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런더너가 보는 손흥민

2019.05.18GQ

손흥민이 런던에서 보내오는 낭보에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찬사를 그의 이름에 쏟고 있다. ‘대한민국의 캡틴’에 대한 평가는 그곳에서도 뜨거울까

런던에서 한국인으로 살다 보면 반복해서 듣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높은 지분을 차지한 건 김정은이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북한에서 왔어? 남한에서 왔어?” 같은 당황스러운 것부터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다소 복잡한 답을 요구하는 질문까지, 어느 정도는 답을 외워놓곤 했다. 그 주제가 변했다고 느낀 건 2018 러시아 월드컵 즈음이다. 우리가 독일에 승리한 그 순간, 런던 유스톤역 근처의 펍에서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기적적인 드라마에 펍에서 경기를 관람하던 영국인들은 서로를 얼싸 앉으며(우리로 치면 일본이 탈락한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저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다짜고짜 이렇게 외쳐대기 시작했다. “쏜!”, “‘쏘니 시스터!”

약 2개월 후 손흥민이 와일드 카드로 진출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땄다는 걸 런던 지하철에 앉아 알게 됐다. 맞은편의 남자가 손에 든 신문 <메트로>에 ‘만세’ 포즈를 취한 손흥민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가디언>, <인디펜던트>, <BBC>, <텔레그래프> 등 영국 메이저 언론사에서도 “한국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손흥민이 군복무를 면했다”는 기사를 앞다퉈 보도했다.

나는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다. 축구는 11명이 하는 공놀이라고 생각하는 ‘축알못’인 나는, 그깟 공놀이에 목숨 거는 런던 한복판에서 매일매일 ‘쏜’의 위대함을 실감하는 중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국어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한 친구에게 ‘손’, ‘발’, ‘눈’ 같은 신체 관련 단어를 알려주고 있던 참이었다. “그럼 ‘쏜’은 이름의 뜻이 ‘Hand’야?” 영국인인 그는 ‘손’ 하면 자동으로 손흥민을 연상하는데, 정작 한국인인 나는 ‘쏜’이 무엇인지 생각해내야 했다.

지난 4월 4일, 영국인 친구 조니로부터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손흥민이 토트넘 새 구장에서 골을 넣었어! 이제 그는 영원히 역사에 기록될 거야!” 며칠 뒤 또 메시지가 도착했다. 손흥민이 새 구장의 챔피언스리그 1호 골로 맨체스터 시티를 무너뜨렸다는 거였다. 그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해설자가 ‘쏜’이 전 세계 최고의 아시안 플레이어라고, 박지성과 비교해도 더 좋은 선수라고 했어. 박지성이 특정한 분야에서 뛰어나다면, 손흥민은 다양한 방면으로 고루 훌륭한 기량을 선보인다고.” 챔피언스리그라는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팀을 눌렀다는 점에서, 토트넘의 ‘간판’ 헤리 케인이 빠진 직후 득점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이 경기는 상징적이었다. <가디언>의 기사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됐다. “누가 헤리 케인이 필요하다고 했나?”

이 글에서도 ‘손흥민 파워’는 빛을 발했다. 남일에는 관심이 없기로 유명한 런더너들이 오히려 나를 귀찮게 했기 때문이다. 의견을 보태주겠다고 하질 않나, 또 다른 토트넘 팬들을 소개시켜주고, 손흥민 인터뷰 링크를 보내주기까지 했다. 기사의 제목은 ‘손흥민의 아버지는 그가 은퇴할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고, 그도 동의했다’였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모가 자식의 결혼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영국 문화권에서는 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아?” 1초 만에 답이 날아왔다. “아니. 손흥민은 자기 관리의 결정체로 유명해. 그를 충분히 이해해.”

축구 무식쟁이로서 흥미로웠던 관전 포인트는 ‘손흥민 VS. 에릭 라멜라’. 시작은 30년 이상 토트넘 광팬 생활을 해온 짐이었다. “톱 플레이어. 항상 주전 멤버는 아니지만 매우 효율적인 선수. 토트넘 팬으로서 손흥민이 우리 팀에 있다는 걸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해야 해서 프리미어리그에서 빠질 때가 있다는 게 유일한 단점이랄까. 몸값은 라멜라의 반이지만 그만큼 훌륭해!” 좋은 얘기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 반응이 싸늘했다. ‘라멜라만큼 훌륭하다’는 말이 또 다른 토트넘 골수팬 폴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았다. “라멜라만큼 잘한다고?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지금 우리가 ‘쏜’을 다른 팀에 이적시킨다면 1억 파운드는 받을 수 있을 거야! 라멜라는 고작 10파운드의 가치밖에 안 돼. 안타까운 건 현실적으로 우린 그 어떤 팀에도 라멜라를 넘겨줄 수가 없다는 거지!”

