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펀치넬로 "매 순간 시험 보는 것 같았어요"

2019.11.02GQ

조용하지만 강하게, 잔잔하면서도 빠르게 나아가는 펀치넬로의 반전 스토리.

셔츠, 라프시몬스. 수트 팬츠, 윈도우00. 이어링과 목걸이, 모두 제로 한 엑스.

재킷과 팬츠, 모두 프라다. 티셔츠, 헬무트랭.

수트 재킷, 윈도우00.

피케 셔츠, 다잉브리드. 레더 팬츠, 윈도우00. 신발, 메종 마르지엘라. 반지, 레끌라.

오늘 촬영장에 들고 올까 말까 고민한 소품 두 가지가 있어요. 테니스공과 라임. 어제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린 ‘오프 루트 페스트’에서 공연을 했는데 한 남자 팬이 오시더니 제 손에 테니스공 두 개를 쥐여주시더라고요. 하나씩 들고 같이 사진 찍자고(웃음). 원래 파란색을 의도하고 한 염색인데 색이 잘못 나와서 이렇게 됐거든요. 한동안 헤어 컬러를 바꾸지 않을 생각이에요.

화보를 찍으면서 블랙 셔츠의 세 번째 단추를 풀기까지 엄청나게 수줍어했어요. 아직 몸의 준비가 덜 됐거든요. 이런 제 모습에 아직 적응이 잘 안 돼서.

굽혀펴기를 많이 할 때는 천 개씩 한다고 들었는데. 그랬었어요. 이번에 <쇼미더머니 8> 방송하면서도 250개씩 나눠서 하루에 천 개를 채웠어요. 이거라도 안 하면 완전히 체력이 소모되어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경연의 긴장감과 압박감을 무엇으로 비유하면 좋을까요? 매 순간 시험 보는 것 같았어요. 부담을 어깨에 잔뜩 짊어지고 걷는 느낌이랄까. 제가 경쟁에 약한 사람이라 시작하기 전에 겁도 많이 났고요. 그래서 일부러 주변 이야기도 거의 안 들었어요.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행주 형이 이기겠다는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놀아보라고 하더라고요.

스스로 제일 잘 놀았다고 평가하는 무대는 언제였는데요? 4강에서 했던 ‘정글’. 그 무대에서 제일 재미있게 놀았어요. 아무래도 페노메코 형, 샘김 씨와 함께해서 부담감이 덜했어요.

화려한 무대와 조용한 작업실, 본인의 기질이나 성향과 더 잘 맞는 건 어느 쪽인가요? 무대에서 좀 더 집중을 잘하는 것 같아요. 객석이 관객들로 꽉 차 있는 장면을 보면 저도 모르게 갑자기 그 순간 확 몰입하게 돼요. 그런 걸 보면 무대가 체질인 것 같아요. 맷집이 조금 강해져서 예전보다는 즉흥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확실히 생긴 것 같아요.

뻔한 질문이지만 상금과 자동차는 어떻게 사용할 생각이에요? 사실 돈이 많다고 해도 쓰고 싶은 데가 별로 없어요. 좋은 물건을 사는 것에 관심이 크게 없거든요. 상금은 절반은 부모님께 드리고 나머지로는 놀러 가서 맛있는 것을 먹는 데 쓸 것 같아요. 자동차는 아버지 드리려고요.

혹시 아직 면허가 없나요? 네, 평소에 자전거 타거나 걷는 것을 좋아해요. 밖 보다는 주로 집에 있고요.

집이 거의 작업실이나 다름없다고 들었어요. 대부분의 가사를 집에서 써요. 책상에 앉아서 노트에 펜으로 써요. 비트를 먼저 듣고 느껴지는 감정에서 출발하는데, 거의 무의식적으로 써내려 가요.

그동안 발표한 곡의 가사를 읽어보면 ‘23’, ‘Lime’, ‘Detox’, ‘Worth It’ 등등 ‘노트’와 ‘펜’이 들어가는 곡이 꽤 많은 이유가 있었네요. 작업을 하다 막히면 어떻게 분위기를 전환해요? 비트 틀어놓고 가사 쓰다가 잘 안 된다 싶으면 바로 게임을 해요.
아 오늘은 뭘 해도 더 안 나오겠다 싶으면 바로 디아블로를… .

그렇게 게임을 하다가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았던 적은 없나요? 어쩔 수 없는 직업병처럼요. 게임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믹 고든 Mick Gordon을 제일 좋아해요. ‘둠 Doom’이라는 게임에서 처음 그분의 음악을 접했어요. 뭐랄까 메탈 기반 음악인데 진짜 멋있어서 한동안 계속 들었어요. 총으로 싸우는 게임 음악을 많이 만들었는데 제가 그런 걸 좋아해서 자주 들었어요.

