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 "연기에 몰입하면, 그 상황을 진실로 믿어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천우희 "연기에 몰입하면, 그 상황을 진실로 믿어요"

2019-07-29T17:11:50+00:00 |interview|

천우희는 자신이 평범해서 배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무연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선 벼린 칼을 번쩍, 꺼낸다.

트위드 드레스, 프라다.

롤업 슬리브 셔츠와 클래식 미니 스커트, 모두 지방시.

뷔스티에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블랙 재킷, 와이씨에이치.

슬래시 프런트 롱 슬리브 드레스, 빅토리아 베컴 at 한스타일.

케이프 실크 드레스, 발렌티노. 화이트 슈즈, 트윙클제니.

블랙 홀터넥 니트 드레스, 보테가 베네타.

천우희라는 이름, 늘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좋아해요.

‘계집 희’가 싫어 개명했다는 얘기를 듣고 천우희의 그릇을 짐작해봤습니다. 어릴 때부터 ‘계집 희’를 쓰는 데 불만이 있었어요. 여자라는 틀 안에 갇히는 느낌이잖아요. 우희는 마음에 드니까 한자만 바꿨죠.

천우희는 배포가 큰 사람인가요? 인간관계에서든 감정적으로든 좀생이처럼 굴진 않아요. 큰일일수록 대범한 편이고요. 대형 프로젝트가 갑자기 들어온다거나, 순간적으로 크게 다가오는 일들 있잖아요. 그런 일을 좀 쉽게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자존감은 어떤 편이에요? 스스로를 믿나요? 배우 천우희로 있을 때는 자존감이 강한 편이라고 느껴요. 인간 천우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천우희는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거든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그냥 사람. 예술가들을 보면 특별한 취향이 있거나 기벽이 있거나 뭔가 남들과 다른 매력적인 지점이 있잖아요? 그런데 전 평범해요. 취향도 없고, 호불호도 없고, 흐리멍텅하달까. 하하. 어쩌면 저는, 그래서 연기가 좋아진 거예요.

평범한 인간 천우희가 비범한 배우 천우희가 될 수 있으니까? 네. 연기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평범한 비범함, 그게 제가 추구하는 거예요. “이 일은 나밖에 못 하는 거야, 이 세상에서 난 특별한 존재야”라고 하다가도 “난 되게 하찮고 먼지만도 못 한 존재구나” 싶을 때도 있잖아요? 많은 사람이 그렇겠죠. 오히려 제가 그런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포용하고 공감하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이게 대답이 될까요?

충분히요. 대체 불가능한 개성을 가진 배우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군요? 아마 배우들이 더 그럴 걸요? 겉으로 보이는 게 더 그럴듯하잖아요.

천우희의 얼굴엔 묘한 구석이 있어요. 타협할 수 없는 맹렬한 개성이 있는데, 동시에 일상적인 느낌도 있어서 늘 신기했죠. 자기 얼굴 좋아해요? 네. 전 제 얼굴이 좋아요. 종종 듣는 말이 제 동공이 일반적인 동공보다 크대요. 눈만큼은 좋은 눈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전 관상이나 인상 같은 걸 믿거든요. 살수록 그게 얼굴, 특히 눈에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어떤 배역이든 표현할 수 있는 맑은 눈을 가지고 싶어요.

동공이 크고 약간 붉어요. 전 천우희의 예민해 보이는 얼굴을 좋아하는데, 실제 성격은 어때요? 무던해요. 모나지 않은 성격. 어릴 때부터 스무 살까지 이천 외곽에 살았어요. 산 타고, 계곡에서 가재 잡고, 비비탄 총 쏘고, 벌레 만지면서 자랐죠. 아무 데나 털썩 앉고, 어디서든 금방 잠들고. 배우를 직업으로 삼기에 나쁘지 않은 성격 같아요. 배우는 협업하는 일인데 너무 예민하거나 괴팍하면 스스로 힘들게 할 테니까. 그래서 일을 하는 데 수월한 게 있어요.

