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취향 좋은 11인이 꼽은 ‘최애’ 리스트

2019.10.23GQ

좋아하는 것 중 사랑하는 것을 꼽았다. 취향 좋은 이들이 꼽은 ‘최애’ 리스트.

Spotify ‘Discovery Weekly’ 블러는 말했다. “브릿팝은 죽었다”고. 마릴린 맨슨도 말했다. “록은 죽었다”고. 나스 역시 말했다. “힙합은 죽었다”고. 그렇다면 세상엔 어떤 음악 장르가 살아남은 걸까. 아직도 “록 스피릿”이나 “힙합은 문화다” 같은 말을 하는 분들께는 안 된 이야기지만, 정말로 어느 순간 장르는 죽은 것 같다. 21세기의 음악이란, 장르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던 별에 만화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써드 임팩트가 일어나 모두 하나의 LCL 용액이 되어 뒤섞여 버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럼 장르라는 길잡이가 사라진 이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음악을 만날 수 있을까? 답은 AI에 있다. 알고리즘으로 음악을 분석해 새로운 음악을 추천하는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2000년대 초 판도라 라디오는 자체 연구 개발한 뮤직 게놈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을 추천해 주는 스트리밍 라디오를 개발했고, 라스트닷에프엠은 사용자에게서 수집한 재생 목록 그리고 직접 입력한 태그를 기반으로 라디오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금 이 분야의 최고수는 스포티파이다. 압도적인 1위 사업자라는 걸 무기로 인공지능 음악 추천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마침 연구가 활발해진 빅데이터를 이용해 매주 ‘디스커버 위클리’라는 이름으로 당신이 좋아할 것 같은 음악을 우리 어머니보다 더 정확하게 추천해 준다. 스마트폰의 알람과 SNS 피드 사이를 헤집으며 겨우 음악을 듣는 시대에 알아서 좋은 음악을 찾아주는 서비스는 필연적일 것이다. 어릴 적에 용돈을 모아 명동의 음반 가게에서 시디를 사던 즐거움을 떠올리면, 새로운 음악을 찾는 발견의 기쁨을 뺏기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새로운 음악을 찾는 즐거움이 있던 시대는 죽었다”고 SNS에 적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역설적이게도 “ㅇㅇ이 죽었다”고 말한 건 해당 장르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었던 이들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내가 이 발언으로 벌 수 있는 돈은 스포티파이 프리미엄을 7개월 구독할 수 있는 원고료뿐인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스포티파이가 추천하는 음악을 듣고 있다. 이번 주에 찾아준 음악 중에서는 라비나와 케로 케로 보니토가 좋았다. 역시 스포티파이가, AI가 최고다. 스포티파이 아니었음 이런 음악을 어떻게 찾아 들었겠나? 하박국(영기획 대표, 기술인간 에디터)

레이먼드 페티본이 그린 소닉 유스의 ‘GOD’ 앨범 커버 무표정하면서도 얼핏 건방지게 보이는, 선글라스를 낀 한 쌍의 모즈족(mods). 그중 한 사람은 담배를 물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담배 문 자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있다. 밴드 명 ‘SONIC YOUTH’는 펜으로 휘갈겨 쓴 듯하다. 그 옆에 글귀가 눈에 띈다. “I stole my sister’s boyfriend. It was all whirlwind, heat, and flash. Within a week we killed my parents and hit the road.(난 자매의 남자친구를 빼앗았지. 그야말로 정신없고, 후끈했고, 한순간이었지. 일주일 안에 우리는 나의 부모를 죽이고 떠나버렸어.)” 도발적인 문구를 경계하기도 전에 흑백 드로잉은 화살같이 꽂힌다. 레이먼드 페티본이 그린 이 드로잉은 지적인 펑크록을 연주하고, 앨범의 시각적 코드를 매번 탁월하게 구현하는 밴드 소닉 유스의 <구> 앨범 커버워크다. 십 대 시절, 정체 모를 반항기를 통과하던 내게 소닉 유스의 음악은 동시에 패션이었다. 닥터 마틴 워커와 구제 옷을 걸치고 소닉 유스의 앨범, <구>를 구비하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전쟁보다 사랑을, 자본보다 꿈을, 동물과 환경을 중시하는-세계에서 힙스터가 될 수 있었다.

