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가 양혜규에게 묻고 싶은 것 | 지큐 코리아 (GQ Korea)

현대미술가 양혜규에게 묻고 싶은 것

2019-10-22T10:25:05+00:00 |interview|

4년 만에 돌아온 양혜규는 대답하고 싶은 것보다 묻고 싶은 게 많다.

양혜규의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의 한 부분. 천장에 매달린 작품은 ‘소리 나는 운동’, 중앙에 놓인 작품은 ‘솔 르윗 동차動車’, 전시 공간 전면을 감싼 벽지 작업은 ‘배양과 소진’. 홀로그램 장기판이 바닥부터 벽으로 접혀 올려져 있고 안개가 걷힐 때 드러나는 격자는 조각물의 위치를 결정한다. 관객은 짐볼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그 위에 앉을 수도 있다.

이상한 꿈을 꿨다. 3층 유리창 너머로 코끼리 두 마리가 들어오는 초현실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복권이라도 사야 하나, 태몽은 아닐까, 별의별 상념에 빠졌지만 아무래도 그건 양혜규라는 작가, 그가 한 시간 남짓 나눠준 거대한 세계관, 그로 인한 단시간의 진동 혹은 울림이 나에겐 ‘코끼리 가택 침입’에 비유할 사건으로 이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세게 비가 내리던 늦여름에 양혜규 작가를 만났다. 국제적 현대미술가, 독특한 사상가, 어쩌면 ‘Haegue Yang’이라는 이름이 덜 어색할지 모르는, 베를린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그가 4년 만에 네 번째 개인전을 국제갤러리에서 개최한다. 11월 17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제목 <서기 2000년이 오면>은 가수 민해경이 1982년에 발표한 노래에서 차용한 것이다. 국제갤러리 K3 입구에 발을 디디면 멀리서 노래가 들려온다.(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BGM으로 틀어둬도 좋겠다.) 4분 남짓한 곡의 절반 이상이 후렴구인 “사바(사바)~”로 뭉개지는 요상한 노래를 말이다. 전시 오프닝 전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1982년 민해경 씨의 노래가 발표된 시점에서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2000년이 황당한 가사로밖에 불려지지 못할 만큼 먼 미래였을 거예요. 이 노래 안에는 시간도 시제도 시점도 있어요. 벽지처럼 말려 들어가고 접혀 들어가는 시간이죠. 평범한 유행가 안에서 불현듯 그런 접힌 시간을 봤고, 당시 제가 보냈던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어요. 제게는 70년대, 80년대, 90년대 초까지가 한국에서 보낸 굉장히 생생한 시간인데 그 전과 후가 단절되면서 다른 시공간을 사는 것 같았거든요.”

작가에게 축지법은 중요한 키워드다. 이 개념은 2011년 미국 아스펜 미술관 양혜규 개인전의 타이틀이기도 했다. “A에서 B로 굉장히 빨리 움직이는 것을 사람들이 축지법이라고 생각하죠. 사실 축지는 어떻게 보면 땅을 줄이는 거예요. 결국 공간 이동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전환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공간 이동하는 법을 벽지에 담게 됐죠. 불현듯 한 이동, 비이성적이거나 비논리적인 뜀박질이랄까요? 우리는 물리적인 세계가 진짜 현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가짜일 수도 있거든요.”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적잖이 당황할 수 있다. 무릎 아래로 짙게 깔린 안개, 관람객의 동선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헬스클럽에서나 볼 법한 짐볼, 천장에 매달린 방울 조각 덩어리(‘소리 나는 운동’(2019)), 손잡이가 달려 움직일 수 있는 블라인드 큐브(‘솔 르윗 동차 動車’(2018)), 양파와 마늘, 무지개와 번개, 의료 수술 로봇, 짚풀 등이 콜라주된 벽지(‘배양과 소진’(2018)). 가로 9줄, 세로 10줄의 장기판이 바닥부터 벽으로 접혀 올려져 있다. 이 모든 것이 운동성을 지닌 채 상호 교차하고 뒤얽혀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귀를 쫑긋 세워 소리에 집중해보면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이 음향은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의 중계 영상에서 추출한 것으로, 역사적인 순간을 포착한 이 파일에는 오직 기자들이 누르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발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이 녹음되었다. 과학적 합리성과 자본주의가 소거한 수공과 자연의 가치, 야만의 역사가 훼손한 원시 문화, 거대한 시스템이 소외하고 고립시킨 정치사회적 인물과 공간이 이번 전시를 관통한다.