많은 감독이 천우희의 얼굴에서 독기, 광기, 응축된 힘을 읽어왔죠. <곡성>의 무명이나 <우상>의 련화처럼 무시무시한 배역들을 맡겼고, 천우희는 그걸 잘 벼른 칼처럼 휘둘러왔고요. 평범하고 모난 데도 없는 사람 어디에서 그런 날선 연기가 번쩍 튀어나오는지 궁금해요. 제 어딘가에 내재돼 있겠죠? 연기란 결국 본인 걸 하나씩 꺼내 쓰는 거니까.

그 에너지는 너무 강렬해서, 어디엔가 원천을 두고 있을 것 같단 말이죠. 선천적인 기질이라든지, 혹은 삶의 굴곡이라든지. 저 그런 이야기 되게 많이 들어요. 하하하. 실은 그런 게 저도 참 궁금해요. 저도 다른 배우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저건 재능일까, 경험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타고난 기질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경험도 중요하지만 기질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제 안에도 그런 기질이 있던 거겠죠. 환경적으로 돌이켜보면, 오히려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독립적인 애여서 혼자 해내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밖의 세계로 나가길 갈망했거든요. 그런데 연기가 탈출구가 된 거예요. 울타리를 벗어난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어요.

속 한번 안 썩이는 착한 딸이었나요? 네. 거의 없었어요. 거의 없었어. 말을 안 들은 적이. 항상 부모님 밑에서 착한 딸로 있다가 서울에 가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관계를 가져보고, 인간 천우희로서 주체적으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연기를 하면 다른 모습이 나오니까, 해방감도 느껴졌죠. 완전히 반대되는 것, 겪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탐구하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달까요. 연기로 그게 풀어져서 다행이에요. 저는 배우라는 직업이 정말 적성에 딱 맞는 것 같아요.

언제 연기를 처음 접했어요? 고등학교 때 연극부였는데, 사실 그냥 친구 따라간 거예요. 친구가 CA 활동을 같이 하자고 해서 들어갔는데 정작 친구는 나가버렸고 저는 남았어요. 그렇게 첫 연극을 하게 됐는데, 무대 뒤에선 심장이 터질 것 같다가 불이 켜지는 순간, 차분해지면서 사악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그 기분. 그 시절 전 어떤 일에든 별 관심이 없어서 ‘난 뭘 하기 위해 태어났을까’라고 고민하던 때였는데, 처음으로 어떤 일에 흥미를 갖게 된 거예요.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시절은 어땠어요? 이 대목에서 많은 분의 기대를 좀 저버리게 되는데. 하하. 제가 무명생활이 길다 보니 많은 분이 기대하는 게 있어요. 고생담이라든지, 피나는 노력이라든지. 사실 전 독립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데 무지했어요. 오히려 운이 좋은 케이스였죠. 작품을 하고 나면 연락이 와서 이어지는. 물론 마음고생을 한 시기도 있었지만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그 정도 고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것도 천우희의 흥미로운 지점인 것 같아요. <써니>의 본드걸 상미로 처음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때를 떠올려보면, 구구절한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연기였거든요. 정작 본인에겐 “나는 배우가 되고 말 거야” 같은 이글이글함이 없었다는 게. 그때까지도 흥미만 있었어요. 일을 해나가면서 점점 애착과 열망이 생긴 거지, 초반에는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죠. 이제 와 돌이켜보면 두 가지 마음이 들어요. 어릴 때부터 너무 간절했으면 지쳐 나가떨어졌을 수도 있겠다. 또 하나는 내가 이십 대를 안일하게 흘려보낸 것은 아닐까. 그 시절이 영원할 줄 알고.

불이 늦게 붙는 스타일이네요. 관심 없는 건 시작도 안 해요. 안중에도 없죠. 하지만 이건 해내야겠다, 생각이 딱 들면 그 순간부터 집요하게 파고들어요. 제겐 <써니>의 상미가 그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한 작품 안에서 한 인물을 표현한다는 게 생각보다 꽤 멋진 일이구나, 연기라는 이 일을 평생의 일로서, 가장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로서 생각해보자.

