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멋진 사람들 – 수민 | 지큐 코리아 (GQ Korea)

지금 가장 멋진 사람들 – 수민

2019-09-03T14:07:51+00:00 |culture|

빤한 감탄사로는 부족하다. 지금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멋지고, 가장 남다른 사람들.

수민에게는 경계가 없다.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를 굳이 구분하지도 않고 R&B와 다른 음악이 한 공간에 놓이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수민

2018년, 수민의 정규 앨범 <Your Home>의 커버를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접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바다, 하늘, 구름, 해, 초록색 또는 노란색 유리벽, 그리고 3D 렌더링으로 매끈하게 원을 그리며 뻗어가는 물줄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커버를 디자인한 레어버스(Rarebirth)의 작업 중에서도 <Your Home>은 유독 눈에 띈다. 추상적이고 일그러져 있거나 선명하고 네온처럼 반짝이는 그래픽 디자인을 주로 하는 그의 스타일이 한 곳에 녹아 있는 듯했다. 그만큼 욕심이 느껴지는 커버다. 빛과 이를 매개로 성질이 달라지는 요소가 의미를 알 수 없는 형태로 배치돼 있다. 제목은 ‘너의 집’이고 음악은 R&B인데 커버에선 감상용 일렉트로닉 음악이 들리는 듯하다. <Your Home>을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돌려 듣고 디자이너가 얼마나 보여줘야 한 게 많았을지 짐작이 갔다. 거기에는 다른 작업보다 어려웠을 거라는 추측도 포함된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세계를 표현해야 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커버가 나올 수 없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7월 말, <Your Home>의 LP 레코드가 발매됐다. 서울 바이닐에서 제작하고 단독으로 판매하는 3백 장 한정 레코드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12인치 LP 레코드로 보는 커버는 OLED 스크린으로 보는 것보다 근사하다. LP 레코드의 뒷면과 속지에는 커버의 요소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알아챌 수 있는 힌트가 있어 이걸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에서 볼 때는 몰랐던 사실을 발견했다. CG처럼 보이지만 페인팅한 (또는 그렇게 보이게) 작업이었다. 그리고 가운데 하늘에 떠 있는 작은 분홍색 별이 하트라는 것. 그제야 비로소 수민의 음악과 앨범의 커버에 구멍 난 몇 개의 링크가 연결됐다. 내가 <Your Home>을 들으며 느꼈던 아름다움이. 여기서 아름다움은 노래에서 드러나는 수민이 상대를 바라보는 감정이자 이를 드러내는 방식이며, 수민 그 자체이기도 하다. 다른 음악가는 표현할 수 없는 온전한 수민의 아름다움이다.

수민은 2016년 <Beat, And Go To Sleep>으로 데뷔했다. 이후 작곡가들이 합숙하듯 작업하며 곡을 만드는 ‘송캠프’에 참여했다. 블락비 바스터즈, 방탄소년단, 레드벨벳, 보아 등 여러 정상 아이돌 음악가의 곡을 함께 만들고 코러스로 참여했다. 시각과 청각 모두 자극을 주는 아이돌 음악의 특징은 수민의 음악에도 도드라진다. 굳이 댄스나 패션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사운드와 가사만으로 눈앞에 그림이 그려진다. ‘Pocket’에서 수민은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흘러나올 법한 베이스가 강조된 사운드 위에 “너는 나를 지갑에 넣고 니 맘대로 꺼내 썼어 그래놓고 한다는 말이 너도 좋아하는 거 아니녜 녜 녜 녜녜녜!” 같은 냉소적인 가사를 부른다. 또는 기린과 함께한 90년대 R&B 리바이벌 프로젝트 클럽33에서는 스키복을 입고 전형적인 90년대 R&B 노래를 부른다. <Your Home>의 타이틀 곡인 ‘너네 집(너희 집이 아니다)’에서 수민은 청량한 80년대 R&B 사운드에 덤덤하게 ‘나를 안아줘 어디 가지 못하게 나를 안아 줘요 문을 열어줘 너네 집에서 내가 살고 싶으니까’ 같은 달콤한 감정을 드러낸다.

<Your Home>의 커버를 처음 봤을 때의 감정처럼 위 문장을 모아놓으니 어색하다. 문장으로 장면을 만들고 영화를 완성한다면 조잡한 B급 영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위에 ‘디렉터: 수민’이라는 이름을 적어놓는 순간 모든 게 납득된다. 수민은 얼마 전 레이블 마더(Mother)에서 EP <OO DA DA>를 발표했다.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 작업으로 유명한 GDW에서 작업한 수록곡을 모두 담은 프리뷰 비디오도 함께 공개했다. 캐주얼한 옷을 입고 어느 방의 창가에 앉아 있는 수민부터, 금속 질감의 옷과 메이크업을 하고 화장실에서 춤을 추는 수민, 아이돌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의 수민, 블레이즈 스타일을 하고 한복을 입은 수민까지.

수민이 2018년 발표한 데뷔 앨범 <Your Home>은 다음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 부문을, 한국힙합어워즈에서 올해의 알앤비 앨범을 수상했다. 데뷔 정규 앨범으로 음악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상식에서 장르를 대표하는 상을 받았다. 하지만 수민의 음악은 R&B에 머무르지 않고 수민 역시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는 <OO DA DA>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로스 델 리오의 ‘Macarena’를 떠올리고 만들었다는 R&B 곡 ‘Shaker’, 웨이브 레이서(Wave Racer)를 떠올리게 하는 청량한 댄스곡 ‘Meow’, 레드벨벳의 신곡이라 해도 속아 넘어갈 ‘Bee’ 등.

<OO DA DA>는 올해 발매된 음반 중 가장 스타일리시한 앨범이다. 감상용으로 듣기에도, 클럽에서 듣기에도 좋으며, 라이브가 기대되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가사는 한국말로 들을 수 있는 가장 신선하고 재미있는 단어를 들려준다. ‘내게 분노조절장애 오게’, ‘나는 화장실에서 분명히 니가 춤을 추는 걸 봤어’, ‘나 사라지고 남는 것 니 이름만 남을 거야 같은 눈물 다른 몸짓’ 같은 가사는 소리 내어 읽기만 해도 이미지가 그려지고 리듬감이 생긴다. 모든 곡은 (오메가 사피엔의 랩 피처링 작사를 제외하고) 수민이 작사, 작곡, 편곡했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는 나 같은 이들을 위해 ‘네오 케이팝’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다른 이가 자신의 음악에 이런 작명을 했다면 비웃음이 먼저 나올 테지만, 수민이기에 미소가 지어진다.

수민에게는 경계가 없다.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를 굳이 구분하지도 않고 R&B와 다른 음악이 한 공간에 놓이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풍부한 표현력의 가창력을 지녔지만 필요하다면 오토튠을 걸고, 신세하, 기린, 오메가 사피엔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가와 협업한다. <OO DA DA>의 뮤직비디오에서 수민은 방에 있다 우주에서 노래를 마친다. 우주에 홀로 남은 수민은 그곳에서도 자신의 네오 케이팝을 부를 것이다. 글 / 하박국(영기획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