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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센스 "전 손님이고 싶었는데, 현실은 이방인이더라고요"

2019.07.22GQ

4년 만에 앨범 <이방인>을 발매하는 이센스가 과거의 실수, 지금의 기분, 미래의 태도에 대해 얘기했다.

피케 셔츠, 프레드 페리 × 마가렛 호웰. 비니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니트 피케 셔츠, 헤리티지 플로스. 블레이저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카고 팬츠, 칼하트. 스니커즈, 나이키.

재킷과 팬츠, 모두 칼하트.

스웨트 셔츠와 팬츠, 모두 벨보이. 스니커즈, 뉴발란스.

피케 셔츠, 프레드 페리 × 마가렛 호웰. 비니와 팬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스니커즈, 컨버스.

선공개된 싱글 곡 ‘그xx아들같이’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인터뷰는 가난한 시인같이 아니면 좀 웃긴 등신같이” 할까요? 웃긴 등신같이 할게요. 등신이라. 제일 깔끔한 건 음악 하는 사람이 앨범 발매하고 무대만 하는 거죠. 저도 가끔은 인터뷰에서 있어 보이는 척을 하더라고요. 그 구절은 스스로에 대한 자조이기도 해요.

<이방인> 발매가 계속 미뤄졌었어요. 드디어 나오는데 발매를 앞둔 기분이 어떤가요? 너무 개운해요. 양치기 소년이 됐던 건 다 제 탓이에요. 사람들과 에너지를 못 나누니까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작업실에 앉아서 음악만 만들고 있는 게 싫을 때도 있었어요. 트랙 리스트는 쌓여 있었지만, 어느 순간 뭐가 북받쳐 올라오면 ‘이건 엎자’ 그랬죠. 곧 앨범이 나올 거라고 말한 건, 외로움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의 함성이 듣고 싶어서요. 오랫동안 무대에 서지 않다 보니 더 그립고 외로웠던 것 같아요. 뭐, 어쨌든 제가 깝친 거죠.

이전 앨범 <The Anecdote>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될 정도로 호평받아서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요. 그 기대에 못 미칠까 하는 두려움은 없나요? 두렵진 않았고 편견이 짜증났어요. 사람들이 저를 가둬놓는 것 같아요. ‘이센스는 이런 걸 해야 한다’, ‘오로지 이센스만이 이 시대에 이런 얘길 한다’라는 편견요. 아니에요. 모든 래퍼가 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다만 방식이 다른 것뿐이죠. 유행하는 힙합 음악을 찬찬히 들어보면 다 자기 얘기거든요. “형, 누구누구 어떻게 생각해요? 너무 별로 아니에요?” 아니, 난 신나는데? “형, 그 래퍼 저격한 거 아닌가요?” 아니에요. 전 다른 래퍼들에 초점을 맞추고 가사를 쓰지 않아요. 제가 공격적인 가사를 쓰면 꼭 다른 래퍼와 연관시키는데 전혀 아니에요. 그건 저에게 가장 재미없는 피드백이에요. 그런 게 부담스럽지 기존 앨범을 뛰어넘지 못할까 봐 두렵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늘 더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그런 자신감이 생기죠? 왜냐면 <The Anecdote>가 나오게 된 과정 때문이죠. 아시죠?

프로듀서 오비랑 한 달간 만든 작업물이 감옥에 가게 되면서 수정 없이 그냥 나온 과정 말인가요? 네. 그때보다 더 성의를 다했는데 당연히 더 잘할 수 있죠. <The Anecdote>는 제 감정에 확 들어가서 만든 앨범이었어요. 평이 좋은 것도 감사하고 명반이라고 해주는 것도 감사하지만 그로 인해 어떤 편견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그 편견을 깰 시기가 자꾸 늦어지니까 점점 더 부풀려졌던 것 같아요.

