게 알아챈다. “가족과 외출을 하려고 하면 집 밖으로 나선 순간부터 괴로워요. 과거에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길 원했지만 지금은 그럴 리가 없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든 신경 쓰지 않아요. 개인적인 견해와 취향의 차이라고 봐요. 저의 유일한 관심사는 매일 아침 건강하게 일어나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에요.”

그는 영국 북부 지역의 해안 마을 모어캠에서 멀리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우리가 만난 곳은 모어캠에서 차로 불과 20분 거리에 있는 랭커스터였다. 퓨리는 누구나 아는 본인의 호전적인 성향을 일부러 억누르고 있는 듯했다. “지금의 삶은 아주 조용해요.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죠.” 물론 이 고요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오는 5월, 승부를 매듭지지 못한 와일더와 재대결을 갖기로 한 데다 그 게임의 승자는 세계 복싱 헤비급 챔피언인 앤서니 조슈아와 맞붙을 예정이다. 조슈아의 이름을 꺼내 들자 그는 “잠깐”을 외치며 말을 끊었다. “이 자리에서 굳이 조슈아에 대해 얘기할 이유는 없어요. 내 관심사가 아니거든요.” 내가 아는 그 퓨리가 맞나? 그가 정말 맞다면 조슈아를 ‘종이 챔피언’, 그의 프로모터인 에디 헌을 ‘더러운 사기꾼’이라 싸잡아 비난해온 전략을 그만 두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퓨리가 이렇게 슬림해 보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카메라 앞에서 셔츠를 벗어 던진 그의 몸은 지난 겨울 와일더와 맞붙었을 때보다 더 말라 보였다. 재대결을 앞둔 그는 지난주에 비로소 체중 감량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끝내지 못한 승부를 마무리할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을까? 말을 가려 하던 그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준비? 오늘 당장 링에 오를 수 있는 걸요.” 그럼 오늘의 계획은? “인터뷰 끝나면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 하려고요. 실은 훈련이죠. 매일 파이팅, 파이팅 하고 있어요. 오늘도 그럴 거예요. 난 복싱 시합보다 훈련을 하면서 살아 있음을 느껴요. 경기 후에 항상 트레이닝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몸 상태가 보장되면 20년도 더 싸울 수 있어요.”

퓨리의 변함없는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그가 겪은 인생의 굴곡을 아는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정신 상태는 괜찮을까? 분노조절 장애와 우울증은 나아졌을까? 그가 장담한 대로 쉰 살이 될 때까지 싸울 수 있을까? 노숙자에게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을 건네주고 1백억원에 이르는 대전료를 통 크게 기부하는 사내와 협상 테이블에서 다짜고짜 “얼마짜리 대결인데?”라는 말로 포문을 여는 사업가는 같은 사람일까?

타이슨 루크 퓨리는 1988년 8월 12일 맨체스터 인근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 태생의 아버지 존은 13차례의 프로복싱 경기 전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해에 마이클 스핑크스를 91초 만에 KO로 침몰시킨 마이크 타이슨으로부터 아들의 이름을 가져왔다. 그렇다고 해서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퓨리는 타이슨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존의 묘사에 따르면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갔고 호흡도 약했다. 심장이 세 번이나 멈춰 인공호흡기 신세를 지기까지 했다. 둘은 복서로서도 달랐다. 마이크 타이슨은 저돌적인 인파이터 스타일로 링 위에서 종종 쇼킹한 사건의 주범이 됐다. 그와 달리 퓨리는 글러브를 착용한 상태에서는 좀처럼 분노하지 않는 타입이다. “링 위에서는 컨트롤이 절대적이에요. 복싱은 싸움처럼 보이지만 폭력은 아니거든요. 어쨌든 스포츠잖아요.”

그 신념과 별개로 퓨리라는 이름에는 파이터 기질이 분명히 존재한다.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의 조상들은 주먹꾼들이었다. 어린 시절 퓨리는 전설적인 복서들의 비디오를 보면서 자랐다. 열 살 무렵 학교를 떠나 일을 시작한 그는 무려 12만 파운드(약 1억 8천만원)를 모았지만 그 돈을 카지노에서 몽땅 잃었다. 퓨리의 숙부이자 그의 전 트레이너였던 피터 퓨리는 마약과 돈세탁 혐의로 입건됐다. 아버지 존은 싸움을 벌이다 상대방의 시력을 잃게 만들어 11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더 이상 나빠질 게 없어 보이는 유년 시절이었다. 그 역시 훗날 감옥에 가는 모습을 떠올렸을까? “아뇨. 절대 그렇지 않았어요. 난 꿈이 달랐어요. 헤비급 챔피언이 되는 게 유일한 목표였죠. 복싱이 날 바꿔놓았어요. 복싱을 시작하기 전에는 빼빼 마르고 연약한 소년일 뿐이었어요.” 인생의 첫 펀치를 기억하느냐는 질문을 그는 위트 있게 쳐냈다. “음, 기억하기 어려운데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펀치를 휘둘렀으니까요.”