마지막으로 전시장을 나서며 주의를 기울여야 볼 수 있는 작품이 있다. ‘융합과 분산의 연대기 ― 뒤라스와 윤’(2018)은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와 한국 작곡가 윤이상(1917~1995) 두 사람의 연대기를 주관적 관점으로 교차 편집한 텍스트다. 문필가와 음악가, 국적, 성격, 성별 등 모든 것이 다른 두 역사적 인물을 일종의 이형조합으로 병치시켰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투 샷”. “창작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어떻게 살아내느냐, 역사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빻아내느냐를 생각해봤어요. 윤이상은 아직도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죠. 한편으로는 음악적으로 많이 망각된 측면이 있어요. 제 전시 문맥 안에서 이분의 음악적인 삶을 소개하고 싶었죠. 그가 왜 음악적으로는 유럽이라는 대륙에 갇혀 있고 정치적으로는 한반도에 갇혀 있는지, 이것이 죽어서도 계속되는 감옥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20분 길이의 연주곡 ‘영상’(1968)은 연주자들이 굉장히 어려워하는 곡이에요.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상황에서 어떻게 북한에 있던 강서대묘의 고분벽화 사신도에서 영감을 받아 이런 곡을 작곡했을지…. 저는 이런 게 도약이라고 생각해요. 갤러리에서 꼭 이 곡을 다시 연주해내고 싶었어요.” 통영국제음악재단과의 협업으로 성사된 윤이상의 ‘영상’ 연주는 10월 19일, 11월 16일 토요일 3시에 열린다. 양혜규가 접어놓은 시공간 속에서 상상의 동물들의 선과 색채를 형상화한 음악에 흠뻑 빠질 아름다운 기회다. 볼 수 있는 만큼, 느낄 수 있는 만큼 자유롭게.

한국에서 여는 4년 만의 전시입니다. 작년 4월 독일 퀼른 루트비히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치른 이후 프랑스, 영국에서의 개인전에 이어 10월 21일 재개관하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발표하는 대형 신작까지 쉼 없이 전시가 이어지고 있어요. 개인전이 연애라면 회고전은 결혼 같다는 비유가 기억나네요. 오랜만에 고국에서 전시를 열면 좀 다른 기분이 드나요? 해외에서 전시를 하면 제가 아는 사람은 거의 안 오잖아요. 그냥 모르는 사람들이 전시를 보러 오는데, 그게 훨씬 더 익숙해요. 항상 거리감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다 갑자기 사람들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게 무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제게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게 좀 버겁기도 해요. 그 사람들이 사랑스럽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냥 친근함이 익숙지 않은 거죠.

이번 전시 <서기 2000년이 오면>에 대해 “어렵다” 혹은 “알아야(공부해야) 보인다”는 반응도 있어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한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요즘 작업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솔직함’ 인 것 같아요. 정직성, 정확함, 진정성 등 여러 가지 말로 분절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다른 키워드로 변형을 시켜보자면 저는 이 모든 것이 ‘리얼리티’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어렵거나 쉬운 건 제가 상관할 몫은 아닌 것 같고, 다만 내게 리얼리티가 어디까지 와 있으며 진짜 고민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되도록 정직하게 이해하는 것이 간절해지는 것 같아요.