감옥에 갔다 온 게 스스로에게 이상한 훈장 같은 걸 부여했다고 생각하나요? 그런 것도 편견에 한몫했죠. 드라마 만들기를 좋아하는 미디어와 청자들에게 얘깃거리가 됐죠. 싫었죠. 감옥 갔다 온다고 음악 잘하나요? 감옥 간다고 음반이 잘 팔리나요? 훈장도 아니죠. 그냥 제 경험인 거죠. 심적으로 굉장히 불안했던 상태에서 제가 제 자신을 챙기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안 했겠죠. 잡혀갈 게 눈에 선한데.

후회하나요? 네. 정신 차리게 된 계기이기도 하죠. ‘두 번 다시 대마초를 피우지 않겠어요’ 같은 단순한 얘기가 아니에요. 사람들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 엄마가 전화해서 “니 쓸데없는 짓 안 하재?” 했는데 “에이, 아니다” 거짓말했던 것. 저 혼자 앨범 내는 거 아니고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데 제가 그르쳐버린 것에 대한 반성이죠. 그런 후회가 제일 컸죠. 그러니까 ‘새끼야, 너 갈 만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게 저의 죄라고 생각해요.

감옥에 있을 때 <The Anecdote>가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과 ‘최우수 랩&힙합 음반상’을 받았어요. 기분이 어땠나요? 하루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루요? 네. 친구들이 편지로 “반응 진짜 좋아”라고 말해주고 면회 오는 친구들이 “지금 밖에서 형 장난 아니에요”라고 말하면 그 순간은 기분 좋죠. 아, 그래? 잘됐다. 근데 그 현상을 말로만 듣고 눈앞에서 보지 못하니까 상상 같았어요. 와 닿지 않았어요. 실감을 못 한 거죠. 저도 기록으로만 아는 거죠. 출소하자마자 ‘난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재빨리 들었어요.

거기서 가사를 많이 썼다고 들었어요. 근데 나중에 보니 그 가사들이 촌스럽고 징그럽고 진심 같지도 않다고 했어요. 왜 그런가요? 한번 볼까 하고 꺼내봤다가 몇 페이지 겨우 봤어요. 마치 <The Anecdote>에 대한 반응과 같은 거죠. 그 안에서 쓴 것들이 상상 속의 세상 같더라고요. 어떤 기분으로 썼는지 기억도 안 나는 거죠. 만약 일흔 살까지 살아 있다면 그때 읽을 거예요. 거기서는 ‘나가면 더 잘할 거야’라는 생각밖에 안 해서 래퍼를 그만둔 시기에 읽어보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권수가 많아요? 네. 몇십 권 돼요. 아침 일기를 계속 썼거든요. 눈뜨면 무조건 3페이지씩 쓰는 거예요. 어떤 책을 보고 쓰기 시작한 건데, 조깅 같은 거예요. 눈을 딱 뜨잖아요. 아무리 졸려도 일단 손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거예요. 글을 쓰려고 쓰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을 일단 필터 없이 끄집어내는 거예요.

지금도 쓰나요? 매일 쓰진 않고요, 제가 좀 흐트러졌을 때, 정신머리가 없다 싶을 때 붙잡고 써요.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걸 조깅이라고 불러요. 조깅할 때 별생각 안 하잖아요. 자세를 신경 쓰는 것도 아니고. 근데 뛰고 나면 개운하게 뭐가 팡 떠오르잖아요.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 리스트에는 익숙한 프랭크, 250, DJ 소울스케이프도 있지만 드류버드, 디캡 등의 이름도 있네요. 편곡자엔 커셔스 클레이라는 이름도 있어요. 비트 선택은 어떻게 했나요? 제가 작업하는 방식은 이래요. 저희 회사 대표와 앨범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그가 여기저기에서 어울리는 비트를 받아와요. 그러면 제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에 비트가 이만큼 쌓여요. 그걸 무작위로 틀어보고 전 가사가 나올 것 같은 비트에 녹음해요. 전 그냥 듣고 좋은 걸 해요. 트랩이냐 붐뱁이냐 이런 건 저에게 논쟁거리가 아니에요. 내 것 같으면서도 촌스럽지 않은 게 기준이었어요. 지금 결과에 만족해요. 비트 선택이나 작법이 기존의 답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모든 곡이 다 나름대로 마음에 들어요.

