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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자동차의 부속품들

2019.10.21GQ

진화하는 만큼 퇴화하는 존재도 있다.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자동차의 부속품.

후드 오너먼트
보닛 끝에 반짝거리는 메탈 조각을 동상처럼 세우던 시절이 있었다. 벤틀리의 날개 달린 알파벳 B, 재규어의 뛰어오르는 맹수 등 브랜드나 차종을 상징하는 장식이었다. 후드 오너먼트는 고급 차를 자처하는 무언의 신호였고, 차에 권위를 부여하는 효과까지 더해져 점점 폭넓게 사용됐다. 국산차의 경우 멀게는 쌍용 무쏘에 코뿔소가, 가깝게는 현대 에쿠스에 날개 모양의 오너먼트가 달렸다. 하지만 오너먼트는 사고가 발생하면 흉기로 돌변했다. 보행자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히는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법적 규제와 제조사의 자발적인 배제로 서서히 사라졌다. 현재 후드 오너먼트를 사용하는 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일부와 롤스로이스뿐이다. 안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벤츠는 쉽게 구부러지도록, 롤스로이스는 충격을 감지하면 보닛 속으로 숨어 들어가도록 설계한다.

시거잭 라이터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두면 몇 초 만에 달아오른다. 뜨거운 표면을 담배에 대면 연기가 피어오르고, 하얗던 담배 끝이 빨갛게 익기 시작한다. 시거잭(Cigar Jack)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원래 차량용 라이터를 꽂던 자리였다. 자동차 배터리에서 공급된 전력으로 전기저항을 일으켜 라이터 내부의 코일을 뜨겁게 달구는 원리다. 지금 시거잭은 전혀 다른 기능을 하고 있다. 일회용 라이터를 몇 백원에 살 수 있고, 흡연자 수도 점점 줄자 차량용 전자제품을 위한 전력 공급 단자로 슬쩍 역할을 바꾸었다. 현재 휴대 전화 충전기나 차량용 청소기를 사용할 때 시거잭을 주로 이용한다. 아직도 몇몇 브랜드는 신차 구매 시 차량용 라이터를 부속품으로 제공하지만, 전자담배가 연초를 빠르게 잠식하는 탓에 머지않아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팝업 헤드램프
1960년대, 미국에서 전조등의 높이가 일정한 기준 이상이어야 한다는 법규가 생겼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의 요구였다. 제조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일반 승용차는 문제가 없었지만, 차체가 낮은 스포츠카는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까다로웠다. 고민 끝에 떠올린 해결 방안이 팝업 헤드램프였다. 평소 보닛 속에 은폐하던 조명이 밤이 되면 고개를 들어 아슬아슬하게 기준 높이에 도달했다. 멋이 아닌 법 때문에 유행한 셈이다. 이후 헤드램프는 약 30년 동안 스포츠카의 디자인 문법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번엔 안전을 위한 제한 규정이 생겼다. 보닛에서 불룩 튀어나온 팝업 헤드램프가 사고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공격을 받았다. 또한 공기 흐름을 방해해 연비를 저하시키고, 차체를 무겁게 한다는 이유까지 더해지며 팝업 헤드램프는 점점 도태되었다.

플립업 글라스
안경에 장착해 필요할 때마다 렌즈를 올리고 내리는 ‘플립업 선글라스’와 어원이 같다. SUV의 해치에서 유리창만 따로 올리도록 설계된 리어 윈드실드를 ‘플립업 글라스’라고 한다. 무거운 해치를 전부 들어올리지 않고도 트렁크에 짐을 던져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실용적이었다. 국산 SUV에도 플립업 글라스가 거의 필수 사양으로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현대 투싼과 싼타페 1세대, 기아 쏘렌토 1세대 등 도심형 SUV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출시된 모델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차가 노후할수록 차체에 완전히 고정되지 않은 장비는 주행 중 잡음을 낼 수밖에 없다. 맞닿은 부품 간 틈도 점점 벌어진다. 별도의 공정을 추가해야 하는 만큼 제작 단가가 오른다는 사실도 더는 플립업 글라스를 볼 수 없게 된 이유다.