재미없는 건 못 참죠? 네. 지루하고 고루한 거 싫어요. 그래서 연기가 좋아요. 매번 다르잖아요. 할 때마다 다르고 정답도 없고. 괴로울 때도 있지만 그게 흥미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지점인 거 같아요. 전 취향도, 별다른 취미도 특기도 없잖아요? 뭐 하나 꾸준히 하지 못하는 이유가 지루하다고 생각되면 놔버리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연기는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취미는 연기, 특기도 연기? 하하. 연기할 때 외엔 아무 것도 안 해요. ‘집순이’ 특징이 하루 외출해서 에너지를 쓰면 그만큼 혼자 충전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제가 그래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죠. 특히 작품 들어갈 땐 스스로 곱씹고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해요. 땅을 파고, 또 파고. 어떻게든 끝을 봐야죠.

<곡성>에서 흰 옷을 입고 뚜벅뚜벅 걸어갈 때, <우상>에서 뜯어진 테이프 사이로 형형한 눈빛을 할 때처럼 힘을 발산하는 연기를 할 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가 좀, 카메라가 돌면 같이 도는 스타일이에요. 어떤 연기에 몰입하면 그 상황을 진실로 믿어요. 어떤 연기를 해야지, 이런 게 아니라. 공간, 상황, 그 공기 자체를 다 믿어버려요. 그러면 손만 떨리는 게 아니라 심장이 벌벌 떨리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까지 몰입해요? 단순해서 그런 거 같아요. 단순해서. 아이들이 그럴 때 있잖아요. 엄마가 숨바꼭질로 장난을 치면, 진짜로 울죠. 그런 것처럼 저도 그런 순간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 같아요.

오케이 사인 나면 다시 천우희로 돌아오고? 네. 모니터 보고 음, 저랬구나. 아, 저렇게 하면 안 되겠다. 하하. 센 역할을 많이 맡다 보니 오해를 받을 때도 있는데, 연기는 어떤 기운으로만 하는 게 아녜요. 본능과 직관에만 의존하면 오히려 보지 못하는 게 많죠. 충분히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분석하고, 연기가 끝나고 나서도 스스로 검열하고 곱씹으면서 복기해요. 인물과 나를 안전하게 분리하려고 하고요.

<우상> 때는 그 분리가 잘 안 되어서 힘들기도 했다면서요? 네. 7개월 동안 련화를 품고 있는 것 자체가. <우상>은 워낙 긴 촬영이라, 계속 스탠바이 중이었죠. 일상생활에서도 련화라는 상처 많은 캐릭터를 버려둘 수 없었어요. 전 배우라는 직업이 저를 다층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엔 ‘내 영혼이 다치면서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할머니가 돼서도 배우를 하고 싶은데 이런 일들로 내가 포기해버리면 어떡하지? 처음 겪는 일이라 방법을 몰랐지만 이젠 스스로 보호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거친 연기도 대범하게 하는 천우희가, 자신의 영혼을 지키면서 연기하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은 뭘까요? 자책하지 않는 것. 저는 남 핑계를 절대 대지 말자는 주의거든요. 스스로를 책망하기만 하니, 내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과해져서 절 깎아먹더라고요. 한 작품이 태어나기까지 무수한 과정이 있잖아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제 잘못으로 떠안을 때가 있었는데, 이젠 ‘어떤 상황에서도 난 완벽하게 해내야 돼’라는 생각을 놓았죠. ‘인력으로 안 되는 것도 있구나’라는 걸 알고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임감이 강하죠? 많이요. 어릴 때부터 책임감과 독립심이 강한 애였고 그렇게 컸어요. 부모님은 저희 남매를 희생하며 키우셨는데 오히려 전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께 ‘자연의 섭리는 자식이 크면 둥지를 떠나는 거다’라고 항상 얘기했죠. 자립은 인간이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의존적인 성격이 아니고,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거든요.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게 절 버티게 하는 힘이에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걸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이 있어요? 제가 굉장히 싫어하는 게 있어요. 요즘 말로 ‘내로남불’이라고 하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저는 이중 잣대를 싫어해요. 나와 남에게 모든 기준을 동등하게 적용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죠. 아닌 걸 긴 척, 긴 걸 아닌 척하는 것도 싫고, 변명이나 허세도 싫고, 그냥 그런 행위 자체를 머쓱하고 낯간지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공명정대한 사람이네요. 아이, 그렇게까진.

