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이 비통의 건물 | 지큐 코리아 (GQ Korea)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이 비통의 건물

2019-12-13T17:37:51+00:00 |interview|

프랭크 게리가 그린 시적인 건축.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 그와 함께 보낸 예술적인 하루.

서울의 건축 지형도에 중요한 점 하나가 찍혔다. 현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첫 건물이 마침내 공개됐다. 10월 31일 청담동 일대는 취재 열기로 뜨거웠다. 세계 각국의 언어가 그곳에서 들려왔다. 역동적인 움직임을 가진 이 건물은 프랭크 게리의 작품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유려한 곡선의 유리로 이루어졌다. 프랭크 게리는 수원 화성과 동래학춤의 우아한 움직임에서 받은 영감을 건축에 담았다.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은 5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쇼윈도의 종이를 구겨서 만든 듯한 형형색색의 조형물은 프랭크 게리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입구로 들어가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계단에 시선을 빼앗긴다. 층고를 12미터 높이로 시원하게 튼 덕분에 건물의 볼륨과 대비감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공간 디자인은 건축가 겸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피터 마리노가 협업했다. 그가 셀렉한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이 곳곳에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다. 천장에 매달린 캄파나 형제의 이국적인 코쿤과 입구에 놓인 새빨간 봄보카 소파, 로우 에지스의 콘서티나 체어, 인디아 마다비의 탈리만스 테이블 등 동시대 주목받는 디자이너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로랑 그라소, 안젤름 라일레, 마틴 클라인, 피터 페리 등 피터 마리노가 큐레이션한 현대미술 작품을 곳곳에서 마주치게 된다. “예술은 어디에나 있다”는 그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4층에서 벌어진다. 도쿄, 뮌헨, 베네치아, 베이징에 이어 새롭게 개관한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특별 전시가 내년 1월 19일까지 열린다. ‘쓰러지는 남자(1950)’, ‘장대 위의 두상(1947)’, ‘로타르 연작(1964~1965)’ 등 총 8개의 조각 작품과 고요히 마주할 수 있다. 가볍게 산책하듯 공간을 둘러 본 후에 프랭크 게리와의 아트 토크가 이어졌다. 검은색 수트를 입은 프랭크 게리가 문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느릿느릿 사색의 언어로 그가 들려준 비하인드 스토리를 시작한다.

이번 루이 비통 메종 서울 건물은 어떤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나? 기원 전 500년경 그리스 델포이에 만들어진 마부 청동 조각상 ‘델포이의 마부 Charioteer’에서 시작했다. 마흔 즈음에 델포이미술관에 갔는데, 바로 앞에서 이 조각상을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조각가가 이 작품에 불어넣은 감정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대로 느껴진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니까 내면의 소재를 갖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 이것이 건축의 출발점이 되었다.

한국의 전통 동래학춤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들었다. 흰 도포 자락을 너울거리며 학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 춤으로부터. 맞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동래학춤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아 전통 의상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 만약에 건축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무용수가 됐으면 어떨까 싶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웃음). 내가 춤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용수의 움직임이 조각처럼 표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 창의성의 시작이다.

피터 마리노와의 협업은 어땠나? 그가 말하길 내부 공간을 설계할 때 에너지가 살아 숨 쉬는 건축적 특징을 강조했다고 하던데. 새로운 사람과의 협업에 언제나 열린 자세를 가진다. 우리는 서로의 작업을 존중하면서 함께 일했다. 나는 그가 인간적으로도 좋다. 그도 나를 꽤 좋아했을 거라 생각한다. 다음에 또 긴밀하게 작업할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파리 볼로뉴 숲에 설계한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은 2014년 10월 개관 이래 5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모았다.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이 이 건물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나? 물론이다. 파리에서 성공한 요소를 이곳에도 시도하고 싶었다.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은 실험의 연장선상에 있는 건물이다. 앞으로 유리를 활용한 다른 건축적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새롭게 개관한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자코메티의 전시가 내년까지 열린다. 청동이란 재료가 당신에게 주는 특별한 감흥이 있나? 피카소도, 마티스도 청동 조각을 만들었다. 자코메티의 청동 조각 작품도 풍부한 감정을 자아낸다. 베르니니의 놀라운 클레이 조각 작품도 그렇다. 빌럼 데 쿠닝의 석고 조각 작품을 보면 눈물이 흐르는데, 청동 조각으로 바뀌면 감정의 교류가 사라지기도 한다. 청동으로 감정을 표현하기는 그만큼 어렵다. 건축 자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글라스, 목재, 스틸 등 재료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루이 비통 메종은 반대편 옥상 위에 올라가서 바라봐야 하는 작품같다. 건물의 구조 전체를 덮고 있는 유리와 상부의 유리 패널이 드라마틱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곡선형 유리는 시적인 구조 A Poetic Structure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리의 잠재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마 전 세계에서 건축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자재는 유리가 아닐까 싶다. 고층 건물로 인해 유리 관련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유리 공장에 직접 가서 자세하게 살펴보고 이를 건축에 적용한다. 뉴욕의 다른 건물에도 곡선 유리 공법을 사용했다. 건축 소재로 유리를 사용하면 비용이 상당히 들기는 하지만 그만큼의 장점도 있기 때문에 빈번하게 사용하는 재료다. 사실 유리뿐만 아니라 모든 자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심지어 벽돌도.

