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크리스트자나 윌리엄스가 만든 신세계

2019.12.13GQ

크리스트자나 윌리엄스가 만든 신세계를 마주한 날, 느긋이 취하고 싶었다.

The Lions Salute Original, 2019.

The Neon Black Turtle Sea Africa and Asia – Original, 2019.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직접 만들었나요? 하하. 그럴 리가요. 덴마크 브랜드 가니 Ganni의 드레스예요.

당신의 작품과 잘 어울려 그렇게 생각했어요.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뒤 친구들과 비욘드 더 밸리 Beyond the Valley라는 부티크를 창업하기도 했잖아요. 그랬죠. 8년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어요. 돈은 많이 벌지 못했지만 많은 걸 배웠어요. 패션, 주얼리, 텍스처 디자인, 매거진, 팝업 이벤트…. 닉 나이트의 스튜디오와 영상 작업도 했어요.

이곳 갤러리 플래닛과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전시가 진행 중이에요. 이국적인 동식물, 오래된 지도 등의 이미지로 정교하게 만든 콜라주 작품들을 오래 들여다봤어요. 그럴수록 새로운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당신의 여정에 몹시 공감해요. 그게 내 의도예요. 하나의 작품 안에는 일곱, 여덟 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거듭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이번 전시에서 당신의 작업 세계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뭔가요? 처음에는 자연을 소재로 다뤘어요. 인위적인 것은 작품에 넣지 않았죠. 그러다 지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지도를 활용했고, 현실에서 탈출해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어요. ‘Water World’라는 작품이 대표적이에요. 배를 타고 자유롭게 전 세계의 항구 도시를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지도의 어떤 점에 매료됐는데요? 지도에서는 고유의 개체성이 느껴져요. 이틀테면 지도에 표시된 강줄기는 인간의 몸에 흐르는 혈류 같다고 생각해요. 구석구석 뻗어나가며 지구에 생명력을 불어넣죠.

여행은 자주 하나요? 그러려고 노력해요. 스리랑카, 리우데자네이루처럼 긴 여정을 특히 좋아해요. 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머릿속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해요. 그곳의 특별한 동물은 무엇이고, 경관은 어떨지 상상하죠.

지금 살고 있는 런던은 대도시잖아요. 어디서 자연적 영감을 얻나요? 왕립식물원인 큐 가든이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어요. 런던 근교의 시온 파크도 자주 찾아요. 일상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을 땐 차를 몰고 이스트 서식스 지역으로 가서 하루를 보내요.

근데 왜 그렇게 자연과 동식물에 마음을 쏟아요? 아름답고 순수하고 에너지가 넘치거든요. 우리 인간은 무척 복잡 미묘한 존재예요.

그렇긴 해요. 동물과 정글 이미지를 자르고 덧붙이면서 상상하는 이야기는 해피 엔딩인가요? 그럼요. 인간이 없으니까. 하하. 농담이에요. 가끔 자연에 몰입한 나머지 작품에 어두운 면이 있다거나 내가 너무 빠져들지 않았으면 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해요. 하지만 자연을 깊이 있게 탐구할 뿐이에요.

아무래도 당신의 작업 중 널리 알려진 건 콜드 플레이의 앨범이에요. 2018년 라이브 앨범 <Live in Buenos Aires>의 커버를 디자인하면서 이 질문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그 작업은 어땠나요? 3년 전쯤 콜드 플레이의 베스트 앨범 커버 작업을 의뢰 받았어요.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크리스 마틴이 베스트 앨범을 내기에는 아직 젊다고 여겼거든요. 그게 인연이 돼 라이브 앨범을 디자인했어요. 크리스의 상상력은 굉장했어요. 아이디어를 쏟아냈고 20년간 활동한 밴드의 온갖 상징을 컬러풀한 나비 형태로 구현했죠. 그중에는 월드 투어에 함께한 피아노도 있어요.

이번 전시에선 로얄살루트와의 협업 작품도 함께 선보였죠. 영국 왕립동물원을 재해석해 로얄살루트의 패키지를 새롭게 디자인했는데 어떤 점이 예술적 호기심을 일으켰나요? 브랜드로부터 작업을 의뢰받으면 고민을 꽤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금방 결정했어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영국 왕실의 전통에 대한 관심이 컸거든요. 또 풍요를 상징하는 왕립 동물원이란 주제가 내가 해온 작업과 딱 맞는다는 인상이 들었어요.

로얄살루트라는 세계의 어떤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나요? 로얄살루트의 역사는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에서 로얄살루트 21년이 헌정되면서 시작됐어요. 왕실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브랜드의 정체성을 현대적인 감각과 위트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과거 영국 왕실은 다른 나라로부터 코끼리, 사자, 타조 등의 동물을 선물 받았고 왕실 동물원에 사육했어요. 여기에서 착안해 왕관을 비스듬히 쓴 사자, 가면을 쓴 타조, 왕관을 쓴 백조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날개를 단 열쇠는 대관식에서 망토를 두른 여왕이 손에 든 커다란 열쇠를 묘사한 거예요. 일러스트 안에는 스코틀랜드 증류소와 오크통도 있고 대포도 발견할 수 있어요. ‘왕의 예포’란 의미를 가진 로얄살루트의 상징이죠.

사람들이 로얄살루트의 새로운 패키지를 열어보면서 느꼈으면 하는 게 있나요? 호기심과 경이로움. 패키지 내부를 장식한 일러스트를 보고 싶어 다시 열어보고, 잠시나마 멋진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거죠.

당신이 디자인한 로얄살루트를 선물한다면 가장 먼저 누가 생각나요? 나한테 선물하고 싶어요. 정말로요. 연말을 맞아 날 위해 사려고 했어요.

이번 전시는 로얄살루트의 위스키를 테이스팅하며 감상할 수 있는데, 살면서 한 잔의 위스키가 꼭 필요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와, 여러 장면이 떠오르네요.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바다 수영을 하고 나오면 위스키가 절실해요.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기 위해선 위스키가 필수죠.

그곳의 겨울은 어떻길래요? 어릴 적에는 9월부터 5월까지 눈이 내렸고 12월부터 4월까진 끔직하게 추웠어요. 12월에는 온종일 어두컴컴한데 여름에는 백야가 이어져요. 감정 변화가 클 수밖에 없죠.

아이슬란드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겨울 풍경도 있겠죠? 하늘이 얼음처럼 투명하고 수북히 쌓인 눈 위로 겨울 햇살이 내려앉으면 그 광경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빙하 라군과 검은 모래 해변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멋지고요. 꼭 보러 와야 해요.

    에디터
    김영재
    포토그래퍼
    박정우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