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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의 린드블럼은 늘 이긴다

2019.08.30GQ

이겼다. 또 이겼다. 조쉬 린드블럼은 늘 이긴다.

3일 전 한화전에서 또 승리 투수가 됐다. 안타 4개만 내주고, 7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1승을 추가한 것보다 팀이 8대 3으로 승리해 기쁘다.

하지만 개인 성적을 말하지 않고 넘어가기엔 17승 1패의 기록이 압도적이다. 시즌 전부터 느낌이 좋았나? ‘내가 최고다’라는 자기 최면을 계속 걸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잘 풀릴 줄은 몰랐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두산 베어스로 이적한 지 2년 차다. 바뀐 유니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잘 어울리지 않나? ‘스페셜 유니폼’을 입고 올 걸 그랬다. 금색으로 ‘BEARS’라고 수놓인 유니폼이다. 제일 좋아하는 경기복이다.

적응 과정은 어땠나? 포수 박세혁과의 호흡이 잘 맞아 두산 베어스에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가족들도 서울 생활에 만족해한다. 고향인 인디애나보다 한국에서 가족들과 보낸 시간이 더 길다. 이제 부산이든, 서울이든, 어디라도 낯설지 않다.

한국 나이로 서른세 살이다. 운동선수로는 적다고 할 수 없는 나이인데도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이제 스무살 때 방식으로는 운동할 수 없다. 그때는 닥치는 대로 운동했지만, 지금은 조금 더 현명한 방법을 안다. 수시로 몸 상태를 체크하면서 훈련량과 강도, 휴식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한다. 체계 잡힌 스케줄과 계획적인 생활이 좋은 성적과 직결된 것 같다.

아직 우승 경험이 없다. 작년에 처음으로 기회가 찾아왔지만, SK 와이번스에게 2승 4패로 아쉽게 패했다. 올해 설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한국 시리즈 진출이 나와 팀의 첫 번째 목표다. 결승 상대라면 어떤 팀을 만나도 상관없다.

작년 한국 시리즈에서 두 경기에 선발 출전해 한 번 지고, 한 번 이겼다. 그때 새로운 폼으로 공을 던졌다. 왜 갑자기 투구 동작을 바꿨나? 2018년 정규 리그에서 15승 4패를 했다. 좋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시즌 내내 투구 시점과 몸의 균형이 조금씩 어긋난다고 느꼈다. 마침 두산 베어스가 시즌을 1위로 마감해 한국 시리즈까지 한 달 정도 시간을 벌었다. 그때 상체와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키킹 동작’을 추가한 폼으로 연습했다.

우승을 건 경기였다. 도박에 가까운 선택 아니었을까? 철저히 준비해 자신만만했다. 투구 결과도 만족스러웠고. 야구 선수는 머물러있으면 안 된다. 문제점을 찾아 보완하는 학습 과정은 필수다. 올해도 리그가 시작되기 전 투구 동작을 조금 더 수정했다. 이번에도 좋은 효과를 내고 있다.

올 시즌부터 프로야구 공인구가 바뀌었다. 반발 계수가 작아져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의견이 많다. 지금의 기록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공이 배트에 맞아도 잘 안 나가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나를 비롯해 투수들이 전부 혜택을 봤다고 하긴 어렵다. 그 전까진 과할 정도로 타자에게 유리했다. 박병호, 김현수, 김재환 등 뛰어난 타자들이 3할 넘는 타율을 기록하고, 홈런을 몇십 개씩 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타자를 불문하고 외야 플라이 아웃으로 끝날 만한 공이 담장을 훌쩍 넘어가기 일쑤였다. 드디어 투수와 타자 간 균형이 잡혔다고 생각한다.

2017 시즌부터 홈 플레이트에서의 충돌이나 아웃 여부를 따질 때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수 있다. 이제 메이저리그에 이어 한국에서도 스트라이크 판정까지 기계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아마 투수뿐 아니라 타자도 대부분 반대할 거다. 사람이 던진 공과 사람이 휘두른 방망이의 각도를 기계가 판단한다고? 선수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 야구엔 기계가 침범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있다. 가끔 판정 시비가 일기도 하지만, 무조건 심판의 잘못이라고 볼 수도 없다. 지금처럼 애매하면서도 재미있는 ‘야구적인 상황’은 그대로 놔뒀으면 좋겠다.

그럼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나올 땐 어떻게 대처하나? 당연히 기분은 나쁘지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은 어쩔 수 없다. 이미 던진 공에 미련을 둘수록 경기는 꼬이기 마련이다. 그럴 시간에 다음 투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게 더 낫다.

이번 시즌 가장 상대하기 껄끄러운 타자는 누구인가? KT 위즈의 강백호 선수.