건축가로서의 책임에 대해 말한 적 있다. 건축 부지와 가까운 지역은 물론이고 넓은 범위의 지역 사회에 대한 책임도 있다고 말이다. 이 건물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 숨 쉬기를 기대하는가? 사실 이 부분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건축을 할 때 주변 풍경과의 관계, 나무와 자연을 고려하면서 옆 건물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다. 건축가에게 주변 환경은 새로운 시도를 도전해볼 수 있도록 발급해주는 자격증과도 같다. 많은 건물이 옆에 있는 건물과의 조화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어진다. 뉴욕에 타워 빌딩을 건축한 적이 있다. 옆 건물이 박스를 단계별로 얹은 형태였다. 그래서 우리도 박스 형태에 맞춰 움직임을 표현해야 했다. 옆 건물은 크라운을 얹은 형태였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자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건축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기술, 예산, 건축, 비즈니스 관계, 당국 규제 등 많은 일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떤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왔을 때 거절하는 경우도 있나?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는 프로젝트는 하지 않는다. 마음 한구석이 꺼림칙하면 그런 프로젝트는 거절하는 편이다. 많은 제안이 들어오지만 우리 건축 사무소는 그렇게 많은 직원이 근무하는 큰 규모의 회사는 아니다. 그래서 일정상의 문제로 못 하는 프로젝트도 있고. 일단 한번 일을 맡게 되면 전력투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유럽에서는 에너지 절약, 녹색 건축이 점점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데, 건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두렵다. 가끔 손녀들을 보면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된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환경을 훼손한다. 최근 캘리포니아에 큰 산불이 나서 내가 살고 있는 집도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그것 때문에 이번 오프닝 행사에 참석을 못 할 뻔했다. 지속 가능성은 우리 삶에 아주 실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해결책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동굴로 들어갈 수는 없지 않나. 건축을 할 때 최선을 다해서 환경을 생각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목표의 60퍼센트 정도만 만족시키는 것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기술 개발이다. 수력 발전, 태양 에너지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석탄과 원유 사용은 줄이는 방법 등이 있을 것이다. 나도 유리 같은 건축 자재를 사용할 때 나름의 노력을 한다. 우리 모두 다 같이 노력해야 문제다.

그런 노력을 실천하기 위해 진행 중인 구체적인 계획이나 프로젝트가 있나? 현재 LA강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LA에는 길이가 51마일에 이르는 강이 흐른다. 이곳에 1930년대에 건설한 오래된 수로들이 있다. 영화 <차이나타운>에 이 수로가 등장한다. 오랜 세대에 걸쳐 강에 대한 환상이 존재해왔다. 콘크리트를 없애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조성하자는 것이 주요한 이슈인데, 현실적으로 콘크리트를 들어 내면 강물이 범람해서 시내가 잠기고 만다. 우리가 조사를 해봤더니 유리를 수로 바닥에 설치하면 비가 많이 내릴 때 5배까지 빠르게 물이 퍼진다. 그래서 강을 메우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또한 우리는 공중보건 측면에서 많은 조사와 연구를 했다. 그 결과 강 근처에 위치한 LA 남부 지역의 경우 아이들이 야외에서 뛰놀 수 있는 장소가 부족하고 이 지역 아동의 평균 수명은 서부 지역에 비해 10년 더 짧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학교 결석일수가 많고 아이들이 많은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문화 센터 등 10개 학교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당신이 설계하지 않은 건물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건축물은 무엇인가? 나의 인생 건축물은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롱샹 성당이다. 눈물이 나올 만큼 아름답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그곳에 가려고 한다. 작지만 움직임이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한국의 ‘종묘’도 좋아한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서울에 처음 왔을 때 건축물과 자연 경관의 조화로운 풍경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종묘는 한국 전통 의상과 제례의식 사진을 보면서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 무척 아름다웠다. 처음 그곳에 방문했을 때 울컥했다. 서울에 올 때마다 꼭 들르는 장소다.

이번 루이 비통 서울 메종을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아름답게 고안되어 완성되다. Lovingly Conceived and Execu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