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선 서현의 자유와 열망 | 지큐 코리아 (GQ Korea)

홀로 선 서현의 자유와 열망

2019-06-03T14:44:16+00:00 |interview|

서현은 자유롭다. 어쩌면 당신이 알아온 것과는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는 또렷한 목소리로 자유로움과 강함, 그리고 열망에 대해 말했다.

더블 브레스티드 자카드 코트, 커트 아웃 화이트 셔츠, 옐로 컬러 스커트, 모두 프라다.

블랙 프린지 톱, 질 샌더. 웨이스트 스터드 장식 쇼츠, 알렉산더 왕.

체크 패턴의 오간자 드레스, 사카이. 화이트 메쉬 앵클힐, 지미추.

프론트 레더 디테일 니트, 블랙 레더 버뮤다 쇼츠, 브라운 스트랩 샌들, 모두 보테가베네타.

싱글 블레이저, 블랙 스트레이트 트라우저, 슈즈, 모두 알렉산더 맥퀸.

게더 장식 레드 재킷은 2 몽클레르 1952.

컬러 블록 시퀸 드레스, 마이클 코어스.

컬러 블록 시퀸 드레스, 마이클 코어스.

배우 소속사에 들어간 후 첫 인터뷰네요. 설레네요. 그동안 저 혼자 해나가면서 직접 부딪히고, 피부로 체감한 게 많았어요. 여러 생각을 하던 차에 나무엑터스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좋은 곳이잖아요. 배우 분들이 한번 들어오시면 안 나가고 오래 계시는. 하하. 연기를 더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 들어왔어요.

SM을 떠나온 이야기부터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서현이 초등학생 때부터 몸담아 온 소속사를 나왔을 때, 꽤 놀랐어요. 소녀시대에서 가장 재계약할 것 같던 멤버 중 하나였거든요. 다들 그렇게 말했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항상 옳은 선택을 해왔던 건 어쩌면 회사 덕이 아니었을까? 이미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회사에서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전부 알려줬기 때문에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던 건 아니었을까? 이젠 스스로 그런 걸 깨우치고 싶다, 혼자 해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실 안에 있을 땐 스스로 그 안에 있다는 걸 인지하기란 쉽지 않은데, 그런 생각을 했군요. 사소한 선택이라도 저 스스로 고민하고, 자발적으로 뭔가를 해내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거든요. 나와 봐야, 부딪혀봐야만 알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소녀시대 막내이자 바른 생활 소녀 이미지에 가려서, 많은 이들이 이런 모습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네요. 그 모습도 제 모습 중 하나죠. 하지만 어떤 분들은 아직도 십 년 전의 제 모습만 기억하시는 것 같아요. 저를 만나지 않은 분들이 서현은 어떻다고 단정 짓는 것 때문에 답답하기도 했어요. 직접 만나면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다르네요?”라고 하는 분이 많았죠.

사람들은 서현이 어떨 줄 알았다고 해요? 되게 조용하고 소극적이고 순진한 느낌으로요. 데뷔한 지 13년 차고, <우리 결혼했어요>가 벌써 9년 전이예요. 사람은 변하잖아요? 변하는 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지금의 제겐 더 다양한 모습이 있어요.

그 새로운 모습을 얼른 보여주고 싶나요? 그럼요. 하지만 조급해하진 않을 거예요. 첫 솔로앨범 <Don’t Say No>를 냈을 때, 회사에선 기존의 막내 이미지를 보여주자고 했지만, 제가 원하는 콘셉트로 밀고 나갔어요. 제 나이대 여자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처음으로 누군가의 말을 듣기보단 제가 하고 싶은 걸 했기 때문에 너무 즐거웠죠. 이젠, 연기로 보여드리려고요. 알고 보면 서현이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요.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건요? 일 중독자인 것. 일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최선의 최선을 뽑아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녹음실 들어가면 “한 번만 더 해볼게요”라는 말을 몇 시간이고 하면서 대여섯 시간 씩 안 나와요. 지금이 데뷔 후 가장 길게 쉬고 있는 건데, 너무 일하고 싶네요. 하하.

