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멋진 사람들 – 키아누 리브스 | 지큐 코리아 (GQ Korea)

지금 가장 멋진 사람들 – 키아누 리브스

2019-09-03T14:01:50+00:00 |culture|

빤한 감탄사로는 부족하다. 지금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멋지고, 가장 남다른 사람들.

“<존 윅>은 키아누 리브스가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작품이다. 그런데 다시 본 이 남자는 어느새 50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팬들은 존 윅의 사연과 비슷한 키아누 리브스의 과거를 떠올렸다.”

키아누 리브스

지난 6월, 배우 키아누 리브스는 생 로랑의 얼굴이 됐다. 2019 F/W 흑백 화보 속의 그는 블랙 가죽 블루종을 입었다. 키아누 리브스와 ‘블랙’의 조합은 매우 익숙하다. 그는 영화 <매트릭스>, <콘스탄틴>에서도 블랙으로 몸을 감싼 남자였다. 그러나 <매트릭스> 시리즈는 2003년에 끝났고, <콘스탄틴>은 2005년 영화다. 그런데 왜 지금 키아누 리브스가 다시 블랙의 대명사로 추대된 걸까. 이건 키아누 리브스가 왜 다시 사랑받게 됐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답은 간단하다. 키아누 리브스가 영화 <존 윅>에서 다시 블랙으로 몸을 감쌌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멋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존 윅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다시 사랑받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1999년 <매트릭스> 당시 사람들이 주인공 네오를 사랑했던 것과 달리, <존 윅>은 존 윅보다 화면 밖의 키아누 리브스를 더 사랑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이 아니라 ‘염려’다.

남자는 수트, 남자는 운전, 남자는 싸움이다. 이건 남성 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대부분의 액션 영화들이 보여주는 통속적인 공식이다. 스턴트맨 출신인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매트릭스>에서 만난 키아누 리브스를 소환해 만든 <존 윅>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 남자는 강아지다. 남자의 곁에는 강아지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되고, 남자는 강아지 같은 존재여야 한다는 말도 된다. <존 윅>은 과거를 지우고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전직 킬러의 외로운 싸움을 그린 영화다. 이 작품에서 존 윅은 유일한 감정선이다. 콘티넨탈 호텔의 매니저와 직원들은 규정과 룰에 따라 움직이고, 뉴욕에는 오로지 돈 때문에 존 윅을 죽이려고 하는 킬러들 천지다. 존 윅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감정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 최고의 킬러라는 지위를 버리고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싶었던 남자, 아내를 잃은 후에는 그녀가 남긴 강아지와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고 싶었던 남자. 차를 훔치러 온 악당들이 강아지까지 죽이자, 존 윅은 과거에 입었던 수트를 다시 입고 강아지를 죽인 악당들을 죽인다.

수많은 액션 영화의 캐릭터 중에서 존 윅이 특별한 이유는 그를 싸우게 만드는 동력이 ‘그리움’이라는 점이다. 표면적으로 존 윅은 강아지 때문에 목숨을 건 남자지만, 사실 그는 연이은 상실의 아픔에 몸부림치는 중이다. 그런데 키아누 리브스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존 윅>에서도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를 하지 않는다. 못 하는 걸 수도 있다. 과거 <엑설런트 어드벤쳐>의 멍청한 10대 소년, 허무함으로 가득했던 <아이다호>의 스코트, 세상의 진실을 알아버린 <매트릭스>의 네오를 연기할 때도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는 자신의 얼굴을 뚫고 나오지 않았다. 다만 <존 윅>은 2014년에 개봉한 1편에서 액션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초반 30여 분을 존 윅의 현재를 보여주는 장면들로 채웠다. 매일 아내의 사진을 보며 슬퍼하다가 잠들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그의 일상에 개 한 마리가 찾아온다. 이제 좀 더 나은 삶을 살수 있을 거란 희망이 보일 때쯤, 그의 개가 죽는 것이다. 이때부터 <존 윅>의 관객들은 극적으로 다가가 키아누 리브스의 얼굴에서 존 윅의 슬픔을 보게 된다. 그래서 블랙 수트를 입고, 총을 45도 기울여 수십 명의 적을 혼자 상대하는 그의 모습에서도 관객은 총질의 쾌감보다 혼자 싸우는 남자의 외로움에 더 크게 공감한다.

키아누 리브스는 그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준 <매트릭스> 3부작 이후에도 거의 매년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그 영화들은 대부분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키아누 리브스는 은둔자 아닌 은둔자로 남았다. <존 윅>은 키아누 리브스가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작품이다. 그런데 다시 본 이 남자는 어느새 50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팬들은 존 윅의 사연과 비슷한 키아누 리브스의 과거를 떠올렸다. 지난 2000년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가 되고 싶었던 남자였던 키아누 리브스는 유산과 이별, 그리고 그녀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을 겪었다. 이후 키아누 리브스는 지금까지 누군가와 결혼한 적도, 공식적으로 사귄 적도 없다. 그저 거리를 걷고, 오토바이를 타고, 때로는 지하철을 타며 살고 있을 뿐이다.