강한 사람한테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약한 타입이라고 들었는데, 받는 대로 주는 사람인가요? 네, 굉장히 상대적이에요. 만나는 사람마다 제 성격을 다르게 봐요. 최근 새롭게 안 게 있는데요, 전 사람을 많이 관찰하는데 상대방에게 받은 느낌을 제가 똑같이 따라 하고 있더라고요. 이번 작품 <멜로가 체질> 이병헌 감독님이 표정이 없는 편이에요. 그런데 제가 감독님을 대할 때 똑같이 하고 있는 거예요.

천우희는 모든 면에서 잘 닦은 거울 같네요. 전 배우로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걸 못 해요. 멋없는 사람이거든요. 담백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선망할 만한 이미지가 없다 보니 평가 절하될 때도 있죠.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선 연연하지 않기로 했어요.

인스타그램만 봐도 허세가 전혀 없어요. 그래서 전 인터뷰도 어려워요. 다른 인터뷰를 보면 말씀을 너무 멋지게 하시거나 감성이 풍부한 분도 계신데, 저는 일반적인 생각을 평범한 말로 하다 보니 참 멋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거든요. 하지만 그게 저니까. 다른 사람, 사물을 볼 때도 있는 그대로 보려 해요.

예전 인스타그램을 보니 천우희는 ‘탈피’를 하면서 한 번에 쑥 자라는 타입이라고요. 최근의 탈피는 <우상>을 마친 뒤였을까요? 맞아요. 자책하지 말아야겠다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1번으로 생각해야겠다는 것. 두 가지를 알게 됐죠.

원래 나와 타인에게 공평한 잣대를 가지려는 사람이었다면, 이젠 적어도 자신을 우선순위에 둔 건가요? 네. 일뿐 아니라 집에서도 가족이 우선이었고, 나만 호의호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사치도 안하고 관리를 받으러 다니지도 않았어요. 항상 ‘나중에, 나중에’라고 생각해왔는데 스스로 그렇게 한 건데 나중에 원망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후부터 내가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물욕이 없어요? 예전엔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없는 것 같지 않아요. 다만 견물생심이다 보니 관심을 처음부터 접어둔 게 아닐까 해요.

배우이자 뷰티 브랜드 앰버서더로서도 활약하는 셀럽으로서, 신기한 말이네요. 물론 배우로서 누릴 땐 되게 좋아해요. 오늘 같은 화보 촬영도 적극적으로 즐기죠. 제가 제 안에서 새로운 모습들을 끄집어내고, 또 다른 누군가가 된다는 건 연기처럼 즐거운 일이니까. 하지만 그와 별개로 요즘 드는 생각은요, 배우라는 건 환상을 파는 직업이잖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제 삶에까지 환상을 부여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남들은 꾸밈없는 제 모습을 보고 실제로 보니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실망하더라도 저는 그냥 저대로 지내고 싶어요.

예능에 잘 나오지 않고, 본업에 충실한 영화인 천우희가 ‘희희낙낙’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공개했을 때 의외였어요. 그런데 막상 보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더라고요. 그렇죠? 저와 가까운 스태프들과 꾸리는 콘텐츠라 편안한 모습이 그대로 나와요.

7월에 방영하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의 ‘임진주’는 기존에 천우희가 맡아온 역할들과는 달리 밝고 발랄하죠? 천우희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나요? 발랄을 넘어 ‘똘끼’가 충만하죠. 저를 완전히 다르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맡았던 인물들이 내적으로 침잠하는, 말보다는 수면 아래 있는 표정과 눈빛으로 연기했다면 이번엔 말로 다 풀어내요. 만담 수준의 말맛이 있죠. 처음엔 이걸 어떻게 하지, 싶었는데 이젠 제가 더 즐기고 있어요. 감독님부터 스태프들까지 또래라 현장이 즐겁고, 영화보다 드라마 작업이 체력적으로 더 힘들 수 있지만 긍정적인 기운을 많이 쓰니 힘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새로운 도전이지만 참 편안해요.