음악은 미술만큼이나 시각적이다. 악보는 추상적인 흑백 음표 기호 모음집이며, 곡이 수록된 음반의 커버는 한정된 면적의 포스터다. 어떤 밴드들은 이 정사각형의 면적을 자기들의 정체성을 표방하는 인쇄된 무대로 활용한다.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범상치 않은 앨범 커버워크를 선보이는 소닉 유스가 그렇다. 베이시스트 킴 고든은 아티스트 페티본에게 드로잉을 제안했고, 첫 메이저 레이블 발매 앨범 <구>는 1990년, 페티본의 드로잉과 함께 탄생했다. 그 자신도 한때 밴드 뮤지션이었던 페티본은 <구> 음반 디자인에서 날선 사회 풍자가 반영된 공격적인 잉크 드로잉으로 소닉 유스의 급진적인 록에 화답했다. 좋은 음반 디자인은 음악 감상을 확장시킨다. 마치 무형의 음악을 손에 쥐는 느낌이기도 하다. 소닉 유스의 음악과 페티본의 그림으로 구성된 <구> 앨범; 그것은 십 대 시절의 내게 세상의 이면을 손에 쥐는 경험이었다. 전가경(사월의 눈 대표, 디자인 저술가)

턴테이블 Technics SL-1200MK2 디제이인 까닭에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어떤 턴테이블을 구매해야 하냐고 묻곤 한다. 나의 대답은 오직 하나. 가격과 용도 디자인 그 어떤 것을 감안하더라도 추천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 이 세상에서 가장 독점적인 위치를 지니고 있는 공산품, Technics사의 SL-1200 다이렉트 드라이브 턴테이블이다. 1970년대 후반에 첫선을 보인 이 모델은 아직까지도 큰 모델 변경 이나 구조와 설계상의 변화 없이, 여전히 디제이와 바이닐 마니아들의 영원한 동반자로 자리 잡고 있다. 왜? 간단히 말하자면 강하고 정확한 구조 설계 때문이다. 0.15Nm의 토크는 0.7초만에 33rpm으로 플래터를 회전시키며, 이 강력한 토크는 큐잉이나 스크래칭과 같은 디제이들의 테크닉을 가능하게 했다. 게다가 헤비웨이트의 베이스 유닛, 그 위에 마그네틱으로 얹힌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의 플래터는 자기방식으로 구동되기에 마모되지 않고, 강력한 구조설계 덕분에 쉽게 고장 나지 않으며, 클럽의 대형 음향이 가져오는 진동과 공명 현상에서도 바늘이 튀거나 피드백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수많은 오디오 기기 제작사들이 더 나은 설계를 표방하며 수치상으로나 편리성 면에서 더 좋은 모델들을 만드는 시도를 해왔지만, 아직 성공한 사례는 없다. 이 완벽에 가까운 설계는 단순한 스펙과 회로 설계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각 부품 간의 무게 중심과 소재, 결합 방식이 만들어낸 절묘한 공명 주파수에 대한 반응, 게다가 오랜 시간 동안 디제이들의 역사와 함께하면서 그 자체가 디제이들의 인체공학적 디자인이 되어버린 ‘적응 과정’까지를 일컫기 때문이다. 이 턴테이블은 힙합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디스코 및 힙합 디제이들이 처음으로 ‘턴테이블리즘’의 테크닉을 만들어낸 것도 이 모델 덕분이며, 이는 오늘날 디제이의 역사를 넘어 댄스뮤직의 역사, 혹은 전자음악의 역사로도 이어진다. 인류 문화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친 단일 모델의 제품이 있었나? 혹자는 아이폰을 이야기할 테지만 점유율 1백 퍼센트에 수렴하는 Technics SL-1200 모델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나는 1980년대에 생산된 MK2 모델부터 1980년대 후반에 나온 MK3, 1997년의 MK3D, 곧이어 생산된 MK5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모두 같은 모델이며 모두 현역으로 사용 중이다. 내 부주의로 인한 고장 외에는 어떠한 결함도 없음은 물론이다. 최근에 발표된 MK7은 보다 정밀한 모던 테크놀로지와 공정으로 제작되었지만 무게와 재질, 약간의 설계와 플래터 구동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오히려 신뢰가 가질 않는다. 실제로 사용한 후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오래된 것이 지금 것보다 나을 때도 있다. 소울스케이프(DJ)