사실 키아누 리브스는 <존 윅> 이전에도 ‘슬픈 키아누’(Sad Keanu)란 짤들로 꽤 유명했다. 그저 거리를 걸으며 뭔가를 먹는 모습의 사진이었을 뿐인데, 사람들 눈에는 그가 유독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키아누 리브스 스스로도 “내가 늘 슬프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슬픈 키아누’는 지난 5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에 출연했을 때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스티븐 콜베어는 인터뷰 마지막에 “우리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요?”란 질문을 던졌다. 키아누 리브스는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워할 거라는 건 알아요”라고 답했다. ‘X라 멋진데!’라고 생각했다가, ‘그런데 당연한 거잖아?’라고 무시했다가 실제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는 울컥했다. 존 윅의 머리와 존 윅의 수염을 하고 존 윅의 수트를 입고 있던 키아누 리브스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어딘가를 응시했다. 대답이 나오기까지의 그 짧은 순간 동안 그는 정말 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한 것 같았다. 키아누 리브스의 눈빛에서는 분명 슬픔 같은 게 묻어났다. 그의 대답에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스티븐 콜베어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이 표정은 키아누 리브스의 것인가, 존 윅의 것인가. 그가 정말 슬펐던 것인가, 그를 보는 내가 슬펐던 것인가.

사람들이 존 윅을 통해 키아누 리브스를 사랑하게 된 건, ‘슬픈 키아누’ 때문만이 아니다. 그에 대한 팬덤의 한쪽에는 ‘다정한 키아누’가 있다. 2018년 12월에는 그가 오랫동안 소아암 환자를 돕는 재단을 운영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신이 여동생을 백혈병으로 잃은 아픔을 겪은 후 만든 재단이었다. 그런가 하면 <설국열차>에도 출연했던 배우 옥타비아 스펜서는 “과거 첫 오디션을 보러 가던 중 자동차가 고장났는데, 그때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키아누 리브스가 차를 밀어주었다”며 “그 이후 키아누의 영화를 개봉 첫 주에 챙겨 본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에는 지하철에서 무거운 짐을 든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키아누 리브스의 모습이 포착됐고, 올해 3월에는 비상 착륙한 비행기에서 승객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어준 일화가 화제가 됐다. 키아누 리브스에 얽힌 미담은 차고 넘치지만, 그중 정점이 된 미담은 여성 팬들과 찍은 사진들이었다. 몸은 밀착되어도 손은 절대 여성의 몸을 감싸지 않는 모습이 한 트위터 유저에 의해 정렬되어 큰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팬들은 “키아누 리브스가 여성의 공간과 몸을 존중하는 사려 깊은 면모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한쪽에서는 할리우드 권력자들의 성폭력이 보도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할리우드 남성 스타들의 여성 편력이 가십으로 올라오는 온라인 뉴스창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유독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미담’이다.

‘슬픈 키아누’와 ‘다정한 키아누’.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의 얼굴까지. 키아누 리브스는 다른 남자 배우들은 다 가질 수 없는 키워드를 가졌다. 톰 크루즈는 30년 전에도 스타였고 지금도 스타지만, 그는 언제나 ‘유쾌한 톰 아저씨’다. ‘아이언맨’으로서 마블의 10년을 이끌어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또한 유쾌함과 다정한 매력을 갖고 있지만, 그에게서 ‘슬픔’의 이미지를 찾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키아누 리브스란 배우는 그들과 무엇이 다를까?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킹스 칼리지의 철학 교수 윌리엄 어윈은 “사람들은 키아누 리브스에게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투영한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호함’을 언급했다. “그가 중성적인 것은 아니다. 그가 강한 수컷인 것도 아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남성적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여성적이다.” 이러한 분석은 그가 연기해온 캐릭터들이 가진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의 영화평론가 조 퀴난은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에 대해 관객들은 경외심보다는 애정을 갖고 본다”며,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어린 남동생 같다”고, “살아남기 위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이라고 설명했다.

이건 관객들이 존 윅과 키아누 리브스를 보면서 갖는 태도와도 상당히 일치한다. 존 윅은 최고의 살인병기인 동시에 상처받은 남자이고, 키아누 리브스는 최고의 할리우드 스타인 동시에 언제나 슬퍼 보이는 남자다. 어쩌면 키아누 리브스는 지금 팬들에게 한 마리의 ‘강아지’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다정하지만, 그만큼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영혼의 존재. 영화에서 존 윅을 찾아온 비글 ‘데이지’를 보는 것처럼, 키아누 리브스의 팬들은 그가 누군가로부터 발길질을 당하지는 않을까, 염려한다. 56세의 남자에게 그런 애틋함을 느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키아누 리브스에게 ‘우수에 찬 중년 남자’라는 빛바랜 수식어를 붙이지는 말자. 슬픔을 간직한 동시에 언제든 숨겨둔 칼을 꺼낼 것 같은 긴장감이 지금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역시 키아누 리브스에게는 떨어지는 낙엽 아래의 바바리코트보다 빗속의 블랙 수트가 더 어울린다. 글 / 강병진(<허프포스트코리아> 뉴스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