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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롭의 ‘바이 리퀘스트’ 서비스

2019.11.26GQ

존 롭의 아시아 태평양-중국 지사장 니콜라스 홀트가 서울에 왔다. 원하는 대로 만든 구두를 신고.

서울에 처음 왔어요? 아니요. 네 번 정도 왔어요. 매번 짧게 머물렀고요. 이번에도 일정이 짧아요. 하지만 느낌이 좋아요. 한국 고객에게 존 롭의 ‘바이 리퀘스트 By Request’ 서비스를 직접 소개할 생각에 들떠 있어요.

‘바이 리퀘스트 By Request’란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쉽게 말해 존 롭의 MTM 서비스예요. 존 롭엔 크게 세 가지 섹션이 있어요. 매 시즌 소개하는 레디-투-웨어 컬렉션, 바이 리퀘스트 서비스, 비스포크 서비스. 바이 리퀘스트는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커스터마이징하는 프로그램이에요. 특정 모델의 소재와 색, 밑창, 장식 같은 걸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거죠. 지금은 나오지 않는 아카이브 슈즈를 주문할 수도 있어요. 정해진 기간에만 운영하고요.

지금 신고 있는 구두는 어떤 모델이에요? 기다리던 질문이에요. 이 구두가 바이 리퀘스트 서비스의 좋은 예거든요. ‘시티 II 옥스퍼드’라는 구두인데, 존 롭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예요. 전 소재와 신발의 구조를 바꾸었어요. 레디-투-웨어 컬렉션에서 소개하지 않는 네이비 컬러의 뮤지엄 카프 소재를 썼고, 라이닝을 없앴어요. 밑창 역시 가볍고 유연한 것으로 골랐죠. 그래서 일반 옥스퍼드 구두보다 훨씬 부드럽고 가벼워요.

구두에 라이닝이 없다는 건 어떤 의미죠? 보통 클래식한 구두의 갑피엔 안감을 덧대요. 어퍼 가죽 안쪽으로 다른 가죽을 덧대어 좀 더 두껍고 힘이 있게 만들죠. 그렇게 모양을 잡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신은 신발은 앞코 부분을 제외하곤 한 장의 가죽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심이 없는 수트 재킷 같은 거군요. 정확해요. 그래서 훨씬 편안하죠. 제가 덥고 습한 홍콩에 살잖아요. 그 상황에 맞춘 것이기도 해요. 라이닝이 없는 구두는 얇은 가죽 장갑과 비슷해요. 신을수록 발 모양에 맞게 변하고, 답답하지 않죠.

얼마나 신었어요? 1년 정도. 매일같이 신고 다니진 않았지만 관리에 신경을 썼어요. 여러 켤레를 번갈아 신고, 안 신는 구두엔 슈트리를 꼭 넣고요.
당신만의 슈 케어 루틴이 있어요? 퇴근 후 구두에 광을 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든지. 자주 쓰는 방법이 있긴 하죠. 홍콩에 있는 존 롭 스토어에 구두를 정기적으로 맡겨요. 하하. 전문가들이 새 구두처럼 만들어주거든요. 집에서는 슈트리를 활용하는 정도만 해요. 그리고 홍콩에선 주로 스웨이드 슈즈를 신어요. 홍콩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날씨가 오락가락해요. 굉장히 습하고요. 겪어보니 스웨이드 소재가 궂은 날씨에 상당히 유용하더군요. 젖으면 자연스럽게 마르도록 뒀다가 솔로 쓱 쓸어주면 그만이에요.

농담이죠? 한국에서는 비 오는 날 스웨이드 구두를 신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아요. 한국만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이 스웨이드 슈즈는 관리하기가 까다로울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실제로 신다 보면 가죽 구두보다 훨씬 관리하기 편하다는 걸 알게 되죠.

존 롭의 경쟁자, 그러니까 역사와 전통이 있는 슈 메이커가 적지 않아요. 그들과 비교했을 때 존 롭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찬란하고 풍요로운 아카이브. 1866년 런던의 작은 비스포크 구두 숍으로 시작해 글로벌한 슈 메이커로 성장하는 동안 독자적이고도 다양한 콘텐츠를 차근차근 쌓았고, 브랜드의 정체성도 유지했어요. 여전히 아카이브에서 디자인적인 레퍼런스를 찾을 수 있죠. 예를 들어, 1940년대의 스키 부츠에 썼던 후크를 이번 시즌 스니커즈에 응용하는 식이에요. 또 다른 강점은 다른 곳에 비해 질이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죠. 1976년부터 에르메스 그룹에 소속됐는데, 이곳의 테너리가 워낙 훌륭해요. 최상급 가죽을 공수하는 데는 존 롭을 따라올 수 없을걸요.