의외다. 배테랑 타자를 꼽을 줄 알았다. 배테랑이 아니어서 더 어렵다. 겁이 없다. 힘과 재능을 타고 났고, 아주 공격적이다. 스트라이크 존을 겨냥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타자를 상대하려면 여러 가지 수를 생각하고 영리하게 제구해야 한다. 강백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더 집중한다.

이번 시즌 유일한 패배가 5월 22일 KT 위즈 전이다. 투구가 나쁘지 않았는데도 패전 투수가 됐다. 투수는 5점을 내주고도 이길 수 있고, 1실점으로 선방해도 질 수 있다. 나는 최악의 투구를 해도 5점 이상 내주지 말자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른다. 그날은 약 5이닝 동안 3실점을 했다. 좋은 경기였다고 할 순 없어도 사력을 다해 던졌다. 후회도 없고, 지금까지의 성적에 흠을 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경기에서 지면 미련 없이 기억을 지워버리는 편인가? 시합에서 잘 던졌든 못 던졌든, 집에 가서 1시간 정도 생각한다.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되짚어보고, 어떻게 개선할지 대책을 세운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그날의 투구는 다 잊어버린다.

벌써 KBO 5년 차 고참 용병이다.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 한국어를 못 해서 가까이 다가가기엔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잠실 구장에 올 때마다 장난도 많이 치고 분위기를 띄우려고 한다. 자질이 충분한 어린 선수들에게 높은 연차의 동료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현재 두산의 리그 순위는 3위다. 올해도 한국 시리즈에 나가면 5연속 진출이다. 가능성이 높다. 야구 팬에게 두산은 ‘어떻게 해도 포스트 시즌에 가는 팀’이라는 인식이 있다. 선수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시합 전부터 질 거라고 생각하는 선수는 없다. 수비력이 탄탄해 투수들은 마음 놓고 승부수를 던진다. 주장인 오재원 선수가 팀을 잘 이끌어 사기도 높다. 다들 정규 리그에서의 순위 싸움보단 포스트 시즌 이상을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좋아한 야구 선수는 누구였나? 로저 클레멘스와 놀란 라이언. 모두 강속구를 던지는 우완 투수였다. 투구폼을 닮고 싶어서 따라 하곤 했다.

아들 팔머 린드블럼이 잠실 구장에서 아빠만큼 유명하다. 아들은 누구의 팬인가? 두산 베어스의 4번 타자 김재환 선수를 좋아한다.

아빠 같은 투수가 되고 싶다는 말은 안 하나? 나한텐 관심도 없다. 조금 더 크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김재환 선수의 타격폼을 따라 할 것 같다.

같은 팀의 쿠바 출신 용병 페르난데스의 가족이 얼마 전 비자를 받아 어렵게 입국했다. 전반기 말에 부진한 성적을 거두다가 가족을 만나자마자 멀티 안타를 쳤다. 이후 타율도 다시 살아나고 있고. 용병 생활을 하는 선수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선발 등판을 할 때마다 가족이 잠실 구장을 찾는다. 내가 승리 투수가 되길 간절하게 바라는 가족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에 더 힘이 실린다. 비록 아들은 나보다 김재환을 응원한다고 해도. 하하. 또한 가족과 함께 있으면 선발과 선발 사이 생기는 5일 정도의 시간을 루틴에 따라 보낼 수 있다. 스케줄에 따라 훈련하고 휴식한다. 그 사이 세 아이와 놀면서 아빠 노릇도 하고. 1년 중 제일 힘든 시기가 스프링 캠프다. 8주 동안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

가족과 야구 이야기도 나누나? 아내와 고등학교 때부터 연애하다가 결혼했다. 야구 선수로서의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지금도 투구나 컨디션, 성적 등 야구에 관한 모든 고민을 털어놓는다.

현재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에서 모두 선두를 달리고 있다. 꼭 1위를 지켜내고 싶은 부문 하나를 꼽는다면? 어떤 게 가장 가치 있는 기록인지 아직 모르겠다. 나중에 우승하고 한 번 더 인터뷰 할수 있다면 그때 결정해서 말하겠다. 오히려 다른 투수들은 어떤 상이 제일 의미 있다고 했는지도 알려줬으면 좋겠다.

한국 시리즈 우승을 앞둔 9회 말. 2아웃, 2스트라이크 3볼이라면 어떤 공을 던질 건가? 작년 한국 시리즈 6차전에서 최정 선수한테 홈런 맞았을 때처럼 포크볼을 던지겠다. 하하. 농담이다. 아마 직구를 던질 것 같다. 파울 한번 맞으면 바로 커터로 바꾸겠지만.

    에디터
    이재현
    포토그래퍼
    이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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