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의 사진가가 재해석한 영화 감독 6인 | 지큐 코리아 (GQ Korea)

6인의 사진가가 재해석한 영화 감독 6인

2019-09-03T13:48:00+00:00 |movie|

6인의 감독을 6인의 사진가가 재해석했다. 영화만큼 강렬하고 아름다운 어느 순간에 대하여.

David Lynch
LA의 밤, 산타모니카로 향하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혹은 영영 끝나지 않을 로스트 하이웨이. 길은 끝이 없고, 붉은빛이 밤의 경계를 흐려놓는다. 외부에서 내면으로, 내면에서 외면으로 에셔의 그림처럼 이어지는 밤. 금기를 넘어 의식과 무의식의 교차로를 달리는 데이비드 린치의 공상은 마음 깊은 욕망과 죄의식, 그리고 사랑과 증오마저 교란시킨다. 사진가 채대한은 린치의 신경증적인 공상의 질주를 재현했다. 꿈에서 깨어난 베티는 여전히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있고, 자신이 다이애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잠에 빠지리라. 홀연히 나타난 누군가가 ‘실렌시오’라고 외칠 때까지. Photographer Chae Dae Han

Tomas Alfredson
검은 밤, 눈발이 흩날린다. 차는 어딘가로 향한다. 스산한 어둠 속, <렛 미 인>의 뱀파이어 소녀가 기척 없이 웅크리고 있다가 사냥감을 발견하고 튀어 오르듯, 숏과 숏은 이따금 불친절하게 점프한다. 건조한 숏과 숏 사이에는 어떤 정념도 감상도 없다. 존 르 카레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스파이처럼 단호하고 정확할 뿐. 사진가 하혜리는 알프레드슨의 눈 쌓인 설원 같은 묵음의 세계를 멀고 먼 아이슬란드에서 찾았다. 눈길을 헤치고 차가 나아간다. 차 밖으로는 눈발이 흩날리고, 차 안에는 백미러에 비친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는 이미 시작됐다. Photographer Ha Hye Ri

Andrei Tarkovsk
타르코프스키에게 영화란 시간이었다. 먼 지평선과 수풀, 바람, 나무, 공간 속에 있는 자연물을 시간으로 포착해 봉인하는 일. 그는 정경과 그 안에 생동하는 것들을 롱테이크로 담아낸다. 그리고 시지포스처럼 매일 죽은 나무에 물을 주고 꺼진 초에 불을 붙이며, 희생과 구원이란 테마에 복무한다. 그는 구원을 향한 여정의 끝에 늘 유년기의 집을 두었으나, 유작 <희생>에서는 그 집마저 불태워버린다. 돌아갈 곳이 남지 않았을 때 감독은 세상을 떴다. 사진가 이준경은 해질 무렵 교동도의 지평선을 오래도록 담았다. 물안개 속 아스라한 지평선, 가깝고 먼 집. 잠시 타르코프스키처럼 시간을 보았다. Photographer Lee Jun Kyoung

Yorgos Lanthimos
눈을 가린 두 마리 토끼가 있다. 토끼는 서로를 보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은 안다. 거기서 게임은 시작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삶의 불가해성에 대해 짓궂은 블랙 유머와 기이한 냉소를 보낸다. 신화적인 원형을 비틀어 인간을 딜레마에 몰아넣고, 그 파국을 찬찬히 관조하는 식이다. 눈을 가린 사라 처칠은 끝내 앤 여왕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고, 사랑받던 어린 사슴은 제물로 바쳐진다. 사진가 JDZ는 눈을 가린 두 마리 토끼에게서 불가해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봤다. 란티모스의 문법대로라면, 이제 한 마리의 토끼는 귀를 잃게 될 것이다. Photographer JDZ

Ari Aster
공포인가, 매혹인가? 근원적인 공포에 예쁘장한 외피를 두르고, 멜로드라마틱하게 질주한다. <미드 소마>와 <유전> 단 두 편으로 단번에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아리 애스터의 화법은 대위법이다. 낮이 가장 긴 여름날, 새파란 하늘 아래 화관으로 치장한 소녀들은 희생양이 될 손님들을 맞는다. 피가 흩뿌려지고 뇌수가 튀어도 신록은 변함없이 빛난다. 상실감에 사로잡힌 주인공은 기묘한 공동체 의식을 통해 여왕으로 거듭난다. 사진가 레스는 선홍빛 내장에 핑크색 아이스크림을 끼얹었다. 언뜻 보면 아름다우나 그 밑엔 다른 게 꿈틀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Photographer LESS

Wes Anderson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진 예쁘고 정교한 디오라마 같다. 그는 소외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키치하고 팬시하게 만드는 데 대가인데, 유년에 대한 향수를 지닌 어른이 그런 영화에 저항하기란 쉽지 않다. 엉뚱하고 철이 들지 않은 소년 소녀들이 테마파크 같은 세트에서 소동극과 모험담을 벌이고, 그 안에는 달콤하고 짜릿한 사랑도 미스터리도 서스펜스도 있다. 극장의 스크린 커튼이 오르면서 유년의 추억에 빠져드는 순간을 사진가 황혜정은 떠올렸다. 베를린의 어느 오래된 극장에서 녹색 벨벳 커튼이 걷힐 때, 그 안에서 화려한 웨스 앤더슨의 세계가 얼핏 보이는 듯했다. Photographer Hwang Hye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