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붕어빵,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패트릭 슈워제네거 | 지큐 코리아 (GQ Korea)

헐리우드 붕어빵,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패트릭 슈워제네거

2019-07-04T16:31:00+00:00 |interview|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패트릭 슈워제네거가 함께 웃었다. 턱수염이 닮은 아버지와 아들이, 내밀한 추억을 공유한 두 친구가, 예리한 지혜를 가르치고 배우는 스승과 제자가, 두 명의 슈워제네거가 함께 웃었다.

왼쪽부터 | 재킷과 셔츠,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재킷, 브루넬로 쿠치넬리. 데님 셔츠, 랭글러. 시계는 오데마 피게.

왼쪽부터 | 셔츠, 이자벨 마랑. 데님 팬츠, 프레임. 카우보이 모자, 테코바스. 벨트, 루체스. 부츠, 프라다. 데님 팬츠, RRL. 벨트, 루체스. 시계, 오데마 피게.

티셔츠,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데님 팬츠, 랄프 로렌. 선글라스, 레이밴. 벨트, 루체스. 반지는 아널드 본인 것.

왼쪽부터 | 티셔츠,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데님 팬츠, 랄프 로렌. 카우보이 부츠, 팔콘헤드. 벨트, 루체스. 슬리브리스 톱,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쇼츠, 로에베. 카우보이 부츠, 테코바스.

데님 셔츠, 라이언 마이클.

점퍼, 베트멍. 쇼츠, 폴로 랄프 로렌. 카우보이 부츠, 팔콘헤드.

재킷과 데님 셔츠, 팬츠,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카우보이 부츠, 테코바스.

왼쪽부터 | 가죽 재킷, 아미리. 데님 팬츠, 프레임. 카우보이 부츠, 테코바스. 가죽 재킷, 아미리. 데님 팬츠, RRL. 카우보이 부츠, 루체스.

왼쪽부터 | 셔츠, 로에베. 슬리브리스 톱,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카우보이 햇, 스텟슨. 셔츠, 로에베. 슬리브리스 톱,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카우보이 햇, 스텟슨.

액션 영화의 총격전처럼 인터뷰 문의가 빗발쳤지만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패트릭 슈워제네거는 이에 응수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했다. 자신들을 붙잡고 질문을 던지려는 매체를 악당으로 상정한 것처럼 보였다. 오랫동안 외부에 허락되지 않았던 슈워제네거 부자의 사적인 세계에 가 단독으로 초대됐다. 가족사진을 제외하고 둘이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선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로스앤젤레스의 말리부 해변에 위치한 고급 빌라에서 만났다. 아들은 팔을 뻗어 아버지를 껴안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뺨에 입을 맞춘 뒤 힘껏 안았다. 20년 넘게 이어온 일상의 한 장면이었다. 패트릭은 방금 세상을 구하고 돌아온 것 같은 표정으로 손목에 착용한 오데마 피게 시계를 자랑했다. “저도 아버지와 똑같은 시계가 생겼어요.” 영화 속에서 밥 먹듯 세계를 구했던 아널드가 코웃음을 쳤다. “거기에도 ‘아널드 슈워제네거-캘리포니아 주지사’라고 새겨져 있니? 아니라면 내 시계와 똑같다고 할 수 없어. 설마 ‘주지사의 아들’이라고 새길 생각인 거니?” 차고 있는 시계만 다를 뿐이었다. 두 사내는 에너지, 스타일, 유머 감각, 모토, 마음가짐 모두 닮아 보였다. 놀라울 정도로.

전형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가깝나요? 아니면 친구 사이?
아널드 아버지와 아들이 친구가 될 수 없는 건 아니죠. 부자지간을 떠나 우리는 깊은 우정을 공유하고 있어요. 때때로 같이 일을 하기도 하는데 내게 패트릭은 좋은 동료예요. 우리에게 어울리는 대본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화를 함께 찍고 싶어요.

패트릭 아버지는 나에게 멘토이기도 해요. 영화 일과 사업에 대한 대화를 자주 나누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여전히 내가 잘 성장하도록 이끌어줘요.

아널드 패트릭은 나와 닮은 구석이 정말 많아요. 젊었을 때의 나를 보는 것 같죠. 복제인간이나 다름없어요.

어떤 부분이 특히 닮았나요?
아널드 이 아이는 나처럼 배우와 기업가가 되길 꿈꿨어요. 그리고 내가 그랬듯 자신이 가진 스타성을 어떻게 하면 좋은 일에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이런 부분이 대견해요. 패트릭은 좋은 어른으로 성장해줬어요. 여기에는 아내 마리아의 역할이 컸어요. 내가 영화를 찍느라, 정부 일을 하느라 집을 비우는 동안 마리아는 아이들의 곁을 지켰어요. 거의 혼자 키우고 가르치다시피 했죠. 우리 둘은 양육 철학이 달랐어요. 동유럽의 엄격한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무엇보다 규율을 중요하게 여겼고, 마리아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했어요. 우리는 합의점을 찾았고 아이들은 자유와 책임감을 배우며 자랄 수 있었어요.