존 롭은 클래식하고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해요. 하지만 지금은 밀레니얼 세대의 세상이잖아요. 그들에겐 어떻게 다가갈 계획이에요?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어요. 마켓의 성격에 맞추어 고유의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요. 저희 유튜브 채널도 있는걸요. 중국 시장은 웨이보와 위챗을 위주로 마케팅하고 있어요. 중요한 건 존 롭이 얼마나 현대적이고 멋진 브랜드인지 알리는 일이에요. 당장은 고객이 아니더라도 몇 년만 지나면 그중 존 롭을 신는 이들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한국 시장의 메리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한국 남자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존 롭에겐 아주 큰 기회의 땅이죠. 신발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잖아요. 존 롭은 헤리티지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미래 지향적이기도 해요. 존 롭에서 더블 버클(존 롭의 시그니처)을 장식한 어퍼에 캐주얼한 밑창을 단 스니커즈가 나온다는 것, 아저씨들이 찾는 고루한 브랜드가 아니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알린다면 한국 시장에서의 기회는 크다고 봐요.

한국 파트너로 유니페어를 선택한 이유는 뭐예요? 오랫동안 유대감을 쌓으며 일할 파트너를 찾고 싶었어요. 유니페어는 그런 면에서 더할 나위 없죠. 구두 산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고, 열정적이니까요. 무엇보다 이런 브랜드를 모아놓은 구두 가게가 또 어디 있겠어요? 구두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여기서 커피나 위스키를 홀짝이며 이런저런 구두를 신어보기도 하고, 점원과 지식을 나누기도 하고요. 이런 공간에서 존 롭을 소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한국 남자들에게 어울릴 존 롭의 신발을 추천해주세요. 아무래도 요즘은 캐주얼한 무드가 대세니까 ‘레바 Levah’라는 스니커즈를 권할게요. 아주 심플하고 실용적인 스니커즈예요. 테일러 수트에 신어도 좋고, 면 바지, 청바지, 반바지에도 잘 어울리죠. 또 하나는 ‘로페즈 Lopez’. 클래식한 페니 로퍼예요. 1950년 존 롭의 고객 미스터 로페즈가 주문한 비스포크 구두를 발전시킨 모델이죠. 바이 리퀘스트 서비스 기간 동안 홑겹의 로페즈를 선보일 예정이에요. 특별한 가죽 소재도 준비했죠. 평소에는 살 수 없는 조합이랍니다.

유니페어 압구정 본점에서 9월 27일부터 10월 1일까지 존 롭의 바이 리퀘스트 이벤트를 열었다. 이벤트의 주제는 ‘마이 로페즈 My Lopez’. 1950년에 소개된 브랜드의 대표적인 모델이 된 로페즈가 주인공이다. 바이 리퀘스트 서비스 기간 동안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로페즈의 새로운 버전을 소개한 것. 핵심은 바로 소재와 색. ‘브룬 롭 Brun Lobb’과 ‘블랙 롭 Black Lobb’ 피니시를 적용한 뮤지엄 카프 레더를 소재로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브라운과 블랙 가죽에 존 롭의 컬러 왁스와 크림을 입혀 미묘하게 다른 색을 낸 샘플 원피를 로페즈와 함께 전시했다.

존 롭은 로페즈 외에도 레디-투-웨어 컬렉션과 아카이브 슈즈를 포함해 100개가 넘는 모델을 옵션으로 제시했다. 모델을 고른 다음 가죽의 종류와 컬러, 아웃솔, 발볼의 사이즈, 버클의 종류와 색까지 마음대로 주문할 수 있다. 스니커즈 역시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존 롭의 컬러 크림과 왁스도 전시했다. 장인들이 정한 비율로 각각의 크림과 왁스를 섞어 바르면 다양한 셰이드의 브룬 롭과 블랙 롭이 완성된다. 바이 리퀘스트 서비스로 주문한 슈즈는 영국 노스햄턴의 공방에서 제작되며 주문 후 3주 정도 지나면 완성된 신발을 받을 수 있다.

    에디터
    안주현
    포토그래퍼
    설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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