필름으로 영화 보기 필름에는 시간이 쌓인다. 모든 필름은 영사기에 걸리고 관객과 만나는 순간부터 마모의 과정을 겪는다. 여러 극장을 돌아다니며 상영을 거듭하는 동안 선명했던 색깔은 탁해지고 필름 표면에 크고 작은 흠집이 생기며, 지직거리는 잡음도 끼어든다. 깨끗한 화면이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당연히 불합격이다. 요즘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낡은 필름에 묻은 시간의 때를 걷어내기도 한다. 디지털 버전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만들 때 원본 필름의 모래 먼지 자국까지 지워버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니 필름에 스며든 시간의 흔적은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낡음이라는 속성 때문에 필름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고전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극장에서 일하는 덕분에 영화를 필름으로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때 나의 관심은 종종 작품 자체보다는 필름이라는 물질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자체를 향한다. 어떻게 보면 페티시라고 할 수도 있는 퇴행적 즐거움이지만, 비 내리는 신에서 지글거리는 소리로 가득한 화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들뜨듯 설렌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어둠은 걷히고>에서 새벽 시간 어둠이 은은히 배어날 때, 마이클 만의 <히트>에서 냉정한 도시의 야경이 역설적인 따뜻함을 만들 때, 하워드 혹스의 <소유와 무소유>에서 담배 연기가 성냥 불꽃을 휘감을 때, 나는 그 빛과 그림자에 묵직하게 쌓인 시간의 두께를 함께 느낀다. 필름으로 영화를 보는 건 긴 시간을 꿋꿋이 견뎌낸 단단함과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연약함을 동시에 보는 일이다. 영사기에 걸린 필름이 지금 이 순간에도 마모의 과정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기분을 함께 안겨준다. 내가 보고 있는 이미지는 다시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내 앞에 돌아올 수 없으며, 나와 함께 영화를 본 관객과만 독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행위는 ‘관람’보다 ‘목격’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나는 지금 내 뒤에서 돌아가고 있는 필름이 앞으로 다시 겪을 수 없는 일회적이고 특별한 사건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직감한다. 필름은 영화의 미래가 될 수 없겠지만, 앞으로도 필름을 대체할 그 무언가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김보년(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소노라의 사막들 칠레에서 태어나 멕시코에서 활동한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 3부 제목은 ‘소노라의 사막들’이다. 3부는 잃어버린 시인 세사레아 티나헤로를 찾아 소노라의 사막을 헤매는 네 명의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자동차에 앉아 사막을 횡단하며 문학과 예술, 삶에 관한 시시하면서도 심오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소설에선 특별한 묘사를 하지 않지만 사라진 꿈과 기억이 숨겨져 있는 사막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절망적인 공간이 된다.

