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미술을 산다는 것 | 지큐 코리아 (GQ Korea)

동시대 미술을 산다는 것

2019-11-13T13:38:31+00:00 |culture|

소더비와 키아프에서 작품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동시대 미술을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들은 대체 무엇에 이끌리는 걸까?

9월 중순 어느 날, 신라호텔 영빈관을 찾았다. 중정에 들어서니 먹색 기와지붕과 오방색 단청이
그 안에 걸린 카우스 KAWS의 컬러풀한 작품과 경쾌하게 호응하며 나를 맞이했다. 내부의 고급스럽게 마감한 가벽에는 에드 루샤, 박서보, 나라 요시토모, 존 커린,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10월 6일부터 양일간, 홍콩에서 진행될 가을 경매를 앞두고 소더비가 마련한 아시아 순회 전시였다. 상하이와 베이징을 거쳐 이틀간 서울에 머문 18점의 작품은 5일 뒤엔 타이베이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크리스티와 함께 양대 경매 회사인 소더비의 현대 미술 경매 행사는 뉴욕, 런던, 홍콩을 주요 거점으로 1년에 각 2회씩 열린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는 프랑스, 1980년대까지는 런던이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지였다. 현재 현대 미술의 수도는 뉴욕이지만 핫 플레이스는 단연 홍콩이다. 시작은 2013년 유서 깊은 아트 페어 브랜드인 ‘아트 바젤’이 로컬 페어였던 ‘아트 홍콩’을 인수해 매년 업그레이드된 행사를 열면서부터다. 곧이어 데이비드 즈워너, 하우저 & 워스 등 월드 클래스 갤러리들이 빌딩 두세 곳에 집중적으로 둥지를 틀기 시작했고 구룡반도, 웡척항 등에도 전시 공간이 들어서면서 홍콩은 아시아 최고의 아트 전진기지가 되었다.

“아시아는 현대 미술 시장에서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지역이고, 젊은 컬렉터의 비율이 높습니다. 지난봄 경매에서 카우스 작품이 신기록을 달성했는데 그 경매에 참여한 이들의 40퍼센트가 젊은 컬렉터였습니다.” 소더비 아시아 현대 미술 디렉터 유키 테라세 Yuki Terase는 그들이 ‘영’하고 ‘액티브’하며 ‘패스트 고잉’하는 특성이 있다고 했다. 카우스의 신기록은 일본의 스트리트 웨어 사업가인 니고 NIGO의 개인 소장품으로 꾸린 경매에서 세워졌다. 2005년 그가 주문한 캔버스 작품 ‘The KAWS Album’은 한마디로 패러디의 패러디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이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 커버에서 이미지를 차용해 발매한 OST <The Yellow Album>(1998) 커버를 다시 카우스가 차용한 것. 카우스의 시그니처인 ‘X’ 형태의 눈을 한 ‘킴슨’ 가족이 화면을 채우고 있는 그림이 그의 가장 뛰어난 캔버스 작품이라는 데 모두 동의할 테지만, 추정가의 15배가 넘는 1억 1천5백만 홍콩달러(약 1백75억원)에 팔릴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2021년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풀 커리어를 다루는 전시회를 앞둔 카우스의 급부상에 과연 한계가 있을까?

일주일 후 코엑스에서 한국국제아트페어 KIAF Art Seoul 2019(이하 ‘키아프’)가 개막했다. 메인 부스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서 컬렉터 K를 만났다. 스트리트 아트 신의 갓 마더, 조이스 펜사토 Joyce Pensato가 배트맨을 그린 유니크 드로잉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컬렉션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작품이다. “갓 마더를 사고 나니까 갓 파더, 리처드 햄블턴 Richard Hambleton 작품도 사야겠는 거예요. 옥션에서도 살 수 있었지만, 워낙 모작도 많고 해서 아카이브 넘버를 부여받은 작품을 사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해 뉴욕에 있는 갤러리에서 샀어요.” 1970~1980년대 키스 해링, 바스키아와 함께 뉴욕의 스트리스 아트 신에서 활동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잊혔던 햄블턴은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7년 4월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초연된 다큐멘터리 <Shadowman>에서 우리는 뉴욕시 전역의 건물들에 검은 페인트로 실물 크기의 사람 실루엣을 남겼던 진정한 거리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뱅크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그의 작품 세계는 그러나 헤로인 중독과 그로 인한 질병으로 잠시 주춤했고, 영화가 공개된 그해 가을 리처드 햄블턴은 60대 중반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아트 컬렉팅이란 벤처 투자와 비슷한 것 같아요. 시대 정신에 투자하는 거죠. 카우스도 그렇고, 며칠 전에 뱅크시의 유화 작품이 런던 옥션에서 9백87만 파운드
(약 1백47억원)를 경신했듯이 비주류가 주류로 올라오고 있고, 그런 경향이 확산될 거라는 시대의 흐름에 배팅하는 거니까 그렇게 큰돈을 걸 수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두 작가의 작품이 워낙 제 취향이기도 하지만 여러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좋은 평가를 받고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레 조이스 펜사토나 리처드 햄블턴 같은 선구자에 해당하는 작가들이 재조명될 거라고 내다보고 구입한 측면이 있거든요.”

