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소설가 손보미의 여름 이야기

2019.06.19GQ

여름이 오기 전, 네 명의 사진가와 네 명의 소설가가 이야기를 보내왔다.

돌려줘

그는 자신이 억세게 운이 좋은 사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랬다. 그를 아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그에게 말했다. 오늘 나를 만나러 올 거지? 아니, 그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버리면 여자들은 좋아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여자들은 그를 사랑했고, 남자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맞아, 그랬었지. 그는 생각했다. 겨울밤,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는 쓰레기봉투와 악취로 가득한 도시의 뒷골목에 주저앉아 있었다. 모두가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었다. 빗물이 그의 복부에서 흥건히 쏟아지는 피와 섞여들었다. 그는 자신을 찌른 남자를 떠올렸다. 그는 그렇게 체구가 왜소한 남자에게 자신을 공격할 틈을 주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 남자가 나에게 뭐라고 했더라? 그는 그 작은 남자가 자신을 찌를 때 했던 말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하다가는 넌 언젠가 길에서 죽고 말 거다.” 케이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지난 십 년 동안 그는 이 도시의 실질적인 주인이나 마찬가지인 케이를 위해 온갖 일들을 해냈다. 그가 누군가를 두렵게 하는 결정적 이유가 있다면,그가, 그게 무엇이든 간에 언제나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별자리가 천칭자리라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아니, 딱 한 명에게만. 그 여자, 그는 그 여자의 이름조차 몰랐다. 그 여자를 만난 건, 4년 전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 여자는 그를 럭키 가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르면 행운이 당신을 지켜줄 것 같지 않아요?” 그는 그 여자에게 자신이 천칭자리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주고받는 것의 균형을 맞추는 데 집착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었다. 이를테면 언젠가 겨울,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조직의 애송이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은 다른 도시의 애송이를 찾아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넣은 적이 있다고. 그는 그 남자의 머리통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피가 새하얀 눈 위로 스며드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언젠가 봄이 시작될 무렵에는 케이를 공격한 다른 조직의 조직원을 숲 속으로 데리고 가서 팔과 다리를 부러뜨리고 주먹으로 얼굴을, 죽기 직전까지 가격했었다. 남자가 계속 몸부림을 쳤기 때문에 숲 속에 있던 온갖 봄의 꽃잎이 땅 위로 떨어져 내렸다. 언젠가 여름에는 자신을 배신한 조직원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조직원은 여름의 바다에서 휴양 중이었다. 그는 조직원을 에메랄드처럼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곳에 위치한 벼랑 끝에 열 시간 넘게 매달아두었다. 다시 갔을 때 밧줄에 매달린 건 살아 있는 남자가 아닌 죽은 남자의 축 늘어진 몸뚱이였다.

그 말을 다 들은 후 그 여자는 말했다. “오, 불쌍하기도 해라.” 그 여자는 그해 여름이 끝날 때 죽었다. 올해 가을에, 그러니까 몇 달 전에 그는 그 여자를 죽인 암살자를 비로소 찾아냈다. 그는 암살자의 팔과 다리와 목을 나이프로 깊어서 고통스러운 상처를 만들어준 후 공터로 데리고 갔다.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생매장 할 생각이었다. 암살자는 그에게 살려달라고, 자신이 왜 그 여자를 죽여야 했는지에 대해 털어놓았다. “케이가 시킨 거라고!” 그는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암살자의 머리 위로 흙을 뿌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 여자 이름도 몰랐어, 내 말 알겠어?”

그는 생매장을 끝내고 땅을 평평하게 만든 후 그 위에 마른 낙엽들을 뿌려놓았다. 그는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여전히 여자들에게는 사랑을, 남자들에게는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 것이었다. 케이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 달라졌다. 그건 뭐였을까?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그를 서서히 흩트려놓은 것. 그토록 왜소한 남자가 자신의 복부를 정확하게 찌를 수 있도록 자신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놓은 것. 어느 날 그는 문득 깨달았다. 그 여자가 불쌍하다고 말한 대상은, 자신에게 잔인한 방식으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걸.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얕은 숨을 쉴 때마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죽음의 냄새가 진동한다고 생각했다.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신음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지만 몸이 덜덜 떨려서 어쩔 수 없이 신음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빗물에 흐려진 피의 빛깔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그 여자의 입술을 떠올렸다.