소노라의 사막은 익히 알려진 사하라 사막이나 타클라마칸 사막과는 전혀 다르다. 지정학적 위치부터 그렇다. 소노라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 면해 있다. 그러니까 이곳은 도망자들, 패배자들, 이민자들, 범죄자들의 거처이며 자본주의로부터 패퇴한 이들의 거처다. 사하라 사막에는 <아라비아의 로렌스>풍의 말과 낙타가 어울리고 타클라마칸 사막에는 실크로드의 순례자들이 어울린다면, 소노라의 사막에는 먼지로 뒤덮인 구식 자동차가 어울린다. 툴툴거리는 소리를 내며 사막을 횡단하는 자동차에선 한물간 로큰롤이나 감상적인 포크송이 나올 것이고, 가끔은 클래식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자동차에 탄 인물들은 그 노래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것이고 대마를 피우며 샌프란시스코의 해변에 나른히 누워 있을 날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결국은 부서진 청춘에 대한 이야기다. 잃어버린 꿈과 좌절된 희망에 대한 이야기. 예술이나 사랑에 미쳤었고 그것의 부질없음을 깨닫게 되지만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이것은 예술의 영원한 테마 중 하나인 동시에 내가 지속적으로 빠져드는 주제다. 좌절한 젊음이 횡단할 공간으로 소노라의 사막보다 적절한 곳이 또 있을까. 그곳에서 길을 잃을지 찾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정지돈(소설가)

격투 게임, 99초의 리얼리티 격투 게임이 어렵다는 편견은 틀린 말이 아니다. 복잡한 커맨드를 순식간에 입력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격투 게임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캔슬’ 시스템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선택지다. ‘캔슬’이란 특정 기술이 발동하는 순간 새로운 커맨드를 입력하면 발동 중인 기술이 취소되고, 즉시 다음 기술로 이어지는 일종의 버그다. 이 버그는 게임 시스템의 명료함보다 플레이어가 찾아내는 새로운 가능성을 선호했던 디렉터의 혜안으로 살아남는다. 이제 ‘캔슬’은 오늘날 격투 게임의 심도를 높이는 기반이 되어 있다. 문제는 이 시스템 덕분에 격투 게임을 위한 공부가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모르면 이유 없이 계속 맞는다. 유리한 공방을 위해 끝없는 연구와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격투 게임이다.

로 격투 게이머는 캐릭터의 움직임 사이를 미려하게 연결하고, 상대방이 놓친 작은 틈새를 공략하는 장인이다. 뛰어난 반사 신경과 동체 시력뿐만 아니라, 심리전의 파괴력과 위기 상황에 냉정을 유지하는 담대함까지 필요하다. 속도는 다르지만, 일대일로 대결하며 차례를 주고받는 바둑과 흡사한 면도 많다. 판정을 내리는 것은 시스템이기에 남 탓하기도 어렵다. 결국 자신이 선택한 찰나의 순간이 쌓여 모든 결과를 만든다. 가끔 경기 종료 후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선수에게서 몇 초 전의 자신을 책망하는 모습을 본다. 격투 게임은 스스로 마주한 거울에 가깝다. 삶의 시간 동안 쌓아온 ‘기보’를 비추는 투명한 거울. 모든 결과는 스스로 결정한 선택의 대가다. 아마 이런 사실이 현시대, 격투 게임의 대중성을 떨어뜨리는 주원인은 아닐까. 어쩌면 이 게임은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자신을 계속 되새기게 만드는 고문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은 마조히스트일까? 아마 그들은 기묘한 캐릭터들의 비현실적 공방이 무엇보다도 현실을 반사하는 99초의 리얼리티란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일 것이다. “게임은 시스템을 통해 세계를 알게 하는 것”이라는 멋진 문구가 다시 떠오른다. 돈선필(미술가)

공작 바라보기 얼마 전 친구의 농장에 놀러 갔다. 그곳에서는 토끼나 꿩을 비롯한 동물들을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공작이 꼬리를 활짝 펼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조우에 잠시 당황하며 공작을 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작은 꼬리를 펼친 채였고. 공작을 좋아한다. 아니, 공작을 딱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새를 무서워하는 쪽에 가깝다. 감정이 없어서 거의 광물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새의 얼굴에 낯섦과 두려움을 느낀다. 공작새 역시 솔직히 조금은 무섭다. 그런데도 나는 공작을 바라보는 일을 아주 좋아한다. 어째서일까.

