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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축구 톱 플레이어, 라힘 스털링의 영향력

2019.09.20GQ

라힘 스털링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나름대로의 소신을 걸고 인종차별의 덫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영국 축구의 톱 플레이어로서, 사회적 아이콘으로서 라힘 스털링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굉장하다.

팬츠, 부츠, 모두 보테가 베네타. 시계, 주얼리, 모두 아비아니앤코.

코트, 팬츠, 모두 필립 플레인. 주얼리, 아비아니앤코.

후디, 팬츠, 언더웨어, 모두 톰 포드. 하이 톱 스니커즈, 루이 비통. 시계, 주얼리, 모두 아비아니앤코.

코트, 프라다. 팬츠, 톰 포드. 슈즈, 클락스. 주얼리, 제이콥앤코.

재킷, 팬츠, 모두 톰 포드. 주얼리, 제이콥앤코.

맨체스터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이거 한번 들어봐”라는 동료의 메시지를 받았다. BBC에서 “맨체스터 시티의 라힘 스털링이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포츠 선수인가?”라는 주제로 진행한 1시간짜리 팟캐스트였다. 링크를 클릭했다. 그 내용은 스털링이 아니라 거물 정치인이나 문화 아이콘에 대한 논의와 다름없었다.

2시간 뒤 맨체스터 시티의 훈련 센터에서 스털링을 만났다. 그는 반바지와 흰 티셔츠 차림으로 축구 경기장을 가로질러 나를 반겼다.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오른쪽 다리의 소총 문신이 눈에 띄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를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가 살상 무기를 몸에 새긴 것은 경솔한 행동이라며 논란을 샀던 그 문신이다. 그 무렵 스털링은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비춰졌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과격한 축구 팬들, 소셜 미디어, 편향적인 보도를 일삼는 타블로이드 언론은 인종차별적 비난을 쏟아냈다. 1년이 지났고 그에 대한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라힘 스털링이라는 이름은 소위 문화 사회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시즌 스털링은 경기 도중 상대팀의 일부 팬들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었고, 그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참다 못한 그는 하루가 지난 뒤 SNS 계정을 통해 축구계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질타했다. 자신의 피해를 호소하기보다 피부색이 다른 동료 선수들을 언급하며 인종차별 문제의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원인을 꼬집었다. 젊은 흑인 선수들이 또래의 백인 선수들과 비교해 어떻게 다른 식으로 언론에 다뤄지는지를 세상에 알린 것이다.

“같은 팀에 있는 토신 아다라비오요와 필 포든은 어머니를 위해 집을 샀습니다. 두 선수의 차이는 피부색뿐이었지만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달랐습니다. 어린 흑인 선수인 아다라비오요에겐 부정적인 시각이 향했습니다.” 스털링은 언론이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있으며, 모든 선수에게 동등한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다. 스포츠계를 너머 영국 전역에 따끔한 일침이 가해지는 순간이었다. 예리하면서 진정성이 물씬 느껴지는 글은 하룻밤 사이에 글쓴이조차 예상하지 못한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했다. 스털링에 대한 대중의 시선 역시 180도 바뀌었다.

인터뷰를 앞두고 한 스포츠 시상식장에서 그를 만났다. 스포츠 업계의 쟁쟁한 인사들과 셀러브리티들이 모인 자리에서 스털링은 영향력 부문을 수상했다. 영국 축구를 대표하는 이름이자 BBC 축구 전문가인 게리 리네커는 “스털링은 축구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선수”라고 말했고, 아스널의 레전드인 이안 라이트는 인종차별에 대한 스털링의 대처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스털링을 수식하는 영향력과 진정성은 오늘날 프리미어 리그 소속의 백만장자 선수들을 설명하는 데 흔하게 쓰이는 단어가 결코 아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스털링은 뉴욕에서 개최되는 월스트리트 저널 콘퍼런스의 연사로 초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자선단체와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들도 스털링의 목소리를 원하고 있다. 이 모든 게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났다. 작년 겨울만 해도 영국의 황색 언론들은 자의적으로 설정해둔 도덕적 기준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다며 스털링을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내기에 급급했다. 런던의 제과점인 그렉스에서 파는 패스티를 벤틀리에서 먹었다고, 영국의 저가항공인 이지젯을 탔다며 경악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에 관한 지난 기사들에서 가장 웃긴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라힘 스털링은 지난밤 올해의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하는 자리에 불참했지만 오늘 아침에는 식사를 했다.” 설마 시상식에 못 갔으니 굶어야 한다는 주장인가?

