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디자이너가 만든 서핑 보드 6

2019.07.14GQ

서핑 보드 하나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6인의 디자이너가 6개의 서핑 보드를 디자인했다. 그걸 타고 가고 싶은 꿈의 장소도 말해줬다.

“취한 선장은 밤새도록 이야기를 했다. 프랑스에서는 그 배가 사람과 재산을 실은 채 고스란히 길을 잃고 말았다고 여겼다.” 바타이유의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중 한 구절이다. 활짝 웃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며, 잔뜩 울상을 지은 것처럼 보이는 티키 마스크의 얼굴은 이상하다. 폴리네시아 테마의 남국풍의 바에 가면 티키 마스크가 새겨진 잔에 담긴 칵테일을 준다. 서울에서 길을 잃은 밤, 내 기분을 닮은 잔을 보며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생각한다.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만으로는 갈 수 없는 곳도 있다. ― 이재민

서핑 보드는 미지의 생명체 같다. 위대한 서퍼들을 보면 대체 어떤 물리력이 그를 저렇게 움직이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서핑 보드를 타고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밀러 행성의 초대형 파도를 타면 어떨까? 외계인들과 사이 좋게. 타임 패러독스가 있으니 너무 오래는 말고, 딱 자식들이 20대 언저리 정도 나이가 될 때까지만 놀다 오고 싶다. 그럼 아이들은 이미 자랐고, 여전히 난 젊고, 남겨놓은 부동산의 가치는 상승했을 것이며, 그 돈으로 가까운 미래의 신문물을 즐기며 여생을 보낼 테다. ― 조성흠

‘생각하지 않는 밤’으로 가고 싶다. 올해 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치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있었다. 밤이 오고 불이 꺼지면 어둠 속에 추억들이 가슴 아프게 그려졌고, 생각이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한 밤을 꼬박 지새우기도 했다. 한참을 앓고 나서, 병원을 나서니 여름이 발끝에 닿았다. 계절이 변하고 꽃잎이 진 자리에 새순이 돋듯 상처도 회복되었다. 물기 어린 녹색이 막 아문 상처들을 둘러싼다. 몸이 가벼워진다. 이제 나도 이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텅 빈 여름밤으로 가고 싶다. ― 곽명주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으로 가고 싶다. 세계 최초의 서퍼가 최초의 서핑 보드 위에 올랐던 바로 그 나라로 말이다. 파도에 몸을 맡길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가장 극적인 모습으로 서핑 보드에 옮겨봤다. 와이키키 해변을 거니는 각국에서 온 가지각색 사람들, 파도 속 자유를 만끽하는 서퍼들, 빛나는 햇볕과 뜨거운 모래사장, 해변 가득 신나게 울리는 ‘Surfin’ USA’를 상상만 해도, 서핑 보드는 이미 하와이에 가 있다. 여기까지 쓰니 견딜 수 없다. 아무래도 올여름은 와이키키 해변으로 떠나야겠다. ― 박상혁

세상 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우고 결국에 시끄러운 건 나 하나로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혼자 남아 책이나 읽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렇게 고단한 날, 바다가 아닌 모하비 사막을 떠올린다. 모래언덕을 서핑해 마침내 다다른 사막. 아침 해가 뜨면 땅도 붉게 물들고, 그 어딘가의 흙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볼 것이다. 달이 뜨면 사막은 푸르고 검게 빛난다. 새벽 별이 떨어질 때쯤에는 슬쩍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하겠지만, 내가 그 커다란 사막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나에겐 진짜 휴식이 될 것이다. ― 폴아

휴대 전화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OUT OF OFFICE라는 팻말을 걸고. 완벽한 부재가 가능해야 완벽한 휴가가 가능하니까.
달력에 휴가를 표기하고 사무실을 벗어나 캐리어에 짐을 잔뜩 욱여넣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도 떠날 수 없는 것은 각종 메신저의 알림이다. 와이파이만 있다면 이 알림들은 절대 멀어질 수 없으니까. 휴대 전화가 없는 여행을 한다. 길 찾기가 힘들겠지. 먹고 있는 음식을 SNS에 자랑하지 못하겠다. 이 시대 휴대전화 없는 여행은 불가능할 것 같지만, 휴가 중이라고 최대한 소문은 낼 테다. ― 오혜진

    에디터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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