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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맨즈 유니버스 아티스틱 디렉터의 상상

2019.12.25GQ

에르메스 맨즈 유니버스 아티스틱 디렉터 베로니크 니샤니앙은 강직하면서 천진하다. 정직한 옷을 만들지만 언제나 낯선 곳을 여행하기 좋아하고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서울은 첫 방문인가요? 에르메스 도산 매장 오픈할 때 왔었고 작년에도 서울에 와서 여러 장소를 구경했습니다. 서울은 정말 많은 일이 벌어지는 역동적인 도시인데 이번엔 안타깝게도 오래 머물지 못해 아쉽네요. 정말 일만 하다가 가는 일정이에요.

많은 도시 중에서 왜 서울을 맨즈 유니버스 장소로 정했나요? 한국 남자들은 까다롭지만 아방가르드하고 매력적이에요. 패션과 사회적 움직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요. 그들을 통해 서울이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느꼈어요. 잔잔하고 조용한 파리와 달리 창의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의 분위기도 좋았고요. 저에게는 이런 모든 점이 흥미로웠기 때문에 서울에서 맨즈 유니버스를 선보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에르메스는 옷뿐만 아니라 패션을 대하는 태도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에르메스는 기본적으로 삶의 예술을 추구하는 메종입니다. 때문에 남성 컬렉션 역시 장인 정신과 현대성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완성합니다. 이번 남성 유니버스 패션쇼를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는데요. 다른 나라에서 선보였던 것처럼 전문 모델 외에 일반인 모델도 초대해 자연스럽게 워킹할 예정입니다. 그중에는 요리사, 음악가, 에디터, 수영 선수도 있어요. 이는 컬렉션 의상이 실제 생활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고 다양한 외모와 연령대의 남성들이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친한 친구들, 고객들, 에르메스의 직원들과 모두 함께 축제를 즐길 예정이에요.

전문 모델과 일반인 모델을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작업할 때 특정 연령이나 체형에 대한 기준을 두지 않아요. 나이에 대한 기준도 두지 않고요. 몇 살이어야 해, 말라야 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해라고 하지 않아요. 저는 다양한 남성에게 옷을 추천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한 가지 유형이 아닌 다양한 에르메스 남성상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전문 모델에게 옷을 입히는 것은 쉬운 반면 일반인 모델은 어떤 사람은 좀 더 통통하고 키가 크거나 작기 때문에 더 많은 고려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옷을 입힘으로써 진정한 컬렉션 Real Collection, 실제적으로 사람들이 입는 ‘진짜’ 옷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나이나 외모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퀄리티를 알아보고, 편안함을 즐기고, 이런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옷과 오브제는 분명 사람의 마음에 와 닿습니다. 수년 동안 작업을 해오면서 든 생각이자 남성 유니버스의 정신이죠.

이번 남성 유니버스 가을 겨울 컬렉션의 중요 요소는 무엇인가요? 어떤 한 가지만 중요하게 다루진 않지만 직선과 곡선을 활용한 그래피즘 Graphism 입니다. 이번 행사 테마가 ‘Walk the Line’인 이유이기도 하죠. 올해 에르메스의 테마인 ‘꿈’에 맞춘 드래곤 스토리도 있습니다. 메종의 상징 중 하나인 마차를 끄는 말이 드래곤으로 변하는 것을 상상한 것인데, 무섭거나 부정적인 것이 아닌 환상적이면서 유쾌한 이미지로 그려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소재와 색상, 실루엣, 레이어링 등에 신경 썼고요.

특히 가죽 소재가 눈에 띄었어요. 에르메스에선 탁월하고 아름다운 소재를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카프 스킨, 램 스킨 등 가죽에서 느껴지는 관능성이나 캐시미어, 양모와 믹스했을 때 소재나 광택, 질감이 섞이는 효과를 좋아하고요. 가죽이 가진 힘 있는 성질은 코트나 바지의 볼륨을 살려주기도 하죠. 가죽은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하고 희소한 소재이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오브제에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통이 좁아지는 와이드 팬츠, 높이 솟은 둥근 칼라 등 새로운 실루엣이 보입니다. 좀 더 편안한 착용감과 핏을 추구했습니다. 바지와 상의는 넓고 여유 있게, 어깨 라인은 둥글고 루스하게 완성했어요. 곡선 패턴이 들어간 재킷엔 비라주 Virage 라고 이름 붙였는데, 여기서 비라주는 자동차 도로의 커브를 뜻합니다. 앞서 말한 그래피즘을 바탕으로 소재의 혼합과 색상의 혼합을 통해 어느 때보다 동적인 패턴을 만들었어요.

많은 패션 하우스가 다른 브랜드 혹은 셀러브리티와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에르메스는 그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요. 다른 메종이나 브랜드가 하는 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거나 비교하지 않아요. 단지 다른 생각을 가지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에르메스 역시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애플 워치의 경우인데요. 이는 두 전문가의 만남으로, 애플은 시계 제작 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제공하고 에르메스는 오브제 디자인과 장인 정신, 가죽에 대한 노하우를 제공했습니다. 애플의 이름을 빌려서 제품의 가치를 높이려 한 것이 아닌 기술력을 결합한 작업이죠. 따로 계약을 맺고 있는 셀러브리티가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유명인이더라도 저희에겐 같은 고객이죠. 에르메스의 오브제와 옷을 좋아해서 찾아주는 모든 분이 에르메스 가족이고 에르메스의 세계에 포함됩니다.

밀레니얼 세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 세대는 상업적인 측면에서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미 에르메스의 고객입니다. 매우 중요하고 힘 있는 세대라고 생각하죠. 이 세대는 에르메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가치가 새로운 세대에 전해진다는 사실은 매우 행복한 일이에요. 그리고 이들은 좋은 제품을 제대로 알아보고 구매하고 있어요. 자랑하기 위해 순간적이고 일시적으로 에르메스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죠.

에르메스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30여년간 일했어요. 이토록 오랜 시간 에르메스와 함께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요? 열정입니다. 욕심과 호기심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아티스틱 디렉터로서 에르메스는 마치 집과 같아요. 제겐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종종 생각해봐요. 예를 들어 어떤 작가에게 30년이나 글을 쓰셨네요, 혹은 음악가에게 30년이나 연주하셨네요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만큼 당연하고 익숙해요. 물론 존경의 표현으로 묻는 것으로 알고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어쨌든 에르메스에서 행복하게 일하고 있어요. 자유롭게 옷을 디자인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팀원들을 이끌어가고 피에르 아르디와 함께 신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이 일이 정말 재미있어요. 에르메스는 놀라운 메종입니다. 제가 상상하고 이루고자 하는 것을 기꺼이 허용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는 꿈만 같은 현실이죠. 저는 늘 꿈꾸는 삶을 바라고 스스로에게도 계속해서 얘기하곤 합니다.

    에디터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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