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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주방의 모든 것

2019.08.21GQ

어디서든 요리하고 어디서든 나눠 먹는다. 공유 주방과 함께라면 요식업 스타트업도, 셀프메이드 브런치도 문제없다.

“네가 해도 이것보단 맛있을 것 같은데?”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종종 들었을 말이다. 요리를 공부하고, 그 언저리 어딘가에서 일하게 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평소에도 지인들과 함께 집에서 밥을 해 먹거나, 만든 음식을 지인들의 손에 쥐여주곤 한다. 손이 워낙 커서 한번 만들었다 하면 거대한 무쇠 냄비를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음식을 한번 팔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툭툭 차고 올라오기도 한다. 을지로, 홍대 등지에 새로 오픈해 아직 미장 마감도 덜 된 듯한 가게에서 풋내 나는 성긴 음식을 먹을 때면 ‘나도 음식을 한번 팔아볼까?’라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진다.

음식 파는 일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라구 소스와 파스타를 파는 팝업 레스토랑을 이틀간 운영해보기는 했다. 약 130인분의 라구 소스를 끓였고, 80명 정도의 손님을 만났다. 다시 팔아달라는 요청을 받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손사래를 치고 만다. 팔아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것은 대부분 불법이다. 식품 법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던 중 작년 말부터, ‘공유 주방’이라는 단어가 SNS를 통해서 흘러 들어왔다. 그로부터 약 1년 만에 위쿡을 필두로 심플키친, 경기권에서는 처음으로 오픈 예정인 공유 주방 서비스 개러지 키친까지 곳곳에 공유 주방이 생기고 있다. 사업형 공유 주방은 위생관리가 되기 때문에 이곳에서 식품을 제조하면 외부에 판매할 수 있는 허가가 주어진다. 뿐만 아니라 저렴한 식자재 유통사를 소개 받을 수 있고 무료 컨설팅을 받을 기회도 함께 제공한다.

공유 주방은 크게 딜리버리형과 제조형으로 나뉜다. 딜리버리 형 공유 주방은 각각의 주방이 구획이 나뉘어 해당 호실을 계약하면 그 위치에 개별 사업자 등록이 가능하다. 간단하게 주방이 꾸려진 공간을 임대하는 것이다. 이 경우 유통 채널을 통한 배달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매장 없이 배달 전문 음식점을 창업하고 싶은 경우에 적합하다.

제조형 공유 주방은 넓은 주방 공간을 일정 시간 동안 임대해서 사용하는 구조로, 비용 부담은 딜리버리형보다 적은 편이지만 현행법상 즉석판매업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유통 채널을 사용한 제품 판매가 불가능하다.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 및 전달하는 것이나, 푸드 트럭의 전처리, 메뉴 개발 등으로만 운영이 가능한 셈이다. 딜리버리형 공유 주방이 아니라면 음식을 만들어 파는 데 생각보다 더 제약이 많은 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쿡은 현재 식약처와 규제 관련 법안 개정을 논의 중이고 업계의 반응 또한 긍정적이라 빠르면 9월 중에는 규제가 개선될 것이라 예상한다. 공유 주방을 통해 음식을 팔아볼까 하던 생각은 규제 개선 이후로 미뤄두기로 했다.

음식을 팔아보고 싶었던 이유는 돈보다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내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언제나 큰 감동이었다. 물론 꼭 음식을 팔아야만 그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최근에 생겨난 프라이빗 공유 주방은 그런 욕구를 실현하기에 알맞았다. 후암주방, 마이키친, 남구로븟 등 개인이 언제든 공간을 대여해 사용할 수 있는 프라이빗 공유 주방이 비슷한 이유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보통은 공간이 협소해 3~4명이 최대지만 10명 이상 수용이 가능한 공간도 있다.

그중에서도 프라이빗 공유 주방 ‘도시산장’은 10명 이상의 대규모 모임이 가능한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모았다. 평일 오전, 프리랜서들이 간밤의 업무를 마치고 아직 침대에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우리도 광합성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밖으로 끌어냈다. 당일 오전 전달되는 번호 키를 누르고 들어가니 통유리 문이 나타났다. 벤치와 의자가 놓인 테이블 하나와 아일랜드형 주방, 한쪽엔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소파가 놓인 공간도 있다. 넓지는 않지만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그래도 공유 ‘주방’인데 그에 비해 주방이 조금 작지 않나 싶은 마음으로 구석구석 둘러보았더니 입꼬리가 저 혼자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슬쩍 올라갔다. 전자레인지와 밥솥은 물론, 죽은 빵도 살려낸다는 토스터, 홈 카페 영상에 나오는 예쁜 드립 커피 도구, 모든 것을 무지막지한 힘으로 갈아준다는 믹서, 비싼 주물 냄비에 미니 컨벡션 오븐, 인덕션, 얼음이 쏟아져 나오는 제빙기에 심지어 업소용 냉장고까지. 요리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을 꿈의 주방이다.

