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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2019.11.18GQ

아메리카 대륙 위엔 블루스 리듬을 따르는 듯한 철로가 이어진다. 시카고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느릿하게 흐르는 4천 킬로미터의 대서사시.

유타주의 캐니언랜즈 국립공원.

유타주의 보너빌 호.

유타주의 아치스 국립공원.

유타주 캐니언랜즈 국립공원 근처에 있는 철로.

70번 고속도로를 따라가면 볼 수 있는 로키산맥의 풍경.

덴버로 가는 길목인 실버손 근처의 스완 산맥과 딜런 저수지.

소노마 근처의 암스트롱 레드 후즈 주립 자연 휴양지.

솔트레이크시티와 리노 사이에 있는 철로.

50번 국도 주변의 산.

70번 고속도로 주변의 자작나무숲.

유타호 호수 근처의 눈이 내려앉은 산.

워싱턴, 몬트리올, 뉴올리언스…. 탑승 대기실 안에 열차가 당도할 목적지가 차례대로 울려 퍼졌다. 안내원의 음성 사이사이는 ‘윙윙’거리며 구식 철제 선풍기가 내는 소리와 스트라우스 왈츠로 채워졌다. 목적지가 불릴 때마다 긴 여행을 앞둔 이방인의 마음도 점점 달아올랐다. 드디어 49번, 스피커에서 ‘레이크 쇼어 리미티드 Lake Shore Limited에서 시카고’가 흘러나왔다.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도 있었지만, 애써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시간이 넉넉한 나는 기차 안에서 낮과 밤이 뒤바뀌는 풍경을 지켜볼 자격이 충분했다. 시카고에서 출발하는 대륙 횡단 열차의 이름은 ‘캘리포니아 제퍼 California Zephyr’다. 서쪽으로 향하는 대장정은 초기 미국 대륙 개척민의 이동 경로와 거의 겹친다. ‘골드러시’ 시대에 금광으로 달려든 사람들의 자취를 좇고, 표준 시간대를 넘나드는 시간 여행도 해볼 참이었다. 방대한 영토와 다양성으로 묶인 미국의 풍경이 창밖으로 생동하게 펼쳐지는 여정이다.

시카고에서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반짝이는 허드슨강을 따라 알바니 Albany로 달리던 어느 지점. 반대편 침대칸을 차지한 짐이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시카고에서 교사로 일하다 은퇴했으며, 아버지는 철도원이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여름이면 열차 승차권을 받을 수 있었어요.” 철도 여행 경험이 많은 그는 정차하는 역마다 그곳에 얽힌 이야기와 이력에 대해 설명했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미국 철도는 망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유를 물어보는 대신 슬며시 잠을 청했다.

열차는 버팔로, 클리블랜드,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의 경계선을 긋는 오대호를 지나 시카고에 접근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나길 기다렸는지, 짐이 여행 가이드처럼 시카고를 소개했다. “곡물 저장 탱크가 여기 시카고에서 발명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곡식을 장기간 저장하는 방법을 터득하자 곡물 무역이 가능해졌고, 그 덕에 사람들이 부유해졌어요. 도시의 모든 걸 바꿨죠. 시카고는 곡물과 육류로 일어섰어요.” 나는 고향에 대해 감출 수 없는 애정을 담아 말하던 짐과 작별하고 역에 하차했다. 뉴욕에서 열차에 오를 때부터 시카고에서 경험할 1박 2일간의 여정을 상상했다. 대부분 낭만적인 전경으로 채워진 몽상이었다. 하지만 직접 마주한 시카고는 애틋한 환영 인사 대신 위압적인 전경으로 나를 맞이했다. 고층 건물로 그린 모자이크 같은 도시. 시카고의 첫인상이었다.

1920년대에 지은 주얼러스 빌딩은 개인용 리무진에서 내리지 않고도 층을 오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차량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고층에 있는 사무실 혹은 집 앞 현관까지 차에 앉은 채 이동할 수 있다. 윌리스 타워의 110층은 바람에 90센티미터 정도 흔들리도록 건축했다. 19세기, 시카고는 미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도시였다. 당시 최첨단 교통수단이었던 철도가 시카고를 피해 갈 이유는 없었다. 도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도미 요리와 바닷가재를 먹고 나서 100미터도 걷지 않았는데, 어느새 또 다른 철로가 나타날 정도였다.

