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마 블레어가 다시 만난 세계 | 지큐 코리아 (GQ Korea)

셀마 블레어가 다시 만난 세계

2019-05-29T14:55:20+00:00 |interview|

갑작스럽게 찾아온 다발성경화증과 함께 블레어의 세계는 흔들렸다.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목표, 새로운 의미를 찾은 셀마 블레어가 다시 만난 세계.

수트, 셔츠, 타이, 모두 셀린 by 에디 슬리먼. 스니커즈, 컨버스. 귀고리, 모두 해리 윈스턴. 지팡이, 애스프레이.

아들 아서 세인트 블레이크와 함께한 블레어의 모습. 블레어의 재킷,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빈티지 진, 리바이스. 스니커즈, 컨버스. 블레이크의 재킷, 발렌티노.

케이프, 발렌티노. 귀고리, 해리 윈스턴.

코트, 톰 포드. 목걸이, 데즈소 by 사라 벨트란.

케이프, 발렌티노. 지팡이, 아스프레이.

헤어 제품, 유나이트 앤드 알 세션 프로 툴스. 메이크업 제품, MAC. 네일 폴리시, 샤넬.

46세의 셀마 블레어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몸으로 MRI 침상 위에 누워 있다. 지난 5년간 블레어는 목 통증, 현기증, 도보 장애, 다리의 감각 이상 등 원인 불명의 증세에 맞서 싸우고 있다. 불안과 우울도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블레어는 갚아야 할 주택 대출금이 있는 싱글맘이다. 지난해 그는 기운을 짜내 침대 밖으로 나와 영화 <애프터>와 넷플릭스 드라마 <어나더 라이프>를 촬영했다.

이 무렵 블레어는 자신의 증상을 우울증, 호르몬 탓, 혹은 ‘여배우의 호들갑’으로 치부하는 의사들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이날 블레어가 병원에서 일정을 시작한 이유도, 유일한 목 통증 해결책인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처음 만난 의사는 당장 MRI를 찍을 것을 종용했다. 결국 블레어는 관 크기만 한 MRI 카메라에 미끄러져 들어갔다. 블레어는 핑크의 노래를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핑크의 ‘Just Give Me a Reason’이 흘러나오면서, 그의 뺨에 눈물이 흘렀다. MRI 스캔은 뇌를 둘러싼 병변 스무 개를 감지했다. 블레어는 중앙신경계의 소통하는 능력이 저하되는 자가면역계 질환인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었다. 이 병은 불치병이다. 진단을 받은 후 블레어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 감정은 오히려 안도감이었다. 온몸을 망가뜨리던 것의 정체를 알았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미래는 두려웠다. 십 분간 눈물을 흘린 후, 블레어는 일을 하러 갔다.

<어나더 라이프>의 제작책임자 노린 핼펀은 말했다. “매니저는 블레어가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고 전해줬어요. 말도 안 되죠. 우린 블레어가 필요했어요.” 블레어는 조지아 주에서 영화 촬영을 마친 후 밴쿠버로 왔다. 핼펀은 말한다. “블레어는 진정한 프로예요. 본인이 밝히기 전까진 아무도 그 병을 몰랐죠.”

지난해 10월 중순, 블레어는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알리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어나더 라이프> 제작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내 병을 드라마틱하게 알릴 의도는 아니었어요. 언론에 보도된 후엔 걱정이 됐죠. 일이 끊기면 어쩌지?” 뒤이어 그의 블랙 유머 감각이 발휘됐다. “내가 당장 죽을 줄 알았는지, 줄줄이 연락이 왔어요.” 다발성경화증 환자 아버지를 둔 에이미 슈머는 자선 행사에 블레어를 초청했고, 그의 이름을 붙인 가방을 만들었던 옛 친구 마크 제이콥스도 연락했다. 크리스 제너는 꽃을 보냈는데, 블레어는 이를 회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내 주택 대출금보다 더 비싼 꽃이었죠.” 하지만 이후 3개월간 건강은 악화됐다.

