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비디 그라프트가 노란색을 고집하는 이유

2019.07.17GQ

이게 다 노란색 때문이다. 비디 그라프트가 이름을 알리고, 서울에 오게 된 것도 노란색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를 이끈 건 한결같은 긍정의 기운이라는 걸 직접 만나고서 알게 됐다.

CP, 2019

Parasols, 2019

Biographies8, 2019

MK2, 2019

MK1, 2019

Statue, 2017

Columns, 2019

Architecture, 2019

Pool, 2019

어떤 질문을 할지 벌써 눈치챈 표정인데. 매번 똑같은 질문 하나를 받는다.

지겹겠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책과 사진에 독특한 형태의 노란색 조각을 붙여 작품을 만드는 ‘Add Yellow’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왜 노란색인가? 노란색은 경쾌하고 시선을 끈다. 콜라주 작업에 주로 사용하는 헌책의 누렇게 변한 종이와 흑백 사진에 생명력을 불어넣기에 적합하다. 노란색은 은유적으로 중립적이기도 하다. 열정이나 사랑을 뜻하는 빨간색이나 어두운 검은색에 비해 연상되는 의미가 적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작업을 보며 각자의 의미를 부여하기 쉽다.

노란색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한 단어로 말하면 희망이다. 노란색에서 긍정적인 기운을 느낀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면 작업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곤 한다. 내게 예술은 일종의 테라피와 같다.

‘Add Yellow’ 프로젝트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노란색을 더하면 내 것이 될까?” 기존 작품을 편집하고 변형하는 콜라주 작업을 통해 창작의 개념과 예술의 소유권에 대한 문제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 답을 구했나? 아직 찾지 못했다. 답을 얻는 순간 이 프로젝트의 의미가 종결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 편인가? 인스타그램 계정(@addyellow)에 콜라주 작업과 함께 이 질문을 올리자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누군가는 “그렇다”고 반응했고, 어떤 사람들은 “게으르다”, “남의 작업을 훔치는 거다”라고 하더라. 특정한 컬러를 사람들의 얼굴에 붙이는 방식이 존 발데사리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흥미로웠다.

당신의 작업 스타일이 다른 누군가에게 변주되거나 차용된 적도 있나? 원래 ‘Add Yellow’ 프로젝트는 협업 개념이었다. 다른 아티스트들과 함께하려고 구상했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한 브랜드에서 내 작업 스타일과 똑같이 상업 광고를 만든 일이 있었다.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졌다. 내 작업이 예술 작업의 주체와 소유권에 대해 질문하긴 하지만 자신만의 스타일과 관점 없이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콜라주를 처음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어릴 적부터 나만의 세계를 표출하고 싶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스케이트보드에 빠져 지냈다. 커서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려고 대학에서 영화와 영문학을 전공했다. 매일 작문을 하고 영화 분석을 하느라 지쳐 있을 무렵 한국계 미국인 아티스트 친구가 콜라주 작업을 권유했다. 호기심에 잡지 사진을 오리고 붙이는 작업을 했는데, 바쁜 현실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 같아 무척 즐거웠다. 그 행복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계속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심플해 보인다고 해서 쉽게 작업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고 간결하면서 보기에도 좋고 시선을 끌어모으는 작품을 만드는 게 항상 고민이다.

지금 우리 뒤에 전시된 ‘Crowd’는 사진 속 군중의 얼굴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노란색 조각으로 채운 작품이다. 얘기하고 싶었던 건 뭔가?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을 한 명씩 오려내면서 나름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했다. 저마다 사연은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누구나 자신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그 바람을 노란색으로 표현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얼굴이 있나? 사진의 가운데쯤 한 여자가 무섭게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하하.

오래된 책과 사진, 빈티지 엽서를 주로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옛것에 나만의 현대적인 해석을 더해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메우는 재미가 있다. 이미 현대성을 띤 재료는 내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오래 전의 역사와 지식이 기록된 책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많다. 게다가 20세기 초반에 나온 책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가장 오래된 작업 재료는?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 중 군인들을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한 작업이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의 사진으로 추측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MK’ 시리즈는 아돌프 히틀러의 자서전을 가지고 한 작업이다. 어떤 맥락으로 이 책을 다뤘는지 궁금하다. 화가를 꿈꿨던 히틀러는 고전적인 화풍에 집착해 모던 아트를 폄하했다. 칸딘스키, 클레, 에른스트 등 당대 작가들의 작품을 압류하거나 불태웠다. 금서 취급을 받아온 히틀러의 자서전 를 어렵게 구해 마음대로 찢고 오린 뒤 노란 조각을 덧붙였다. 히틀러가 그토록 싫어했던 현대 미술로 증오와 편견으로 가득한 그의 말들을 무장 해제한 것이다.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발상이다. 만약 가격이나 저작권에 상관없이 어떤 작품이든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독일의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좋아하는데, 그의 대형 추상 회화에 노란색을 더한다면 환상적일 것 같다. 낸 골딘과 같은 스타 사진가의 작품도 작업 재료로 써보고 싶다.

전공을 살려 직접 쓴 이야기로 작품을 만드는 건 어떤가? 시나리오로 구상했던 이야기가 있긴 하다. 이런저런 문제를 겪으며 성장하는 10대 아이에 대한 내용이다.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일상은 어떤 것들로 리믹스되어 있나? 일단 출신 배경이 콜라주처럼 이뤄져 있다. 아버지는 독일인과 가나인의 피가 섞여 있고, 어머니는 독일인이다. 자라면서는 다양한 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독일, 벨기에, 영국에서 살기도 했고 지금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고 있다. 예술과 음악, 패션의 경계가 흐려지고 뒤섞이는 시대인 만큼 내 라이프스타일은 그것들로 혼재되어 있다.

SNS를 딱 떼어놓고 당신을 이야기할 수 없다. 취미로 시작한 콜라주 작업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주목받았고, 이렇게 서울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갖기에 이르렀다. SNS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 SNS는 예술계에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20년 전이라면 신진 작가들은 포트폴리오를 들고 갤러리를 다니며 자신을 알려야 했다. 그에 반해 지금은 SNS상에서 누구나 발견되기도 쉽고,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쉽다. 감사하게도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SNS를 통해 전업 작가가 됐고 브랜드와의 협업을 비롯해 다양한 작업이 연결되고 있다.

패션계에서 꾸준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곳 뮤트뮤즈 팝업 전시장에서 열린 개인전도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버질 아블로로부터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올여름 말에 오프화이트에서 내 작품이 프린트된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고 있고, 몇몇 뮤지션의 앨범 커버 작업도 진행해야 한다.

해야 할 작업이 많아 헌책을 더 구하러 다녀야 할 것 같다. 단골 서점은 어디인가? 암스테르담의 워터루 광장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에는 없는 게 없다. 빈티지 물건과 중고품, 고서적도 많고 가격도 싸다. 엄청 오래된 책을 1유로에 살 수 있다. 이곳을 뒤지다 보면 숨은 보물을 찾는 듯한 기분이 든다.

멀쩡하게 생긴 젊은 남자가 시장을 뒤지며 낡은 책만 찾는 모습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는 않나? 가끔 그런 시선을 느낄 때도 있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나를 열정적인 문학도라 생각하지 않을까.

    에디터
    김영재
    포토그래퍼
    설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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