시카고에서부터 샌프란시스코까지 운행하는 열차 ‘캘리포니아 제퍼’를 두고 철도원의 아들 짐은 ‘문화유산’이라 표현했다. 51시간 동안 3924킬로미터를 운행하며, 간혹 예고 없이 시간이 변동되기도 한다. 열차는 오후 2시 정각에 유니온역 지하 플랫폼에서 출발했다. 도심에서 벗어나 망막한 농경지를 지나자 점점 속도를 높였다. 철길 옆으로 펼쳐진 평원은 평범한 삶을 독려하는 듯했다. 깜빡 잠에 들었다가 덜컹거리는 소리에 깼을 때, 기차는 미시시피강을 건너 아이오와로 가는 중이었다. 가랑비가 창을 때리고 있었다.

저녁에는 중서부의 방대한 옥수수 재배 지역인 ‘콘벨트’를 지나 미주리강을 건넜다. 네브래스카주에 진입할 무렵 아침이 밝았다. 눈을 뒤집어쓴 산이 담벼락처럼 지평선을 가린 채 서 있었다. 열차 식당칸에선 한 무리의 아미시 Amish 교인들이 아침 식사를 했다.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농경 생활을 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은 몇몇 소녀는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부끄러워했다.

덴버에 도착하자 차장은 기차에서 내려 역사와 도시를 구경하길 권했다. 계획에 없었지만, 결론적으로 시의적절한 조언이었다. 오늘날 크로포드 호텔이 된 덴버 역사는 지은 지 1백여 년이나 됐다고 한다. 하지만 돈을 쏟아부은 덕에 현대식 호텔 못지않은 내부 시설로 이용객을 맞는다. 시 외곽의 콜로라도 철도 박물관에는 지난 세기 철도가 누린 권세가 박제되어 있었다. 철도 감독관의 개인 마차, 그의 비서와 부인의 침실, 철로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바퀴가 개조된 뷰익의 1930년대 자동차 등이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리치 그랜트라는 작가는 덴버와 철도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지리적으로 여기에 도시가 있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거든요. 덴버는 금과 철도 때문에 생긴 도시예요. 이곳 주변에서 금맥이 발견됐고, 채굴꾼들의 발자취를 따라 철로가 부설됐어요. 철길을 중심으로 금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죠. 당연히 돈도 몰렸고요.”

덴버와 솔트레이크시티 사이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로 구간이다. 제퍼 열차가 산을 타고, 강을 따라 트위스트를 췄다. 협곡 사이를 위태위태하게 지나더니 약 10킬로미터 길이의 모펫 터널을 굉음을 내며 통과했다. 공학적인 위업도 인상적이지만, 아름다운 자연은 그 이상이었다. ‘미니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는 ‘콜로라도 국립 천연기념물’의 기암괴석은 한때 바다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황폐한 벌판 가운데 솟아 있지만 종종 수상 생물의 화석이 발견된다. 황무지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놀랍게도 포도를 재배하며 살고 있다. 특히 철도 옆 작은 마을인 그랜드 정션은 지역 특산품을 가장 신선한 상태로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나는 ‘Bin 707 푸드 바’에서 이곳에서 자란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담근 와인 향기를 조용히 탐닉했다. 솔트레이크시티를 둘러싼 사막의 열기 때문에 이곳의 하루는 사막만큼 메마르다는 이야기와 함께 서서히 취기에 빠져들었다.

다시금 기차에 오른 후에도 술기운이 잔잔히 남아 있었다. 나른한 기운 때문인 줄 알았지만, 기차는 실제로 느리게 달렸다. 솔트레이크시티에 예정보다 1시간 늦게 도착했을 때, 화가 잔뜩 난 사람들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기차에 오르고 있었다. 일부는 거래처라도 가는 것처럼 네바다주 서쪽에 있는 리노 Reno의 카지노에 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승무원 스테파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차의 침대를 펴며 포크송 같은 콧노래를 불렀다. “걱정일랑 말아요. 내가 있으니 리노에서 내리지 못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컨트리송을 부르던 행크 윌리엄스의 노래 중 이 노선에 대한 가사가 있다.