대중은 축구 이외의 이슈에 대해서도 스털링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이지 않으며 정치 이슈를 관심 있게 보지 않는다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단지 자신을 향한 언론의 부정적 관점 뒤에 인종차별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고, 그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축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털링은 소신 있는 행동뿐만 아니라 리그 최고 수준의 실력을 증명했다. 지난 시즌 소속팀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며 맨체스터 시티의 3관왕 달성을 이끌었다. 영국 프로축구선수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 꼽혔고, 영국축구기자협회의 ‘올해의 선수’ 상도 그의 차지였다. 이견은 없었다.

스털링은 일찍이 특급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여러 구단이 그를 영입하기 위해 앞다퉈 나섰다. 그중에는 명문팀인 아스널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퀸즈 파크 레인저스를 택했다. 대형 구단들의 영입 시도는 계속 이어졌고, 결국 열다섯살이 되던 해에 리버풀로 팀을 옮겼다. 천부적인 재능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따금 의문이 제기되곤 했다. 리버풀에서도 그랬고, 맨체스터 시티 이적 후 첫 시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털링은 가파른 성장세를 이뤄내며 자신에 대한 물음표를 말끔히 불식시켰다.

스털링과 긴 대화를 나누며 그를 둘러싼 열띤 관심은 타당한 일이며, 스물네 살의 젊은 축구선수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문득문득 들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스털링은 나이와 상관없이 엄청난 인지도와 경기장 안팎에서 쏟아지는 크나큰 관심을 감당하고 있으며, 아버지로서의 역할까지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털링은 자메이카 태생으로 두 살 무렵 아버지가 총격으로 살해당한 뒤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왔다. 그는 언젠가 해외 리그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가급적 고향과 같은 온화한 날씨를 가진 곳에서 말이다.

그렇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은 안심해도 괜찮다. 이 인터뷰에는 “스털링이 바르샤로 떠난다” 내지는 “기다려라. 마드리드”와 같은 이야기는 없으니 말이다. 스털링은 당장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명성과 자리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니까. 맨체스터 시티, 더 크게는 영국 축구계의 최고 스타가 아닌가.

자신의 처지가 ‘미운 오리새끼’ 같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어떤가요?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는데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저를 응원해주고 있어요. 제 본질을 알아봐준 분들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미움을 샀던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나요? 아니면 우연히 그렇게 됐나요? 애초에 계획 같은 건 없었어요. 제가 누구인지 사람들에게 좀 더 보여주고, 그로 하여금 다른 관점에서 저를 판단하게 만들려고 했을 뿐이에요.

오는 길에 당신을 주제로 한 BBC 팟캐스트를 들었어요. 넬슨 만델라에 대해 얘기하듯 당신을 설명하더군요. 영향력을 따지면 무하마드 알리에 버금가던데요. 그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인스타그램에 인종차별에 대한 소신을 쓰면서 이런 상황을 짐작했나요? 이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킬지 생각조차 못했어요. 사람들이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줬다는 건 기적과도 같아요.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더욱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선수들에 관한 내용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기 중심적인 이야기는 피하고 싶었어요. 그 전날 저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들 알고 있었고 마침 제 휴대 전화에는 포덴과 아다라비오요에 대한 온라인 기사가 저장돼 있었어요. 줄곧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죠. 그 기사를 인용해 한마디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무엇이 잘못이라고 여겼나요? 워딩요. 언론을 통해 미묘한 방식으로 전달되는 메시지가 젊은 흑인 선수들에 대한 인식을 좌지우지해요. 가령 기사에 쓰인 ‘블링(Bling)’ 같은 단어를 보며 대중은 ‘그는 이런 부류의 사람이네’라고 단정 짓고 선입견을 가져요. 그걸 잣대로 경기장 밖에서도 선수를 평가하고 비판하기도 해요.