어린 시절엔 동물원에 가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기린이나 코끼리, 사자나 호랑이를 보는 것도 좋아했지만 어째서인지 정신없이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공작, 그중에서도 숫 공작이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앞으로 걷다 갑자기 꼬리를 활짝 펴고 느린 속도로 한 바퀴를 도는 공작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비실비실 나오다가도,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진다. 생물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사치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청색과 녹색 빛깔을 보며, 그리고 그 만개한 꼬리에 박혀 있는 기묘한 눈 모양을 보며, 어떤 비현실성을 느끼게 되고야 만다. 흰 공작은 특히 더 그렇다. 순정한 백색과 화려한 꼬리의 구조가 어우러져 거의 초월적인 느낌을 주니까. 예전에 함께 흰 공작을 보던 친구가 “사람들은 저런 걸 보고 신이라고 했겠지”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정말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나무 위에 올라앉은 흰 공작을 본다면, 누구라도 신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렇기에 나는 공작을 바라보는 일을 좋아한다. 생물을 바라보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하지만, 공작은 생물을 넘어서는 무엇을 보는 것만 같으니까. 물화된 신성, 생명을 얻은 사치스러움, 세속과 신성을 오가는
이상한 매력이 공작에게는 있는 것이다. 황인찬(시인)

1990년대의 인디 음악 잡지 과거를 반추하는 일이 직업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창작자로서,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는 데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낡은 잡지 보기’다.
잡지란 무엇인가. 온갖 잡다한 것이 다 들어있는 하나의 타임캡슐이자 사료인 기록물이다. 그중에서도 90년대 중반에 대거 등장하여 짧은 개화기를 보낸 뒤 90년대 말, 마치 공룡의 멸종처럼 일시에 자취를 감춘 서브 컬처 매거진들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영미 록 음악과 인디 밴드에 흠뻑 빠진 청소년들은 문화와 예술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 주말마다 독서실을 빙자하여 홍대 라이브 클럽을 드나들고 PC 통신 소모임에서 만난 형, 누나들과 밤샘 채팅으로 오아시스와 블러 중 누가 더 위대한가에 대한 설전을 벌이던 시절, , <팬진Gong>과 같은 잡지들은 보물창고이자 지식의 보고였다.

커트 코베인의 반쯤 물에 잠긴 얼굴이 커버를 장식한 창간호를 처음 손에 쥔 순간의 감흥은 여전히 생생하다. 는 해외 록 밴드 소식 외에도 국내 인디 밴드를 많이 다뤘다. 더욱이 매달 별책 부록으로 인디 밴드들의 미발매 곡들로 꽉 채운 컴필레이션 앨범을 줬으니, 문자 그대로 보물이 아니었겠는가. 그렇게 알게 되어 귀가 닳도록 들은 델리스파이스, 99(Ninety Nine), 옐로 키친의 노래들은 훗날 뮤지션 9와 숫자들를 키워낸 자양분이 된다. <팬진Gong>은 전무후무한 ‘한국 인디 신 전문’ 잡지였다. (애석하지만 그래서 단명했을 것이다.) 이 위대하고 무모했던 책은 조선 팔도의 인디 밴드를 모조리 소개하겠다는 포부라도 가졌던 듯, 홍대를 넘어 전국 각지의 무명 밴드까지 다뤘다. 이를 통해 내가 고3 때까지 ‘최애’였던 부산의 밴드, ‘레이니 썬’을 알게 됐으니, <팬진Gong>의 노고가 최소한 한 명의 삶에는 작은 축복을 전해준 셈이다. 문방구에서 마분지를 사다 붙인 듯한 조악한 표지를 보고 있으면 애틋하면서도 가슴 한 켠의 꺼져가는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듯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지금도 이따금씩 창작에 권태를 느낄 때면, 꼬꼬마 시절 반짝이는 눈과 떨리는 손으로 보고 또 보던 잡지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꺼내어 다시 펼쳐보게 되는 것이다. 송재경(9와 숫자들 보컬)

