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여름 바캉스 최악의 옷차림

2019.07.25GQ

아버지 옷장에서 꺼낸 듯한 벙벙한 수트도, 떡진 머리도 힙한 바이브로 인정 받으면 패션이 되는 세상이다. 뭘 입어도 스웨그가 되는 이 시대에도 차마 자비를 베풀 수 없는 최악의 여름 옷차림은 존재한다.

회색 겨땀여지도
무더운 여름에 땀이 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 통풍이 잘 되는 소재를 택하거나, 땀의 흔적을 가릴 수 있는 흰색이나 검정색을 택하는 것은 패션을 논하기 이전에 챙겨야할 센스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덥고 습한 이 여름에 굳이 딱 붙은 회색 티셔츠를 선택해 모두에게 내 몸에서 땀이 지나가는 흐름을 포착해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여름 휴가 때 마주치는 회색 ‘겨땀여지도’는 정말 최악이다.
장영주(공간 디자이너)

밀리터리 룩 애호가
음악 페스티벌이나 콘서트 가는 길에 목격하게 되는 특정 옷차림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군복 패션’이다. 땀이 그대로 고여 찰 것 같은 튼튼한 워커,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카모플라쥬 긴 바지, 검정 니트에 버킷 햇 여기에 선글라스와 군번 줄을 연상시키는 목걸이까지. 그 차림 그대로 입소를 해야할 것 같은 밀리터리 룩은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이성희(페스티벌 기획자)

내겐 너무 과한 브이넥
영화 <독전>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는 류준열을 두고 이런 표현을 한다. “이 친구, 넘치는 게 없어.” 뭐든 과하면 모자란만 못하다는 건 옷 차림에서도 통용된다. 적당한 브이넥은 목도 길어보이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가슴팍을 너무 과도하게 판 브이넥은 남자든 여자든, 시선 둘 곳을 잃게 만든다. 특히나 일명 ‘KCM 스타일’로 불리는 깊이 파인 브이넥(왠지 모르지만 총알에 뚫린 듯 구멍이 나있다)과 목걸이 세트는 쓰지도 않은 ‘본더치 모자’의 착시를 불러일으킬 정도다.
박혜민(영화 홍보 마케터)

댄디한 클론들
지난 여름 부산 해운대 맥도널드 앞 삼거리에서 마주친 클론들에 대한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린넨 소재의 흰색 긴팔 셔츠, 베이지 색 계열의 반바지, 그리고 로퍼까지. 횡단보도를 건너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마치 착장을 맞춰 입은 듯 저 차림새였다. 물론 너무 간편한 차림으로 성의없어 보이고 싶지 않은 그 마음, 이해는 한다. 하지만 소위 ‘댄디’한 느낌을 주고 싶단 마음이 만들어낸 수많은 클론들을 마주치는 일은 참 곤혹스럽다. 마치 가을에 트렌치코트와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못 입게 되는 이유와도 같다.
이재승(회사원)

깃 세운 폴로 셔츠
중학교 때부터 깃 세운 폴로 셔츠는 참 이상한 멋이라고 생각했다. 방과 후 활동이나 학원 등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었던 남학생들의 깃 세운 폴로 셔츠는 성인이 되어서도 종종 보이는 아이템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상하게 느껴진다. 폴로 셔츠는 청바지와도 치노 팬츠와도 잘 어울리는 패션 치트키 같은 것이지만 깃을 세우는 순간 스타일을 망쳐버린다고 생각한다. 목이 짧아 보일 위험까지 굳이 감수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김준수(건축가)

급진적인 문구가 적힌 티셔츠
브랜드 로고가 큼지막하게 적힌 티셔츠도 별로지만 뜬금없이 과격한 문구가 적힌 티셔츠는 더 별로다. 허용 가능한 수준은 ‘Smile’ ‘Happiness’ 정도의 밝고 긍정적인 단어 정도. ‘This too shall pass away’도 명상 차원에서 허용하겠다. 하지만 ‘I don’t give a fuck’ 같은 지나치게 급진적인 문장이나 켄드릭 라마 팬도 아니면서 ‘Damn’ 같은 단어를 적은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건 괜히 내가 다 부끄럽다.
조은지(대학원생)

도심 속 페도라
휴양지나 바닷가에서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페도라를 선택했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도심 한 가운데서 페도라를 쓰는 것만큼은 말리고 싶다. 생각보다 페도라가 어울리는 사람도 많지 않고, 또 페도라를 위해 전반적인 차림을 ‘휴양’에 맞춰야한다는 부담감도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피에서 땀이 많이 배출되는 사람들은 오히려 머리에 뭔가를 쓰고 더 더위를 타는 경우도 있고. 테헤란로에서 페도라를 쓰고 관광객처럼 보이고 싶다면 모르겠지만, 왠만하면 머리엔 아무것도 쓰지 않길 권하겠다.
김은서(회사원)

과도한 배기 팬츠
배정남이 유행 시킨 극도의 와이드 핏을 자랑하는 배기 팬츠. 일명 항아리 바지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어지간해서 어울리는 사람을 못 봤다. 대신 엄청나게 멋져보이고 남들과 다른 나만의 룩을 추구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만은 잘 알겠다. 다만 멀리서보면 다리가 두 뼘 정도로 인식될 수 있다는 걸, 부디 착용 전에 염두해줬으면 한다.
노수영(브랜드 PR)

    에디터
    글 / 서동현(프리랜스 에디터)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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