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알고 싶은 브랜드의 디자이너 6인 | 지큐 코리아 (GQ Korea)

지금 가장 알고 싶은 브랜드의 디자이너 6인

2019-09-20T17:17:56+00:00 |interview|

지금 가장 알고 싶은 브랜드의 디자이너 6인. 그들에게 각자의 비전과 책임감 있는 패션에 대해 묻고,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었다.

Glenn Martens – Y/Project

2019 F/W 컬렉션을 피티 워모 기간에 소개했다. 새로운 곳에서 쇼를 치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닐텐데. 이탈리아를 사랑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처음 여행한 곳이 피렌체와 베니스였으니까. 그때 스탕달 증후군(뛰어난 예술 작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과도한 흥분 상태에 이르는 것)을 제대로 겪었다. 그러니 피티 워모에서 컬렉션을 선보이는 건 내겐 특별한 의미였다. Y/프로젝트가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걸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 계기이기도 했고.

쇼 방식이 특이했다. 옷을 잘 보여주는 것 이상의 쇼를 해보고 싶었다. 피렌체에서,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게 뭘까 생각했다. 우선 3천 명이 넘는 사람을 초대했다. 패션 업계 사람들 외에 피렌체의 현지인도 불렀다. 패션을 공부하는 학생,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밤에 쇼를 했는데, 모든 게스트에게 손전등을 나눠줬다. 그게 런웨이의 유일한 조명이었다. 모두 옷을 보려면 한 마음으로 모델에게 손전등을 비춰야 했다. 3천 개의 손전등이 런웨이를 각자의 방식으로 비추던 장면은 기가 막히도록 벅차고 아름다웠다.

Y/프로젝트의 실루엣과 구조는 늘 창의적이고 흥미롭다. 어떻게 이런 독특한 실루엣을 생각하나? 우리 팀은 한마디로 ‘싱크 탱크’다. 매 컬렉션마다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직관적인 과정이라 거쳐야 할 룰 같은 건 없다. 아이디어는 언제 어디서든 떠오르니까. 박물관에서 어떤 작품을 감상하다가, 혹은 지하철에서 흥미로운 사람을 마주쳤을 때, 옛날 옷 더미에서 보물 같은 걸 발견했을 때처럼.

셀러브리티보단 일반인에게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 어울릴까? 주변에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 일단 Y/프로젝트 팀의 구성원만 봐도 그렇다. 25개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일한다. 이들과 일하는 게 너무 즐겁다. 그래서 일 말고 다른 것도 자주 한다. 오페라를 보러 가기도 하고 술도 마신다. 스코틀랜드에서 10일 동안 야생 캠핑을 한 적도 있다. 이런 다양성과 자유로움이 나에게 영감을 준다. Y/프로젝트의 옷에도 물론이고.

원래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했다고 들었다. 왜 진로를 바꿨나? 그냥 패션에 빠져서. 정확한 계획은 없었다. 스물한 살에 인테리어 디자인 공부를 마쳤는데, 일을 시작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더 공부할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이 분야를 택한 거다. 앤트워프 아카데미에서 패션을 시작했을 때 패션에 대한 배경 지식이 말 그대로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패션과 바로 사랑에 빠졌다는 건 알았다. 마치 숙명인 듯.

패션 디자인의 매력은 뭘까? 패션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것만큼 아름답고 값진 일이 또 있을까?

다시 당신의 옷에 대해 얘기해보자. ‘빈티지’란 단어가 당신에겐 중요한 의미일 것 같은데? 완전히 새로운 옷을 고안해내지 못한다면 ‘빈티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디자인이 잘 만든 옛날식 데님 팬츠와 셔츠 같은 것에서 출발하는 건 맞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옷을 빈티지라 부르고 난 ‘클래식’이라고 부른다.

이 브랜드를 통해 당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모두 로고를 강조하는 지금, 우리는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로고 뒤에 숨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종류의 옷을 만들지 않는다. 개성과 창의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난 Y/프로젝트의 옷이 입는 사람의 일부가 되길 바란다. 옷에 압도당하지 않고, 반대로 그 옷을 활용해 자신을 드러내길 원한다.

