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S/S 시즌의 인상적인 장면들 | 지큐 코리아 (GQ Korea)

2020 S/S 시즌의 인상적인 장면들

2019-11-28T15:11:30+00:00 |collection|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2020 S/S 시즌의 인상적인 장면들.

Saint Laurent
안개가 잔뜩 낀 저녁, 말리부 해변의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믹 재거와 세르주 갱스부르의 페르소나가 걸어 나왔다. 어떻게 말리부 파라다이스 코브에 런웨이를 차릴 생각을 했을까? 안토니 바카렐로는 투어를 앞둔 믹 재거를 만나 그의 옷장을 본 후 이번 컬렉션을 구상했다. 자유와 거친 젊음, 보헤미안 같은 단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마라케시에 닿았다. 1970년대에 생 로랑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며 제2의 고향처럼 여겼던 곳. 안토니 바카렐로는 당시의 마라케시를 현재의 LA에 투영했다. 생 로랑식 낭만과 유희, 화려한 보헤미안 룩은 흐린 말리부 밤바다의 공기와 섞여 더욱 꿈같이 황홀했다.

Off-White
무릎까지 올라오는 흰색 카네이션 밭. 가운데엔 하늘색의 날카로운 외계인 피규어가 자리했다. 미국의 그라피티 아티스트 푸투라 Futura(a.k.a Lenny McGurr)의 작품이다. 버질 아블로는 푸투라와 이 컬렉션을 함께 꾸렸다. 외계인 피규어는 오프 화이트의 티셔츠와 코트, 케이프 등에 러프한 스케치로 등장한다. 모델들이 카네이션을 밟고 쓰러뜨리며 걸어 나온 피날레는 다소 충격이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긴 했지만.

Thom Browne
천장이 유리인 에콜 데 보자르. 오후 2시의 햇볕이 자비 없이 내리쬐는 탓에 쇼장은 거대한 온실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더위 속에서 가뿐하고 사뿐하게 움직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 남자,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댄서인 제임스 화이트사이드 James Whiteside. 특별히 만든 시어서커 재킷과 튀튀를 입고 처음부터 끝까지 쇼장을 휘저었다. 동상처럼 세워둔 10명의 모델 사이를 오가며 점프하고 돌고 또 돌았다. 마지막에 등장한 톰 브라운은 땀 범벅이 된 제임스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Prada
프라다는 파격적으로 상하이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늘 프라다의 쇼 스페이스를 꾸미는 AMO(램 쿨하스가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 OMA의 싱크 탱크)는 상하이의 베뉴로 민생 부두에 있는 저장고를 택했다. 밀과 곡물을 보관하던 곳인데, 곡식이 무려 8만 톤이나 들어갈 만큼 거대하다. AMO는 이곳에 네온 불빛을 배열해 직선의 런웨이를 만들었다. 나선형 계단 가운데 기둥엔 프라다의 로고를 활용한 네온사인을 장식해 복고와 퓨처리즘이 뒤섞인 묘한 설치물을 선보였다.

Rick Owens
릭 오웬스는 이번 시즌을 준비하며 자신의 멕시칸 뿌리에 대해 생각했다. 푸에블라 출신의 어머니, 그에게 섞인 미스텍 Mixtec 부족의 혈통을 떠올렸다. 방향은 추상적으로 잡았다. 멕시칸 뮤지션 팀이 아즈텍 문명의 고대 언어인 나우아틀어 Nahuatl로 웅장하고 신비로운 노래를 불렀고, 쇼장의 중심엔 진흙으로 만든 아티스트 토마스 하우즈아고 Thomas Houseago의 설치작(멕시코 장벽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놓았다.

Louis Vuitton
버질 아블로는 이번 쇼를 위해 파리의 도핀 광장 Place Dauphine을 통째로 빌렸다. 광장을 둘러싼 세 개의 길, 그곳의 상점을 모두 섭외해 루이 비통의 거리로 만든 것이다. 커피와 샴페인을 아낌없이 주는 카페, 크레페를 파는 가판, 거대한 미끄럼틀 모양의 벌룬 성(백스테이지로 쓰였다). 파스텔 톤과 온갖 꽃으로 장식한 2020 S/S 컬렉션이 더욱 돋보인 건 루이 비통 마을 덕분이다.