첼시 팬들이 당신에게 인종차별적 구호를 외친 것도 그 때문일까요? 그렇다고 확신해요. 저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을 테고, 그다지 좋은 내용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 사건이 그날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나요? 별로요. 그 정도로 쉽게 흔들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거든요. 저는 감정에 치우쳐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옳은 행동으로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했어요.

인종차별은 언제 처음 겪었나요?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 입단했을 때였어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누군가 저를 부르더라고요. 아는 사람인가 싶었어요. 그가 “잠깐 얘기 좀 해도 될까?”라고 물었고 저는 “물론이죠”라고 말하며 다가갔어요. 그런데 다짜고짜 저한테 검둥이라고 외치더니 박치기를 했어요. 머리를 감싼 채 속으로 생각했죠. ‘이거 꿈은 아니겠지?’ 그다음 상황은 제가 알아서 처리했어요.

알아서 처리했다고요? 네. 말 그대로 알아서 처리했어요.

그 남자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만들었나요? 100퍼센트 그랬을 거예요.

SNS 발언은 언론에 인종차별의 책임을 물었기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됐어요. 언론은 당신을 몰아세우기보단 오히려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어요. 시비를 걸거나 잘잘못을 따지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그저 언론이 기사를 공정하게 써줬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을 뿐이에요. 공정한 기회를 달라는 거였죠. 다행히 많은 사람이 제 의도를 알아준 것 같아요.

사전에 누군가와 상의했나요? 어느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스스로 판단했어요.

파장이 이토록 커질 거란 걸 짐작했더라면 미리 상의를 했을까요? 글을 쓴 뒤에 팀 동료인 페이비언 델프와 당시 주장이었던 뱅상 콩파니에게 보여줬어요. 어떤지 봐달라고요.

왜 그들이었나요? 제가 존경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두 사람은 어떤 숨김이나 가식 없이 조언을 해줘요. 제 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거기에 힘입어 ‘한 번 해보자’라고 마음을 굳혔어요.

다소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콩파니가 우려하지는 않던가요? 그러진 않았어요. 오히려 “완벽해. 방향을 잘 잡았네”라고 말해줬어요.

펩 과르디올라 감독에게도 글을 보여줬나요? 감독님한테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맨체스터 시티 출신 선수 중에서 <GQ>와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한 인물은 마리오 발로텔리였어요. 그는 “왜 항상 나만 갖고 그래?(Why Always Me?)”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세리머니를 했었죠. 당신도 엉터리 기사들을 접하며 “왜 항상 나야?”라며 억울해한 적이 있나요? 당연히요. “그냥 나를 좀 내버려 둬!”라고 외치기도 했어요.

최악의 기사는 뭐였나요? 저에 대한 기사들은 갈수록 옹졸하고 유치해졌어요. 열일곱 살 때부터 6년간 타고 다닌 차들에 관한 기사는 그중에서 가장 심했어요. 제가 샀던 차들을 몽땅 찍어서 ‘이건 월요일에 타는 차, 이건 화요일에 타는 차 그리고 수목금에는 각각 이런 차’라는 식으로 썼어요. 실은 차를 타고 다니다가 팔고 새로 구입하기를 반복했거든요. 그런데 매일 다른 차를 몰고 다니는 것처럼 짜깁기했어요. 기사를 보면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했어요. 아마도 저를 정신 못 차리고 차를 사는 데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는 놈으로 만들고 싶었나 봐요.

차는 몇 대나 소유하고 있나요? 하나밖에 없어요. 한동안 타고 다니던 차를 최근 바꿨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 흡족한가요? 이 정도 레벨에 오르면 이만큼 수입을 올리는구나 싶어요. 퀸즈 파크 레인저스 유스팀에서는 축구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 뛰었어요. 하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무엇보다 가족을 부양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어머니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편하게 사실 수 있어 뿌듯해요.

젊고 자신감 넘치는 흑인 선수가 부유하다는 사실 때문에 언론이 그토록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고 생각하나요? 마치 그게 잘못된 것처럼 말이죠. 리버풀에서 뛰면서 ‘왜 나 같은 흑인 아이가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야 하지’라고 의아해하긴 했어요. 그렇지만 그건 저에 대한 제 생각이잖아요. 언론이 “왜 저 녀석이 저렇게 많은 돈을 받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것과는 명백히 다르죠.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팬들이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리버풀 시절 팬들과 강한 유대감을 느꼈거든요. 정말 좋은 분위기였어요.

