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의 자기관리는 '멍 때리기' | 지큐 코리아 (GQ Korea)

요즘 시대의 자기관리는 ‘멍 때리기’

2019-05-29T11:54:58+00:00 |culture|

오늘 하루 중 적어도 5분이나 10분 동안이라도 생산적인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난 순간이 있었나? 멍 때리기의 효용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How to Do Nothing)>의 저자인 제니 오델에게 물었다.

제니 오델의 신간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하지만 제목 때문에 종종 오해를 받는다. “나는 원래부터 특히 디지털 디톡스 같은 자기계발서에는 아예 관심이 없지만, 시중에 수없이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출간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게 느낀다.” 그녀의 말에 동감하는 바이다. 오늘날의 시대에서 사람들은 두려움과 걱정이 많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자신을 치료해줄 수 있는 책들을 갈망하고 있다. 오델은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는 방법을 파헤치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대신 그녀는 사람들이 겪는 실존적인 공포의 원인을 파헤치는데 중점을 둔다. 그녀는 현대인의 불안감을 유발하는 두 가지 요소를 발견했다. 바로 소셜 미디어와 생산성의 숭배이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의 주의를 빼앗아 버리고, 병적인 과잉 흥분과 관심을 유발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환경을 붕괴시키고 있다. 생산성은 주어진 시간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적으로’ 이뤄내야 하는 것을 의미하며, 사람들에게 늘 어떤 목표나 일 지향적인 마인드를 요구한다. 하지만, 오델의 책은 소셜 미디어와 생산성이 사회 속으로 어떻게 침투해 나가는지 파헤치려는 시도를 한다. 제목처럼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책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란 생산성이나 쓸모에 의해 계산되는 사회적인 가치 속에서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의미한다.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에 대해 정의해달라.
두 가지 방법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말 그대로 소셜 미디어 어플의 설계대로 당신의 주의를 끄는 것으로 돌아가는 경제를 말한다. 새로운 루머나 소식에 대한 주기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짧아서, 그러한 소식에 대한 감정이 5분 만에 변한다. 또 하나는, 매일 자신의 감정을 온라인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곳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렇게 모호하고 불투명한 것들이 소셜 미디어의 설계에 의해 계속 탄생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셜 미디어 속에서 우리는 “반작용적으로 죄책감이나 위협 혹은 심리적으로 조종 받는다고”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덫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얼마나 높은 자기인식 정도가 필요한 걸까? 그리고 소셜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가져야 할까?
이상적으로는 주의를 빼앗는 요소들이 개인의 책임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우리의 주의를 잡아먹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설계된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 어떻게 하면 그러한 것들과의 관계를 조절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주의를 빼앗기는 것이 우리의 책임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요소들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 뿐이다.

책에서 주로 ‘깊게 주의 집중’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법들이 당신의 일상을 어떻게 바꿨나?
‘생각 기차의 길이’가 나에게는 흥미로운 측정도구이다. 책상에 앉아서 이메일을 보거나 비슷한 작업을 할 때 생각 기차의 길이는 꽤 짧다고 느낀다. 다른 행동을 하면 이 길이는 또 달라진다. 나는 자주, 길게 산책을 한다. 시간이 없을 때에도 일을 미루고 산책을 나간다. 산책을 나갔던 어느 날,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때와 핸드폰을 보고 있을 때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걸음의 속도와 연속성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은 늘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행동에 반응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이 동네에 있다. 지금 나는 이 동네에 있다. 지금 나는 언덕을 오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몸을 돌린다. 이제 나는 도시를 볼 수 있다.” 내가 하고 있는 행위로부터 생각이 연속성을 띄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책에서도 인용한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영원히 지속되는 주의와 관심 따위는 없다. 단지 계속해서 생기고 없어지고 생기고 없어질 뿐이다.” 어떤 조건이나 환경 속에서는 훨씬 더 쉽게 주의에 이끌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 수많은 일상의 상황에서 지속적인 주의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쉽게 생각해서 지금 스마트폰을 본다고 생각해보자. 한 가지에만 주의를 갖는 것이 가능할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당신은 다른 할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때로는 산책을 간다고 말했다. 그 부분이 흥미롭다. 일보다 산책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일가? 비록 일이 산책보다 ‘유용’하거나 ‘생산적’인 행위일지라도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덜 생산적인 행위는 녹초가 되는 것이다. 만약 생산성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면, 아마도 집 밖으로 나가거나 누군가를 만나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것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사이에 존재한다. 사람들은 모두 시간을 보는 관점이나 시간과 돈의 비례 관계에 있어서 각기 다른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쓸모 있음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쓸모없음이라는 작은 생각에 반대한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쓸모없음의 척도에 사로잡혀 있고, 모든 행위가 얼마나 유용한지에 따지며 사는 사람이라면, 나는 당신에게 산책을 하는 행위도 쓸모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보라는 제안을 하고 싶다. 생산적인 행위란 유형적이거나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잠을 예로 들어보자. 특히 요즘 들어 잠의 유용성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잠에는 수수께끼적인 요소가 너무 많다. 우리는 실제로 잠자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알고 있지는 않다. 단지 잠이 필요하다 정도만 알고 있다. 잠은 명백한 생산성의 영역 안에 존재한다. 나는 잠을 가치로 환산하고, 잠이 우리가 계획하고 설계하는 것들과 깊은 연관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어떤 모델로 설정한다면 정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질문하며 하루를 평가하곤 한다. “오늘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뤄냈지? 혹은 “해야 할 일의 리스트 중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끝마쳤지?” 하루를 평가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 당신은 보통 어떤 식으로 하루를 평가하나?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렇다. 오늘 하루 중에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었던 순간이 있었을까? 적어도 5분이나 10분 정도 동안이라도 생산적인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많은 시간은 단지 무엇인가를 주의 깊게 관찰하기 위해 사용된다. 만약 무언가를 관찰하는 시간을 빼앗긴다면, 자신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 사실을 아주 깊게 인지한다면 이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그래, 매일이 똑같이 반복되는 게 아니야. 오늘은 오늘이야. 오늘은 내가 살아가는 수많은 날들 중 하루야.”

당신이 말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생산해야 한다는 아이디어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특정 시간을 사용할 때, 그 시간 동안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들은 휴가를 떠나도 마치 일터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게 느껴진다. 본질적으로 무언가를 생산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자면, 새 관찰하기가 바로 내가 흔히 말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중 하나이다. 분명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이미 거기에 존재하는 새를 그저 관찰하는 하는 것이 전부이다. 대다수 사람의 관점에서 그 행위는 아주 생산적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시간은 가장 보상받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매일 해나가는 일들, 우리는 그것을 “무언가를 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시간을 돈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정당한 보상으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세라 메이틀런드이 쓴 <침묵의 책(A Book of Silence)>에서, 침묵은 비어있는 것일수도 있지만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당신이 말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같은 방식으로의 해석한다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비유가 아주 마음에 든다.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덜 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은 스마트폰을 다른 것과 대체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를 고민할 뿐이다. 중독 치유 프로그램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방식으로는 어렵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들의 예를 들어보자. 함께 술 마시는 친구들을 다른 그룹으로 대체하고 술 외의 삶의 의미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통해 그들을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단순하게 “술을 끊으세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덜 보세요!”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책의 첫 번째 파트에서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한 번에 하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는 주의를 덜 가지려 노력하고, 다른 무언가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조언한다. 누구나 삶의 의미가 필요하다. 요즘 사람들이 ‘디지털 디톡스 책’ 카테고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디지털 중독으로부터 어떤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