앤서니 조슈아는 “아들이 나처럼 복서가 되길 원치 않는다. 이 일은 굉장히 터프하니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와일더는 선천적 척추 장애를 가진 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이터로서의 직업을 선택했다. 퓨리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처럼 복싱을 하면서 억지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거나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 같은 건 없어요. 그저 좋아서 복싱을 시작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예요.” 퓨리의 동생 토미 역시 작년 12월 라이트 헤비급 경기에 출전하며 프로복서로 데뷔했다. 이들 형제의 주먹에는 파이터의 피가 흐르는 게 거의 분명하다. 네 명의 자녀가 있는 퓨리는 곧 다섯째 아이가 생긴다. 아이들이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갖길 원할까? “두둑한 배짱이 있다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도전을 하는 게 이치에 맞아요. 떠올려보면 아버지도 내게 똑같은 말씀을 했어요. 원하는 만큼 뭐든지 해보라고. 대신 누군가 ‘넌 할 수 없어!’란 허튼소리를 못하게끔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아이를 더 가질 계획을 갖고 있는지 묻자 그는 싫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미래를 누가 알겠어요. 하지만 이건 알아요. 새 식구가 생기면 집 안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말 거예요”라고 말했다.

과거 퓨리는 전도유망한 아마추어 복싱선수였다. 하지만 2008년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열아홉 살에 프로 무대로 전향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도 이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퓨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파티에도 가지 않았어요.” 당시 퓨리의 코치였던 스티브 에간이 말했다. “심지어 여자친구도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났어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지 않나요?” 하지만 그의 요란스럽지 않은 삶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를 맞는다. 현실 세계에서 수도승 같은 생활을 했던 퓨리는 트위터를 통해 전혀 다른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벨라스케즈는 난쟁이에 불과하다. 나랑 맞붙자. 케이지든 링에서든.”, “난 퓨리어스 T다! 치소라를 뭉갠 후 조슈아를 만나러 갈 테니 기다려라.” 평소 트윗으로 케인 벨라스케즈, 데이비드 프라이스, 앤서니 조슈아, 데릭 치소라를 포함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도발을 일삼아온 그는 위험수위를 넘어서며 여러 차례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2013년에는 데이비드 프라이스에게 트위터상에서 욕설은 물론 게이라고 조롱해 3천 파운드를 물어야 했다. 이듬해에는 치소라와 경기를 갖기 직전 그를 모욕해 1만5천 파운드의 벌금을 냈다.

2015년 11월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를 무너뜨린 시점부터 퓨리의 롤러 코스터 인생은 시작됐다. “여자는 주방에 눌러 붙어 있어야 한다”는 비하 발언을 비롯해 동성애자를 소아성애자에 비유해 경멸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이에 질색한 13만 명이 넘는 사람이 퓨리의 선수 자격 정지에 대한 청원에 동참했다. 퓨리의 추락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클리츠코와의 재대결 직전에는 소변 샘플에서 코카인이 검출됐다. 어쩔 수 없이 헤비급 통합 챔피언 타이틀과 선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는 폭식과 음주, 약물을 닥치는 대로 들이켰고, 자신의 신변에서 눈을 떼지 않는 미디어가 마녀 사냥을 하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하강곡선을 그리던 삶은 가장 아이러니한 순간에 반등했다. 정신이 피폐해진 그는 페라리를 구입해 시속 300킬로미터로 다리 난간에 돌진해 뛰어내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신? 가족? 아니면 복싱? 무엇이 세상 밖으로 튕겨져 나가려고 했던 그를 끝까지 붙잡았을까?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속에서 뭔가 선한 기운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자살 충동과 나쁜 생각들을 다리 밑으로 몽땅 내던지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죠. 어떤 일이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고, 우리가 죽는 순간 과거 일이 스쳐 지나간다고 믿어요. 아마도 내가 죽기 직전에는 무수한 장면이 떠오를 것 같아요.”