명문 구단들의 수준이 국가대표팀을 넘어섰다고 생각하나요? 하하하.

그럼 질문을 바꿀게요. 맨체스터 시티가 프랑스 국가대표팀과 붙으면? 상대가 프랑스팀이라면 이길 자신이 있어요.

실력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뭘까요? 아무래도 훈련량이 다르기 때문이죠. 구단의 경우 10개월 동안 시즌을 치르면서 선수들은 매일 훈련을 하다시피 해요. 반면 국가대표팀은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지만 7~8일 정도만 훈련을 소화해요. 소집 기간이 10일이라면 5~6일은 훈련에, 3~4일은 회복에 써야 해요. 구단과 비교하면 충분한 훈련을 한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맨체스터 시티에 소속된 선수들 중 절반 이상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나요? 물론이에요. 우리 팀의 열에 일곱은 각자의 포지션에서 모두 세계 3위 안에 꼽힐 거예요.

과르디올라 감독에 대해 물어볼게요. 본인의 성장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줬나요?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를 던져줬어요. 현실에 안주하도록 내버려두질 않죠. 매년 새로운 윙어를 영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지난 시즌에도 그랬고요.

2년 전 베르나르도 실바의 영입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알게 됐어요.

뉴스를 통해서요? 네. 저도 뉴스를 보고 알았어요. 감독님이 선수를 따로 불러서 “너와 같은 포지션에 새로운 선수를 데려올 생각인데 그렇다고 해서 다른 뜻이 있진 않아”라고 말해주진 않아요. 그저 결정에 따라야 해요. 우리는 승리를 위해 이곳에 모였고, 팀이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보탬이 되는 것이 우선이에요.

좋은 경기력을 보였을 때와 그렇지 못한 경우 과르디올라 감독이 본인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나요? 사실 올해는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했어요. 첫 시즌에는 많은 얘기를 하셨지만 그 빈도가 점점 줄어들었죠.

당신을 더 신뢰하게 됐고 알아서 잘할 거라는 믿음이 생긴 게 아닐까요? 글쎄요. 감독님은 필요한 말만 정확히 하는 편이에요. 보통 “감독님이 보자고 하신다” 같은 문자가 날아오는데 이번 시즌에는 드물었어요.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놓쳤을 때 경기가 끝나고 저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시긴 했어요. “항상 경기장에서 100퍼센트를 보여주길 원하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어.”

페널티 킥을 놓친 건 어쩔 수 없지 않나요? 감독님은 전반적으로 그날 제 경기력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경기를 지배하길 원했는데 그걸 못 해 언짢해했어요.

감독님은 매우 엄격한가요? 요구를 많이 하는데 그래서 좋아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든요. 감독님께 저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해야 할까요? 경기에 나설 때마다 제 역할을 잘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요. 우리 팀에는 훌륭한 선수가 정말 많거든요.

큰 경기를 하루 앞두고 뜬눈으로 밤을 보낸 적도 있나요? 그럴수록 컨디션만 나빠져요.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팀 분위기를 주도하는 선수는 누구인가요? 우리는 기합을 내듯 “파이팅!”을 외치는 팀은 아니에요. 라커룸의 분위기는 굉장히 차분하고 느긋해요. 콩파니나 페르난지뉴는 조금 예외였지만 대부분 말이 많지 않은 편이에요. 경기가 시작되면 그때 입을 열어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요?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하고 맞이한 첫 시즌이었을 거예요. 거액의 이적료를 주고 데려온 저에 대한 기대가 컸어요. 처음에는 “제2의 누구누구”라며 유망주 대접을 받는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뭔가 보여주기도 전에 평가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아무 이유 없이 “스털링은 영 아니야” 같은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부정적인 시선이나 평가에 영향을 받기도 하나요? 처음에는 그랬어요. 당시 저는 열아홉 살이었거든요.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아요.

자신에 대한 기사를 찾아 읽나요? 일부러 찾아보진 않아요.

