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소설가 윤이형의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

2019.06.23GQ

여름이 오기 전, 네 명의 사진가와 네 명의 소설가가 이야기를 보내왔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

나는 이 자세의 이름을 안다. 아도 무카 스바나아사나, 다운독이라고도 한다. 얼굴을 아래로 향한 개. 엎드린 몸을 시옷자 모양으로 만들고 양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힘껏 땅을 밀며 엉덩이를 높이 들어 올린 자세. 열 몇 단계로 이루어진 요가의 태양 숭배 자세 중 하나다. 다리 사이로 거울에 비친 내가 보인다. 붉어진 채 잔뜩 일그러진 얼굴, 바닥 쪽으로 늘어진 머리카락, 남색 운동복, 조금씩 후들거리는 사지. 엎드려 기지개를 켜는 개처럼 보이지만 나는 개가 아니다. 이것은 요가 자세일 뿐이고, 대관절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 자세를 취하는 것을 그들이 좋아할 뿐이다. 이마에서 배어난 땀이 머릿속으로 스며든다.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지만, 나는 고통과 지루함과 수치심을 느낀다. 그들이 내 머릿속에 자신들의 느낌을 밀어넣는다. 희열과 쾌락과 만족스러움. 아주 가까이에서, 내 몸 근처를 움직이며 그들이 기뻐한다. 공기의 흔들림과 주위의 온도로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들은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우월감을 느낀다…. 여든둘까지 센 나는 무릎이 꺾여 바닥에 쓰러진다. 끝났다. 나는 개가 아니다. 그런데 정말 아닐까? 형체도, 부피도, 색깔도 없는 그들이 방에서 천천히 빠져나간다.

그날 나는 서울 시내의 한 호텔 로비 커피숍에 혼자 앉아 있었다.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창 밖이 밝아지기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쳐다본 순간, 눈이 멀 것 같은 거대한 섬광이 나를 감쌌다. 나는 정신을 잃었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 방 안이었다. 나는 한쪽 벽면이 거울인 크림색 밀실에 갇혀 있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의자 하나, 변기와 샤워기가 딸린 작은 부스 하나. 문도 창문도 없었다.

방 안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서른 살쯤 젊고 두 배쯤 힘세 보이는 서퍼 복장을 한 백인 남자는, 정신이 든 나를 보자 다가와 묻기 시작했다.

이게 사실일 리가 없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난 여자친구랑 있었어, 해변에… 리우의 이파네마 해변에 말이야…. 너는 아시안이구나. 섬광이 번쩍했을 때 어디 있었어? 뭐? 서울? 남한? 그럼 지금 여긴 어디야? 뭐 이런 엿 같은 일이 있담? 아무튼 우린 여기서 나가야 해. 벽을 부수자. 저 책상을 들어서 던져보면 어때.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 책상의 한쪽 끝을 붙잡았다. 바로 그때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아귀에 틀어 잡힌 것처럼 그의 몸이 허공으로 휙 쳐들렸고, 비명 소리가 날 겨를조차 없이 그대로 천장을 뚫고 올라가 사라져버렸다. 내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는 약 10초 동안 천장의 부서진 부분은 감쪽같이 메워졌다.

그 존재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백인은 아마, 죽었겠지. 그 광경을 본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체념하게 되었다. 내가 평생 했던 다른 체념들과는 급이 다른, 존재의 중심이 둘로 완전히 동강나버리는 것 같은 체념이었다.

그 뒤로 1년이 지났다. 이 방 안에는 계절이 없지만 바깥은 한 바퀴 돌아 여름의 문턱이다. 전화는 어디에도 닿지 않지만, 이 방에선 기이하게도 네트워크에 접속이 가능하다. 대체 어디에 연결된 건지, 이 방이 지구상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지워져 있어 알 수 없을 뿐이다. 섬광 이후 약 30억 명의 남자가 납치되어 사라졌고 그들의 빈자리는 여자들이 채웠다. 연구소에선 내 이혼의 원인이 된 은주, 그 잔망스러운 계집아이가 나 대신 소장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과 동창들도 죄 사라졌다. 두 딸아이는 나를 차단했고, 전처의 메일 주소는 잊어버려 나는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나는 날마다 계정에 로그인해 문장을 쓴다 : 제발 구해주세요 갇혀 있습니다 매일 육체적 감정적으로 착취당합니다 너무나 수치스러워 죽고 싶지만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들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고요
그러나 정부도, 군대도, 경찰도 같은 말을 한다. 안타깝지만 섬광 관련해서는… 현행법상 지금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없네요. 네트워크에는 나처럼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는 게 다 그렇죠. 어휴, 힘드시겠어요. 납치 생활… 쉽지 않은 일이죠. 어쩌면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 세계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굴러갈 수 있게 하는 것까지 그 존재들의 능력인 듯하다. 여자들은 조금씩 웃을 뿐 우리에게 미움도 연민도 보이지 않고, 마침내 얻은 권력으로 바쁘게 일을 한다. 잡혀가지 않은 남자들은 예전 그대로 살아가며,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증오하는 댓글을 단다. “섬광을 보고 따라가셨잖습니까? 그게 터지는 걸 느꼈지만 시선을 피해서 안 잡혀간 사람도 많거든요? 본인이 선택한 삶이잖아요. 납치돼서 가장 노릇도 안 하고 꿀 빨고 있는 거 다 아는데. 특혜나 누리는 주제에 어디서 이렇게 징징대.”