지난 12년을 돌아보면 서현은 열심히 일했고, 열애설이나 구설수 한번 없었죠. 데뷔 전에는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잘못하면 알려주고, 공부하기 싫어도 학원에 보내고, 잡아주는 어른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데뷔하니, 모든 게 제 자신에게 달린 거예요.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내가 어제 뭘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고, 이렇게 살다간 십 년 뒤엔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았죠.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생각했고 규칙들을 만들었죠. 하루에 책을 5분이라도 읽자. 술을 마시지 말자. 인스턴트를 지양하자 같은. 피곤하니까 그냥 자고, 배고프니까 그냥 먹는다고 해요. 그게 쌓이면 내가 되는 거잖아요.

심지어 아파서 일정을 펑크 낸 적 한번 없다면서요? 일주일에 한두 시간밖에 못 잘 때도 버텼죠. 사람들은 “넌 타고나게 건강하잖아”라고 하는데 아니에요. 힘든데, 힘들다고 하면 더 나약해지니까 버틴 거죠. 살짝 툭 치면 바로 일어날 정도로 긴장을 유지했고, 시간은 꼭 지켰어요. 일이 끝나면 몰아서 아프곤 했죠.

단련하듯 살았군요. 사람들은 애늙은이라고들 했지만, 오히려 제가 어리니까 그런 거예요. 어리니까 유혹에 빠지기 쉬웠고, 내가 나 자신을 지켜야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 눈엔 답답해 보였을 거예요. 인스턴트 먹으면 “언니, 그거 먹으면 죽어요” 그랬으니까. 하하.

과거에 서현이 아이돌 출신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누군가는 “아이돌이 뭘 할 수 있겠어”라고 했겠지만, 작년에 남측 예술단의 진행자로 평양에 갔죠. 할 수 있는 영역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해내보인 셈이에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죠. 나의 뭘 보고 국가에서 그런 큰일을 맡겨줬을까 싶었고요. 어릴 때, 한국인으로 태어났으니 나라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의미 있는 일을요. 앞으로도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돕고 싶어요.

그때 부른 ‘푸른 버드나무’가 꼭 서현 같았어요. “모진 바람 네 손목 비틀 적에, 한 번도 네 마음 꺾지를 못 하였네.” 좀, 외유내강강강인가 봐요. 하하하.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전쟁 같은 삶이었거든요. 언젠가, 무너질 수도 있었던 순간에 무너지지 않았던 적이 있어요. 그 힘은 열심히 살아온 날들에서 왔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떻게 그렇게 꼿꼿한 폼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어릴 때부터 전 항상 ‘나는 소녀시대 막내야. 여기에 먹칠하면 안 돼’라고 생각했어요. 흔들릴 때도 ‘난 이런 사람이니까 이걸 지켜야 해’라고 생각했으니까.

언제부터 그 힘을 조금씩 빼게 됐나요? 규칙들로 얽어매지 않아도, 나 스스로 알아서 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다음부터. 내게 어떤 길이 좋은 것이고 옳은 것인지 기준이 생겼고, 내가 그걸 지킬 힘이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어깨의 힘을 좀 풀었어요.

그럼 지금은 안 지키는 규칙이 있나요? 제가 누군가에게 실수를 하거나 추태를 부리는 게 너무너무 끔찍해서 술은 절대로 마시지 말자는 주의였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 줄 정도로 마시는 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마셔봤는데, 제가 주사가 없더라고요. 실수를 안 하는 걸 알았으니, 이제 그 규칙은 없앴어요. 하하.