헤이다르 알리예프 문화 센터 전 세계의 디자인, 건축계의 동정을 살피는 게 일이자 취미인 이로서 꼭 챙기는 소식이 있다. 런던에 위치한 디자인 뮤지엄이 매년 패션, 건축, 가구, 차량, 디지털, 그래픽 등 여러 카테고리에서 하나씩 뽑는 ‘올해의 디자인’이다. 그중 대상은 단 하나에게 돌아가는데, 2014년은 그런 의미에서 특별했다. 최초로 건축 부문에서 대상이 나왔으니까.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 생긴 ‘헤이다르 알리예프 문화 센터’가 주인공이었다. 모니터 너머로 마주한 건물은 대담할 만큼 과감하게 굽이치는 곡선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모습이었다. 위아래로 파동 치는 물결처럼 움직이고, 갈라지고, 접히고, 포개지고, 굴절되어 변곡하는 볼륨은 당시 유행하던 비정형 건축의 과도하고 요사스러운 왜곡과는 결이 달랐다. 거대한 강당, 도서관, 뮤지엄을 한데 모아 부드럽게 넘실대는 흰 봉우리의 스펙터클로 만들면서도 중용과 균형의 미덕으로 수렴하는 완숙한 태도에 온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어느 천재가 이 정도의 조형을 구현했는지 크레딧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주인공은 자하 하디드. 만드는 건축물마다 과도한 파라메트릭 디자인, 지역적 맥락을 거세시키는 랜드마크의 불시착, 도시를 점령하는 폭거적 건축이라며 오만 욕을 깡그리 먹던 바로 ‘그’였다. DDP를 겪으며 비난 행렬에 열심히 동참하던 나는 힘 있는 볼륨의 긴장감이 유연하게 확장되며 건물의 스킨이 지붕에서 내려와 외벽으로 변하고, 미려한 흐름 아래 땅 위로 안착해 끝내 건물과 광장이 구별 없이 자연스레 융화된 풍광을 보며 그의 건축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됐다. 편견의 무서움을 깨닫고 새로운 디자인과 건축을 접할 때 크레딧을 가장 나중에 보는 습관도 그때부터 생겼다. 2016년 자하 하디드의 작고 이후, 그가 세상을 뜨기 전에 디자인한 건축물이 완공되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나는 헤이다르 알리예프 문화 센터를 떠올린다. 과거의 편견이 깨진 순간 움튼 믿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이다. 전종현(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헤네시 파라다이스 술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잊지 못한다. 베트남 호치민 파크 하얏트에서 ‘헤네시 파라다이스’를 마실 때, 세상 어느 곳에 놓아도 향기를 버리지 않는 코냑의 고고함을 생각했다. 크리스마스였지만 호치민은 겨울이 아니었다. 한낮에는 섭씨 30도를 가볍게 넘겼고 사람들은 오토바이가 내뿜는 매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출장을 온 탓에 쉼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다 하루 일과가 끝날 무렵, 겨우 호텔 바 한구석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다른 날이었다면 맥주 두어 잔을 마시다가 위스키를 곁들여 밤을 끝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건축 양식과 음식이 남아 있는 그 땅에서 코냑을 마시지 않는 건 어쩐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판에서 눈이 멈춘 이름은 ‘헤네시 파라다이스’였다. 코냑의 종가 중 하나이며 LVMH 그룹 산하에 있는 헤네시의 코냑 라인업 중 최상급에 속하는 것으로, 병으로는 가볍게 1백만원을 넘겼다. 한 잔 값조차 만만치 않았지만, 외국에서 맞는 크리스마스라는 핑계를 댔다. 바텐더는 정중한 태도로 주문을 받았고, 빠르게 무거운 한 잔이 앞에 놓였다.