인터뷰 날, 블레어와 저녁을 먹기 위해 소호의 레스토랑 한 구석에 앉았다. 블레어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몸을 움직이는 모습에서 증세의 심각성이 느껴졌다. 고용량 당질 코르티코이드 요법이 실패한 이후 블레어는 몸을 제어하기 힘들어졌고, 다리를 절어 지팡이에 의지했다. 목소리도 떨렸는데, 블레어는 이를 두고 “<황금 연못>에서의 캐서린 햅번” 같다고 농담했다. 시력도 떨어졌고, “옷 입기는 엄청난 고난”이 됐으며, 팔을 들어 머리카락을 빗질할 수도 없다. 그래서 최근 헤어스타일을 단발로 바꿨다. 엄마의 모습과 목소리가 달라지자 일곱 살 먹은 아들 아서는 블레어 곁에 꼭 붙어 있기 시작했다. “내 몸에 더 붙어 있고 싶어 했어요. 이 몸속에 아직도 엄마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예전엔 둘이서 많은 일을 했는데, 이젠 아이 앞에서 넘어지곤 해요.”

괜찮은 날도 힘든 날도 있다. 블레어의 20년 지기 세라 미셸 겔러가 흥미로운 말을 꺼냈다. “블레어의 내면에는 침착함이 있어요. 이젠 자신이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는 걸, 가끔 할 수 없는 날이 와도 괜찮다는 걸 알아서인 것 같아요. 블레어가 전보다 차분해지고, 행복해지고, 좀 특이한 방식으로 자기 통제력이 커진 듯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멋진 일이에요.” 블레어 본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겸손과 즐거움을 느껴요. 좀 피곤한 즐거움이긴 해도 말이죠.”

인터뷰 다음 날, 블레어는 담당의인 사우드 사디크 박사가 기대를 걸고 있는 정맥주사요법을 시작했다. 사디크는 뉴욕의 티시 다발성경화증 연구소 소장 겸 수석과학자로, 투병 사실을 공개한 블레어의 용기를 강조했다. “내가 담당한 다발성경화증 환자 중엔 의사, 배우, 스포츠계 인사, 성공한 변호사 등도 있어요. 이들은 경력에 누가 될까 봐 투병 사실을 알리려 하지 않죠. 그런데 블레어가 이를 밝히면서 다발성경화증 환자의 모습이 대중의 시야에 들어왔어요.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이 제고되고 연구 자금 지원도 늘어났습니다.”

블레어는 롤러코스터처럼 변화무쌍한 투병기를 계속 SNS에 올리고 있다.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시즌 1에서 인연을 쌓은 카일리 제너는 블레어 계정의 열성 구독자다. “블레어는 자신의 취약점과 공포에 대해 공유하고 있어요.” 제너의 말이다. “블레어는 내게 용기가 뭔지, 어떻게 해야 용감해지는지 보여줬죠. 그 덕분에 내 삶의 방식도 바뀌었어요.”

블레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입을 연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다른 여성들이 병원에서 자신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길 원하는 마음이다. “예전 의사 앞에서는 늘 좋은 표정을 지었어요. 내가 ‘너무너무 힘들어요…, 눈을 못 뜨겠어요’라고 말할 때조차도 잘 지낸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죠.” 블레어의 말이다. “술이나 철없는 행동 때문에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문제를 말할 때조차도 훌륭한 사람이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이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주 정직하게 말해 균형을 바로잡고 싶어요.”