아버지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특별하게 여기는 건 뭔가요?
패트릭 아버지를 따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요. 얼마 전 오하이오에서 개최된 아널드 스포츠 페스티벌을 오랜만에 방문했어요. 어릴 적에 아버지와 자주 갔던 보디빌딩 대회예요. 열 살 때였나, 그곳에서 아빠의 기념품을 팔기도 했어요.

아널드 아들에게 비즈니스의 세계를 일찍 알려주려고 했어요. 페스티벌 기간에는 각종 운동기구와 운동복, 건강식품, 보충제를 파는 피트니스 박람회가 열렸거든요. 사흘간 20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규모가 큰 행사였어요. 아들에게 “너도 가판대를 만들고 뭔가를 팔아볼래? 직접 사장이 되어보는 거야”라고 부추겼고, 패트릭은 역도 복대와 티셔츠뿐만 아니라 내 사진과 소장품들을 팔았어요. 영화 <코난 더 바바리안>에서 내가 쓴 칼과 운동할 때 입는 재킷도 내놓았어요. 나는 개의치 않고 제안을 하나 했어요. “만약 7만 달러를 벌게 되면 네가 10퍼센트를 챙기고, 나머지 판매금은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거야.” 패트릭은 친구들과 동생 크리스토퍼를 고용해 열을 올려가며 장사를 했어요. 첫날은 엉망진창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장사는 안정을 찾았고 아이들은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했어요. 급기야 러시아 사람과 흥정 끝에 코난 칼을 2만5천 달러에 팔더라고요. 패트릭은 재킷, 벨트, 칼에 내 사인을 받아가더니 매상을 두 배로 올렸어요. 어린 나이에 노력을 하고 아이디어를 더해 돈을 버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친 거예요.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그림이었어요. 연기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썼어요.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면 촬영장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숙제를 하고 시간을 보내며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게 했어요. 이 분야가 밖에서 보이는 것처럼 단순히 화려하고 요란한 쇼 비즈니스가 아니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직접 깨닫게 해주고 싶었어요. 지금의 패트릭을 보면 내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것 같아요.

패트릭 일찍부터 사업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과정 속에서 진행되는지 배웠던 경험이 큰 경쟁력이 됐어요. 소매와 도매의 차이, 매매 이윤, 중국산 원료를 수입하는 방법을 고등학교 입학 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건 완전히 다른 세계예요. 아버지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 직업과 미래에 대해 고민했어요. 나중에 아이들이 생기면 아버지한테 배운 대로 똑같이 가르쳐줄 거예요.

아널드 자녀가 성실성, 적극성, 결단력, 전략성을 키워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아버지 입장에서도 큰 경험이에요. 패트릭의 진로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줬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요.

이런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아요. 아널드는 얼마나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였나요?
패트릭 오! 전구 사건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널드 방에서 나올 때는 항상 전등을 끄라고 가르쳤어요. 그런데 이 아이가 몇 번이고 깜빡했어요. 반항심에 일부러 그랬는지도 모르죠.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자 아들에게 “한 번 더 그러면 네 방의 전구를 떼어버릴 거야”라고 경고했어요. 패트릭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더라고요. “무섭지 않아요. 천장에는 전구가 일곱 개나 달려 있고, 침대 옆 탁자에도 하나 더 있어요. 이미 다 세어봤어요.” 우리는 신경전을 벌였어요. 이튿날도, 그 다음 날도 패트릭은 방에 불을 켠 채 학교에 갔고 나는 아무 말없이 하루에 하나씩 전구를 떼어버렸어요. 일주일이 지나자 방은 완전히 캄캄해졌고 패트릭은 무섭다며 우는 얼굴을 했어요.

패트릭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말 아버지가 너무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 온수를 끄기도 하셨어요.

두 사람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아널드 패트릭은 15분이 넘도록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곤 했어요. 온수를 아껴 쓰라고 말을 해도 듣질 않았어요. 결국 온수가 저절로 꺼지는 타이머를 직접 만들었죠. 샤워를 하러 들어간 패트릭은 5분 만에 얼음장 같은 물을 맞고 비명을 질렀어요.

패트릭 우리는 방 청소와 빨래도 직접 해야 했어요.

아널드 신발이 아무 데나 놓여 있으면 아이들에게 “아빠는 너희들의 가정부가 아니야”라고 타이르며 직접 치우게 했어요. 그럼에도 식탁 아래, 계단 옆, 벽난로 앞에 신발이 굴러다녔어요. 한번은 패트릭에게 이렇게 경고했어요. “얘야, 이 신발은 너한테 필요 없나 보구나.”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벽난로의 불 속으로 던져버렸어요.