당신은 Y/프로젝트의 어떤 옷을 자주 입나? 코트! 클래식한 원단으로 만들었지만 실루엣과 여밈 라인이 약간 뒤틀린 캐멀색 코트. 이걸 입기 위해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가장 영감을 주는 인물은 누구인가? 사람보다는 장소라고 해야 맞겠다. 자주 시간을 보내는 곳이 파리의 지하철역이다. 벤치에 앉아 다양한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뭘 입고 있는지, 그 옷이 그들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꼼꼼히 본다. 그러면서 수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레이블이 있나? 오토링거(Ottolinger). 즉흥적인 실루엣과 과감한 컷 아웃이 돋보인다. 완성도가 높기도 하고. 근래 등장한 브랜드 중 가장 신선하다.
당신의 ‘인생 영화’가 궁금하다. 생각나는 것이 몇 개 있다. 스티븐 프리어스의 <위험한 관계>,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스티븐 돌드리의 <디 아워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더 랍스터>.

인생에서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겠지? 매일이 도전이다. 다만 우울하지 않게, 어떤 날은 좀 더 재미있게 보내려고 노력할 뿐.

일을 하지 않을 땐 주로 뭘 하나? 여름엔 하이킹을 자주 간다. 주말엔 친구들과 어울리고. 난 벨기에 사람이라 필연적으로 맥주를 사랑한다.

진지한 질문 하나 던지겠다. ‘지속 가능한 패션’이 패션계의 중요한 화두다. 이를 위해 Y/프로젝트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투명성이야말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볼까? 요즘 프린트 로고 후드 티셔츠 같은 걸 팔아 엄청난 성공을 거둔 브랜드가 많다. 이렇게 간단한 옷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보통 30~60유로다. 이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어떤 브랜드는 이 물건을 600~800유로에 판다. 그건 럭셔리가 아니다. 생산 공정에 참여하는 이들은 물론 사는 사람에게도 모욕이다. Y/프로젝트는 이 과정을 매우 투명하게 유지한다. 비싼 옷은 그만한 값어치의 공을 들인다. 또한 GOTS(Global Organic Textile Standard: 70퍼센트 이상의 유기농 섬유를 함유한 직물이 받는 마크) 인증을 받은 소재를 주로 쓴다.

휴가는 다녀왔나? 아직. 하지만 곧 떠난다. 3주간의 일정을 열심히 짰다. 이번 주 금요일에 푸글리아로 간다. 10명의 친구와 아주 큰 집을 빌렸다. 일주일 동안 수영장에 늘어져 와인을 마시고, 저녁도 천천히 오래오래 먹을 거다. 다음엔 슬로베니아로 하이킹을 간다. 조금 터프하긴 하겠지만 대자연에서 텐트를 치고 캠프파이어도 할 거다. 마지막 일주일은 모로코에서 차를 빌려 로드 트립을 즐길 예정. 어떤가. 완벽하지 않은가?

Abdul Abasi, Greg Rosborough – Abasi Rosborough

아바시 로스보로프를 세 가지 단어로 표현한다면? Abdul Abasi (이하 AA), Greg Rosborough (이하 GR) 한 구절로 말하겠다. 앞서가는 디자인.

언뜻 보기에 두 사람은 상당히 달라 보인다. 대체 어떻게 만나 브랜드까지 같이 만들게 된 건가? AA 2006년 FIT에서 남성복 디자인 프로그램을 함께 수강했다. 그러니까 마음 잘 맞는 학교 친구끼리 브랜드를 만든 것이다. 이름을 정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냥 각자의 성을 땄다.

2019 F/W 컬렉션 이야기를 해볼까? 컬렉션의 주제는 무엇인가? GR 조각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로댕이나 브랑쿠시의 동상, 석조 같은 것. 날것의 재료에 어떤 의미를 담아 빚어낸다는 게 흥미롭다. 우리는 버려진 옷감에 이 방식을 적용했다. 쓸모 없어진 재료로 테일러링 피스를 만든 것이다. 컬렉션을 대표하는 아이템을 꼽는다면 ? AA, GR ARC 라인을 응용한 옷들. ARC 데저트 셔츠, ARC 재킷 6, ARC 앙카라 팬츠, ARC 항공 점퍼 등.