내 집 주방을 두고 굳이 남의 주방을 빌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여러 가지 음식을 해 먹거나 사서 함께 나눠 먹고 싶은데 집에 공간적 여유가 없다거나 가족이 함께 산다는 제약이 있을 때, 공유 주방은 좋은 대안이다. 공간적 여유가 된다 하더라도 가족의 규모가 작아지는 요즘 네다섯 명의 식기를 가지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음식을 예쁘게 차렸는데, 그릇과 커트러리가 모자라 짝이 안 맞는다면? 상상만 해도 고통스럽다. 한 상 차림의 아름다움은 대단한 음식이 아니라 통일된 식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식기가 부족해 아무거나 꺼내 먹게 되면 그 테이블의 분위기는 포기해야 한다. 프라이빗 공유 주방의 장점 중 하나는 최대 수용 인원만큼의 식기가 모두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집에 이런 시설과 식기를 모두 구비해놓으려면 꽤나 큰 집이어야 할 텐데, 그런 집을 살 여유는 없어도 이런 공간을 빌릴 여유쯤은 있으니까.

도시산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드립 커피를 내렸다. 친구들과 함께 마실 커피를 잔에 담아놓고 역시 이런 주방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 주방은 어떻더라. 음, 역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간단한 광합성용 브런치가 목적이라 토마토와 바질을 올린 오픈 샌드위치와 몇 가지 여름 과일, 그리고 샐러드를 준비하기로 했다. 새벽에 배송을 신청해 문 앞에 배달된 식재료를 상자째 주방으로 옮겼다. 과일과 채소를 씻을 볼도 넉넉하게 구비돼 있었고, 요리에 필요한 도구들도 준비돼 있어 수월하게 요리를 할 수 있었다. 소금, 후추 등 간단한 향신료들도 이미 적절한 위치에 놓여 있어 요리 중에 급히 달려 나갈 필요도 없었다. 20분쯤 흘렀을 즈음 친구들이 속속 도착했고, 손이 많아서 금방 상을 차렸다. 볕이 잘 드는 공간에서 한낮에 브런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주방을 빌렸다기보다는 레스토랑을 대관해 우리만의 시간을 호화롭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예약한 시간이 끝나가자 우리는 도시산장에서 쓴 물건들을 씻거나 갈무리해 정리하고, 몇 가지 쓰레기를 밖에 내어놓고, 커피를 한 잔씩 내려 마시며 마지막으로 빠진 것이 없나 공간을 둘러보고 문을 잠근 후 열쇠를 번호 키가 달린 키 박스에 넣었다. 한낮의 여유를 즐긴 우리는 거기서부터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많은 사람과 함께 식사해본 적이 있다면, 집에서 수많은 사람이 훅 빠져나갔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을 알 것이다. 밤 12시가 지나자 갑자기 현실로 돌아와 버린 신데렐라 마냥 말이다. 방금까지 웃음으로 가득 찼던 거실에 갑자기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치워야 할 쓰레기와 설거짓거리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럴 때면 방 한구석의 빈 백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보며 뒷정리를 미룰 데까지 미루게 된다. 혼자 산 지 오래되었지만 그럴 때마다 엄습해오는 ‘역시 인생은 혼자야’라는 감각은 적응하기 쉽지 않다.

공유 주방을 사용한 후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나도 함께 그 공간에서 나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누구의 공간도 아니기에 즐거운 시간이 끝나고 굳이 나 혼자 급격하게 현실로 돌아올 필요가 없다는 것. 남의 힘으로 꾸며진 공간에서 우리는 모두 신데렐라 이야기 속의 조연이 된다. 파티에 초대받았고, 한껏 즐긴 후 그 웃음을 머금고 그대로 퇴장하면 될 뿐이다. 호스트가 겪어야 하는 남은 현실적인 일은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그것이 이 시대의 새로운 ‘공유’의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에디터
    프리랜스 에디터 / 김나영
    포토그래퍼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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