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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

2019.06.16GQ

김윤석은 연출작 <미성년>으로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고, 하정우는 두 편의 연출작에 이어 제작자로 자리매김했으며, 유준상과 정진영의 연출작도 곧 공개될 예정이다. 산업 관계자들은 배우이자 감독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동안 몸이 근질근질해서 어떻게 참았을까. 최근 배우가 만든 영화 두 편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나는 김윤석이 연출한 영화 <미성년>이다. 비중이 작은 인물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을 만큼 섬세했다. 또 하나는 배우 정진영이 처음 연출한 영화 <클로즈 투 유>(출연 조진웅, 배수빈, 차수연 등)다. 운 좋게 공개되지 않은 이 영화를 미리 볼 수 있었는데, 아직 자세한 얘기를 할 순 없지만 서사가 이제껏 보지 못한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영화였다. 두 영화를 보니 오랫동안 연기를 하면서 메가폰을 쥐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달랬을까 싶은 궁금증이 솟았다.

최근 충무로에서 연출에 도전한 배우는 이들만이 아니다. 배우 하정우는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와 <허삼관> 두 편을 연달아 만들었다. 최근에는 강명찬 퍼펙트스톰필름 대표와 손잡고 <싱글라이더>, , <클로젯> 등을 제작해 제작자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는 연기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아이템을 찾아 기획·개발하고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를 쓴다.

아직 감독으로 데뷔하지 않았지만, 마동석은 기획자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 감독, 프로듀서, 웹툰 작가, 매니지먼트사 관계자 등 총 스무 명이 넘는 플레이어로 구성된 자신의 창작 집단 ‘팀 고릴라’를 이끌며 영화화 가능성을 가진 아이템을 발굴해 개발하고, 적합한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을 찾아내 매칭한 뒤 자신이 직접 출연해 투자를 받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유준상과 차인표는 각각 연출한 <아직 안 끝났어>와 <옹알스>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아직 안 끝났어>는 형식도 음악도 독특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일찌감치 유지태는 <마이 라띠마> 등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문소리는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옴니버스 프로젝트를 내놓은 바 있다. 또 배우 조은지는 장편 데뷔작인 <입술은 안돼요>(출연 류승룡, 오나라, 김희원, 이유영) 캐스팅을 확정 짓고 6월 촬영을 앞두고 있다.

“배우가 무슨 영화를 만들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충무로 안팎에서 폄하하는 시선도 많았지만, 감독이 된 배우가 대거 나오는 요즘엔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할리우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조지 클루니, 브래들리 쿠퍼, 조나 힐 등 연출, 제작을 하는 배우는 비일비재하다. 감독은 아니지만, 플랜B를 이끄는 배우 브래드 피트 또한 각본과 감독을 발굴해 좋은 작품을 내놓는 데 발군인 프로듀서로 웬만한 감독이나 제작자보다 감식안이 좋다.

배우들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뭘까? 일단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꾼 경우가 많다. 마동석은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기획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단역 시절에는 감독이나 프로듀서에게 자신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낼 수 없었고, 미국에서 살다 온 까닭에 충무로에 인맥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위치가 되면 영화화할 것을 다짐하며 메모해둔 아이디어를 배우로서 성공한 지금 하나둘씩 끄집어내고 있다.

유지태 또한 영화가 오랜 꿈이었다. 그는 “첫 출연작 <바이 준> 때부터 현장에 장비를 가지고 다니면서 단편영화를 찍었다. 좋은 연기자와 좋은 감독, 이 두 가지를 병행하고 싶었다”며 “내겐 왜 영화를 만드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사람들은 그저 ‘영화 한 편 만들었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회에 공헌하고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문제의식이 없다면 영화 만드는 게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김윤석은 연극하던 시절 희곡을 쓰고 무대에 올리기까지 작업 전체를 연출하는 과정이 익숙한 배우다. “언젠가는 연출을 하려고 했다. 그때는 배우의 연기력과 드라마로 온전히 채워지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다”는 게 그의 회상이다.