ARC 라인이 무엇인가? AA 브랜드의 베스트셀러인 ARC 재킷에서 파생한 것이다. 나는 엔지니어드 가먼츠에서, 그렉은 랄프 로렌에서 일했다. 그 경험을 살려 클래식 테일러 재킷을 편하게, 실용적으로 재해석하고 싶었다. 그렇게 만든 게 ARC 재킷이다. 블레이저의 등과 겨드랑이에 신축성이 좋은 소재를 덧댔다. 출시하자마자 반응이 좋았고, 이후 팬츠, 셔츠, 점퍼에도 이 디테일을 적용했다.

2019 CVFF 파이널리스트 자리에 당당히 올랐다. 소감이 어떤가? AA, GR 역사와 전통을 지닌 CVFF에 후보가 된 것만으로도 영광스럽다. 이런 기회를 통해 아바시 로스보로프란 이름을 더 알릴 수 있어 기쁘다. 더 많은 사람과 우리의 옷, 비전을 공유하고 싶다.

상당히 정제된 비주얼을 선보인다. 어떤 사진가를 좋아하나? AA 룩북이나 캠페인 이미지를 만드는 건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작업이다. 옷이 잘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데 더 신경 쓴다. 어빙 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파리 듀코빅, 에드워드 커티스 등의 사진가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뉴욕에 살며, 뉴욕 컬렉션 기간에만 컬렉션을 선보였다. 다른 도시로 무대를 옮겨보고 싶진 않나? GR 변화는 언제든 환영이지만 중요한 건 도시를 옮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많은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싶다. 직접적인 방식일 수도, 첨단 기술을 활용한 가상 현실을 통할 수도 있다.

각자 뉴욕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를 꼽는다면? AA 유니언 스퀘어의 스트랜드 서점. GR 아침 9시 전의 프로스펙트 파크. 애완견을 산책시키는데, 그 시간엔 사람이 별로 없어 목줄을 풀어줄 수 있다.

요즘 빠져 지내는 것이 있다면? AA 3-D와 XR(확장 현실). GR 패션과 환경 사이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지속 가능한 패션’이 정말 세계적인 이슈다. 아바시 로스보로프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GR 생산 과정은 물론 한 제품의 수명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래 쓸 수 있는 디자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 또 우리는 모든 공정을 뉴욕에서 진행하고, 뉴욕에서 버려진 옷감을 재료로 쓴다.

Charles Jeffrey – Loverboy

러버보이의 옷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로맨틱 펑크? 아방가르드? 무서울 것 없는 당당함, 그리고 볼드함. 하지만 아직 정체성을 찾는 중이다.

이렇게 독특한 컬렉션을 만드는 이유나 배경이 있나? 나는 늘 개성이 강하고 밝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아트워크와 음악을 사랑한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을 보거나 들을 때의 느낌을 옷에 표현하고자 한다.

2019 F/W 컬렉션에 대해 얘기해볼까? 주제는 무엇인가? ‘달링 리틀 실리(Darling Little Sillies)’ 란 제목을 붙였다. 사랑스럽지만 어딘가 바보 같은 천진함이 있는 사람들. 피터 팬과 그의 친구들, 나이를 먹지 않는 숭고한 어떤 세계에서 영감을 얻었다. 런웨이는 파티장처럼 꾸몄다. 풍선, 반짝거리는 커튼. 피날레엔 꽃잎도 뿌렸다. 우리 시대의 사랑과 우정을 축하하는 것이 이 컬렉션의 목적이다.

가장 중요한 룩을 꼽는다면? 러버보이 컬렉션의 핵심인 타탄체크. 이번 시즌엔 이를 셰퍼드 체크로 발전시켰다. 베이커 보이 모자를 더한 첫 번째 체크 룩, 그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룩이다.

런던의 ‘보그 패브릭’이란 클럽에서 자주 파티를 열었단 이야기를 들었다. 그 파티 이름이 ‘러버보이’였고. 파티의 연장선이 지금의 러버보이인 셈인가? 그렇게 볼 수 있다. 러버보이를 브랜드화하면서 파티에서 누렸던 엄청난 에너지와 자유가 일상에 스며들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우리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 클럽 참 궁금하다. 지금은 없어졌다던데? 작고 사랑스러운 지하 클럽이다. 아담한 바와 디제이 부스, 겨우 5제곱미터 남짓한 댄스 플로어가 있다. 한번은 내가 디제잉을 하는 파티에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90명 정도가 들어가는 공간에 250명 넘게 온 것이다. 사람들이 계단에서 넘어지고 구르는 등 난리도 아니었지만 정말 즐거웠다. 가장 좋았던 기억 중 하나다.