실력에 대해 스스로한테 솔직한 편인가요? 100퍼센트 솔직해요. 제 자신한테 엄격하려고 해요. 득점을 올리지 못했거나 경기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혼자서 씩씩거려요. 골을 넣었어도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반성할 때도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다른 리그에서 뛰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나요? 지금으로서는 맨체스터 시티에 매우 만족해요. 세계 최고의 구단이잖아요. 이곳에 오래 머물 생각이에요. 하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죠. 어렸을 땐 다른 나라에서 뛰는 것을 꿈꾸기도 했어요. 이왕이면 영국보다 따뜻한 곳에서.

괜찮다고 여기는 리그는 어디인가요?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그곳의 최저기온이 17~18도로 꾸준히 유지되는지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스페인이나 독일은 어때요? 독일은 어려울 것 같아요. 언어가 걸림돌이에요.

배우면 되잖아요. 독일어는 듣기만 해도 굉장히 어렵게 느껴져요. 같은 팀의 사네와 귄도안이 독일 출신인데 둘의 대화를 들으면 저를 속이려고 일부러 이상한 말을 하는 것 같아요. 독일어는 절대 못 배울 것 같아요. 그냥 영국이 살기 편해요. 언어도 그렇고 영국 사람들이 익숙해요. 보수도 적지 않고요.

유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좋아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죠?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아버지의 빈자리가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당연히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제가 아버지가 됐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주려고 노력해요. 저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이죠. 그렇게 함으로써 제 결핍도 채워지고 있어요.

만약 아버지가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자메이카에서 계속 살았을까요? 아마도 그랬을지 몰라요. 변화가 필요했을 만큼 우리 가족에게는 큰 사건이었어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어머니가 그 일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어떤 파티에 참석했는데 갑자기 총격전이 발생했다는 정도만 알아요.

영국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다섯 살 때 영국에 왔는데 엄청 추웠던 기억이 있어요. 저와 함께 온 이모한테는 영국에 도착한 날이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을 거예요. 영국의 날씨는 자메이카와 완전히 달랐거든요. 우리는 30도의 기온에 익숙해 있는데 하필 크리스마스 시즌에 영국에 도착했어요. 말도 못 하게 추웠죠.

어린 시절을 보낸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하면 기분이 묘하지는 않나요?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긴 해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버스를 타고 웸블리 경기장으로 가는 길에 창밖으로 어릴 적 친구를 보기도 했어요. 바로 전화를 걸어 “나 방금
너 봤어”라고 했죠.

팀 동료들과의 관계가 진짜 우정이라고 여기나요? 20년이 지난 후에도 가까이 지낼 동료는 몇이나 될까요? 서너 명 정도요. 안부 정도만 묻는 사이라 해도 말이죠. 솔직히 말하면 팀 동료들과 가까이 지내기는 쉽지 않아요.

치열하고 냉정한 주전 경쟁 때문일까요? 그것 때문은 아니에요. 일반인 친구들과 어울리길 좋아할 뿐이에요. 제가 못 참는 것 중 하나가 자아가 강한 사람이에요. 모든 선수가 그렇지는 않지만 간혹 자기애가 넘쳐 디바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있어요.

당신도 그런 행동할 때가 있나요? 저는 디바가 아니에요. 하지만 장난을 치긴 해요. 홍보팀 사람들이 인터뷰나 촬영 등을 부탁하면 마치 하기 싫은 척하며 골탕을 먹여요. 아주 가끔요. 다들 그게 장난이라는 걸 알아요.

자신이 뛰어난 축구선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언제 처음 발견했나요? 퀸즈 파크 레인저스 유스팀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항상 형들과 경기를 했거든요. 18세 이하 팀에서 뛸 땐 열네 살밖에 안 됐어요.

퀸즈 파크 레인저스를 선택한 이유는 어머니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어머니는 제가 런던을 연고지로 둔 팀에서 뛰길 원하셨어요.

원했다면 아스널에 갈 수도 있었나요? 아스널에 입단할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매번 무산됐어요. 어머니는 제가 아스널에 갔다가 자리를 잡지 못할까 봐 걱정하셨어요. 그러니 일단 기다려보자고 하셨어요. 만약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스널이 저를 원한다면 다시 제안을 해올 거라면서.