새 앨범 제목이 <이방인>이에요.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느끼나요? 나가서 잘할 거라는 의지, 내 시간을 제대로 살겠다는 다짐으로 처음에 의도했던 제목은 ‘손님’이었어요. 내가 다시 세상으로 나갔을 때 사람들이 나를 손님처럼 반겨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근데 나와 보니, 제가 ‘이방인’ 같은 위치더라고요. 자의든 타의든 2013, 2014년부터 이 신에 밀착돼 있지 않았어요. 객관적으로 보니 제가 좀 떨어져 있더라고요. 일을 별로 안 하기도 했고 안 좋은 일이 터지기도 했고요. 심적으로도 잘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어지럽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사실 고민도 좀 했어요.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이 너무 외롭다는 생각도 했어요. 전 손님이고 싶었는데 현실은 이방인이더라고요.

사람들이 환영해주지 않는다고 느꼈나요? 동료나 친구, 팬들은 충분히 반겨줬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내가 이만큼 했는데 넌 나한테 왜 그렇게 안 해?’라는 생각이 들 때 화가 났었어요. 거기 가서 든 생각은 ‘내가 한 만큼 받는 거다’였어요. ‘어떻게 면회 한번을 안 와?’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그래, 내가 그들에게 정말 진심으로 대했다면 안 왔을 리가 없겠지, 딱 내가 산 만큼 받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전화번호를 바꿨어요. 화가 나서는 아니고 새로 살고 싶다는 마인드 때문이었어요. 약간 웃기기도 하죠. 전화번호 하나 때문에 새로 사는 건 아닌데 말이에요.

이번 <이방인> 앨범을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뭔가요? 개운해지고 싶었어요. 삶 자체를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랩만 생각하고 더 좋은 음악, 더 잘하는 것만 생각하기도 했죠.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결국엔 삶 자체를 신경 써야 그다음 것도 할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생각을 게워내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완성이라는 게 만약 있다면, 제가 의도한 저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게 만약 있다면 <The Anecdote>와 그 모습 사이의 어디쯤일 것 같아요.

어떻게 살고 싶은데요? 제 목표는 늘 더 괜찮게 사는 거예요. ‘Clock’은 출소 후 가장 빠른 시기에 녹음한 곡인데요, 살아남아서 이번 앨범에도 실렸죠. 거기에 그런 구절이 있어요. “clock is ticking. 쫓기지 않고 가지길.” 그렇게 살고 싶어요.

물질적 부를 자랑하는 다른 래퍼들과는 확실히 다르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곡 ‘WTFRU’에도 “진짜 인생과 진짜 음악 생각하다가 목 졸린다”는 대목이 있죠. 그냥 편하게. 마음이 편하고 싶어요. 강박증을 앓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냥 무디게 지나가는 것을 예민하게 포착해내는 직업이라 그런가 싶기도 해요. 무슨 의미로 다른 래퍼와 다른 삶이라고 했는진 알겠는데 전 삶이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저의 디테일엔 이런 경험, 또 이런 경험이 있을 뿐이죠. 직업상 얘깃거리로 공개돼서 그렇지 각자의 사정이 다 있을 거예요. ‘내가 최고야’라고 말하는 요즘의 신나는 음악 안에서도,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불화나 이혼, 돈으로 인해 무시당한 경험이 있는 거죠. 왜 슬펐는지에 대한 얘기 대신 자신이 최고가 될 거라고 얘기할 뿐이에요. 저도 그런 식으로 표현할 때가 있고요. 그런 면에선 다 같다고 봐요.

이번 앨범 가사에 돈 얘기가 많은데, 지금보다 돈이 더 많은 상황을 생각해봤나요? 평생 했죠.