오, 불쌍하기도 해라.
그는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그 여자가 서 있었다. 붉은색 슬링백 구두와 하얀색 면 원피스를 입고서. 여자의 검고 긴 머리카락은 비에 젖어서 얼굴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전혀 추워 보이지는 않았다.

이봐요, 내가 당신을 살려주려고 왔어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그녀가 그의 말을 막았다.
쉬, 내 말 들어봐요. 당신이 살아온 하나의 계절과 당신의 목숨을 교환할 수
있다면 어떤 계절을 줄 수 있어요?
왜 계절이어야 하는 거요? 난 가진 게 아주 많은데.
뭘 가졌죠?
돈.
돈은 필요 없어요.
그럼 뭐가 필요한가요?
당신의 계절요. 당신의 한 계절의 기억.
미쳤군, 이건 꿈이 분명해, 그렇지 않소?

하지만 그는 꿈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얼음장 같은 빗물이 입 안으로 들이쳤다.

맞아요, 이건 꿈이에요. 깨고 싶어요? 럭키 가이? 하지만 당신에게 손해가 가는 일은 아닐 거예요. 당신이 버리고 싶은 계절의 기억은 아주 많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당신에게 도착한 행운이나 마찬가지예요. 진짜 행운 말이에요.
어째서 그렇소?
당신은 그저 당신이 가진 끔찍한 계절의 기억 중 하나만 내게 주고, 그리고 계속 살아가면 되니까요.

그는 자신의 계절들을 떠올렸다. 어떤 계절이든, 거기에는 언제나 피와 비명과 폭력이 깃들어 있었다. 단 하나의 계절을 제외하고는. 그가 입을 열려 하자 여자가 다급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제발요.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어요. 당신이 그 계절의 기억을 내게 줄 수 없다면 당신의 행운은 끝이 나는 거예요.
그는 망설였지만 그건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초여름. 4년 전 여름의 시작이었던 나날들.
여자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걸 주고 싶어요? 확실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죠?
여자는 슬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체념하듯이 입을 열었다.

눈을 감아봐요.

그는 여자가 시키는 대로 했다. 눈을 감은 그는 자신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고, 춥지 않으며, 비와 피에 젖어 질척거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바싹 마른 대기는 기분 좋을 만큼의 따듯한 온도를 품고 있었다.

자, 이제 눈을 떠요.

그는 자신이 4년 전 여름, 그녀를 찾아갔던 맨션의 베란다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가 막 저무는 시간, 초여름의 저녁이었다. 그때 그는 거기에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붉은 슬링백을 신고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어디쯤에서 나타날지 궁금해하며 건물 밖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온갖 초여름의 집약체가 그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눈을 얼얼하게 만드는 녹음, 장미의 어지러운 향기, 청포도 나무의 싱그러움, 리넨의 촉감, 차가운 푸른색 바다…가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밀려오고 있었다. 그는 그게 꿈도 아니고, 신의 장난이나 악마와의 거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찌른 작은 남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돌려줘. 작은 남자는 무엇을 돌려달라고 한 것일까? 그는 자신이 남들에게 빼앗은 것이 어떤 것들인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억세게 운이 좋은 사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죽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건지도 모른다.

피를 쏟아낼 만큼 쏟아낸 그는 겨울밤, 도시의 뒷골목에 쌓여 있는 쓰레기봉투에 기대어 앉아서 얼음장 같은 비에 젖은 채 흐느껴 울었다. 돌려줘. 그는 자신이 결국 초여름의 기억을 누구에게도 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온 진짜 행운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아주 불운한 결말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깡마른 길고양이 한 마리가 그에게 다가갔다. 고양이는 그의 냄새를 맡았고, 그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인하자 쓰레기봉투를 뜯기 시작했다.

    에디터
    이예지
    포토그래퍼
    Monty Kaplan
    작가
    손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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