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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덤>에게 전쟁은 필요없다

2019.09.11GQ

제각각 개성 넘치는 프로페셔널 아이돌 그룹을 모아놓고 순위 경쟁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물음표가 난무하지만, <퀸덤>의 속을 들여다보면 실망보단 참담한 심정이 더 크게 다가온다.

박봄, AOA, 마마무, 러블리즈, 오마이걸, (여자)아이들. 비교하기에는 각자의 개성이 너무나 다른 여섯 팀이 같은 무대에 선다. 연말 시상식도 아닌데 기존 곡의 리믹스 버전, 새로운 퍼포먼스가 발표되는 프로그램이라니. K-POP 팬들 입장에서는 호사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퀸덤>으로, “진짜 1위를 가린다”는 모토의‘전쟁’이다. 긴장한 출연자들의 표정을 보면, 진행자인 이다희가 말하는 “평화를 지향한다”는 말은 우스갯소리로 들릴 정도다.

<퀸덤>에 등장하는 “정면 대결”, “계급장을 뗀” 등은 가장 산업적인 관점에서 가장 한국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노골적인 표현들이다.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연습생들이나 일반인들을 경쟁 무대에 세우면서 “꿈을 이루기 위한”이라는 말로 시청자를 설득했다. 그러나 연습생 기간이 지나고 프로페셔널로서 무대에 섰을 때 그들은 “다들 (서로를) 피해서 컴백을 하니까” 굳이 한데 모여서 1위를 겨뤄야 한다.

Mnet 입장에서는 기존에 만들어둔 프로그램 포맷을 상당 부분 재활용하면서 만들어낸 <퀸덤>이 뿌듯한 결과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K-POP 산업에 있어서 이 프로그램은 생각 이상으로 참담해진 현실의 반영일 뿐이다. 그동안의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들과 <퀸덤>이 다른 까닭도 여기에 있다. 너무나 많은 K-POP 그룹들 사이에서 자기들만의 자리를 확립한 몇 안 되는 팀들이 반드시 한 날 한 시에 컴백을 해야 한다는 설정은 현실적으로 컴백 시기를 조율할 수밖에 없는 각 기획사의 전략조차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K-POP의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프로그램이 K-POP 산업의 가장 힘겨운 부분을 이용해 화제를 노리고 있다. 게다가 이미 수차례 흥행이 검증된 포맷은 그 부작용도 익히 알려져 있다. 다른 그룹이 인사를 할 때 말이 없어진 타 그룹의 싸늘한 표정을 의도적으로 삽입하는 편집 방식은 이미 익숙하다. <쇼 미 더 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 등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봐온 시청자들이라면 (여자)아이들의 리더 전소연이 “경쟁을 좋아한다”고 말하거나 러블리즈 미주가 “선배든 후배든 봐주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강조하는 장면에서 자칫하면 그들이 소위 ‘악마의 편집’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현재 활동 중인 걸그룹 입장에서는 소위 ‘인성 논란’과 관련해 더 큰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살아남은 아이돌 그룹 몇 팀조차 애써 획득한 개성을 존중받지 못한다. 이미 프로그램을 본 일부 시청자들이 “인성이 별로”라며 특정 아이돌 그룹 멤버에게 비난을 하는 사례도 생겼다. “K-POP을 대표하는 걸그룹이 한 날 한 시에 컴백해 정면승부를 펼친다면,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요?” 제작진들의 기대와 달리, 놀라운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아무것도 놀랍지 않다. 경연 프로그램이라면 자신 있는 Mnet의 현재와, 전국민을 상대로 생존기를 쓰는 아이돌 그룹들의 현재를 재차 확인시킬 뿐이다.

    에디터
    글 / 박희아('아이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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