위스키는 아무리 고급스러운 향기와 질감을 둘러도, 거친 바람이 부는 북해의 흔적을 담고 있다. 그래서 위스키는 마실수록 외로워진다. 위스키가 태어난 땅이, 그곳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며 또 그렇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코냑은 위스키와 비슷한 색과 도수를 지니지만 맛과 향기는 반대 방향을 가르킨다. 검붉은색이 가진 열기는 입술로 전해진다. 천천히 속으로, 속으로 파고드는 그 맛엔 풍요로운 대지가 담겼다. 그 땅엔 노래 부르고 사랑을 찬미하는 이들의 땀과 눈빛이 담겨 있다. 파라다이스는 사람들의 큰 웃음이 지나고 남은 그윽한 미소, 사탕발린 말이 사라지고 난 뒤의 정확한 문장, 거친 몸동작이 스친 후 잔잔한 여흥이 있었다. 확연히 느껴지는 꽃향기, 은은한 단맛 위로 올라탄 향신료의 이국적인 맛이 조밀하게 어우러져 있었는데, 실상 이 정도 등급에서는 말이 그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특별한 날 이런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이런 술을 마실 때 특별한 날이 되는 것처럼, 파라다이스를 마시며 이국의 밤을 보낸 시간은 내 몸에 남아 있다. 그 후로 다시 헤네시 파라다이스를 마신 적은 없지만 기억한다. 단 한 번의 시간, 루비처럼 빛나던 한 잔에 위로받은 열대의 크리스마스를. 전동현(푸드 칼럼니스트)

에드워드 사이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나에게는 미래형 최애책이 있다. 2008년 한국어판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읽고, 나는 이 책이 아주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고심 중인 나는 질문의 구심점에 이 책을 놓아두고 주변을 도는 중이다. 바로 에드워드 사이드의 마지막 저서, <말년에 양식에 관하여>다.

예술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담론은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곤 한다. 거기에 더해 작가가 겪은 삶의 상승 곡선과 하강 곡선을 따라 이야기가 더해진다. 문학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예술가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을 죽음에 두고, 그 소멸을 향해 가는 노년, 즉 삶의 말년에 발견되는 작품 양식을 살피는 이 책을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2003년 9월 25일 목요일, 에드워드 사이드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일을 마치고 포르투갈에 사는 친구의 집을 방문하던 날 병에 걸려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 책 자체가 문학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을 보여주는 저술이 된 셈이다. 말년의 예술가는 어떤 작품에 집중하는가. 그는 노회함을 뽐내며 세상이 원하는 바로 그런 것을, 세상이 원한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내놓을까? 그리고 그는 이 책에서 실제로 존재한 위대한 예술가들과 그들의 말년의 양식을 살핀다.

‘말년의 양식’이라는 표현과 관련해 논할 거리가 특히 많아 보이는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들은 ‘시의성과 말년성’이라는 첫 글에서 주로 다뤄진다. 죽음 앞에서 순종하는 대신, 예술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현실에 저항할 때 말년의 양식이 생겨난다.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는 예술가의 말년의 작품들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관점을 제시하고, 나는 이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깨달음과 즐거움 간의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둘 모두를 그대로 드러내는 힘”이라는 표현처럼 말년의 예술가는 오히려 더 뾰족해진다. 죽음이란 비로소 바깥의 무엇도 고려하지 않고 온전히 창작할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 아닐까. 조화와 파국 사이에서 파국을 선택하는 말년의 예술처럼, 나도 내 삶의 양식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누군가는 영영 이해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영원히 사랑에 빠질 만한 방식으로. 매년 다시 읽는다. 이다혜(작가, <씨네21> 기자)

    에디터
    이예지
    일러스트레이터
    김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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