자동차 키
열쇠의 사용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방에서 짐과 뒤섞인 열쇠를 찾을 필요 없이 비밀번호나 지문으로 간편하게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선다. 자동차는 한 발 먼저 변화를 맞이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금속으로 된 열쇠로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지만, 이제 ‘엔진 스타트’ 버튼 하나로 손쉽게 시동을 건다. 주머니에 있는 열쇠를 꺼낼 필요도 없다. 스마트키를 몸 어딘가에 지니고 차에 다가가면 자동차가 신호를 인식한다. 자동으로 문을 열고, 실내등까지 밝히며 환영 인사를 건넨다. 전성기를 맞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스마트키도 곧 사라질 운명이다. 스마트폰만으로 차 문을 열고 시동까지 걸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의 일부 차종은 차에 오르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미리 원격 시동을 걸 수 있다.

헤드램프 와이퍼
와이퍼가 윈드실드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생산된 올드카 중에선 헤드램프에도 와이퍼가 달린 차가 많다. 일부 독일차를 비롯해 스웨덴 브랜드인 볼보와 사브에서 특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높은 강설량. 헤드램프 와이퍼는 주행 중 전조등 커버에 내려않는 눈을 제거했다. 역할은 하나 더 있었다. 먼지, 진흙 등 이물질이 헤드램프 커버에 붙으면 상향등을 켠 것처럼 빛이 사방으로 퍼진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와이퍼로 이를 닦아냈다. 그러나 평면이었던 헤드램프 디자인이 점점 유선형으로 바뀌자 더 이상 와이퍼를 달기 어려웠다. 표면에 흠집이 나는 문제도 있었다. 현재 헤드램프 와이퍼는 범퍼에서 튀어나와 고압으로 워셔액을 분사하는 노즐로 전부 대체됐다.

핸드 브레이크
핸드 브레이크의 작동 원리는 가속페달 옆에 달린 풋브레이크와 완전히 다르다. 길쭉한 레버를 손으로 힘껏 들어올리면 후륜과 연결된 강철 케이블이 당겨져 뒷바퀴가 돌지 않는다. 경사진 길에 주차해도 차가 밀리도 않도록 하는 게 첫 번째 목적이지만, 뒷바퀴를 강제로 미끌리며 코너를 돌아나가는 ‘파워 슬라이드’를 할 때도 핸드 브레이크를 활용한다. 하지만 길이가 긴 핸드 브레이크는 운전석과 동승석 사이에서 넓은 영역을 차지한다. 수납공간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두려는 경향과 맞지 않았다. 뒷바퀴를 잠그는 케이블이 시간이 흐를수록 느슨해진다는 단점도 있다. 최근 출시되고 있는 차에선 핸드 브레이크를 찾기 어렵다. ‘파워 슬라이드’를 할 정도의 일부 고성능 차나 비교적 저렴한 차종을 제외하면 전자식으로 작동하는 주차 브레이크를 채택하는 추세다.

전동 조절식 페달
신기술이 등장해 밀린 것도 아니고, 기능이 무의미해져 사라진 것도 아니다. 제작 비용 절감 때문에 자취를 감췄지만, 전동 조절식 페달은 꼭 살려내야 할 기술이다. 다리가 짧거나 기타 신체적 조건 때문에 가속과 브레이크 페달 조작이 어려운 운전자를 위해 버튼 하나로 페달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유용한 기능이다. 국내에선 2000년대에 유행한 적이 있다. 차종과 차급을 가리지도 않았다. 스티어링 휠과 페달 사이가 비교적 먼 승합차를 비롯해 세단에도 빈번하게 쓰였다. 당시 최고급 차에 속했던 기아 오피러스와 쌍용 체어맨은 물론, NF 쏘나타와 기아 로체 같은 대중적인 차에서도 편의 사양으로 고를 수 있었다. 기존 페달의 단점을 보완했다는 ‘오르간 타입 페달’이 나왔지만, 개인의 신체 구조에 최적화된 운전 환경을 설정할 수 있었던 전동 조절식 페달을 따라갈 순 없다.

    에디터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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