리버풀에 입단한 것은 언제였죠? 열다섯 살 때요. 어느 날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서 “오늘은 안 뛰어도 돼”라고 하더라고요. “왜요?”라고 물었더니 내일부터 리버풀로 가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네 그렇군요”라고 말한 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한테 “미안한데 나 리버풀로 가야 돼. 많이 보고 싶을 거야”라고 작별 인사를 했어요. 담담한 척했지만 리버풀 입단은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리버풀에 정착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나요? 고풍스럽고 예쁜 집에 방을 얻었는데 집주인 내외분이 잘 챙겨주셨어요. 구단에서 좋은 학교도 알아봐 줬어요. 학교에 가고 훈련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 행복했어요. 정말로요.

2012년 리버풀에서 1군 데뷔를 했고, 2015년 여름 영국 선수 중 가장 비싼 이적료를 기록하며 맨체스터 시티의 유니폼을 입었어요. 골을 넣은 뒤 유니폼의 엠블럼에 키스를 하는 편인가요? 전혀 하지 않아요.

그럼 엠블럼에 입을 맞추는 선수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팀에 대한 애정이죠. 저도 골을 넣고 엠블럼에 키스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선수든 구단이든 나름의 가치가 있기 마련이에요.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에이전트가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이곳은 냉혹한 세계야. 네가 열네 살이라면 구단에서 너와 계약을 맺을 필요가 없어. 하지만 열여섯 살이 되면 상황은 달라져. 계약을 맺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기분을 상상해봐. 그러니까 다른 구단으로 옮길 기회가 생겼을 때 네가 원한다면 반드시 잡아야 해. 어차피 구단도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거든. 앞으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을 따르는 게 올바른 선택이야.”

아직도 스물네 살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지난 시즌 리그 2연패를 달성하고 FA컵 우승도 차지했는데 목표치를 더 올릴 계획인가요? 그럼요. 매년 이전 시즌보다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은 꼭 이루고 싶어요. 올해는 아쉽게 실패했잖아요. 리버풀에 입단하면서 스스로 다짐했어요.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면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갈지 고민하겠다고요. 그리고선 맨체스터 시티에서 첫 우승을 맛봤어요. 계획한 것들이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선수생활 마치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사업에 관심이 있나요? 없진 않아요. 재테크에 관심이 많아요. 콩파니한테 이런 질문을 하기도 했어요. 수많은 축구선수 출신 중에서 왜 억만장자나 성공한 사업가를 보기 힘드냐고. 진짜 드물어요.

SNS상에서 얼마나 많은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고 여기나요? 직접 확인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리버풀을 떠나 맨체스터 시티로 왔을 땐 저에 대한 내용을 샅샅이 찾아보고 “사람들이 나한테 왜 이러지?”라며 의기소침해졌어요. 왜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지 허탈해요.

SNS에서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비난과 욕설, 악플을 퍼붓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아무렇지 않다고요? 저에 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화면 뒤에 숨어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요즘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지만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라고 해주는 사람들도 생겼어요.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SNS는 굉장히 잔인할 수 있어요. 소셜 미디어 기업들이 보고만 있으면 안 돼요. 사용자 보호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어린 아이들도 SNS를 많이 하잖아요. 비방과 욕설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해요.

온몸에 문신을 새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살면서 좋은 선택도 하고, 나쁜 선택을 하기도 해요. 대부분의 문신은 열아홉 살이 되기 전에 새겼고 몇 개는 작년에 새로 했어요. 어머니는 제 몸의 문신을 굉장히 언짢아해요. 문신은 술과 같다고 생각해요. 술을 입에 대는 것조차 질색해요. 음주 문제 때문에 저와 반년 정도 얘기조차 안 하기도 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요? 다른 선수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셨어요.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그 선수가 아니었다면 살면서 술을 마시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아무튼 그 사건으로 어머니와 냉랭하게 지냈어요. 삼촌을 제외하면 가족 누구도 술을 하지 않아요.

맨체스터 시티에서 문신이 없는 선수는 얼마나 되나요? 꽤 있어요. 권도안과 콩파니도 하지 않았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도 문신을 시작하지 않았을 거예요. 한번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문신이거든요.

그럼 더 이상 문신을 하지 않을 생각인가요?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어요.

    에디터
    Alastair Campbell
    포토그래퍼
    Hunter & Gatti
    스타일리스트
    Michael Fisher
    그루밍
    Johnny Caruso
    프롭 스타일리스트
    Eric Mes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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