여전히 파티광인가? 종종 파티에 가고, 춤추는 걸 정말 좋아하지만 예전만은 못 하다.

어떤 술을 주로 마시나? 있는 척해야 하는 파티에선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주문한다. 화이트 와인은 언제 어디서든 마시는 편.

지금 무슨 옷을 입고 있나? 티셔츠에 킬트, 그리고 베레를 썼다. 전형적인 러버보이 스타일이다. 하하.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 기억나나? 열네 살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 아니면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흔들린 적이 없다.

처음 만든 옷이 기억나는지? 어떤 옷이었나? 페인트 칠한 담뱃갑 여러 개를 풀로 붙인 티셔츠. 가슴에 요상한 엠브로이더리 장식을 한 것 같이 보였다.

어떤 음악을 즐겨 듣나? 음. 어려운 질문이다. 더 호러스(The Horrors)와 화이트 스트라입스(White Stripes)의 음악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사진가는? 팀 워커.

일하지 않을 땐 주로 뭘 하며 시간을 보내나? 그때그때 다르다. 혼자 있고 싶을 땐 런던 거리를 정처없이 걷는다. 아니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과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한다. 절대 비밀이다.

Emily Adams Bode – Bode

지난 2월에 소개한 2019 F/W 컬렉션으로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됐고, 6월엔 파리에서 첫 번째 런웨이 쇼를 열었다. 대단한 성과다. 고맙다. 그저 황홀하다. 파리로 무대를 옮긴 건 여러모로 좋았다. 생산 일정이 잘 맞았고, 중요한 바이어와 프레스에게 보디를 잘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보디의 뿌리인 미국과 연결 고리를 계속 이어나갈 거다. 미국의 남성복 디자이너로서 패션 위크 외에 미국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이벤트들을 계획하고 있다.

2019 F/W 컬렉션엔 어떤 스토리를 담았나? 토드 알든의 일생이 주제다. 그는 갤러리스트이자 뉴욕 아트 신의 역사로 남은 인물이다. 어렸을 때부터 동전이나 우유병 뚜껑, 야구 카드 같은 사소한 것들을 수집했고,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만한 물건에도 가치를 부여해 전시하곤 했다. 일상적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그의 시각에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예를 들면 어떻게? 1950년대의 우유병 뚜껑 종이를 패치워크처럼 장식한 레인 코트와 가방, 1900년대 초 인디애나주에서 시작된 걸로 알려진 ‘시니어 코즈(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학생들이 노란 코듀로이 팬츠에 낙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린 것을 말함)’를 응용한 코듀로이 팬츠, 파자마를 소개했다.

흥미로운 소재와 패브릭을 정말 많이 쓴다. 2020 S/S 시즌엔 1970년대 서커스에서 말을 장식하던 리본과 1920년대의 커튼 패브릭을 활용했다. 이런 걸 다 어디서 구하나? 빈티지 텍스타일은 미국 동부 쪽에서 주로 찾는다. 옛날 소재와 패브릭을 다루는 딜러들과 상당히 친해져서 내가 직접 가지 못할 땐 그들이 알아서 특이한 걸 보내준다.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도 공수한다. 오래된 프랑스의 매트리스 패브릭이나 아일랜드의 레이스 테이블보, 알록달록한 한국의 전통 이불 같은 것을 최근에 받았다.

‘빈티지’란 단어가 당신에겐 매우 큰 의미인 것 같다. 내게 ‘빈티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모든 것을 뜻한다. 꼭 패브릭이나 옷이 아니더라도 빈티지 아이템에 대해 공부하거나 그 배경과 역사, 거기에 숨은 사적인 이야기들을 서치하는 게 참 흥미롭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빈티지 마켓에 다녔고, 다양한 빈티지 아이템에 쌓여 지냈다던데. 가장 아끼는 물건이 있나? 난 애틀랜타에서 자랐고, 고등학교 땐 엄마와 이모들의 빈티지 드레스를 입고 학교에 갔다. 지금도 아끼는 건 엄마가 20대 시절에 네팔에서 사온 오래된 스웨터들이다.