“유타의 솔트레이크에서부터 캘리포니아의 골든 쇼어까지/타오르는 사막의 문을 지나면 콜로라도와 네바다/기차가 협곡을 돌아 나가는 동안, 보이지 않나요, 저 산의 계류가/캘리포니아 제퍼, 유니언 퍼시픽의 여왕….”

노래엔 기차가 전후좌우로 흔들린다는 내용의 구절도 있는데, 아침에 나를 깨운 것도 승무원 스테파니가 아니라 흔들리는 열차였다.

기차는 곧 ‘죄악의 도시’에 다다랐다. 하지만 내가 찾는 것은 리노의 슬롯머신이 아니라 주 경계 너머의 트러키 Truckee였다. 인구가 2만이 되지 않는 소도시지만, 트러키에서 마신 커피는 이번 여행에서 맛본 커피 중 최고였다. 시내의 단층 혹은 2층짜리 건물들은 영화 <하이 눈>의 세트장 같았다. 이곳에도 철도 박물관이 있었지만, 타호 호수에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호수를 둘러싼 산은 스키로 유명한 곳이다. 5월임에도 불구하고 슬로프엔 아직도 희끗희끗하게 눈이 쌓여 있었다.

수영을 하기엔 물이 아직 차가워 네바다에서 가장 오래된 정착지인 ‘데이비드 월리’ 온천에 몸을 던졌다. 함께 온천욕을 하던 사람들에게 물이 뜨거운 이유를 묻자 이야기의 주제는 금세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타우섬, 산 안드레아스 단층, 아이슬란드 화산 등으로 바뀌었다. 한 남자는 “롱 밸리가 아마 가장 클걸?”이라고 했다. 그게 무엇인지 묻자 그는 “여기 근처에 있는 화산이에요. 언젠가 다시 폭발하면 미국 서부에 암흑기가 찾아올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자연재해로 인한 불안 때문이었을까? 리노는 공포의 반대 급부처럼 카지노만을 위한 ‘오락 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리노의 외곽 사막에서 개최되는 ‘버닝 맨 페스티벌’은 이곳을 서서히 바꾸고 있었다. 리노에서 묵은 호텔 외벽은 세상에서 가장 큰 클라이밍 시설이다. 벽을 타고 올라 방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9월에 불태워질 거대한 조각 안에서 한 남자가 훌라후프 묘기를 했다. 다른 누군가는 줄타기를, 메탈코어 밴드는 콘서트홀에서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리노에서의 경험 덕분인지, 마지막 여정을 앞둬서인지, 다음 날 오후 다시 열차에 오를 때까지 기묘한 기분이 계속됐다. 기관차는 평정심을 되찾을 틈을 주지 않고 유다산 Mount Judah을 관통하는 3.2킬로미터의 터널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어둠 속 소실점으로 맺혀 있던 또 다른 미국이 점점 밀려왔다. 캘리포니아의 평원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갈 때, 초승달이 구름 뭉치 위로 떠올랐다. 그 위로는 북극성이 야릇하게 빛났다. 샌프란시스코가 등진 태평양을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 비행기 한 대가 검푸른 하늘을 날고 있었다. 비행기를 탔더라면 영화 한 편을 보거나 잠시 눈을 붙이는 사이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을 테다. 하지만 시간을 ‘압축’하지 않은 대가로 다양한 억양이 들려주는 오랜 사연들을 접할 수 있었고, 미국 대륙과 역사를 구성하는 작은 조각들을 면밀히 들여다보게 됐다. 땅과는 거리가 먼 허공이라면 불가능했을 사건과 경험의 연속. 땅을 딛고 달리는 철도는 미국 대륙의 숨소리를 이방인에게 내뱉는다.

    에디터
    Anthony Sattin
    포토그래퍼
    Tom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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