그러면 만드는 음악도, 쓰는 가사도 달라지겠죠? 네. 꼭 돈뿐만 아니라 상황이 달라지면 나오는 음악이 다르겠죠. 그래서 <The Anecdote> 앨범이 저에게 짐인 게, 전 사실 어릴 때부터 항상 돈 얘기를 했거든요. 돈이 음식이고 돈이 잘 곳이고 돈이 입는 옷이잖아요. 어떤 노래에든 돈은 스쳐 지나가죠. 저는 어릴 때부터 속물적인 욕구를 드러내면서 음악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한 푼도 없을 때 천만 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한 달에 그 몇 배의 돈을 번 적도 있고, 돈이 많은데도 행복하지 않은 경험도 해봤어요. 그래서 지금은 균형 있게 잘 조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쿨하고 싶었고 멋있고 싶었지만 그걸 못 해서 들킨 앨범이 <The Anecdote>라고 했어요. <The Anecdote>의 모습을 극복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제가 자꾸 이런 인터뷰를 하다 보니 <The Anecdote>를 욕하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에요. 그 앨범 속 얘기들이 웃기지만은 않은 상황이라 그런 거예요. 상처를 토하듯이 낸 앨범이었어요. 하지만 힘든 일이 지나고 나면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The Anecdote> 음악 스타일이 싫다는 건 아니고, 자기 모순에 집착하고 우울에 꽂혀 있는 인간이기 싫다는 단순한 얘기였죠. 예를 들어 어떤 슬픔과 분노, 자신감 없음이 물이라고 해볼게요. 거기에 빠져 있을 땐 말을 못 해요. 그 물속에서는 말을 해도 공기 방울이잖아요. 뻐끔뻐끔하죠. 적어도 물가까진 기어 나와야 “저기 정말 깊더라, 숨 참느라 죽을 뻔했다”라고 얘길 할 수 있어요. 이제 물가도 지나고 햇빛 쨍쨍한 곳으로 가려는 과정인 거죠.

지난해 공연에서 이제 ‘The Anecdote’라는 노래는 그만 부를 거라고도 했는데요? 어떻게 보면 해선 안 되는 말을 한 것 같기도 해요. 제가 그 당시에 아직도 그 물가에 있어서 한 얘기 같아요.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제가 꼭 그때 감정으로 사는 게 아니더라도 그걸 듣고 청자가 공감한다면 뮤지션으로서 온 감정을 다해서 그 노래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에요. 더 이상 노래 하나하나와 나를 동일시하진 않을 거예요. 지나간 시기니까. 앞으로 다음이 있을 테니까.

곡 ‘손님’에서 “머리가 늘 아프지만 그게 나의 재능”이라고도 했고 이번 앨범의 곡 ‘알아야겠어’에서도 “그 콤플렉스가 나의 엔터테인먼트”라고 했어요. 자신의 결핍이 재능이라고 생각하나요? ‘The Anecdote’ 가사에도 나오는데요, 제겐 아버지가 없다는 게 가장 큰 결핍이었어요. 남들 다 있는데 저만 없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강하게 박혔던 것 같아요. 좋지 않은 방법으로 표출될 때도 있었어요. 편견에 가득 찬 내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고요. 그런 걸 가리려고 세게 얘기하는 것도 원동력일 때가 있고, 그걸 인정하고 나아지려고 하는 것도 원동력일 때가 있어요.

가사를 쓰면 자신의 민 얼굴을 볼 수밖에 없죠. 이번 앨범 가사를 쓰면서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느꼈나요? 제가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어요. 이 쇼 비즈니스 안에 있다 보면 ‘내가 왜 음악을 좋아하게 됐지?’라는 걸 까먹는 순간이 있거든요. 앨범을 내고 나니 이제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알던 건데 새삼 느낀 거죠. 음악이 계속하고 싶더라고요. 계속 잘하고 싶어요.

‘everywhere’에서 “내 상태는 5월의 경산. 또 새벽녘”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공기가 선선해지고 해가 떨어져서 퇴근 후 맥주 마시는 시간, 야외 테이블요. 지금 좀 그런 기분이에요.

 

    에디터
    나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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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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