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 바우쉬와 페터 팝스트가 만든 춤의 공간들 | 지큐 코리아 (GQ Korea)

피나 바우쉬와 페터 팝스트가 만든 춤의 공간들

2019-08-27T17:42:20+00:00 |culture|

전시 공간 피크닉에서 한창 진행 중인 <페터 팝스트: White Red Pink Green- 피나 바우쉬 작품을 위한 공간들>의 색채 가득한 공간에 다녀왔다.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와 무대 미술가 페터 팝스트의 협업으로 태어난 공간과 춤에 관한 이야기.

 

“춤, 춤이 아니면 우리는 길을 잃는다(Dance, dance, otherwise we are lost).”

피크닉(piknic)에서 10월 27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페터 팝스트: White Red Pink Green- 피나 바우쉬 작품을 위한 공간들>의 첫 공간 ‘화이트’에서 피나 바우쉬의 저 말을 떠올렸다. 피나 바우쉬의 <춤추는 저녁 Ⅱ>(1991) 무대 공간을 옮겨 온 그곳엔 눈밭이 펼쳐져 있었다. 길을 잃을 만큼 넓은 공간이 아닌데, 묘하게도 그곳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눈밭 위에 빼곡히 선 자작나무를 빙글빙글 피해 걸어야 하고, 소금을 채워 만든 눈밭은 디딜 때마다 발 아래로 무너져 내려 다음 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또 유리를 덧붙인 천장 덕분에 머리 위 뒤집어진 세계를 탐색하려면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야만 한다. 무대 미술가 페터 팝스트의 공간 안에서 곧게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 공간을 음미하기 위해서든, 벗어나기 위해서든 우리는 그곳에서 춤을 출 수밖에 없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그녀에게>(2002)는 피나 바우쉬의 춤 <카페 뮐러>(1978)로 열리고 <마주르카 포고>(1998)로 닫힌다.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피나 바우쉬를 이 영화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후 기회가 될 때마다 그녀가 예술감독 및 안무가로 활동한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춤을 보러 다녔다. 국가/도시 시리즈 중 서울을 주제로 한 <러프 컷>(2005), <카페 뮐러>와 <봄의 제전>(1975), <보름달>(2006), <스위트 맘보>(2008)를 무대로 봤고, 영화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2009)와 <피나>(2011)는 스크린으로 봤다. 공연을 꽤 열심히 찾아다닌 건 <카페 뮐러> 속 피나의 모습에 첫눈에 매혹된 탓이고, 그녀의 ‘춤’ 혹은 ‘몸짓’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이 이상하게 위안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대를 보는 게 즐거웠다. 나무 의자와 탁자로 가득 찬 <카페 뮐러>나 흰 커튼을 길게 드리운 <스위트 맘보>에는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었고, 흙 위에서 춤추는 <봄의 제전>과 물 위에서 춤추는 <보름달>에는 거친 자연이 놓여 있었다. 피나 바우쉬와 부퍼탈 무용단은 춤에 연극적 요소를 더한 ‘탄츠테아터’(Tanztheater)를 추구한다. 무용수의 몸짓이 이들 춤의 첫 번째 언어라면 ‘연극적 무대’는 그다음 언어쯤 된다.

페터 팝스트는 1980년 <1980>으로 피나 바우쉬와 첫 작업을 진행한 후 그녀가 세상을 떠난 2009년까지 29년간 무대 작업을 도맡아 했다. 이들의 협업은 공연예술계에서 손에 꼽을 만큼 길게 이어졌다. 그는 1980년 1월 세상을 떠난 무대 디자이너 롤프 보르치크의 역할을 훌륭히 이어받아 <카페 뮐러>를 포함한 대다수의 작품에 무대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1980>의 무대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대를 싹 비운 다음에 진짜 풀로 덮는다면, 극장은 초원 위에 있는 셈이 된다. 풀 냄새가 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곤충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겠지. 피나에게 이 아이디어가 담긴 사진을 보여주자 무척 좋아했다.” 이번 전시에서 <1980>은 옥상에 ‘그린’으로 재현되는데, 잔디가 자라는 공간 한 켠에 사슴과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그곳엔 풀 냄새가 떠돌고 곤충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구름과 바람이 오간다.