폭우가 쏟아진 후 맑게 갠 오늘의 날씨가 전시장에 깔린 인공 안개와 기막힌 우연처럼 잘 어우러져요. 전시장에 들어가면 1977년에 작가님이 두 동생과 함께 그린 ‘보물선’이 처음으로 관객을 맞이하죠. 유년 시절에 그린 그림을 모아두는 편인가요? 아니요, 다 버렸어요. 부끄러운 과거라서 다 지워버렸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유물 중 하나예요. 전시에 어린 시절의 그림을 가져온 건 처음이에요. 이 그림은 뭐랄까 사이언스 픽션 같은 면이 있어요. 전시장에 들어오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시공간이라는 화두를 다른 방식으로 미리 던져보고 싶었어요. 그림을 보면 시조새가 날아다니고 이상한 도깨비가 등장하고 시공간을 파악할 수 없죠. 인간 세계 밖에 있는 것 같고 우주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신화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전시의 타이틀이 된 민해경의 노래 ‘서기 2000년이 오면’은 어떤 계기로 발견하셨나요? 흘러간 옛날 노래를 가끔 들어요. 우연히 이 노래를 다시 듣는데 가사가 재밌더라고요. 세상에 의미 있는 가사는 무수히 많은데 오히려 그런 것이 결핍되어 있는 내용이 지금 시점에서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가사를 보면 전쟁도 없고 우주를 날아다니고, 그런 지나친 낙관주의가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해요. 추측해보건데 당시 미래의 전망이 그렇게 밝진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동안의 작업을 시간 순서로 아카이빙해놓은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총 열 점의 2000년도 작품이 있어요. 서기 2000년, 작가님에게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나요? 제가 연도에 약해서 그런데, 거기에 뭐가 있던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A4 용지 15장에 인쇄된 텍스트인 ‘욕실 묵상’(2000)이란 작품이에요. 그 글은 엄마랑 같이 쓴 거예요. 당시 사진, 글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했어요. 그때부터 저는 이미 산만한 사람이었어요. 그 작업에 대해 말하자면 소규모 재해라고 불러야 할까요. 좋은 사건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낯이 좀 부끄러울 수 있는데, 다만 그런 것을 밝히기 시작했다는 것이 제게는 의미있었어요.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작업을 해오면서 심각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교훈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그것이 사실상 깨지기 시작한 시점에 나온 작업이었어요. 그런 생각의 클라이맥스가 ‘창고 피스’ 작업이었고요.

‘창고 피스’(2004)는 전시할 공간은 있지만 작품을 저장할 공간이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도리어 작업으로 승화시킨 경우였죠. 여전히 작품을 따로 보관하는 개인 창고는 없나요? 올해 독일에 창고를 마련했어요. 창고 없는 건 제게 원칙 같은 거였어요. ‘앞만 보고 가자’라는 생각에서요. 운반과 보관은 갤러리 혹은 기관의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큰 규모의 전시를 자주 하다 보니까 다른 누군가의 소장품을 빌려서 전시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찾아왔고, 거기서 유래하는 어려움을 자주 맞닥뜨리다 보니 제 작업을 좀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목적 있는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인가요? 현장 답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공부하기 전 무언가 느껴볼 필요가 있을 때는 먼저 여행을 떠나봐요. 지금까지 마닐라에 네 번 정도 다녀왔는데 다음 번에는 북부랑 남부 지역에 수공예를 보러 가려고 해요. 필리핀에 가보면 파인애플 잎으로 어마어마한 수공예를 해요. 올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고 투명한 직물을 손으로 엮어내요. 북부로 가면 태풍, 바람 등 이런 요소를 직물에 패턴으로 표현해요. 어떤 패턴은 옵아트 작가 빅토르 바자렐리의 기하학적 추상 같기도 하죠. 너무 좋은 수공예 작업이 많아요. 젊었을 때는 서구에 경도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삶과 직결된 곳에 적응하는 게 중요했으니까요. 이제는 틈틈이 아시아를 좀 더 많이 여행하고 싶어요. 내년 2월에는 방글라데시에 가볼까 해요. 얼마 전에 예방 접종도 마쳤어요.