패트릭 내가 가장 아끼는 신발인 건 모르셨죠? 어쨌거나 아버지의 교육 방침은 늘 성공했어요. 그 뒤로 신발을 아무 곳에나 벗어놓지 않게 됐으니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촬영을 하면서도 어떻게 아이들의 사소한 습관까지 신경을 썼나요?
아널드 내 아이들을 바르게 잘 키우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이에요. 비록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진 못했지만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에게 온 신경을 쏟았어요. 본능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던 것 같아요.

또래 친구들처럼 패트릭도 사춘기를 보내면서 ‘터미네이터’ 아버지에게 대들거나 반항하기도 했나요?
패트릭 나도 남들과 바를 바 없는 사춘기를 겪었어요.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이제부터 부모님과 대화를 끊고 반항도 하고 도망가버릴 거야’라고 못된 마음을 먹지 않았어요. 아버지와는 항상 가까운 사이였고, 지금도 그 관계는 변함없어요.

아널드 당연히 패트릭도 엉뚱한 짓을 하고 주위 사람들을 화나게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게 사춘기죠. 자랑스럽게 말하자면 내 아이들은 마약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폭력 사건에 휘말린 일이 전혀 없어요. 경찰이 관여할 만한 사소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죠. 그게 뭐가 특별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내 아이들은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어요. 만약 전교생이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 안다면 그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보세요. 무엇을 하든 아버지의 이름이 항상 따라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부담 속에서 패트릭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했고, 이를 훌륭하게 해냈어요. 내 아이를 영화에 출연시키기 위해 지인에게 단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 아들도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았죠.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으로 배역을 얻었어요. 패트릭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큰 기쁨이에요. 내게 돈을 부탁한 적도 없어요. 최근에는 자신이 번 돈으로 집을 사기도 했어요.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죠.

패트릭은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이잖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요?
패트릭 운이 좋았어요.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출연한 영화 <프레데터>의 존 데이비스 감독님 밑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감독님은 피자 체인점에 투자하면서 내게도 기회를 줬어요. 적은 돈이었지만 체인점 사업에 넣었는데 일이 잘 풀리면서 매장이 300개 이상으로 늘어났어요. 지분 중 절반을 팔아 주택과 복싱클럽 체인점, 에너지 드링크 회사 등에 투자했어요. 노 젓기 훈련을 할 수 있는 실내 체육관도 그중 하나인데 벌써 세 번째 지점이 생겼어요.

아널드 패트릭은 돈을 투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직접 처리했어요. 혼자 투자처를 물색하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결과를 예측했어요. ‘이걸 다 어디서 배웠지?’ 싶을 정도로 놀라웠어요.

패트릭은 영화 <미드나잇 선>에서 주인공을 맡기도 했어요. 아버지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연기를 왜 선택했나요?
패트릭 죽을 때까지 배우 일만 할 생각은 없어요. 아버지는 보디빌딩, 연기, 정치라는 완전히 다른 세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았어요. 한 직업에 갇혀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줬어요. 배우도 뛰어난 사업가가 될 수 있어요. 마크 윌버그와 조지 클루니도 좋은 본보기예요. 앞으로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10년 안에 비영리단체를 만들거나 패션 사업에 뛰어들 수도 있어요. 아버지는 내게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좇는다면 언젠가 성공한다”라는 교훈을 늘 강조했어요.

스크린에서 아들을 보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아널드 말 그대로 아찔하죠. 패트릭이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세 번이나 극장에서 봤는데 내가 더 긴장됐어요. 하지만 가슴이 찡했어요.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는지 저도 잘 아니까요. “아빠가 아널드 슈워제네거인데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요?”라며 쉬운 길을 택할 수 있었겠지만 아들은 그러지 않았어요. 저도 그렇고, 모든 부모는 자식이 성공하길 원해요. 그렇지만 나와 똑같은 길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버지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란 사실 때문에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나요?
패트릭 영화 산업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상황에 놓여요. 자기 편이 있고, 자기를 싫어하는 무리도 있기 마련이죠. 거절당하는 일도 빈번해요. 배역을 얻기 위해 수백 번의 오디션에 도전하지만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요.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들어요. 간혹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아들이란 사실만으로 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개의치 않아요. 그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내가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사업에 관해서는 아버지한테 많은 조언을 구하고 있지만 연기는 혼자 힘으로 해내고 싶어요.