블레어는 낯선 이들이 자신의 솔직함에 공감한다는 데 놀랐다. “다발성경화증이든 뭐든, 투병 중인 사람들이 내 인스타그램에 남긴 댓글을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죠. 아, 대중이 알 만한 인물이 자신에게 생긴 장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필요가 있구나.” 최근 수면에 어려움이 생긴 블레어는 자신의 SNS에 댓글을 단 사람들 상당수에게 응답하고자 노력 중이다. “한 배우가 인스타그램을 두고 이렇게 말했어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위대한 실험이 될 수도 있었지만, 현실은 잘 꾸민 자기애의 전시장이라고.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전 인스타그램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유대계인 블레어는 미시간주 출신으로, 변호사 아버지와 판사 어머니 슬하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밖에서 볼 때는 평범한 상류층 가정이었다. 그러나 유월절 만찬 와인에 취한 것을 계기로 일곱 살부터 술을 마셨다는 블레어의 말에서는 집안 분위기가 우울했다는 암시가 느껴졌다. 왜 그렇게 어릴 때부터 술을 마셨냐는 질문에, 그는 “슬픔에 대한 개인적 사연이 있어요”라고만 답한 후 밝은 화제로 넘어갔다. “멋진 추억도 있어요. 푸에르토리코, 카리브해의 섬 아루로 여행 갔을 때는 정말 좋았죠. 방학 때면 평소와 다른 삶이 시작됐어요. 그때의 환한 기억, 수영장에 지던 햇빛 얼룩의 기억이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에요.” 블레어의 창조적인 면은 크랜브루크 킹스우드 사립학교에 입학한 후 발휘되기 시작했다. “졸업 앨범은 키스 해링이 만들었어요. 연사로는 오노 요코가 왔죠. 그 경험을 통해 세상엔 우리 집과 내 머릿속의 어두운 복도보다 많은 게 있음을 알게 됐어요. 영화와 패션이 그런 역할을 했죠.”
미시간 대학교에서 영문학, 심리학, 사진학을 전공해 마그나 쿰 라우데(준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뉴욕에 간 블레어는 연기 교실에서 에이전트의 눈에 띄었다. 몇 년 후, 블레어는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을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한다. <금발이 너무해>, <피너츠 송> 등 대중적 작품 외에도, 토드 솔론즈의 <스토리텔링>과 <다크호스>에 출연하고, 로리 페티의 자전적 작품 <포커 하우스>에서 제니퍼 로렌스의 어머니 역을 맡는 등 시사점 있는 인디 영화에 출연하며 균형 있는 경력을 쌓았다. 2004년에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헬보이>에서 헬보이의 연인, 초능력자 리즈 셔먼을 연기해 <뉴욕타임스>에서 “굉장히 뛰어나다”는 극찬을 받았으며, <헬보이 2>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당시 블레어는 임상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이후, 몸 상태를 이유로 LA에서 촬영하는 작품으로 출연을 제한했다.

블레어는 지적이고, 무표정하게 웃길 줄 알며, 고상하지만 가끔 솔직한 한마디를 날린다. 대화를 하면서 왜 블레어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캐리 피셔와 친해졌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블레어는 약 15년 전 포시즌스 호텔에서 캐리 피셔와의 우정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당시 피셔는 “우리 친구합시다. 오늘 밤 내 생일 파티에 와요”라고만 말했다. 블레어는 파티에 갔다. 이후 2004년, 블레어가 아메트 재파와 결혼할 때 피셔는 자신의 베벌리힐스 집에서 결혼식을 주최했다. (당시 칼 라거펠트는 블레어에게 두 벌의 드레스를 만들어줬다. 하나는 연분홍색, 다른 하나는 같은 디자인의 검은색 드레스였다. 레드 와인을 쏟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한 것이다.)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피셔와의 우정은 계속됐다. “피셔의 정신은 누구보다도 위대했죠. 모두가 깊은 영향을 받았어요. 전 밤이면 피셔에게 ‘그 태도를 제게도 조금만 나눠주세요’라고 기도해요. 그러면 정말 그렇게 되는 것 같죠.”

가까운 동료로는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특징인 배우 파커 포지도 있다. <피너츠 송>에 함께 출연한 그들은 넷플릭스의 <로스트 인 스페이스>에서 자매로 다시 만났다. 포지는 “우리는 경계인, 외로운 사람들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셀마의 첫인상은 ‘엄청 멋있다’였어요. 뭔가 아는 듯한 쿨한 눈빛의 소유자죠. 그리고 우리 둘 다 ‘본의 아니게 짜증나 보이는 얼굴’이기도 해요. 하하. 알고 보면 셀마는 따뜻하고, 유머 감각이 느껴지는 사람이죠.”