그런 천우희가 실제 천우희와 훨씬 가까울 것 같기도 하고요. 맞아요. 영화는 연출가의 통제가 필요하고 저도 완벽하게 분석해서 정해놓고 하는 편인데, 드라마는 순간순간 제 것을 꺼내 쓸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제가 제일 궁금한 건 지인들의 반응이에요. 지인들이 “야, 너 같아”라는 얘기를 할지 “야, 너 왜 그래? 너 같지 않아”라고 할지.

대개 스크린에서 센 역할을 해왔다 보니, 시청자들도 궁금할 걸요? 저도 제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요. 하하. 코미디 정말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연애 감정을 연기하는 거, 설레고 재미있더라고요? 사심 채우기랄까? 흠, 이런 거 되게 좋네, 앞으로도 해야겠다, 이랬어요. 하하.

이번이 멜로가 처음은 아닌 거 알아요? 천우희가 연기한 많은 인물을 사랑하지만, 제일 설렜던 건 영화 <뷰티인사이드>에서 “제가 김우진이에요”라고 한 순간이었어요. 그렇네요, 키스 신도 했었네요? 저도 그 배역 참 좋았어요. 수많은 우진 중 하나였지만 자기가 우진인 걸 밝히는, 무거운 책임을 진 우진이잖아요? 마음에 많이 남은 작품이에요.

여자 팬 많죠? 네. 팬미팅 가면 7 대 3정도? 왜 어린 팬이 많나 했더니, 명절에 TV에서 <써니>를 방영해줄 때마다 ‘입덕’한대요.

김혜수 씨, 엄정화 씨와 돈독하다면서요? 의외죠? 주변에서도 신기하게 생각해요. 감사하게도 두 선배님이 저를 너무 예뻐해주세요. 모이면 별별 얘기 다 하는데, 배우로서, 여자로서 공감하는 점들이 많다 보니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죠. 또 다른 마음 깊이 감사하게 생각하는 선배님은 전도연 선배님이에요. 언젠가 제게 말씀하셨어요. “우희야, 그때는 그때의 네가 그러길 원했던 거야.” 그때의 결정은 그때의 네가 한 것이기 때문에 틀린 게 아니라고 말씀해주셔서 많은 위로가 됐죠. 저는 참 인복이 많아요.

그러고 보면 술자리에서 항상 오래 있고, 배우 테이블에만 있는 게 아니라 스태프들과도 곧잘 드시던데요. 듣자하니 여성 배우 3대 주당이라고…. 앗하. 이거 갑자기 정말. 왜 이렇게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사실대로 말할게요.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약한 편은 아녜요. 쫑파티나 회식 자리는 일자리고 선배님들도 계시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마시거든요. 그렇게 아침까지 있다 보니까 엄청난 주당이라고 소문이. 하하하.

주량이 센 건 아닌데 오래 있는 거다? 어쨌거나 빼지는 않는다? 주량도 아주 약한 건 아니고, 아주 주당까진 아니고, 나쁘지 않게 마셔요. 네. 빼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하하.

지금은 천우희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지점일까요?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어요. 요즘 제가 주변에 많이 하는 말인데요, 한석규 선배님이 최민식, 신구 선배님과 영화 <천문>을 찍을 때 신구 선배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너희가 이제 꽃봉오리가 피었구나.” 그 얘기를 전해주시면서 선배님도 이제야 연기가 뭔지 좀 알 거 같다고 하셨죠. 제가 그랬어요. “선배님, 그러면 전 발아도 안 된 거예요? 아직도 땅속에 있는 거네요?” 지금까지 했던 고민들, 불안감이 다 당연한 거구나, 이 나이에 겪는 것들이구나, 내가 부족한 것도 당연한 거다, 점점 나아지면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코미디 다음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액션 영화요. 마블 영화도, <엽문> 시리즈도 좋아해요. CG가 동원되는 액션도, 전통 무예도 해보고 싶어요.

잘 어울려요. 마블로 치자면 <어벤저스>보단 <엑스맨>에 가까운 느낌인데…. 아이언맨이 최고죠.

그럼 아이언맨을 합시다. 마침 차기 아이언맨 자리가 비어 있네요. 하하, 좋아요! 제가 해야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