최근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분야가 있나요? 내년에 토론토에서 큰 전시가 있어 캐나다 원주민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어요.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s), 이누이트라고 불리는 에스키모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국가관 중 하나가 캐나다였어요. 큐레이터가 수백 명의 멤버로 구성된 이누이트 연합을 초청해서 조명했죠. 호주 시드니 비엔날레 당시에도 원주민 아트를 이해도 못하면서 전시하고 싶지 않아서 열흘 정도 여러 지역 답사를 다녔어요. 원주민 아트(Indigenous Art)를 접근할 때 그 땅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늪지역에 가보면 페인팅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어요. 이 지역에서는 페인팅이 일종의 맵이더라고요. 물이 어디 에서 나오는지 설명해주는 지표가 되어주죠. 이 맵은 생존과도 밀접하게 관련있어요.

2018년 시드니 비엔날레 당시 한 인터뷰에서 총감독 마미 카타오카 때문에 출품을 결심했다고 하셨어요. 작가로서 어떤 순간 큐레이터에게 감동을 받나요? 마미 카타오카는 아시아에서 국제적으로 일한 1세대 큐레이터라고 할 수 있어요. 시드니에서 작업하면서 느꼈는데, 사람이 피곤하면 좀 멍할 때도 있기 마련이건만 그 사람은 한시도 안테나를 내리지 않아요.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고. 질문하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거든요. 작가를 노예화하지 않고 작가 작업을 제일 우선순위로 두고 작업하는 큐레이터에게 감동을 받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요즘 젊은 큐레이터 중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인종 문제나 우익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고, 객체지향 존재론(Object Oriented Ontology)처럼 새로운 이론을 배경으로 큐레이팅 하는 친구도 있죠. 이런 큐레이터들을 계속해서 리스트업하고 있고 촉수를 놓지 않으려고 해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려면 저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거든요.

모교이자 교수로 재직 중인 슈테델슐레에서 어떤 선생님인가요? 연구 비용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쉽지 않은 여건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학생들이 해온 연구가 당장은 그리 재미없을지라도 “어마어마하게 매력적이다”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죠. 그 사람들의 힘은 결국 잠재력이고 매력이거든요. 학생들에게 여행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올해 초에 함께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샤르자 비엔날레를 같이 관람했고, 이번 달에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이스탄불 비엔날레도 학생들과 같이 여행할 계획입니다.

요즘 곁에 두고 천천히 읽고 있는 책이 궁금합니다. 다음 전시가 이스탄불에서 열려서 요즘 오르한 파묵을 다시 읽고 있어요. 이스탄불은 정말 좋아하는 도시인데 지금 정치적인 상황이 좋지 않아서 마음이 매우 아파요. 터키어 가운데 휘준(Hüzün)이란 단어가 있는데 이게 우리나라 한(恨)과 비슷해요. 일종의 멜랑콜리인데 이스탄불의 날씨라든지 도시 곳곳에 그런 정서가 스며들어 있어요. 소설 <이스탄불>을 절반 정도 읽고 있는데 계층을 바라보는 파묵 특유의 관찰법이 많이 와 닿았어요. 이 사람이 이스탄불을 바라보는 방법이 굉장히 공감각적이거든요. 제가 서울과 관계 맺는 것과도 비슷해요.

서울에는 전시 때문에 오랜만에 오셨죠? 아니요, 사실 자주 드나들었어요.

올 때마다 꼭 들르는 장소가 있나요? 초반에는 동대문에 자주 갔어요. 유럽에서 오면 시차 때문에 밤에 잠을 잘 못 자거든요. 제가 겁이 많기도 하고. 동대문에는 24시간 문을 여는 곳이 많으니까 앉아서 사람 구경도 하고 영화도 한 편 보고. 그때만 해도 서울이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작업실도 생겨서 그런 걸 점점 안 하게 되더라고요. 여행 같은 느낌이 사라졌어요. 유일하게 제가 서울에 대해 신선하게 느끼는 부분은 사실 날씨예요. 오늘처럼 비가 오다 해가 쨍하게 나는 날씨, 그것이 제일 와 닿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