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뮤지션 조니 스팀슨의 사랑학개론

2019.12.12GQ

먼 도시에서 찾아온 뮤지션 조니 스팀슨이 산뜻하게 전하는 사랑학개론.

니트 칼라 셔츠, 리바이스. 이너 티셔츠, 벨보이. 네크리스는 아티스트의 것.

티셔츠, 벨보이. 데님 팬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이어링, 네크리스, 시계는 모두 아티스트의 것.

빈티지 스웨트 셔츠, 서프 코드. 이어링, 반지, 시계는 모두 아티스트의 것.

코듀로이 슈트, 던힐. 네이비 서울에디션 셔츠, 폴로 랄프 로렌.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네크리스는 아티스트의 것.

티셔츠, 벨보이. 이어링, 네크리스는 모두 아티스트의 것.

코듀로이 슈트, 던힐. 네이비 서울에디션 셔츠, 폴로 랄프 로렌.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이어링, 네크리스는 모두 아티스트의 것.

서울은 처음이죠. 낯선 도시에 오면 익숙하게 하는 루틴이 있나요? 여행을 떠나든 해외 공연을 가든 다른 나라에 도착하면 항상 조깅을 해요. 그 도시의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관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거든요. 어제도 밖으로 나가서 한강 주변을 좀 뛰었어요. 강줄기를 두고 서울이 강남과 강북으로 나뉜다는 점을 지도를 보며 배웠어요.

댈러스에 산다고 들었는데 거기에도 달리기 좋은 코스가 있나요?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에 케이티 트레일 Katy Trail이 있어요.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곳인데 댈러스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한 산책 코스예요. 원래 달리는 것을 좋아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거기를 매일 달려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댈러스에 대한 지극히 사소한 정보가 있나요? 네오 솔의 여왕 에리카 바두가 여기서 태어났어요. 이십 대 시절 그녀의 음악을 즐겨 들었어요. 사실 텍사스를 떠올리면 컨트리 음악을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전 별로 안 들었어요.

그럼 어떤 음악 라이브러리를 가지고 있나요? 비틀스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어요. 그들의 음악을 귀로 들으며 작곡이라는 개념을 배웠고 실제로 따라 해보려고 노력도 많이 했죠. 폴 메카트니가 곡 쓰는 방식을 너무 좋아했어요. 쉽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작법을 모사해보면 마치 빌딩 블록처럼 견고한 음악 이론 위에 지은 곡이라는 걸 알게 돼요. 지금도 여전히 비틀스를 자주 즐겨 들어요.

지금처럼 뮤지션이 되기 전부터 음악을 전공으로 삼았나요? 대학교에서는 금융을 공부했고 그 방향으로 취업 준비도 했었어요. 그러면서도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 매일매일 노래를 하나씩 만들었어요. 어느 날 취업박람회에 갔는데 이제는 결정을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슈트를 근사하게 입고 출퇴근하는 샐러리맨이 아니라 캐주얼한 티셔츠를 입는 삶이 저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오늘은 그 두 가지 옷을 모두 다 입었네요. ‘T-shirt’라는 곡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아내를 생각하며 쓴 곡이에요.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아도, 티셔츠 한 장만 입어도 당신은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스럽다는 의미를 담은. 로맨틱한 단어를 말하면 사람들은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하죠. 하지만 저는 사랑에 빠지면 누구든 자연스럽게 로맨티스트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반복해서 말해줘야 해요.

두 사람은 어디서 처음 만났나요? 교회의 건전한 형제자매 모임에서 만났어요. 그때 저는 고등학생이었고 아내는 중학생이었죠. 그러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어요.

‘Flower’도 아내를 위해 쓴 곡인가요? 맞아요. 호텔에서 아내를 생각하며 쓴 곡이에요. 2018년에 한 달 동안 투어 공연을 떠나서 아내와 한동안 떨어져 지내게 됐어요. 그러다 추수감사절을 같이 보내려고 따로 시간을 내어 단 이틀을 만났는데, 그 순간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한 장면이 동시에 떠올랐어요. 영화 속에 아름다운 꽃이 가득 등장하는 신이 있는데, 꽃은 아주 잠깐 피었다가 다시 지잖아요. 그 상황이 아내와 저의 짧지만 완벽하게 아름다운 만남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어제는 꽃시장의 작은 화원에서 <지큐>와 라이브 영상 촬영을 했어요. 꽃을 원래 좋아하나요? 너무 좋아해요. 투어 공연을 다니면서도 틈틈이 꽃을 보면 사진으로 항상 남겨둬요. <Flower> 커버에 실린 사진도 사실은 앨범을 위해 찍은 게 아니고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선물로 찍어준 사진이에요. 노래를 다 완성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꽃을 입에 물고 찍은 그 사진이 갑자기 떠올라서 커버로 사용했어요.