블레어의 자기 평가는 그만큼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그는 자신의 경력에 대해 “내 인생 최고의 연기는 <놀이터에서 입은 끔찍한 상처>라는 연극에서였어요”라고 말했다. 2인극의 휴스턴 공연 당시 블레어는 깊은 사랑을 하고 있지만 자해 경향이 있는 여성 케일린 역을 맡았다. “내가 했던 어떤 연기보다도 어렵고 용기 있는 경험이었어요.” 블레어의 말이다. “휴스턴에는 내게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 있겠죠.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나를 세실 콜드웰로 기억할 거예요.” (콜드웰은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에서 블레어가 맡았던 역이다.) “뭐, 그것도 괜찮아요.” 과거의 블레어는 케일린처럼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달래는 법이 뭔지 전혀 몰랐어요.” 블레어가 말했다. “자꾸 술을 마시게 되죠. 아들이 이혼한 남편 집에 가는 날이면 혼자 술병을 땄어요. 첫째로는 아들이 내 옆에 없다는 고통 때문에, 둘째로는 신체적 고통이 너무 심해서. 난 술을 우아하게 마셔본 적이 없었죠. 술은 내겐 일종의 자가 치유법이었으니까요.”

블레어는 약 3년 전의 한 사건을 계기로 술을 끊었다. 멕시코 칸쿤발 LA행 비행기에서, 행동학적 부작용이 있는 암비엔을 아티반으로 착각해 먹었던 것이 계기였다. 블레어는 비행기 안에서 정신적 마비에 빠졌다. 타블로이드지에 따르면 그는 비명을 질렀고, 착륙 후 들것에 실려 나갔다. 기내 음주는 아니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래도 언론에 굴욕을 당한 후 블레어는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관점이 바뀌었어요. 예전에 내가 술과 관련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들과 이야기하는 계기도 됐죠.”

블레어는 “최근 몇 년간 나를 바꿔놓은 경험이 몇 번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2년 전, 제임스 토백 감독에게 젊은 시절 성폭력 피해를 입었음을 밝힌 것도 그중 하나다.(당시 토백은 혐의를 부인했다.) “그 수치심에서 해방됐다는 것 자체가 엄청났어요.” 이 고백으로 인해 블레어는 할리우드의 ‘침묵을 깬 사람들’ 중 하나로 2017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 후보에 올랐다. “또 하나가 다발성경화증 진단이죠. 의사는 ‘앞으로 인생이 영원히 달라질 것’이라고 했죠.

3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블레어는 자신의 병에 대해 오직 딱 한 가지의 불만을 토로했다.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입을 만한 멋진 옷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사소하게 들릴진 몰라도, 옷을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삼아온 블레어에게는 이것은 정체성의 문제다. 타고난 패션 감각의 소유자인 블레어는 스텔라 매카트니와 마크 제이콥스 등의 뮤즈로 일했고, 칼 라거펠트는 그를 샤넬 모델로 발탁해 직접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현재의 블레어는 다발성경화증에 적합한 기능성과 자신의 스타일을 조화하느라 애를 먹으면서 해결책을 꿈꾸고 있다. “크리스천 시리아노 같은 사람과 협업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어요. 맞춤형 의류를 입어야 하는 사람뿐 아니라, 편한 옷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잘 맞는, 그러면서도 시크한 옷. 스타일을 꼭 희생하지 않고도요. 말하자면 허리 고무줄을 더 멋지게 만들어보자, 그런 뜻이죠.”

지팡이 문제도 있다. “멋있으면서도 못생긴, ‘1980년 마이애미’스러운 아크릴 지팡이를 샀어요.” 블레어가 말했다. 지팡이는 “딱 맞으면서 멋있어야 한다”는 게 블레어의 생각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많은 사람이 지팡이가 부끄럽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길을 비켜주는 존재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남고 싶어요. 지팡이도 멋진 패션 액세서리가 될 수 있죠.”

블레어는 앞으로도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할 것이다. “난 비극 속 인물이 아니니까요. 난 행복해요. 누군가가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게 편안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내 인생 최대의 성취가 될 거예요.” 물론, 블레어는 연기도 계속할 생각이다. “진단을 받기 전에도 내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나 야심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블레어가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그래요. 너무 늦었을진 몰라도, 이제 내게는 확신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