물론 저항도 해보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벽을 마음대로 통과할 수도 있으며, 단번에 나를 벌레처럼 짓이기거나 내 몸에서 창자를 스르륵 꺼내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막강한 미지의 존재들에게 내가 할 수 있었던 저항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사업을 하기 전에는 원래 건축학자였던 나는, 가방에서 다이어리와 펜을 꺼내 거기에 오래전 그만둔 일-지상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기를 바라는 건축물들을 스케치하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아마도 나는 본능적으로, 예술에 가까운 무언가를 해 보임으로써 그들에게 내가 살려둘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침대에 누워 기다리자, 그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내가 그린 그림들을 보았고, 이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내 건축물들을 좋아했다. 나는 스케치북과 좋은 필기구를 달라고 소망했고-내가 머릿속에 물건들을 떠올리면 그들은 다음 날 가져다주었다. 음식과 옷, 브랜디와 신간 소설과 오디오 세트까지도. 그러나 전화기, 드릴과 다이너마이트와 칼, 밧줄, 약물과 기타 자해의 가능성이 있는 물건들, 내 아이들은 아무리 소망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 안토니오 가우디에서 안도 타다오까지 그들의 호감을 얻을 만한 취향은 모조리 집어넣고 뒤섞어 열심히 그림을 그려댔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그들의 존중과 찬탄과 경이감과 호감 들을 나는 분명히 느꼈다. 어째서 납치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지구의 문명과 예술을 알리고 전하는 존재로서 나를 살려두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그들에게 계속 깊은 인상을 주고 사랑을 받아야 했다. 그래야 이곳에서 나갈 일말의 가능성이 생길 테니까.

그러나 그들은 어느 날 자리에 앉아 있던 내 몸을 공중으로 홱 잡아채더니 이상한 모양으로 이리저리 구부려대기 시작했다. 엄청난 당황과 두려움이 밀려왔고, 그다음에는 짙은 수치심이 나를 삼켰다. 그들은 어째선지 내 몸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건축학자로서의 나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땀을 흘리며 다운독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나를 훨씬 더 좋아했다. 내 뇌는 그들에게 열려 있었고 나는 그들이 느끼는 것을 강제로 느껴야만 했다. 숭배 받는 자가 숭배하는 자세를 취하는 자를 보며 느끼는 뿌듯함보다 더한 것, 더 말초적이고 감각적이며 신성에서 멀어 보이는, 그저 지극히 단순하고 폭력적인 정복욕이 거기에 있었다.

이 자세가 나의 본질과 무슨 상관일까? 나는 몇 번인가 울 수밖에 없었다. 직업도 사회적 지위도 있는 쉰 살의 내가 단지 매일같이 그 요가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만 살아남아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였다. 나를 죽일 수도 있는 강력한 존재들이 조금도 위대하거나 숭고하지 않으며 실은 너무도 저차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또한 살기 위해서는 건축학자로서의 나를 축소하고 머리를 수그린 개로서의 나를 강하게 어필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아서이기도 했다. 나를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된 뒤로 그들은 이전에는 놀라워하던 내 그림들을 동정하며 비웃기 시작했다.

당신은 슬픔이나 비참함이 생존욕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들의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매일 혼자서 자세를 연습하고 근육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내가 쓰러지면 그들은 다시 일으켜 세웠고, 내 주위를 돌며 강렬한 감정과 생각들을 발산했다. 내 머릿속을 파고든 그것들은 종종 하나의 문장으로 합쳐지곤 했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 사랑한다 연약한 존재여 너무나도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전처가 젊었을 때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섹스를 거절해 나를 절망시킬 때마다 종종 이렇게 화를 냈었다.

당신은 여자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거야. 단지 하나의 물건으로, 대상으로 취급당하는 느낌을. 고깃덩어리처럼, 손바닥 위에 올려진 한낱 과일처럼, 아무 때나 끌려나와 아무렇게나 대해지는 느낌을.

나는 답답해서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대답했었다. 이게 내 사랑이야. 이게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랑의 방식이라고! 난 이게 필요하고, 이건 내가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야! 그 존재들 역시 지금의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가끔 꿈속에서 거리를 자유롭게 걸으며, 사람들을 향해 나는 소리친다. 나는 가치가 있어! 아름다운 건물을 설계해 시공하고, 사업을 꾸려내고, 세상을 돌아가게 할 능력이 내겐 있다고! 그러나 그건 꿈일 뿐이고, 눈을 뜨면 눈가는 젖어 있다. 언젠가 내게도 삶이라는 게 있었다. 내 삶은 이제 끝났지만 또 하루가 갔다는 사실에는 감사할 수밖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그리고 그 태양 밑에는 머리를 수그린 내가 있겠지. 그럼에도 나는 개가 아니고 사람이다. 사람이란 말이다.

    에디터
    이예지
    포토그래퍼
    박현성
    작가
    윤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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