피나 바우쉬와 페터 팝스트의 무대에서 ‘자연’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물과 흙, 돌과 꽃, 풀과 선인장이 무대 위로 표현되고 때로는 동물이 모형으로, 또 실제 그대로 무대에 올랐다. 극장이라는 인공의 공간 안으로 들어간 자연은 무대에 생기를 더하는 역할을 하기도, 혼란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공연을 위한 ‘틀’로 짜인 무대에서 자연은 자주 통제하기 힘든 것, 불가해한 것으로 얼굴을 바꿨기 때문이다. 흙 위에서, 물 위에서, 풀 위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들은 자연과 어우러지기 이전에 먼저 그것과 맨몸으로 대결해야 한다. 내게 부퍼탈 무용단의 움직임이 춤이 아닌 몸짓으로 먼저 다가온 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핑크’ 공간에 재현된 <카네이션>(1982)의 수백 송이 카네이션도 마찬가지의 역할을 한다. 무대 위를 한가득 채운 카네이션은 무용수의 움직임을 어쩔 수 없이 방해할 수밖에 없다. 페터 팝스트는 “피나가 구부러져 망가진 카네이션을 보고 꽃들을 다시 곧게 세우는 ‘카네이션 위로하기’라는 장면을 덧붙여 만들었다”고 했다. 전시장의 ‘핑크’ 공간은 ‘화이트’와 마찬가지로 관람객을 저절로 춤추게 만들었다. 카네이션을 밟지 않고 그곳을 횡단하기 위해, 혹은 목이 꺾인 카네이션을 다시 꼿꼿이 세우기 위해 우리는 지그재그로 걸음을 딛고, 허리를 굽히고 펴야 한다. 또 이곳은 천장이 아닌 벽면에 유리를 덧대 카네이션 들판을 벽 바깥까지 확장하고 있다.

‘움직임의 전시’는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공연 사진을 모아둔 <Peter for Pina>로도 이어졌다. 이 공간에서 대형 캔버스에 프린트 된 수십 장의 스틸 컷은 벽이 아닌 공중에 매달린 채 천천히 제자리를 맴돈다. 서로 다른 속도로, 제각각의 방향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관람객은 캔버스의 틈새를 살펴 가며 움직여야 하는데, 때때로 길이 가로막히면 걸음을 멈추고 캔버스가 회전해 길을 터주길 기다려야만 한다. 한 장의 사진을 오래 응시하기 위해선 그 사진과 함께 빙그르르 도는 수밖에 없는, 이곳의 전시는 말 그대로 ‘춤의 동선’으로 가득 차 있다. ‘레드’ 공간과 각 전시장을 잇는 계단들은 국가/도시 시리즈로 채워졌다. ‘레드’ 전시장에는 피나 바우쉬가 홍콩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유리창 청소부>(1997)가 재현됐다. <유리창 청소부> 속 5만 송이 장미로 뒤덮인 4.5미터 높이의 붉은 산이 이곳 공간으로 넘어와 규모를 줄인 ‘장미 언덕’이 되었다. 각 층을 잇는 계단엔 서울을 모티브로 한 <러프 컷>에 사용된 영상이 재생된다.

옥상에는 ‘그린’ 외에도 ‘LAUNDRY’란 공간이 있는데 피나 바우쉬와의 작업에 대한, 또 무대 디자인에 대한 페터 팝스트의 생각이 적힌 흰 천들이 빨랫줄에 널려 바람에 펄럭인다. 피나 바우쉬의 친구였던 빔 벤더스 감독이 <피나> 연출을 위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들로, 그중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다음의 말이었다. “내가 만드는 이미지는 흥미롭거나, 재미있거나, 거칠거나, 놀랍거나, 유혹적이거나, 또는 추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다. 나는 무대장치가 어떤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용수가 올라서서 움직임을 시작해야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공간, 그곳이 바로 페터 팝스트가 생각하는 무대다. 그리고 장애물처럼 버티고 선 나무가, 꽃이, 대형 캔버스가 결국 우리의 발길을 춤으로 이끌게 한다는 걸 나는 그가 만든 무대 공간 안에 들어가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전시 공간을 걷는 내내 생각했다. 정면을 바라보고 곧장 걸어야 길을 잃지 않는다고 생각한 내게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춤, 춤이 아니면 우리는 길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