SSS World Corp
저스틴 오셰어는 자신의 도플갱어들을 쇼에 세웠다. 탄탄한 보디라인을 드러내는 새틴 수트와 현란한 프린트 셔츠의 조합. 큼지막한 보잉 선글라스와 터프한 문신 역시 빠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섹시한 마초 군단. 피날레에 그는 할리 데이비슨의 전기 모터사이클인 라이브와이어 Livewire를 타고 나왔다. 리츠 파리의 정원 잔디밭을 가르는 모터사이클이라니. 오셰어가 아니면 이런 장면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Lanvin
레몬색과 하늘색으로 꾸민 심플하고 귀여운 풀 사이드. 랑방의 쇼가 열린 이 장소는 파리 16구에 있는 몰리토 수영장이다. 1929년 프랑스 건축가 루시앙 폴레 Lucien Pollet가 설계했고, 아르 데코풍 디자인으로 유명했다. 1946년엔 이곳에서 열린 루이스 레아드 Louis Reard의 패션쇼에서 첫 비키니 수영복이 등장하기도 했다. 1989년 문을 닫았다가 리뉴얼 공사를 거쳐 2014년 재개장했는데, 처음 지었을 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루시앙 폴레의 건축을 그대로 살리고, 아르 데코풍 모자이크 장식을 재현했기 때문. 1970년대 관광객에게서 영감을 얻은 랑방의 귀엽고 엉뚱한 옷. 수영장에 비친 피날레가 무척 빛났다.

Jacquemus
시몬 포르테 자크뮈스는 스스로를 파리지엔이라 여기지 않는다. 자신은 프랑스 남부 태생이며 그 사실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컬렉션을 통해 외치고 또 외친다. 지난 여름엔 마르세유의 바닷가를 런웨이로 만들더니 이번 시즌엔 프로방스의 보랏빛 라벤더 밭으로 모두를 초대했다. 굽이치는 라벤더 밭의 어느 작은 길에 깔린 핑크색 카펫. 그 길 위로 우아하고 귀여운 자크뮈스의 2020 S/S 시즌 룩이 줄을 이었다. 군데군데 흰색 양산을 쓴 사람도 있었다. 한여름의 햇볕을 가리라며 자크뮈스에서 양산을 나눠준 것. 수채화 같은 꽃무늬 프린트 수트와 오렌지빛 타이다이 팬츠. 해가 서쪽으로 반쯤 기운, 빛이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간에 열린 자크뮈스의 쇼는 차라리 한 폭의 그림이었다.

Vetements
뎀나 바잘리아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걸 한다. 샹젤리제 거리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패션쇼를 연 것도 그중 하나다. 파리에서 규모가 제일 큰 매장. 경찰 복장의 한 사내가 트럭에서 내려 맥도날드로 들어가 검문하듯 매장을 돈 뒤 정문으로 나오는데, 이것이 베트멍 쇼의 오프닝이다. 이후 은행 직원, 바이커, 펑크족 등이 뒤따른다. 어떤 모델은 감자튀김을 들고 있다. 구소련이 무너지고 조지아에 서양 문화가 쏟아져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문을 연 것이 맥도날드였고, 어린 뎀나 바잘리아에겐 그것이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돈에 따라 움직이는 극심한 자본주의의 풍경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꼬집은 다음 그는 쿨하게 베트멍을 그만뒀다.

Martine Rose
일상적인 것 같지만 뜯어보면 과격한 남성복을 소개하는 마틴 로즈. 2020 S/S 시즌 런웨이엔 가발을 어색하게 쓴 모델이 줄지어 등장했다. 검은 단발머리에 금발 가발을 얹거나 레게 머리에 뽀글뽀글한 아줌마 가발을 씌우는 등 일부러 기괴하고 우스꽝스럽게 연출했다. 마틴 로즈는 드라마틱한 반전을 위해 가발을 자주 활용한다. 이 시즌의 테마는 1980년대의 클럽 문화. 과장된 캐릭터를 표현하고자 이런 스타일을 선보였다.

Givenchy
2020 S/S 시즌 피티 워모에 초대된 지방시는 피렌체 근교의 고전적인 빌라 팔미에리에서 남성 컬렉션을 치렀다. 빌라 팔미에리는 14세기에 지은 오래된 저택. 특히 이곳의 레몬 정원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작가 G. 보카치오가 쓴 단편집 <데카메론>에 천국으로 묘사되었을 정도. 지방시는 이 정원의 미로 같은 산책로를 따라 런웨이 코스를 정하고, 곳곳에 달을 연상시키는 풍선 조명을 달아 운치를 더했다. 노을이 질 무렵 쇼를 시작해 로맨틱한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덕분에 여린 색감의 테일러링과 스포티즘을 더한 지방시의 남성 컬렉션이 더욱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