인스타그램을 보면 두 사람이 얼마나 돈독한 사이인지 알 수 있어요. 얼마나 자주 만나나요?
패트릭 그때그때 달라요. 요즘 아버지는 여행에 많은 시간을 쓰느라 바빠요. 지구를 다 돌아볼 계획인가 봐요. 얼마 전에는 당연히 집에 있을 줄 알고 연락을 했더니 유럽에서 전화를 받으시더라고요. 우리는 미리 약속을 잡기보다 즉흥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아침 6시에 아버지한테 불려 나가 체육관에서 함께 운동을 하기도 하고, 점심시간 직전에 만나 식사만 하고 헤어지기도 해요.

아널드 그렇지만 우리는 정기적으로 페이스 타임을 해요. 이건 정말 좋은 기술이에요!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잖아요.

같이 운동을 하면 시합을 벌이기도 하나요?
패트릭 그렇지는 않아요. 둘이 무언가를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스키장에 같이 가기도 해요.

아널드 이 아이는 나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해요. 아버지 입장에서 행복한 일이죠. 독일의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도 같이 갔고, 재작년에는 베를린에서 패트릭이 직접 내게 ‘GQ 어워드’를 수상해줬어요.

패트릭의 머리를 직접 잘라주곤 했다는데 사실인가요?
아널드 가족의 전통이에요. 나도 아버지가 내 머리를 잘라줬던 추억을 갖고 있어요. 우리 집안은 미용실에 갈 일이 거의 없었죠.

패트릭 그냥 돈을 아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아널드 패트릭이 “아빠, 저 머리 잘라주세요”라고 할 때마다 속으로 기뻤어요. 아들이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죠. 심지어 좀 컸을 때 미용실에 다녀온 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내게 다시 잘라달라고 했어요. 나를 믿고 거울 앞에 앉아 있는 아이의 얼굴이 지금도 생각나요. 언제 마지막으로 네 머리를 잘라줬지? 1, 2년쯤 됐나?

패트릭 맞아요. <롱 로드 홈>이라는 미니시리즈를 찍을 때였어요. 길게 길렀던 머리를 군인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짧게 잘라야 했어요. 멋을 낼 필요가 없어 아버지한테 그냥 맡겼어요.

아널드는 패트릭이 젊은 시절의 자신과 매우 닮았다고 했지만 다른 면도 있을 거예요. 그런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아널드 패트릭은 마리아와 함께 키웠기 때문에 우리 둘의 면모를 모두 갖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마리아는 강인하고 마음씨가 넓은 엄마예요. 아이들을 스페셜 올림픽에 데려가기도 하고 새크라멘토의 국회의사당에 와서 내가 하는 일을 보여주기도 했어요. 패트릭, 누나와 이렇게 말했던 거 기억나니? “아빠, 여기서 뭐 해요?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뚝뚝한 표정만 짓고 있어요. 이곳은 별로예요. 영화 세트장이 훨씬 신나고 재미있어요.” 아이들은 내가 자주 집을 비워 서운해했어요. 하지만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경제 도시를 책임지려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게 있었어요. 가족과의 시간도 그중 하나였죠. 하지만 그 시기를 함께 이겨낸 경험을 통해 아이들도 배운 게 있다고 생각해요.

패트릭, 가장 기억에 남는 어린 시절의 추억은 뭔가요?
패트릭 영화 촬영장에 놀러 가거나 아버지와 함께한 여행도 다 좋았어요. 은행에 처음 갔던 날도 선명하게 기억해요. 아버지도 잊지 않으셨죠? 레모네이드를 팔아 번 돈으로 내 이름의 계좌를 처음 만들었잖아요. 금액도 정확히 기억나요. 53달러! 은행 의자에 앉아 양식을 작성하다니, 어린아이에겐 대단한 사건일 수밖에 없어요.

아널드 저축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아이들을 은행에 데려가곤 했어요. 나중에 커서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내게 의지하지 않길 바랐어요. 아이들 모두 자신의 계좌를 만들었고 저축하는 습관을 길렀어요. 53달러로 시작한 계좌가 5천달러 가까이 불어나자 패트릭은 내게 달리기 대회에서 1등을 한 것처럼 자랑했어요. 우리 가족에겐 여행도 중요해요. 스페셜 올림픽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을 다녔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은 사회 공헌 활동에 눈을 떴어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고요. 아이들은 슈퍼 히어로를 본 것처럼 흥분했죠. 그리고 내가 문화체육관광부 의장이었을 땐 백악관을 방문했어요.

패트릭은 아버지를 이어 정치를 해볼 생각은 없나요?
패트릭 그런 고민을 하기에는 아직 어려요. 아버지도 나처럼 스물다섯 살 땐 보디빌딩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몇 년이 지난 뒤 배우가 됐어요. 아버지는 언제 정치를 시작했죠?

아널드 쉰여섯 살 때였지.

패트릭 50대에 뭘 하고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아요. 현재로서는 사업과 연기에 전념하고 싶어요. 그게 지금 내가 열정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에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열정을 좇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