음악을 어떤 식으로 디깅해요? 지금처럼 카페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너무 좋으면 찾아 들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기도 하고요. 좋은 음악을 발견하는 데는 대중없어요. 처음 듣고 ‘좋다’ 싶으면 장르 상관없이 클래식, 재즈, 게임이나 만화 OST, 정말 다 들어요.

최근에 그런 식으로 좋아진 앨범이 있나요? 클래지콰이의 첫 앨범 <Instant Pig>. TV에서 우연히 듣고 너무 좋아서 최근에 좀 많이 들었어요.

엘로, 우기, 리듬파워, 카더가든 등 여러 뮤지션이 모인 소모임 ‘몽구스’의 정체가 궁금해요. 다같이 모여서 음악 감상회를 연다던데. 음감회는 사실상 없었어요. 시간이 서로 맞을 때 만나서 술 마시거나 PC방에서 게임 하는 동아리 같은 모임이에요. ‘몽구스’ 뜻 자체가 뭐랄까 초원에서 서식하는 애매모호한 포지션의 동물을 일컫는 말인데, 사자와 비교하자면 포식자도 아닌 조그마한 애들이거든요. 저희들끼리 우리의 성격이 약간 ‘몽구스스러운’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어요. 욕심도 욕망도 별로 없는.

반면에 펀치넬로가 무대 위에서 랩을 하는 모습은 굉장히 공격적이고 사나운 맹수에 가까운 것 같아요. 날카롭고 직선적이고 속도감 넘치고 무언가 찢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평소에 때려 부수는 음악을 많이 듣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영향을 받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영국 출신의 래퍼 슬로타이 Slowthai 앨범에 빠져 있어요. 예전에는 맥 밀러 Mac Miller 음악처럼 듣기 편한 노래들이 좋았는데.

슬로타이가 <영국에 위대함은 없다 Nothing Great About Britain>이라는 정규 앨범을 발표하고, 보리스 존슨 총리의 마네킹 머리를 들고서 “Fuck Boris!”라고 외치는 기백이 굉장하던데요. 평소에는 느릿느릿 힘을 풀고 말하다 랩을 시작하면 완전히 돌변하는 모습이 닮은 것도 같아요. 펀치넬로의 지금 취향이 앞으로의 음악에도 쭉 반영이 될까요? 올해 1월에 발표한 <ordinary.>를 프로듀싱했던 영채널 0Channel 형과 그 앨범의 연장선상에 놓인 앨범을 계획하고 있어요.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해보려고 해요. 뭐랄까 정신 나간 것 같은 느낌의 트랩 기반 음악을 만들어보고 있어요.

펀치넬로가 그리는 먼 미래 계획은 뭐예요? 적당히 벌면서 적당히 재미있게 사는 것? 헛된 욕망이나 야망을 빠르게 내려놓는 편이에요. 비트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피아노에 잠깐 흥미를 붙여볼까 했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아직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아서 30분 만에 포기했어요. 일단 ‘랩부터 잘하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장 처음으로 산 Cd는 누구 음반이었나요? 더 콰이엇님의 앨범이었어요.

성공한 덕후가 됐네요. 언젠가 같이 협업해보고 싶다고 말은 안 했어요? <쇼미더머니 8> 촬영장에서 늘 같이 있었는데 인사하는 것조차 쑥스러웠어요. 제게는 그분이 너무 큰 느낌인데 아우라가 남다르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존경하고 좋아했던 뮤지션이라서 그런지 감히 말조차
못 붙였어요.

크러쉬, 밀릭, 딘 등이 속한 클럽 에스키모는 펀치넬로에게 어떤 존재예요? 고등학교 3년 동안 뭔가 이룬 게 하나도 없다면 졸업하자마자 바로 군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고3 말에 형들을 만나면서 음악을 제대로 시작했죠. 다들 음악 덕후들이라 만나면 뭘 먹으면서도 노래를 틀어놔요. 작업실에서 본인들이 만든 곡을 들려준다거나 아니면 최근에 좋게 들었던 음악을 튼다든지. 저는 뭔가 낯간지러워서 만든 노래를 발표하기 전에 아무한테도 잘 안 들려주는 편이에요. 나중에 음원으로 나오면 들어달라고 해요.

오늘 4시간 정도 지켜봤는데 이영신(펀치넬로의 본명) 씨는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혼자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시간이 혼자 있을 때예요. 술도 집에서 혼자 홀짝이는 것을 더 좋아해요. 안주 없이 마시는 소주 한잔.

고요한 집에서 가장 활기찬 존재는 고양이들뿐이겠네요. 엄청난 애묘인으로 알고 있어요. 고양이 네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스무 살에 처음으로 독립하면서부터 함께 지냈어요. 고양이들 이름이 루, 뚱이, 두식이, 잭이에요. 서로 엄청 투닥투닥 싸워서 집에 혼자 있어도 굉장히 시끄러워요. 그래도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고양이 네 마리가 침대에 엉겨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그때가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에디터
    김아름
    포토그래퍼
    이준경
    스타일리스트
    정기욱
    헤어 & 메이크업
    장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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