그와 헤어져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전시장을 맴돌다 지 갤러리의 정승진 대표를 만났다. 올해 부스에는 에코 백, 티셔츠 등 마이클 스코긴스 Michael Scoggins의 굿즈들이 벽 하나를 채우고 있다. 스코긴스는 거대한 노트에 낙서처럼 보이는 초보적인 그림 양식으로 무장해제된 진실이나 사회적 이슈를 담아내는 작가다. 초기에는 지드래곤이 그의 작품을 샀으며, 인스타그램에서 작가 이름을 검색하면 작품을 배경으로 찍은 유명인의 셀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확실히 컬렉터의 연령이 낮아지긴 했어요. 현재 우리 부모 세대가 했던 투자 방법이 그때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아트 컬렉팅이 대체 투자 방법으로 떠오르는 것 같아요. 젊은 컬렉터들에게 더 이상 스트리트 아트, 서브 컬처, 이런 프레임은 중요하지 않기도 하고요.” 부스 한가운데 미키 마우스가 덧칠하듯 그려진, 디스토피아적인 뉘앙스를 자아내는 회화 작품 두 점이 눈길을 끌었다. 바스키아를 비롯해 알려지지 않은 많은 거리 예술가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무엇보다 조이스 펜사토의 영향이 강력히 느껴지는) 조지 모튼 클락 George Morton-Clark의 작품이다. “하반기에 그의 개인전을 열 계획이라 티저 공개하는 셈으로 걸어봤어요.”

올해 처음 키아프에 참여한 제이슨 함 갤러리의 부스에 들렀다가 또 다른 컬렉터 Y를 만났다. 그는 성북동의 제이슨 함 갤러리에서 10월 말까지 계속될 사라 루카스 Sarah Lucas 아시아 최초 개인전에 소개된 작품 중 한 점을 샀다. 가구, 담배, 스타킹,
생닭 같은 일상의 사물을 가지고 남성 중심의 성적 담론에 거칠고 대담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사라 루카스의 다소 ‘센’ 작품을 소장하게 된 경위를 묻자 그가 말한다. “현대 미술이 시대상을 반영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그는 얼마 전에 3D 프린팅, GIF 등을 활용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오스틴 리 Austin Lee의 작품도 샀다. 20세에 베이징 엠 우즈 M Woods 미술관을 공동 설립한 중국 컬렉터 마이클 수푸 황 Michael Xufu Huang이 점찍어서 급부상한 오스틴 리는 밀레니얼 아티스트를 대표한다. “지난 5월에 아트 부산에 갔다가 오스틴 리의 작품을 다루는 베를린의 갤러리 페레스 프로젝트 Peres Project가 페어에 참가한 걸 봤어요. 오스틴 리는 전도유망한 아티스트고 작품도 무척 사랑스러운 기운을 발산해요. 사야 했죠.”

하지만 원한다고 모두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훌륭한 갤러리스트라면 작품이 작가를 떠나 누구에게 소장되는가를 잘 핸들링해야 한다. 작품을 금세 되팔지 않고 좋은 컬렉션을 갖추었으며 선한 의도를 가진 컬렉터와 맺어주는 게 그들이 하는 일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Y는 합격점을 받은 모양이다. “저는 아트 컬렉팅이 관계 비즈니스라고 생각해요. 신뢰할 만한 갤러리스트와 지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모든 아트 페어는 ‘모멘텀’입니다. 바젤에서 만나 알게 된 미술계 친구들과 키아프에서 다시 보고 이다음에는 어느 도시에서 만날지 약속을 잡으며 현대 미술에 깊이 빠지게 되죠.” 그는 며칠 후 프리즈 아트 페어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난다고 했다.

개인 전용기를 타고 날아와 VIP 패스로 입장한 억만장자들의 그림 같은 패션을 감상하는 게 큰 재미였던 나에게 이번 경험은 컬렉터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불을 지폈다. 현대 미술 컬렉터의 삶이라는 건 멋진 장소에서 미술품을 감상하며 살아가는 느슨한 사교 모임에 들어가는 일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선택에 절대적인 확신을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 부단히 공부해야 하며, 시대 정신에 배팅할 수 있는 눈을 기르는 일에 가깝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시대 미술 작품을 사들이고 있지만 훗날 그중 대다수가 미술사적으로는 가치 없는 장식품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이다. 글 / 안동선(프리랜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