오랫동안 해온 연기가 매너리즘을 맞닥뜨렸을 때 연출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경우도 있다. 하정우는 “언젠가부터 감독의 지시와 방향성에 백 퍼센트 동의하지 못하면서도, 현장의 흐름과 스태프들의 기대에 따라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경질까지 내고 한없이 예민해져 있었다”며 “쉬어야 하나? 단기 어학연수라도 다녀와야 하나? 여행을 떠나야 하나?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직접 연출을 해봐야겠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느닷없지만 뜬금없는 생각은 아니었고, 언젠가는 연출을 해보리라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 시기가 빨리 찾아왔다”고 했다.

문소리는 그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계기로 연출에 발을 들였다. 문소리는 “감독이 되기 위해 연출을 시작한 게 아니라,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단편 세 편을 만들었다”며 “연출을 공부한 것은 영화와 연기에 대한 애정을 더 높이기 위해서였다. 평생 할 영화에 대한 애정도를 높이는 일의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우마다 이유나 계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이 메가폰을 쥐게 된 욕망은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가졌던 꿈이거나 연기를 오랫동안 하기 위한 본능에서 기인한다. 이스트우드가 거울에 비친 주름을 보고 불현듯이 카메라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해 감독이 된 뒤로, 매 작품 걸작만 내놓은 것처럼 말이다.

배우 마음은 배우가 가장 잘 안다고, 배우 출신 감독은 단연 연기 연출에 일가견이 있다. 영화에서 연기가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할 때 배우를 잘 이해하고, 좋은 연기를 잘 끄집어내는 능력만큼 큰 자산도 없다. 현장에서 제작진이 주연 배우를 신주 모시듯 하는 것도 배우가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다. <허삼관>을 찍을 때 감독 하정우는 하지원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몰입에 도움되는 음악을 자주 틀었고, 좋아하는 과자와 쉬는 차까지 마련해준 데다, 심지어 요리까지 해준 걸로 유명하다. 하지원이 “전작을 통틀어 요리까지 해주는 감독님은 처음”이라고 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 배우 출신 감독들은 인물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대체로 잘 안다. <미성년>에서 영주가 남편과 바람을 피우는 미희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들어갈 때, 카메라는 신발을 벗고 식당 마루 위로 올라가는 영주의 발을 클로즈업 숏으로 강조한다. 다음 장면에서 영주가 신은 스타킹의 올이 나간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면서 ‘적’을 만나기도 전에 이래저래 불편한 마음이 대사 하나 없이 전달된다. 대원이 몰래 미희가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가 자신의 딸 주리와 미희의 딸 윤아를 마주치자 도망가는 추격 신은 고개 숙인 남자 대원의 심리를 구석으로 몰아넣는다는 점에서 ‘웃프’다. 대원이 방파제에서 혼쭐나는 장면도 짧지만 강렬한 명장면으로, 김윤석이라는 연기 선수가 아니었다면 절대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배우 출신 감독들이 속속 나오는 가운데 영화 산업의 플레이어들은 이들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한 제작자는 “연출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더욱 풍성해지는 분야라 배우가 연출을 하는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연출과 주연을 겸하는 건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감독은 활자로 적힌 장면을 영상으로 옮기는 사람이지 않나.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는다는 건, 직접 연기를 하면서 자신의 연기와 다른 배우의 연기를 보고, 동시에 전체적인 흐름도 확인하는 걸 뜻한다. 그런데 연출과 주연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 둘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미루어 짐작해보면, 하정우가 나오지 않는 <롤러코스터>는 감독 하정우의 색깔이 잘 보이는 반면, 하정우가 주연까지 맡은 <허삼관>은 그의 개성이 잘 보이지 않는 차이랄까. 그건 김윤석이 <미성년>에서 비중이 크지 않는 대원을 맡아 뒤로 빠지기로 한 결정이 영리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 창투사의 투자심사역 또한 “배우가 연출에 도전하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예산 운용에 대한 고민이 좀 더 요구된다”고 전했다. 그는 “<미성년>을 예로 들면 만듦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지만 예산으로 봤을 때 그만한 제작비(순제작비 27억원)가 들어갈 영화였나 싶다”며, “배우 출신 감독들이 전업이냐, 아니냐보다 본인이 만들려고 하는 이야기가 상업영화인지, 아니면 예술영화인지 그 기준을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의 돈으로 영화를 만드는 만큼 그만한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건 배우도 예외는 아니다. 글 / 김성훈(<씨네21> 기자)

    에디터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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