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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인기 있는 수입 SUV54

2019.08.13GQ

뚜렷한 명분 없이 태어난 차는 없다. 프리미엄 이미지 굳히기에 나선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프랑스식 엔지니어링을 내보이려는 시트로엥 C3 에어크로스.

RANGE ROVER EVOQUE D180
크기 L4371 × W1904 × H1649mm
휠베이스 2681mm
공차중량 1891kg
엔진형식 I4 디젤
배기량 1994cc
변속기 9단 자동
서스펜션 (앞)퍼슨 스트럿, (뒤)멀티링크
타이어 (모두)235/50 R 20
구동방식 AWD 0 → 100km/h 9.3초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3.9kg·m
복합연비 11.9km/l
가격 6천7백10만원부터

이름값의 무게
자격이 의문이었다. 랜드로버 최상위 모델의 이름을 공유하는 게 합당한지. 레인지로버의 성공에 편승하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작명법에 대한 거창한 해석과 의미 부여를 비웃기라도 하듯,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그로부터 약 8년이 지났고, 세대를 변경한 두 번째 이보크가 나왔다.

크기는 변하지 않았다. 불독 같은 체형도 그대로다. 길이가 짧고 높이가 낮은 반면 폭은 상대적으로 넓어 땅에 바싹 붙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차를 처음 마주했을 땐 반 체급 정도 크기가 커진 것처럼 보였다. 세세한 디자인의 조합이 착시 효과를 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테일램프 사이를 검게 장식하고, 그 위에 나열한 글자 ‘RANGE ROVER’는 차를 더욱 넓어 보이게 한다. 실내 공간은 실제로 많이 여유로워졌다. 휠베이스가 21밀리미터 늘어난 덕택인데, 체감하는 수치는 그 이상이다. 뒷좌석 무릎 공간의 확장은 물론, 글로브 박스와 컵홀더를 비롯해 짐을 놔둘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부쩍 세심하고 널찍하게 마련했다.

이보크는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모델이다. 지금 국내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이보크가 1만 대를 훌쩍 넘는다. 구매자의 대부분은 랜드로버를 처음 구입하는 사람들이었다. SUV의 실용성은 간직하면서 디자인은 독특해야 하고, 진입 장벽은 상대적으로 낮은 게 유효했다. 하지만 전과 같은 전략으론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SUV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경쟁해야 할 모델이 수없이 많아졌다. 랜드로버가 이번에 택한 전략은 ‘상향 평준화’다. 레인지로버 시리즈 중에선 가장 하위 모델이지만, 상위 모델에서 ‘발췌’해 심은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주행을 시작하면 문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도어 핸들, 센터페시아의 디스플레이 2개로 차량 기능을 통제하는 시스템도 벨라를 비롯해 상위 모델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다.

주행 보조 장치도 거의 모두 이보크로 대물림됐다. 후방 교통 감지, 사각지대 감지 등 사고 위험을 낮추는 데 일조하는 전자장비가 풍성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랜드로버에서 ‘클리어사이트 그라운드뷰’라고 이름 붙인 기능이다. 앞바퀴가 현재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디스플레이를 통해 비춘다. 보닛을 투과해 전방 상황을 내다보는 듯하다. 전방 카메라에서 한 단계 더 진보한 기능이다. 오프로드나 장애물을 돌파할 때 아주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차로를 벗어나려고 하면 컴퓨터가 개입해 진로를 바로잡는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도 내장되어 있지만, 완성도는 조금 아쉽다. 주행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은데도 길이 급격하게 휘어지면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차로를 벗어나고 만다. 어디까지나 주행을 보조하는 기능이지만, 조금만 더 세심했더라면 훨씬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주행 성능은 차의 용도에 초점을 맞춰 한 단계 성숙했다. 두툼한 토크로 묵직하게 밀고 나가는 맛이 있다. 나긋나긋한 서스펜션과의 조합으로 운전자까지 침착하고 여유롭게 만든다.

이제 모델명에 의문을 던질 일은 없어 보인다. 시트의 만듦새, 착석감, 도어를 여닫을 때의 느낌, 오디오의 품질 등 흔히 ‘감성 품질’이라고 말하는 영역 또한 상당히 개선됐다. 레인지로버라는 이름이 프리미엄 랜드로버를 의미하는 말로 확장되었다면, 이보크는 자격이 충분하다.

두 개의 터치식 디스플레이를 배치해 버튼이 사라진 센터페시아.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앞바퀴 주변 상황을 디스플레이에 띄우는 기능.

파노라믹 선루프를 달아 내부 공간에 개방감을 더했다.