사우스햄튼 팬이지만 판타지 풋볼 게임 팀에서는 손흥민을 플레이어로 사용하는 매튜가 중재에 나섰다. “라멜라는 확실히 모두 스타가 될 거라 예상한 플레이어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했지. 손흥민은 그 반대야. 그가 처음 유럽에 왔을 때 아무도 이만큼 잘할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의 헌신적인 플레이 스타일과 중요한 순간마다 득점을 해내는 골 결정력을 봐봐.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어느 새 내 존재는 까맣게 잊혀져 있었다. 내가 한 말이라곤 “그런데 라멜라가 누구…?”가 전부였다.

그렇다면 축구에 관심 없는 영국인들에게 손흥민은 어떤 존재일까?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한국에서 온 축구선수다. 열광할 정도는 아니지만 손흥민에 대해 인지하고는 있단 얘기다. “아, 그 토트넘 플레이어?”, “잘한다며?”, “요즘 인터뷰 많이 나오더라” 정도의 느낌에 가깝다. 좀 색다른 발언도 있었다. 친구 중 한 명이 손흥민이 ‘토큰(Token) 플레이어’가 아닐까 하는 문제적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축구 못지않게 영어가 짧은 나는 이 표현을 축구 팬들에게 물었다가 그야말로 뭇매를 맞았다. ‘토큰’이란 특정 집단에 어필하기 위해 어색하게 끼워 넣은 포지션을 뜻한다. 그러니까 인종차별적인 문제를 배제하고 생각하더라도, 축구에서 ‘토큰 플레이어’란 능력치가 부족하다는 뜻이니, 충분히 불쾌할 만한 얘기다.

축구 팬들의 반응은 무시무시했다. 토트넘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구단이 아니다, 톱 4에 들지 못하면 손해 보는 금액이 얼마인데 잘 못 하는 선수를 출전시키겠느냐, 손흥민에 대한 좋은 평가들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는 아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동양 선수일 거다, ‘직관’을 가서 답답하게 플레이하는 선수가 있으면 관중석에서 ‘쏘니’에게 패스하라는 야유가 나오는 것을 봐라, 네가 이 표현을 기사에 썼다가 쓰레기 같은 영국 매체에서 그 부분만 발췌해 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쏜’과 토트넘에 피해가 가면 가만두지 않겠다 등등.

조니만이 겨우 분을 삭이며 ‘한국인 프리미어 리거’에 초점을 맞춰주었다. “그래. 손흥민이 동양인이기 때문에 더욱 노력해야만 했던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보통 축구 하면 브라질이나 유럽을 떠올리지, 아시아를 생각하지는 않잖아. 일반적으로 동양 선수들이 세계적인 무대에서 뛰기에는 실력이 충분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그래서 손흥민이 더욱 대단한 거야. 처음에 사람들은 그가 ‘컬트 히어로’ 정도가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미 손흥민은 그 이상임을 증명해냈어.”

요지는 손흥민은 진짜라는 거다. 우리나라가 배출한 월드와이드 스타는 유독 국내에서만 ‘세계적’인 경우가 잦지만 손흥민만큼은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이건 민망한 ‘국뽕’이 아니다. 축구에 관심이 있건 없건, 지금 런던에 살고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손흥민의 근황을 듣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BBC 스포츠> 웹페이지가 아니라 지하철, 왓츠앱 채팅방, 펍,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말이다.

런더너가 손흥민을 이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사실 뻔하다. 일단 축구를 매우 잘하고, 이타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선보이며, 영어를 훌륭하게 구사하면서 인터뷰 스킬도 뛰어난 데다 감독, 선수, 프런트 모두와 관계가 좋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서, 다들 하나같이 손흥민은 언제나 ‘맥시멈’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건 실력이나 팬서비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경기에 임하는 태도 자체를 말한다. 지는 게임에서는 대충 플레이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손흥민은 경기가 안 풀리거나 득점 기회가 없는 날도 늘 경기장 곳곳을 누빈다.

역사적으로 영국에서 럭비가 유산 계급의 스포츠라면 축구는 노동자 계급의 스포츠다. 110퍼센트의 노력을 기울이는 손흥민의 모습은 축구 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 계급의 직업 윤리와도 맞닿으며 자연히 어떤 감동을 줄 수밖에 없다는 거다. 때문에 나의 영국인 친구들이 설전 끝에 이 두 가지 표현을 고른 것도 그저 과장은 아닐 것이다. 런더너에게 손흥민이란, ‘게임 체인저’ 그리고 ‘슈퍼 히어로’이다. 글 / 권민지(칼럼니스트)

    에디터
    김영재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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