개인적으로 수집하는 게 있나? 패브릭과 퀼트를 모은다. 나만의 컬렉션이다. 보디 컬렉션에도 쓰지 않는다. 또 어렸을 때부터 아주 소소하고 크기가 작은 것들을 모았다. 미니어처 같은 것. 주제는 따로 없다.

문득 궁금해진다. 당신의 취향은 이렇게나 여성스럽고 아기자기한데 왜 남성복을 택했나? 언젠가 나의 브랜드를 만들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옷을 디자인하고 싶었다. 그건 결국 남자다. 난 미국과 유럽의 워크웨어 디테일과 실루엣을 굉장히 좋아한다. 여기에 여성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린 퀼팅이나 아플리케 등의 디테일을 접목하고 싶다.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유행에 구애받지 않는 남성복. 내가 원하는 보디다.

Spencer Phipps – Phipps

핍스란 브랜드는 한국에서 좀 생소하다. 핍스는 파리에 베이스를 둔 남성 브랜드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으며,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다시 돈독히 하는 데 관심이 많다.

‘친환경’이란 명제 외에 핍스의 중요한 철학은 무엇인가? 목적성과 즐거움. 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실용적인가? 재미있는 컬렉션인가? 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 핍스다.

친구들과의 작은 티셔츠 프로젝트에서 발전한 브랜드라고 들었다. 처음에 친구들과 그래픽 티셔츠를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했다.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을 유별나지 않게 풀어낸 그래픽 티셔츠. 적당한 공장을 찾고 나서 후디와 다른 액세서리를 좀 더 추가했는데, 규모가 커져 지금처럼 됐다.

2019 F/W 컬렉션의 주제는 무엇인가? 물리학, 그리고 그 학문이 문화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주목했다. 뉴턴의 중력의 법칙, 우주 항공학, 운동선수, 등산 등. 여러 가지 요소를 두고 조사를 벌였다. 양자 역학에 대한 리서치를 하다가 IAS(프린스턴고등연구소: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연구 활동을 했던 단체)와 연락이 닿았고, 내친 김에 함께 일하게 됐다. 최근의 양자 물리학 리서치를 바탕으로 프린트 시리즈를 함께 만들었다.

지속 가능한 패션에 관심이 깊다는 걸 안다. 이를 핍스의 컬렉션에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나? 책임감 있는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려고 한다. 우리의 옷, 또는 핍스의 모든 프로젝트를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지구를 보호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하고, 거기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

마크 제이콥스, 드리스 반 노튼과 일했다. 어떤 걸 배웠나? 두 디자이너의 성향은 정말 다르지만 내가 배운 점은 비슷하다. 크리에이티브한 방향으로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 좋은 사람들과 꾸준히 함께할 수 있는 방법.

홈페이지에 ‘트래블 저널’이란 섹션이 있다. 특히 나이지리아에서 찍은 사진과 저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직접 찍고 쓴 건가? 아니다. 친구들이나 핍스의 고객이 자신의 여행 기록을 보내준 것이다. 이 섹션을 더욱 활성화하고 싶다. 좋은 콘텐츠가 있으면 보내달라. 꼭 포스팅하겠다.

여행을 좋아하나?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이 있다면? 너무 좋아한다. 딱 하나를 꼽긴 어렵지만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건 호주의 오지 여행, 그리고 최근에 갔던 스위스 몽블랑 등반 여행, 그리고 미국의 곳곳을 누볐던 로드 트립.

취미가 뭔가? 암벽 등반. 시간이 날 때마다 한다.

요즘 가장 빠져 지내는 것이 있다면? 프랑스에 관한 모든 것. 올해 3월부터 파리에 살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 클라이밍 짐. 파리 근교 팡탱에 있는 무무(Mur Mur)라는 곳이다. 거기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다음 시즌을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꽤나 인류애적 관점으로 접근할 것 같다. 이제 우리가 누린 것을 자연에 돌려줘야 할 차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