이해하기 힘든 퓨리의 기행은 유년 시절에 기인한다. 그의 부모님은 사사건건 충돌했다. 어머니는 몇 차례 유산을 겪었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들과 낳은 자녀가 여럿 있었다. 유랑의 삶은 그의 가족이 몇 세대에 걸쳐 짊어진 운명이기도 했다. 언젠가 퓨리는 트윗을 통해 스스로를 “캐러밴에서 사는 가장 위대한 헤비급 복서”라 칭했다. 복싱은 그에게 싸움이 아니라 구원이자 남자다움을 과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또 인간 본성에 존재하는 빛과 어둠을 들춰내는 기폭제이기도 했다.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래리 홈즈, 마이크 타이슨, 레녹스 루이스의 시대를 거쳐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는 퓨리에게 무릎을 꿇기 전까지 10년 넘게 헤비급을 지배했다. 복싱계에서 헤비급을 들러싼 팬들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여러 부침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시선이 퓨리에게 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영웅과 악당의 면모를 모두 가진 그가 조슈아, 와일더와 나란히 헤비급 복싱에 스펙터클함을 더해주길 원한다. 퓨리의 나이는 30세, 조슈아는 29세, 와일더는 33세다. 이들은 전성기를 맞았다.

복서가 일순간에 무너지는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재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와일더와의 대결을 앞두고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누군가는 퓨리가 예전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누군가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퓨리는 자신을 몰아붙이는 부정적인 시선들을 가차없이 박살냈다. 당시 잔뜩 벼르고 있었는지 묻자 그는 “전혀요. 사전에 계획된 건 없었어요. 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은 프리 스타일이거든요”라고 말했다. 퓨리는 큰 덩치에도 몸놀림이 민첩하다. 하지만 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와일더의 강펀치를 맞고 두 차례나 다운을 당했다. 눈두덩은 야구공을 맞은 것처럼 부어 올랐고 다리는 탁 풀렸다. “그때 상황을 다시 얘기해봤자 큰 의미는 없어요. 어차피 지나간 일이잖아요. 보다시피 나는 멀쩡히 잘 살고 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해요.”

치열했고 그만큼 여운이 길게 남았던 경기를 마친 뒤 와일더는 자신이 퓨리에게 지옥을 맛보게 했다고 으쓱댔다. 이에 퓨리가 어이없다는 듯 맞받아쳤다. “그게 지옥이었다면 그리 무서운 곳은 아니던데요. 뭐, 펀치는 분명 강했지만 별로 아프거나 하지 않았어요. 다음 날 아픈 게 문제지, 경기 중에는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치거든요. 다운되는 거야 복서에겐 흔한 일이에요. 그리고 헤비급 선수의 펀치를 제대로 맞으면 나라도 쓰러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재대결에 대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와일더는 평소처럼 잘하겠죠. 그렇지만 내가 그보다 못하지는 않을 거예요.” 누군가는 그가 패배해 딱한 낙오자나 동성애 혐오자로 남길 바랄지도 모른다. 퓨리는 그런 사람들이 짜증나거나 신경이 쓰일까? “그렇지 않아요. 복싱은 사람들과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는 스포츠예요.”

복서들은 뇌손상의 위험을 안고 경기에 나선다. 퓨리도 예외는 아니지만 본인은 링 위에서 죽는 것쯤은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에 치여 죽을 확률이 더 높아요. 그보다 아이들을 남겨두고 죽을까 봐 두려워요.” 적어도 그는 마흔 살까지는 헤비급으로 선수 생활을 하길 원한다고 했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복싱을 그만두면 누가 내 인생 따위를 신경 쓰겠어요. 그저 남은 시간을 즐기면서 선탠이나 하는 거죠.” 또 대전료를 홈리스 재단에 기부했던 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돈이란 있다가도 없어요. 흐르는 콧물처럼 쓱 닦으면 사라져요. 그래서 돈은 나한테 중요하지 않아요. 남들처럼 전용기나 요트를 사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그건 진짜 낭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대전료를 협상하냐고요? 이건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누구나 정당한 대우를 받길 원하잖아요.”

퓨리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의 양가적인 모습과 드라마틱한 삶에 오히려 경외감마저 들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상반되는 욕망들이 번뜩이고 충돌한다. 온종일 훈련만 하며 심신을 단련하고 싶다가도, 세상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싸우고 싶어지기도 한다. 또 자신을 ‘집시 킹’이라 지칭하지만 공동체 생활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 하며, 욕설을 퍼붓는 어릿광대 같다가도 때로는 진지하게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링 위에는 똑같이 주먹만 휘두를 뿐 개성이 없는 파이터들로 넘쳐나요. 그러니 나라도 달라야 하지 않겠어요? 링은 내 안의 또 다른 정체성을 깨워줘요. 그러면 즐길거리를 사냥하는 거죠.”

    에디터
    Henry Mance
    포토그래퍼
    Hamish Brown
    크레이티브 디렉터
    Paul Solo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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