술을 제일 많이 마셔본 건 언제예요? <시간> 종영 회식 때요. ‘그래, 내가 주인공이니까 끝까지 남아서 마신다’는 각오로, 거의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셨죠. 양주 반, 맥주 반을 섞은 폭탄주 세 잔을 원샷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마셨는데, 집에 와서도 회식 자리인 줄 알고 어머니가 “씻어야지”라고 하면 제가 “어, 손대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갈게요” 이랬대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술의 고통을. 막상 술을 마시면 절제를 못하면 어떡하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어요. 마시고 더 싫어졌어요. 하하하.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요? 즉각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뭔갈 해요. 펀치 머신을 친다든지, 사격을 한다든지, 몸을 써야 풀리는 것들이 있어요. 그리고 속도를 되게 즐겨요. 혼자 운전하는 거 너무 좋아요. 새벽에 사람 없을 때,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요. 소녀시대 노래를 들으면 더 신나요. 새벽엔 ‘카르마 버터플라이’를 듣고, 햇빛 좋은 낮엔 ‘다시 만난 세계’를 듣죠. 갑자기 멤버들한테 전화하기도 하고.

어떤 차를 타는지 궁금해요. 오픈카요. 저는 할머니 돼서도 오픈카 탈 거예요.

오픈카를 타는 할머니 서현, 멋진데요? 하하. 전 나이 들어서도 낭만을 즐기고 싶어요. 나이 들었다고 뽀글뽀글 파마해야 하고, 짧은 옷 입으면 안 되고, 그런 건 싫어요. 누가 뭐라 해도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어요. 오픈카도 맨날 열고 다녀요. 알아보면 어때요? 상관없어요. 내 기분이 좋은데, 굳이 남들 시선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이제 저도 점점 제 자신에게 귀 기울이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서현에 대해 더 알게 됐나요? 네. 예전엔 제가 책 읽는 것만 좋아하는 정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태티서 때부터 느낀 건데, 가수 서현으로 무대에 설 때도 정말 즐기는 게 보여요. 무대 위에선 스위치가 탁 켜져요. 몸살에 걸려서 리허설 내내 힘들어도, 관객들이 들어오면 갑자기 어디가 아팠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무대에서 내려왔는데 피가 나도, 언제 다친 건지 몰라요. 사실 제가 힐을 신으면 잘 못 걷거든요. 근데 무대에 올라가면 춤은 막 추게 돼요. 끝내고 내려오면 어기적어기적 걷죠. 하하하.

연기 욕심에도 불이 붙은 것 같아요. <시간>에서 신민석에게 맞서며 눈물을 뚝뚝 떨구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얼굴이 참 좋더라고요. 아, 그땐 진짜 열 받았어요. 하하. 전 연기할 때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어요. 아직 노련한 연기자가 아니라 많이 노력하죠. 캐릭터 전사에 대해 백 개씩 상상해서 적어놓곤 해요.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역할 놀이를 좋아했어요. 초등학생 때 <여인천하>에 빠져서 한복 입고 정난정을 따라 했죠. 하하. 그래서 성우 활동도 즐겼고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이에요. 단역이라도 좋으니 다양하게 도전해보고 싶어요.

좋아하는 배우 있어요? 전도연, 김혜수 선배를 존경해요.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대부분 남자 주인공 위주잖아요. 그런데 두 선배님은 스크린에서 그 이상의 힘을 보여주시곤 하죠. 저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현재의 서현을 가장 잘 표현하는 건 어떤 말일까요? 진취적인, 도전하는. 예전의 제가 절제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자유로워요. 엄밀히 말하면, 과거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예해왔어요. 지금은 멀리 있는 인생만 보지 말고, 순간순간이 즐거워야 그게 모여서 행복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일이요. 하하하. 이건 어쩔 수 없네요. 연기하고 싶어요. 지금 회사에 들어오고 첫 작품이라 첫 단추를 잘 꿰어보려 해요.

“최후의 승자는 선한 사람이다”라는 신념은 여전한가요?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바보같이 당하고만 사는 거 아니냐고 해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고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더 믿어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에게 떳떳한 거라고 생각해요. 당장 내일 죽어도, 스스로 떳떳하게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설령 내가 잘 되지 않는다 해도, 요행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멋진 거 아닐까요? 선하다는 건 결국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서현이 다시 만난 건 어떤 세계인가요? 나라는 새로운 세계요. 아무리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해도, 살아갈수록 그게 아니더라고요. 인간 서주현도, 배우이자 가수인 서현도 두루두루 챙기면서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요. 이젠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