CITROËN C3 AIRCROSS SUV
크기 L4160 × W1765 × H1650mm
휠베이스 2605mm
공차중량 1375kg
엔진형식 I4 디젤
배기량 1499cc
변속기 6단 자동
서스펜션 (앞)맥퍼슨 스트럿, (뒤)토션빔
타이어 (모두)215/50 R 17
구동방식 FF 최고출력 120마력
최대토크 30.61kg·m
복합연비 14.1km/l
가격 2천9백25만원부터

기묘한 이야기
시트로엥은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파격이라고 해야 할지, 시트로엥만의 감성이라고 해야 할지, 머리를 ‘블루스크린’ 상태로 빠뜨리는 요소가 하나씩은 꼭 들어 있었다. 가장 최근작은 C4 칵투스였다. 차체 옆면에 ‘에어범프’라는 플라스틱 판을 붙였다. 색깔도 선택할 수 있어서 차를 투톤으로 꾸밀 수도 있었다. 신개념이었다.

자동차는 문화권마다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진다. 지형, 날씨 등 지리적인 이유도 이를 좌우하는 조건 중 하나다. 에어범프는 프랑스의 좁은 길 때문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콕’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되었고, 프랑스 차의 공통적인 특징인 커다란 선루프는 자연 채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라이프스타일 때문이다. 관점의 차이는 편의사양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푸조 308의 앞좌석은 수동으로 위치를 조정해야 했지만, 엉뚱하게 안마 기능이 들어 있었다.

C3 에어크로스가 나왔다. 해외에선 2017년에 출시됐으니 국내 데뷔는 조금 늦은 셈이다. 헤드램프와 주간주행등이 완전히 분리된 디자인과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보닛이야 시트로엥에서 이미 자주 시도한 바 있어서 낯설 게 없었다. ‘빵빵’보다 ‘뽕뽕’에 가까운 경적음도 그렇고. 하지만 쿼터글라스에 붙은 ‘빛’ 모양 장식은 전례를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스티커도 아니고 도색을 했다. 시트로엥 측에 용도를 묻자 ‘멋’이라는 간단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내부까지 시각적 기교에 치중한 건 아니다. 뒷좌석엔 특히 ‘이스터 에그’처럼 곳곳에 실용적인 설계가 숨어 있다. 고급 대형 세단에서나 찾을 수 있는 윈도 블라인드가 뒷좌석에 설치되어 있다. 백미는 앞좌석처럼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시트다. 레일 위에 달린 시트를 움직이면 트렁크 공간을 더 영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운전자는 대개 가죽 시트 커버를 선호한다. 하지만 유럽에선 직물 커버도 여전히 널리 사용한다. 커피라도 쏟으면 얼룩과 함께 마음의 상처가 남지만, 땀이 덜 차고 푹신하다는 장점이 있다. C3 에어크로스엔 직물 시트가 달린다. 입체적인 구조로 몸을 꼭 붙들어 매기보단 편하게 기댈 수 있는 형태와 직물이 어울려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취향을 위해 대안도 마련했다. 아직 ‘시트로엥식 시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오렌지색 가죽으로 씌운 시트를 선택 사양으로 고르면 된다.

120마력을 내는 1.5리터 디젤 엔진은 비교적 평범하다. 변속기도 영리한 편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주행에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힘이 달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공인된 것보다 훨씬 높은 연비를 기록한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파워트레인이라고 보고 싶다.

물론 몇몇 단점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원가 절감을 위해 할로겐 헤드램프를 사용했다. 야구공만 한 파킹브레이크 손잡이와 무선 충전기가 상당히 많은 공간을 차지해 앞좌석 사이에 컵홀더가 없다. 성능에 관계 없이 스티어링 휠 뒤에 달리던 패들시프트도 빠져서 괜스레 ‘줬다 뺐은’ 것 같다. 하지만 시트로엥식 감성에 동의한다면, 농도 짙은 개성을 원한다면 C3 에어크로스는 제법 구미가 당기는 자동차가 될 수 있다. 수입차 중에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도 눈길을 끄는 요소가 될 것이다. 지금 국내에서 3천만원 아래로 구입할 수 있는 수입 SUV는 찾아보기 힘드니까.

블라인드를 내린 것처럼 도색한 윈도. 가장 큰 효과는 ‘시선 집중’이다.

차체 색깔에 따라 아웃사이드 미러 커버, 루프랙에 배색을 한다.

대시보드를 시트와 같은 색깔의 직물(선택에 따라 가죽)로 덮는다.

    에디터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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