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미샤 칸의 본질

2019.11.20GQ

미샤 칸은 본질을 볼 줄 알고, 본질을 만들며, 본질을 들여다 봐주길 원한다.

브론즈 테이블은 Blip Blop Blop Blaaaat, 2018.

소파는 American Gothic, 2018. 스툴은 Untitled, 2015.

레진 작품은 Untitled, 2015. 램프는 Untitled, 2015. 바닥의 작품은 Madame Butterfly, 2017.

서울은 처음이라며. 인상적인 경험은? 엊그제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개인전 오프닝 파티가 있었다. 전시를 여러 번 했지만 그날처럼 사진 요청을 많이 받은 건 처음이었다.

몇 시간 전 인스타그램 계정에 벨라 하디드의 사진을 포스팅했던데.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그 사진을 발견했다. 그녀처럼 유명한 사람이 내가 만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당신의 작품을 구매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구매자에 대한 정보를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시아 Sia가 몇 개의 작품을 샀다. 좋아하는 뮤지션이라 그 이야기를 듣고 기뻤다.

전시된 의자 작품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한번 앉아봐도 될까? 하하.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더라. 앉는다고 해서 망가질 일은 없다. 나도 인터뷰 때마다 작품에 앉아서 사진을 찍곤 한다.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하나? 그럴 의도는 없지만 우연히. 중년 여성 서너 분이 속삭이듯이 나누는 대화를 듣기도 했다. “이 작품 살까?”, “글쎄, 이상하게 생겼잖아.”

거울, 의자, 소파, 테이블, 샹들리에를 의인화한 듯한 작품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아 움직일 것 같다. 초현실주의적이면서 고유한 개성을 드러내는데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나? 우리는 기능성을 지닌 물질적 대상에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표상적으로 다룬다. 나름대로 고유의 개별성이나 이야기가 있을 텐데 간과되는 것이 안타깝다.

2017년 뉴욕에서 열린 개인전 <Midden Heap>에선 직접 만든 음악을 BMG처럼 썼다고 해서 이번 전시도 기대를 했다. 근데…. 뉴욕 전시는 명확한 주제가 있었다. 해저 생물들이 자연의 방식대로 그들의 영토를 만드는 이야기를 상상하며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구성했다. 이를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음악을 만들었는데, 사실 음향효과란 표현이 더 맞다. 욕조에서 물을 첨벙첨벙 튀기며 그 소리를 소스로 썼으니까. 이번 전시는 나를 처음 소개하고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을 다루기 때문에 배경음악을 쓰지 않았다. 만약 원한다면 이런 사운드가 어울리겠지. 퓡, 슈슈 퓡.

재료의 한계를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유리와 금속, 비닐, 직물 그리고 해변에 버려진 폐품을 재료로 작업을 하고, 흙더미 위에 작품을 설치하기도 했다. 여러 재료를 과감하게 섞고 혼합해 우연적이고 유동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이 재미있다. 예를 들어 녹는 온도점이 비슷한 알루미늄과 유리를 섞어 새로운 뭔가를 만들 수 있다. 해변의 쓰레기에서 골라낸 고철 조각이나 폐품을 재활용하는 건 그 형태와 사연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쓰레기라고 여겼던 재료에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 의미 있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합성소재를 재료로 쓰기 시작했다. 특유의 가볍고 고급스럽지 않은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다.

미샤 칸 Misha Kahn이란 이름을 구글링하면 디자이너와 조각가라는 소개 글이 가장 먼저 나온다. 동의하나? 아니. 그런 타이틀은 나를 한정 짓고 규정하는 것 같다. 일단 상업적 제품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디자이너라 할 수 없다. 작품들이 실용성과 기능성을 지닌 건 맞지만 예술적인 면이 더 크다. 조각가란 표현은 내 작업의 일부만 다룬다.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오브젝트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메이커 Maker’라는 표현은 또 싫다. 창조주 같은 의미처럼 들리고,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동료들과 나누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It Looks Italian to Me’, ‘Madame Butterfly’, ‘Miss Fishy’. 작품명들이 낭만적이고 시적인데 어떤 발상에서 나오나? 솔직히 작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작품명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작품을 완성한 뒤 미뤄뒀던 숙제를 하듯이 짓는 편인데 그 순간의 감정에 영향을 받곤 한다. 그래서 밝은 느낌도 있고, 우울한 느낌의 제목도 있다. 엄마한테 작품명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

실제 성격은 어떤가? 당신의 작품과 닮은 사람인가? 사람들은 화려해 보이는 작품의 첫인상처럼 내가 외향적인 성격일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어떤 컬렉터는 자신의 예상과 실제의 내가 달랐는지 “미샤 같은 모습을 보여줘”라고 하더라. 작품과 비슷한 부분이 있긴 하다. 뭔가 완벽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작업을 할 때 조심스럽지 못하다.

만화에서 별이 폭발하는 형태로 레진과 비닐을 사용해 거울을 만든 ‘Saturday Morning Series’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다. 토요일 아침의 일상은? 보통은 숙취에 시달리고 있으니,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하는 게 낫겠다. 커다란 샐러드 볼에 담은 시리얼을 먹으면서 TV 애니메이션을 보곤 했다.

그때 보고 경험했던 것들은 작품 세계에서 얼마나 지분을 차지하나?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다. 또 어린 시절 마트에서 봤던 싸구려 플라스틱 물건들도 영감을 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나의 작품 세계를 다 설명할 순 없다. 작업 과정은 숲 속을 헤매는 것과 비슷하다. 출발점에서 멀어질수록 처음의 기억도 점차 흐릿해진다.

유행에 민감한 편인가? 그렇진 않다. 유행 같은 건 순환한다고 생각한다. 흘러가는 걸 붙잡으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가장 처음 무언가를 만들었던 경험은? 미네소타주의 덜루스란 곳에서 어릴 시절을 보냈다. 집과 집 사이가 멀리 떨어진 탓에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다. 나무나 플라스틱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묶거나 붙여 말도 안 되는 걸 만들곤 했다.

가방 안으로 스케치북이 보이는데 최근에 한 스케치는? 자동차와 비행기. 작업 스케일을 키워 상상 속의 운송 수단을 만들려는 계획이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원하는 시대로 갈 수 있다면? 천 년 뒤의 미래가 궁금하다. 인간이 초래한 문제들 가운데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게 많다. 미래에는 얼마나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했을지 보고 싶다. 인간의 창의력에는 한계가 없다고 믿는다. 천 년 뒤라면 분명 해결책을 찾으리라 예상한다.

그때도 당신의 작품은 존재할까? 사람은 누구나 물건에 애착을 갖는다. 내 작품이 계속해서 그런 존재로 남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먼 훗날 미술관이 아닌 고물상이나 벼룩시장에 놓여 있어도 괜찮다. 예술적 가치와 상관없이 내 작품의 본질을 알아봐주면 좋겠다.

    에디터
    김영재
    포토그래퍼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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