조니 스팀슨의 음악이 특별한 건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요즘 음악과 반대되는 지고지순함에 있는 것 같아요. 가사에서도 그런 순수한 진심이 느껴져요. 곡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요? 사실 코드와 멜로디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아요. 그래서 작곡은 비교적 빠른 시간에 끝내요. 하지만 가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더라고요. 한 단어 한 단어 고르는 과정이 조심스러워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며 공들여 써요.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리죠. 내가 만든 음악이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지 고심해요. 누군가 제 음악을 들었을 때 3분 동안 짤막한 휴가를 다녀오는 기분으로 들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살아가는 일이 힘들지만 조금만 더 버티면 희망이 찾아온다는 것을 리마인드시켜주고 싶어요.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대부분의 곡이 사랑의 감정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요. 그 애정의 깊이가 남다른 곡이 있나요? ‘Honeymoon’이란 곡이 그래요. 공연을 하면 언제나 엔딩 곡으로 이 노래를 불러요. 저도 제일 좋아하고 대중들도 많이 사랑해준 곡이죠. 미국에서는 결혼식 날 아빠와 딸이 춤을 추고 그 후에 남편도 같이 춤을 추는 순서가 있어요. 원래 비틀스 노래를 틀기로 했었는데 아내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고 서프라이즈로 이 곡을 만들어서 선물했어요. 갑자기 결혼식장에서 이 노래가 나오니까 아내가 많이 울었어요. 제게 이 노래가 더 특별한 이유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 한번 있었거든요. 인도네시아의 유명 가수가 자신의 결혼식에 이 노래를 사용했어요. 그것을 계기로 갑자기 대중들에게 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요. 자카르타에서도 단독공연을 했는데, 8천 명의 관객이 동시에 휴대 전화 조명을 켜고 이 노래를 다 같이 따라 불러서 정말 큰 감동을 받았어요. 거짓 없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노래에 담으면 그 진심이 듣는 사람들에게도 통한다는 걸 이 곡을 통해 배운 것 같아요.

인생의 또 다른 서프라이즈는 엘튼 존과의 만남 아니었나요? 그때의 상황이 궁금해요. 매니지먼트 없이 활동할 당시에 사비를 들여서 밴드 멤버들과 런던에서 공연을 했어요. 제가 모은 적금을 깨서 했던 거였는데 그렇게 성공적인 공연은 아니었어요.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다음 날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전화가 걸려왔어요. 우연히 그 공연의 영상을 본 엘튼 존이 저와 계약하고 싶다고 연락을 한 거였죠.

실제로도 그와 만났나요? 다음 날 바로 미팅을 했죠. 벨벳 트랙 수트를 입고 보라색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저 멀리서 걸어오는데, 아! 저 사람이 진짜 엘튼 존이구나 싶었어요(웃음). 제가 처음으로 UK차트 33위에 올랐을 때도 앞으로 더 잘될 거라고 격려해줬어요. 어느 날엔 새벽 4시에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일어났는데 멜로디가 갑자기 떠올라서 피아노를 조금 연주하다 제 생각이 났다면서요. 제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해준 것이 정말 큰 위로가 됐어요.

항상 웃고 있고, 주변 사람을 살뜰히 챙기고, 작은 것에도 고맙다고 말하고. 꼭 만화 속에 나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아요. 조니 스팀슨이라는 사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뭘까요? Soulful, Hopeful, Light Hearted!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행복하고 가벼운 릴랙스 상태, 그런 것이 저를 잘 표현하는 단어 같아요.

조니가 생각하는 올해의 남자는 누구인가요? 아버지 찰리. 제가 하는 모든 일에 언제나 사랑을 담아서 응원을 보내줬어요. 그리고 음악을 시작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어요. 처음 비틀스 음악을 들려준 것도, 그들의 히스토리를 알려준 것도 아버지였으니까요. 올해의 남자를 물어본다면 저는 매해 아버지라고 대답할 거예요. 혹시 이미지가 필요하다면 아버지의 프로필 사진을 보내줄게요(웃음).

좋아하는 작가나 시인이 있나요? 제가 사는 동네에 미스터 포거티 Fogerty 라는 사람이 있어요. 유명하진 않지만 동네 사람들이 모두 시인이라고 불러요. 똑같은 시를 50장, 100장 써서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정원의 바위 위에 두고 가죠. 그분의 시를 읽어보면 단어 하나하나를 정중하게 고르는 게 느껴져요. 그리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시를 써서 늘 같은 장소에 올려두죠. 그분과 같은 마음과 태도로 저도 계속해서 음악을 하고 싶어요.

평생 음악만 하겠다는 다짐도 하나요? 신이 저를 창조한 이유는 음악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음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냥 음악 자체가 너무 좋아요. 음악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유명한 팝스타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는 한 남자로 늙어가는 것도 제게는 꽤 괜찮은 삶이에요.

    에디터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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